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로 그린 한식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LIFESTYLE
  • 2020-03-06

단색화로 그린 한식

단색화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한식 셰프들이 완성한 궁극의 멋과 맛.

하종현의

안성재의 발효 쌀 디저트 “작품의 굵은 선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한 가지 색임에도 텍스처의 레이어만으로 매우 화려해 보였다. 이 작품이 완성된 걸 알았을 때, 이 작품은 또한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미완성되었다고 느꼈다. 아마도 반복적 선과 그것이 어떻게 끝없이 계속될 수 있는지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모수의 안성재 셰프는 물감을 마대 뒷면으로 밀어내 물질이 자아내는 표정을 보여주는 하종현 작가의 접합 시리즈 중 ‘Conjunction 17-66’에서 영감을 받아 디시를 창조했다. 팽화 쌀(Puffed Wild Rice)을 발효시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늦겨울부터 초봄까지 제철인 감귤로 맛을 냈다. 발효는 한국 전통 요리가 지닌 놀라운 지혜다. 쌀 아이스크림 위에는 귤, 한라봉, 블러드 오렌지 칩을 구워 올리고 사과 껍질 조각, 발효 초콜릿, 코냑 잼으로 장식했다.






하종현의 붓 터치

강민구의 도토리묵 “예술은 잘 모르지만, 작가의 붓 터치에서 강인함을 느꼈다. 붓 터치와 마무리에서 전해지는 작가의 영혼과 힘을 음식에 담아내고 싶었다. 단색화와 마찬가지로 음식 또한 평면에 그리는 예술인데, 제한된 평면에서 어느 정도 깊이를 낼 수 있는지 깨달았다.”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하종현 작가의 초기 접합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아 도토리묵 요리를 만들었다. 냉침 멸치 육수로 묵을 쑤고, 당도를 고려해 까다롭게 선별한 배를 썰어 위에 올렸다. 그리고 검은깨, 산초 페스토, 안초비 아이올리를 곁들여 맛을 냈다. 도토리묵은 익숙하고 흔하지만 밥상에서 좀처럼 주연을 맡지 못하는 재료다. 동시에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이자 전통 요리 방식의 오랜 지혜가 담겨 있기에, 한식의 근원을 존중한 요리를 완성하고 싶었다.






이우환의

강민구의 오골계 요리 “한 가지 색으로 구성된 평면에서 나온 깊이감이 매력적이었다. 푸른 선의 붓 터치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닭이 뛰는 역동적 느낌을 상상하도록 했다.” 강민구 셰프는 이우환 작가의 ‘선으로부터’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메인 디시를 완성했다. 달리는 닭의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고 한국 전통 재료인 오골계를 주재료로 선택하고, 다릿살과 버섯으로 채운 오골계를 튀긴 뒤 먹버섯 장아찌 소스를 만들어 곁들였다. 먹물 소스로 접시 전체에 그린 거멓고 푸른 선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도 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강한 기운을 지닌다.






이우환의 여백

안성재의 절인 고등어 “작품을 마주한 뒤 시선을 집중시킬 공간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다소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파악하기 위해 화면을 확대하면서, 일종의 활기차고 높은 템포를 발산했다. 이 작품에서 얻은 느낌 그대로, 요리에서 불균형을 통해 균형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우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선으로부터’를 보고 안성재 셰프는 여백을 과감히 드러낸 디시를 창조했다. 이맘때 가장 맛있는 고등어를 절여 겉면을 검게 그을리고, 역시 이 계절에 맛있는 딸기를 젖산 발효해 맛을 내고 부추, 재피 씨를 가니시했다. 나란히 놓인 고등어 세 조각은 쏟아질 듯 아찔하면서도 균형감을 지닌다.






박서보의

안성재의 쌀, 그리고 누룩 “컴퓨터 화면 속 작품은 색상이 아름답고 은은해 보였다. 실제 차원의 크기는 상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작품의 디테일과 그에 들어간 노력을 보고 숨 막히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 아름다움과 놀라운 예술 작품에서 진실로 영감을 받았다.”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 중 후기 작업에 해당하는 ‘색채 묘법’ 중 안성재 셰프는 ‘No.180503 2018’의 미묘한 분홍색 컬러를 접시에 옮겼다. 밥과 대구곤이 요리, 검은 송로버섯을 차례로 올리고, 붉은 수수 누룩 거품을 만들어 구름처럼 올렸다. 대구곤이와 유럽에서 온 검은 송로버섯은 이맘때가 가장 맛있다.






박서보의 깊이

김범주의 공기 혼입 디저트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마음이 복잡했다. 단색으로 되어 있지만 볼수록 깊이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규칙적으로 파인 골에서 그림자가 또 다른 색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그려진 것이 아닌, 굉장히 힘 있고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밍글스의 페이스트리 셰프 김범주는 박서보의 후기 묘법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아 디저트를 완성했다. 특히 박서보 작가가 만들어낸 ‘공기 색’이라는 개념을 차용해 공기의 혼입으로 완성되는 조리법을 택했다. 딸기 제피 머랭, 그 속을 채운 한라봉 파르페와 유자배 소르베 세 요소 모두 공기의 혼입을 통해 맛과 텍스처가 완성된다. 불규칙하면서 규칙적으로 쌓아 올린 머랭의 그림자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박우진   자료 협조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   어시스턴트 최고은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