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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3

흩어진, 잊혀진, 남겨진

전 세계에 흩어진 조선백자를 찾아 사진에 담는 작가, 구본창. 지난 15여 년의 백자 기록을 총망라하는 전시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다. 구본창의 시선에서 포착한, 조선백자에 서린 시간의 영속성과 찰나의 공명을 그와 함께 들여다보았다.

수집과 기록. 구본창 작가를 설명하는 간단하지만 정확한 키워드는 이 두 가지다. 그는 사사로운 것들이 잊히고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남기는 일을 해왔다. 사진을 통해서 말이다. 자신의 사진 이야기를 담은 책 <공명의 시간을 담다>에서 “사회적으로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 감정과 삶의 통찰을 다루고 싶었다” 했고, ‘잘 들리지 않는 떨림이나 사소한 일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 삶의 표면 아래 감춰진 자국, 스쳐 지나기 쉬운 수많은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들려주는 것이 사진가의 일이라 말했다. 2004년부터 조선백자를 찍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 흩어진 백자를 사진에 담아 한자리에 모아보고 싶었습니다. 익숙하게 본 몇 가지 외에 볼 기회가 없던 백자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죠. 우리나라 박물관을 비롯해 런던, 파리, 샌프란시스코, 일본 도쿄·교토·오사카 등을 다니며 조선백자를 찍다 보니 백자의 진면목이 보이더군요. 온화하고 여유롭고 단아한 멋. 백자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눈으로 포착하기 쉽지 않던 그 멋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갑자기 근대화됐고, 조선시대 이전까지 품고 있던 한국 고유의 정서와 아름다움, 가치관과 생각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훼손되어 사라졌습니다. 사진작가로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진정한 멋을 찾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의 ‘백자’ 시리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잊힌 멋을 발견하게 해주는 울림이 되었다. 그간 한국의 대표 문화재로 고려청자를 꼽던 이들도 조선백자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해외 유수 박물관과 미술관도 한국의 도자기 문화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대형 설치미술이나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 이슈가 되는 시대에 작고 밋밋한 한국의 도자기는 그 멋을 알리는 전시를 기획하기가 쉽지 않던 한계를 뛰어넘게 했다. 구본창의 ‘백자’ 시리즈를 전시장에 크게 내걸고, 그 앞에 실제 백자를 놓아 전시 규모를 키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전시가 주목받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월 17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여는 이번 개인전은 이제껏 그가 찍어온 ‘백자’ 시리즈를 갈무리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큰 전시다. 2006년과 2011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두 차례의 개인전 이후 7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백자’ 연작 9점을 비롯해 ‘청화백자’ 연작 6점과 대형 ‘제기’, ‘청화병풍’ 등 총 1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청화백자’ 시리즈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푸른 빛에 물들다>전에서 청화백자에 매력을 느낀 구본창 작가는 백자의 형태도 형태지만, 그 안을 푸른빛으로 수놓은 회화적 요소를 주목했다. “1차로 구운 도자기에 조심스럽게 붓으로 그렸을 화공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얼마나 애틋했을까요? 파란색이 옅고 여백도 많지요. 당시 푸른색 안료는 고가의 수입품이라 왕실 이외에는 사용을 금했고, 사신을 통해 몰래 들여왔다더군요. 압도적이고 정교한 중국의 청화백자, 조형적이고 세밀한 일본의 청화백자와 달리 조선 청화백자가 이처럼 청아하고 소박하고 간결한 이유는 유교 사상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귀한 안료를 아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덕분에 풀 한 포기라도 조심스럽고 귀히 여기는 당시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죠. 섬세함과 청초함이 느껴져요.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잊고 살아온 조선시대의 간결하고 단정한 멋 아닐까요?”






1 ‘OM14’. 청화백자 소장처: 교토 이조 박물관
2 ‘OM 17’. 청화백자 소장처: 교토 이조 박물관

한국의 전통 탈, 백자와 황금, 목기, 함 내부에 새긴 전통 문양 등 구본창 작가는 그의 책에서 ‘작고 조용한 존재에 말을 걸고 귀 기울이는 행위’가 작업의 기조가 된다고 말한다. 어릴 적 내성적인 탓에 사람들과 관계 맺기보다는 혼자 떨어져 사물을 관찰하고 말을 걸며, 그것에 스며든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을 좋아했다고. 지금도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며칠씩 휴대폰을 꺼두고 철저히 혼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내려놓고 자기만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들수록 아이디어와 영감을 더 많이 얻게 된다.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게을러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결국 다음 작업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시간이 되더군요. 쉰다고 해서 마냥 몸을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작업하느라 미뤄둔 정리 정돈을 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네요. 밀린 청소를 하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것을 제자리에 두고, 때론 뒤집어엎어 새롭게 배치하고. 그렇게 정리 정돈을 하다 보면 오래전 묵혀둔 메모를 발견하기도 하고, 책에 밑줄 친 것을 통해 생각을 되새김질하기도 합니다. 간혹 ‘어떻게 작업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그럴 때마다 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작가는 때때로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켜 자기만의 침체된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영감을 길어 올려야 합니다.”
피사체의 표면 그 이상을 들여다보고, 작가가 포착한 피사체의 본질을 시각적 사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적 시선을 끊임없이 구축하는 것은 사진가의 기본자세다. 누구나 기록으로서 사진을 찍는 시대에 여전히 예술로서 사진이 단단하게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본창의 백자는 왜 핑크빛인가? 그의 시선으로 포착한 백자는 ‘규방에 들어 있는 여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것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매 순간 ‘공명’을 담아내는 것이 사진가의 일이라고 밝힌 구본창 작가는 그가 찍는 사물과의 교감, 소통하면서 스며 나오는 깊은 울림과 에너지를 찰나에 터져 나오는 공명에 비유했다. 구본창의 ‘백자’는 그 공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그나저나 구본창 같은 작가도 휴대폰 카메라로 작품을 찍듯 사진을 찍을까? 휴대폰에 담긴 카메라의 최첨단 기능을 활용할까?
“물론입니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구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회사 광고 이미지로 쓰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오더군요. 이번에 인도 여행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진을 휴대폰 카메라로 기록했는지 몰라요. 길거리를 다니며, 사람과 사물에 휴대폰 카메라를 막 들이대도 친구처럼 편하게 포즈를 잡아주는 인도인과 마주하면서 사진으로 자유롭게 소통한다는 기분을 느꼈어요. 소통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걸 또 한번 느꼈습니다. 그러나 휴대폰 카메라의 특수 기능은 전혀 활용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피사체와의 소통의 문제이자 작가적 시선으로 포착한 ‘순간, 찰나’의 문제거든요.” 

 

에디터 손지혜
사진 여승진   작품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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