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우성, 바람이 분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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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4

감우성, 바람이 분다

감우성이 지나온 계절. 그리고 앞으로의 인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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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엔 자주 아팠다. 갓 제대하고 취업을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누구와 헤어진 직후였고, 그 밖에 여러 현실이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사방이 안개로 뒤덮인 무진(霧津) 같은 공간에 홀로 놓인 느낌이었다. 그때 <연애 시대>의 동진을 만났다. 그가 그 시절의 위안이었다. 동진은 이상적 인물이 아니었다. 어딘가 서툴고 빈틈이 많았다. 변명보다는 차라리 열병을 앓는 남자였다. 그리고 타인을 위해 많은 걸 감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좋았다. 현실에 부딪혀 멍이 들어도 선하게 살려는 것이 우리 모습 같았다. 마치 이 도시 어딘가 그가 실재할 것 같았다. 목적지 없이 부유하던 내 청춘의 실마리도 그 모습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막연히 동진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꽤나 건조한 관객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드라마 캐릭터처럼 살고 싶었다.
감우성은 그런 배우다. 버스 정류장이나 골목에서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음이 가도록 연기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준영도 그랬다. 감정에 솔직하려 하지만 겁이 많은 남자, 현실에 너절해진 자신을 추스르고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최근 종영한 <바람이 분다>의 권도훈은 특수한 상황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치매와 싸우고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좇다 보면 그의 처지가 개인적 상황으로 와닿는다.
감우성은 일상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응시한다. 기쁨, 슬픔, 권태라는 단어를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 연기한다. 그 섬세한 조각을 통해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완성된다. 텅 빈 눈으로 응시하거나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는 것, 머플러를 여미는 별거 아닌 동작으로 캐릭터에 굴곡이 생긴다. 그건 아주 세밀한 계산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도출한 노림수다. 얇은 점토를 수만 장 덧대 인물의 세월과 배경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음각과 양각의 조합이 감우성이라는 배우의 연기 방식이다.
감우성은 지금이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중간 지점이라고 말한다. 작품에 꽤 많은 걸 쏟아붓는 그의 연기 특성상 다작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하다. 지금 감우성은 여러 계절을 돌며 어떤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과 같은 갈증을 가진 사람들. 그들과 함께 인생 최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내가 20대 중반 동진에게 위안을 얻었듯이, 그가 원하는 인연을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그의 연기를 보고 다시 누군가 위로받기를.

지쳐 보인다. 얼마 전 종영한 <바람이 분다> 후유증인가? 예전엔 더 무식하게 일했다. 그래도 몸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요샌 ‘아, 이런 게 후유증인가?’ 싶다. 심하게 앓은 적도 있고. 심적으론 지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무사히 해냈다’ 그게 전부다. 이번에도 탈 없이 잘하다 종영하자마자 병이 났다.

예민해 보인다. 날카로운 느낌도 있고. 지금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일하는 모드로 되어 있어 감각이 좋다. 이럴 때 한 작품 더 해야 하는데.(웃음) 2주일 전에 허리를 다쳤다. 체력 생각을 안 하고 예전 무게로 레그 스쿼트를 하다 무리가 갔다. 한 열흘 동안 걷지 못했다. 지금도 앉아 있는 게 조금 힘들다.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어제부터 거동하는 덴 무리가 없다.

작품을 위해 체중을 많이 줄였다. 두 자릿수 감량은 운동선수나 하는 거 아닌가. 무식하게 뺀 건 아니다. 내 몸의 한계는 잘 알고 있다. 난 평소처럼 생활하되 식단 조절만으로 한 달에 3kg까지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작품 스케줄에 맞춰 감량했다. 최종적으로 11kg 정도 몸무게가 줄었다. 체계적으로 줄여서 몸에 큰 무리는 없다. 이제 다시 천천히 복구해야지.

예전 모 배우가 감우성이란 사람에 대해 ‘일반적 연예인과 좀 다르다’고 말했다. 화려한 생활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아닌가 싶다. OOO?(웃음) 본인 사는 거와 많이 다르니 그렇게 느꼈을 거다. 특별할 게 없다. 일 그리고 평범한 생활이 전부다. 쉴 땐 아침 먹고 오전에 3시간 정도 운동한다. 다시 점심 먹고 집안일을 한 뒤 조금 쉰다. 그리고 저녁때에는 책을 읽거나 글도 쓰고, 10시가 되면 잔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전원생활을 한 지 꽤 됐다. 살면서 손이 많이 갈 텐데,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연히 손이 많이 간다. 그걸 즐기려고 전원생활을 한다. 촬영이 없을 땐 보수나 수리를 직접 한다. 내가 조금만 고생하면 남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니까. 자연에 묻혀 사는 게 습관이 됐다. 나는 나무가 눈에 보여야 한다. 그래야 산다. 시멘트 덩어리로 된 공간은 체질상 맞지 않는다.

