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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6

흔적을 지워라

예술이 예술을 하느라 자연에 남긴 발자국이 한가득 쌓였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오염되기 전에 런던 아트 신이 나섰다.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12월 3일까지 열리는 <앤터니 곰리>전 전경.

발언하는 예술
2018년 8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스웨덴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Skolstrejk for Klimatet)’라고 쓴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녀의 나이 15세였다. 시위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1년이 지난 지금 툰베리로부터 시작된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올 하반기 런던 아트 신은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그리고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시작했다. 사실 예술계만큼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면죄부를 받아온 분야도 없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창작 활동이기에 환경과 윤리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다.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에서 12월 3일까지 <앤터니 곰리>전을 열며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예술계가 터부시해온 환경문제에 대해 다소 강한 입장을 밝혔다. 소수의 사람을 위해 열리는 아트 페어는 의심할 여지없이 자원 낭비라는 것. 일부 컬렉터를 위해 전 세계에서 운송되는 작품과 관련 인사들의 비행기 여행이 만들어내는 탄소발자국은 기후변화에 분명히 영향을 주고 있으며, 자신도 아트 페어 수혜자이자 환경문제를 야기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또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술계가 자신만의 방법을 탐구하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7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환경문제를 다루는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 In Real Life >전에서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한 조금 더 직접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전시의 일환으로 영향력 있는 예술가와 환경 운동가 및 예술 공동체 단원 100여 명을 테이트 모던 터번 홀로 초대해 기후변화 토론회를 열고 난 뒤 기후 비상사태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앞으로 테이트 모던을 비롯한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Tate St Ives)에서 환경 친화적 전기를 사용할 것이며, 테이트와 관련한 모든 출장은 기차 탑승을 최우선으로 하는 등 2023년까지 탄소발자국을 10% 줄이겠다고 약속한 것. 테이트 내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채식 위주의 메뉴를 늘릴 예정이다. 이처럼 환경문제·기후변화에 대한 예술계 내 논의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펜타인 갤러리가 꾸준히 열고 있는 프로그램 ‘마라톤’은 환경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를 논한다.

행동하는 예술
런던에 기반을 둔 ‘줄리스 바이시클(Julie’s Bicycle)’은 창의적 공동체가 기후변화 중단과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자선단체다. 주된 활동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창의적 해결책이 잘 공유되도록 행사 개최, 자원 무료 제공, 연설 및 프로그램 운영 등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상은 예술, 크리에이티브 단체에 탄소 및 환경 계산기인 IG 툴스(IG Tools)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되어 있는 이 프로그램은 에너지와 물 소비량, 폐기물 생산량, 재활용 백분율을 계산해주는 데다 일정 기준을 통과한 단체에는 창조적 환경 인증서(Creative Green Certification)를 수여한다. 이미 2000개 넘는 단체가 사용할 만큼 IG툴스는 런던의 예술, 창조 산업 내에서 지속 가능성과 기후변화 해결의 이정표가 되었다. 참고로 줄리스 바이시클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지구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자는 파리기후협정의 목표를 따르고자 문화 부문 탄소 배출의 주원인인 에너지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술 작품 포장 전문 회사 록박스(RokBox)는 조금 더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바꾸지 않은 작품 포장 자재를 재활용이 가능한 첨단 소재로 획기적으로 바꿨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예술 작품을 옮기는 데 생성되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 데다, 그 어떤 작품 포장보다 가볍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덧붙여 운송 중인 작품이 어디쯤 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앱을 구상 중이라고.






알렉스 체케티의 퍼포먼스 ‘뒤로 걸으며 산책하기’.

한편, 전 세계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는 기후변화 문제에 창의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매년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특정 주제에 대해 연속적으로 발표하는 프로그램 ‘마라톤(Marathon)’을 개최하는 것. 그중 2014년에 열린 ‘Extinction Marathon: Visions of the Future’는 서펜타인 갤러리가 환경 문제에 고취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윽고 서펜타인 갤러리는 환경과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복잡한 문제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프로젝트 연구로 다루는 환경 관련 예술 프로그램 ‘제너럴 에콜로지(General Ecology)’를 만들었다. 주로 예술, 디자인, 과학, 문학, 인류학 분야의 실무자를 모아 출판, 전시회, 학습 프로그램, 라디오, 심포지엄, 라이브 이벤트를 진행한다. 일례로, 지난봄에 열린 < Emma Kunz-Visionary Drawings: An Exhibition Conceived with Christodoulos Panayiotou >전과 연계해 식물의 지능과 에로틱의 교차점을 탐구한 퍼포먼스, 심포지엄, 커미션 프로그램 등을 제공했다. 9월에는 예술가이자 시인, 가드너, 안무가인 알렉스 체케티(Alex Cecchetti)가 퍼포먼스 ‘뒤로 걸으며 산책하기(Walking Backwards)’를 선보였는데, 다채로운 생명체에 영감을 받은 퍼포머가 관람객을 이끌고 다니며 식물과 친근해지도록 도와 호평을 받았다.
환경문제와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문화와 깊이 관련 있다. 모든 창작 활동은 이 문제의 결과이거나 또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예술적 영감은 한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환경의 중요성과 이에 대응하는 대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런던 아트 신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지켜보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양혜숙(기호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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