정원도 직접 가꾼다고 들었다. 기르는 나무도 많고. 주로 과일나무를 기른다. 살구, 자두, 대추 같은 거. 때죽나무나 구상나무 같은 관상용도 있다. 소나무가 제일 많고. 텃밭에선 각종 쌈채소를 기른다. 얼마 전 장마가 끝나서 지금 손이 가장 많이 갈 때다. 잡풀이 무성하게 올라와 정리해야 할 곳이 천지다. 몸이 불편해 한동안 관리를 안 했더니 엉망이다. 차도가 보이면 그거부터 해야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프로필 말고는 그 흔한 가십도 찾기 어렵다. 데뷔 28년 차 배우, 그것도 인기 있는 연예인에겐 흔치 않은 일이다. 보여줄 게 없다. 그다지 특별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일로 보면, 대중에게 어필하고 끊임없이 감우성을 노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여력이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그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만약 젊을 때 전문 엔터테인먼트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런 활동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난 오랫동안 혼자 일했다. 이게 익숙하다.

세상이 변했다. 연기만큼 엔터테인먼트 활동도 중요한 세상이 됐다. 장단점이 있겠지. 난 아마 잘나가지 않는 배우처럼 보일 거다. 눈에 보여야 인정받는 세상이니까.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안 띄는 배우를 굳이 쓰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캐스팅하는 것 같다. 숨어 있는 좋은 배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배우의 모습은 온전히 연기로 보이는 거다. 개인에 대한 정보는 연기를 하는 데 방해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투와 표정, 제스처 같은 게 미리 읽히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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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를 전공했다. 그것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통파다. 갑자기 배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갑자기 배우가 된 건 아니다. 활동한 지 30년 정도 됐지만, 배우를 꿈꾼 건 그보다 오래전 일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는 그런 세대였다.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운 할리우드 키드. 그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을 영화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예전엔 동시 상영관이 많았다. 거기서 몇 시간이고 영화를 봤다. 그러면 고민이나 답답함,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견딜 수 있었다. 위안을 주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꿈이라고 전부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더더욱.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 기울면 삶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가는 듯하다. 첫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세트가 양수리 종합촬영장에 있었다. 몇 주 머물렀는데, 하루는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산책을 했다. 북한강변을 따라 걷는데, 고즈넉한 풍경이 너무 좋았다. 그때 언젠가 이쪽으로 다시 올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내가 거기 살고 있더라. 그런 것 같다. 어려서부터 꿈꿔온 환상이, 지금 내가 배우를 하게 만들었다. 열망이 모습을 만든다.

연극영화과를 지원할 생각은 안 해봤나?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학창 시절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고등학교도 예고로 갔다. 대학도 미대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예민한 사람 같다. 그래서인지 연기도 섬세해 보인다. 그림은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다. 나의 내면을 내 기관을 통해 이루는 감각적인 일이다. 이건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이론을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연기도 비슷하다. 그런 부분이 나와 잘 맞은 것 같다. 내 외모나 신체적 기능이 연기를 하는 데 탁월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봐온 배우의 이미지가 참 다양했다. ‘아, 배우란 특별한 조건을 갖춰야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런 희망을 가졌다. 그래서 나만의 장점에 집중했다. 상상력이나 섬세한 감각의 사용. 그게 내가 연기하는 방식이다.

한 분야에서 30년의 경력을 쌓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단순히 좋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배우 감우성을 배우로 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고지식한 점. 내겐 어릴 때부터 품어온 꿈이 조금씩 현실화하는 과정이 소중하다. 그 성장의 시간이 이젠 너무 중요해서 버릴 수가 없다. 연기는 무한한 미지의 세상이다. 끝을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 혼자 완벽하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운동에 비유하면 단체전이기에 좋은 인연을 만나야 한다. 그런 갈망이 있다.

다작을 하는 배우가 아니다. 작품과 작품 사이 간격도 넓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는 <키스 먼저 할까요?> 이후 1년 만이다. 전작에 비하면 빠른 편이지. 고민이 많았다. 쉬고 있는데 <바람이 분다> 제안이 들어왔다. 그런데 또 아픈 캐릭터더라.(웃음) 시한부 역을 맡은 지 1년 만에 치매 환자라니. 주변에서도 우려가 많았고, 사실 나도 고민이 됐다. 그런데 하고 싶었다. 그만큼 끌리는 캐릭터였다.

동어 반복의 느낌은 없었다. 두 캐릭터는 완벽히 달랐다. 그런 평가를 받으니 흐뭇하다. 노력이 통했다는 거니까. 왜 또 아픈 사람을 연기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답답했다. 마치 프로 기사에게 ‘또 바둑 두냐?’고 묻는 것과 같으니까. 바둑판은 한정된 공간이지만 거기서 벌어지는 일은 무한대다. 돌 하나를 올릴 때 엄청난 상상과 수 싸움을 필요로 한다. 내가 하는 일은 같은 걸 반복하는 게 아니다. 연기에선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나 스스로 질리지 않는다면 늘 새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권도훈은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와 다르다. 특수한 상황이기도 하고. 작품을 하기 전까진 치매가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인 줄 알았다. 그만큼 무관심했던 거지. 치매가 인지 기능 장애라면 알츠하이머는 그 질환을 일으키는 여러 종류의 질환 중 하나다. 거의 백지상태에서 접근하다 보니 책과 학술 자료에 많이 의지했다. 관련된 영화는 거의 다 찾아본 것 같다. 그가 앓는 질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멜로 드라마지만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선 섬뜩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치매는 정말 겪고 싶지 않은 무서운 질병이다. ‘치매라는 소재는 너무 흔한 거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 질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치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30~40대 중 이미 치매 초기 증상을 앓는 사람이 많을 거다. 오랜 시간에 걸쳐 증상이 진행되는 병이다 보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치매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드라마를 보고 치매라는 질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감우성의 연기는 섬세하면서 입체적이다. 실제 생활이 느껴지는 연기라고 할까. 인물을 연구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이 궁금하다. 그건 셰프에게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웃음) 다 알려줄 수는 없고, 음식 방송처럼 80% 정도 말해주겠다. 나는 촬영 전 머릿속으로 영상을 한 편 찍는다. 대본을 토대로 공간과 사람, 풍경을 상상한 뒤 극 중 배역의 감정을 구체화한다. 현장에 서기 전 어떻게 연기할지 미리 한 편을 완성하는 거다. 나머지 20%까지 말해준다면 30년 동안 연기를 하며 자연스레 몸에 쌓인 것이 있다. 배우를 동경하며 본 영상이, 배우를 하며 얻은 현장 경험이 일종의 언어로 몸에 새겨져 있다. 그것들이 순간순간 발현된다. 마치 권투 선수가 잽을 피하듯 반사 신경처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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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감우성을 배우로 이끈 작품이 궁금하다. 지금도 영화를 많이 본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은 많지 않다. 요새는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자극적 화면이 많다. 순수하게 스토리와 미장센, 연기에 힘을 싣는 영화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그래서인지 집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전 작품을 다시 꺼내 본다.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디어 헌터> 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모두 로버트 드니로라는 배우와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은 영화다. 그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얼마 전 한 남자 배우와 오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자신의 연기 롤모델이 감우성이라고 했다. 이제 후배 연기자에게 레퍼런스로 지목되기도 한다. 고마운 이야기다. 부담되기도 하고. 이제는 내 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30년 동안 구축한 연기, 그 감각적 표현에 대해 믿음이 있다.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스스로에게 가혹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연기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게 내 자부심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와 어울리는 배우인지는 모르겠다.

주연배우는 소진됐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감우성은 아직까지 그게 없다.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그 사자성어를 가끔 떠올린다. 난 멈춰 있어도 멈춘 게 아니다. 머릿속으론 끊임없이 연기를 상상한다. 힘들 때, 슬럼프, 원하는 작품이 들어오지 않을 때, 정체된 순간, 반복된 실수, 잘못 내린 판단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것 같다.

드라마 <연애시대>는 내게 남다른 작품이다. 20대 중반에 감우성이 연기한 이동진을 보면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진은 다소 엉성한 사람이다. 헐겁고 서툴다. 좋아하는 말 중 ‘내가 상대를 봤을 때, 상대가 우스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나를 배려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이동진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참 부족한 인간이지만 마지막 순간 그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랐다. 동진은 원작과 많이 달랐다. 일본 소설인 원작에서 그는 사무라이처럼 묵묵한 사내다. 그걸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이동진이 나왔다. 이동진을 연기할 때 나는 끊임없이 손동작을 했다. 실없는 농담과 빈틈을 많이 보이려 했다. 그런 디테일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마치고 겨우 해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감우성이 출연하는 영화가 좋다. 그중에서도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알 포인트>, <거미숲> 같은 독특한 영화가 좋다. 그땐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했다. 연기 욕심이 많아 스트레스도 심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던 때다. 무식하게 연기했고, 나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세 작품 모두 후유증이 가장 컸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있지만, 아쉬움이나 미련이 많은 영화다.

앞서 말한 영화 모두 실험적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 비해 파격적 부분도 있었고. 출연한 시기를 보면 ‘작품을 고를 수 있는 배우’가 된 이후다.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안전한 작품을 원하지 않는다. 흥행 공식 같은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근래 멜로라는 장르를 몇 편 해서 그런 배우로 보이지만, 편한 걸 원하는 건 아니다. 어렵고 난해한 작품에 도전해 그걸 이겨내는 것이 나와 맞는다.

<왕의 남자> 장생은 감우성의 연기 중 가장 선이 굵다.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연극 원작 <이(爾)>와 왕의 남자 장생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비중도 크게 늘었다. 이준익 감독님의 표현을 빌리면 ‘왕의 남자라는 작품은 장생이라는 캐릭터의 시각과 입장으로 극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백지와 다름없었다. 그 막막함이 좋았다. 내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해보고 싶어 작품에 응했다. 나는 그런 도전을 즐긴다. 아마 내가 가진 한 줌의 잔기술로 반복되는 작품에 안주했다면 사람들도 식상했을 거다. 그땐 두려운 작품이 끊임없이 들어오길 바라던 시기다. 그걸 극복하고 싶었다.

감우성을 다시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나도 그렇다. 간절히 영화 출연을 바라고 있다. 지난주 오랜만에 영화 책(시나리오)을 한 권 받았다. 너무 설레더라. 거동이 힘들었지만 꼿꼿이 앉아 한자 한자 꼼꼼히 읽었다. 이젠 내게 시간이 그리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내 감각은 최고조다. 어떤 역할이든 해낼 것 같은 자신이 있다. 그래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 함께 최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목마른 사람들을 만나길 기원한다.

어느덧 50이 됐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월이 이만큼 흘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은 인생의 중간 정도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게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 볼 때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또 연장자에겐 ‘내가 젊을 때 저런 생각으로 살았다면’이라고 느껴질 만한 인생을 살고 싶다. 현명한 인생이 되길 바란다. 틈틈이 글을 쓴다고 했다. 어떤 글인가. 언젠가 빛을 볼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끼적이고 있다. 순간의 내 감정, 생각, 바람을 글로 남기고 있다. 그게 어떤 형태일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 그래서 다른 작가의 글을 유심히 본다.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어떻게 쓰는지 관찰한다. 시, 소설, 에세이, 칼럼 같은 것.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나? 언젠가 감우성의 개인전을 보고 싶다. 그 부분이 아쉽다. 틈틈이 해야 하는데. 붓을 잡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배우로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다. 어느 시점이 되어 배우를 그만두면 그때 할 일로 생각한다. 요즘 연예인이 그림 그리는 게 유행처럼 되었더라. 그렇게 비춰질까 봐 싫다. 그림은 인생을 걸고 모든 걸 쏟아부어도 성공하기 힘든 분야다. 단순 테크닉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거기에 동조하는 미술계도 아쉽다. 난 아직까지 그림에 모든 사연과 감정을 담을 자신이 없다. 더 많은 고민과 깨달음을 얻은 뒤에야 붓을 잡을 것 같다.

가을과 어울리는 남자다. 이번 계절은 어떻게 보내려 하나. 전국 곳곳을 걷고 싶다. 숨은 맛집 투어도 하고. 맛있는 거 먹는 게 몇 안 되는 인생의 낙이다. 예전엔 해외를 많이 다녔는데, 요샌 외국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다. 그냥 전국의 소소한 거리를 구경하고 싶다. 구석구석 숨은 맛집에서 정갈한 한 끼를 먹고 싶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최용빈   스타일링 홍나연   헤어 재황   메이크업 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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