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도시를 수리하는 예술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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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0

망가진 도시를 수리하는 예술가

행동하는 예술가는 삶을 이롭게 바꾼다. 어셈블 스튜디오의 창립 멤버이자 디렉터 마리아 리소고르스카야는 이 믿음으로 10년간 도시환경에 변화를 가져왔다.

어셈블 스튜디오의 창립 멤버이자 디렉터 마리아 리소고르스카야가 지난겨울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9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현대 아트 신은 화이트 큐브에 놓인 회화나 조각만이 예술은 아니라고 정의한다. 2015년, 영국의 권위 있는 현대미술상 ‘터너상’이 어셈블 스튜디오(Assemble Studio)에 돌아가면서 이 개념은 더욱 견고해졌다.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 18명의 멤버가 함께하는 어셈블 스튜디오는 쇠락한 지역사회를 예술로 되살리는 단체다. 이들의 터너상 수상은 여러모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역대 최연소, 최초의 단체 수상, 게다가 우리가 아는 ‘시각’예술과 다른 걸 해왔기 때문이다. 버려진 주유소를 영화관으로 바꾼 ‘시네롤리엄(The Cineroleum)’, 낙후된 리버풀 공공 주택단지를 되살린 ‘그랜비 포 스트리츠(Granby Four Streets)’처럼 어셈블 스튜디오는 예술이 삶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예술가 몇 명을 마을에 입주시키고, 공공 미술 작품을 설치하거나 미술관을 세우는 그런 평범한 방식이 아니다. 젊고 영민한 멤버들은 지역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사람들이 원하는 도시계획을 세우고 필요에 따라 예술을 적절히 활용했다. 터너상을 주관하는 테이트 브리튼이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을 어셈블 스튜디오의 수상 이유로 밝혔듯, 요즘은 일상과 예술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시대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는 어셈블 스튜디오는 예술이 우리 삶 도처에 존재함을, 예술의 다양한 쓰임새를 매일매일 증명하고 있다. 지난겨울, 어셈블 스튜디오 창립 멤버인 마리아 리소고르스카야(Maria Lisogorskaya)가 한국을 방문한 것도 헤럴드디자인포럼 2019에 참여해 이 시대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논하기 위해서였다.




1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의 갤러리 골드스미스 CCA(Goldsmiths Centre for Contemporary Art). 골드스미스의 커미션을 받아 2014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다.
2 어셈블 스튜디오의 첫 프로젝트 ‘시네롤리엄’은 멤버들이 기획부터 시공까지 모든 걸 도맡아 진행했다.

어셈블 스튜디오를 대표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첫 프로젝트 ‘시네롤리엄’에는 모든 멤버가 참여했는데 요즘은 개별 활동이 많아 보여요. 더 이상 하나의 프로젝트에 모두가 참여하진 않아요. 준비 단계에 열리는 회의에만 모든 멤버가 모이죠. 실질적으로 한 프로젝트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건 2명이고, 나머지는 평론가 역할을 맡습니다.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부쩍 많아진 이유가 크겠죠? 어셈블 스튜디오의 자체 기획보다 외부 제안이 많을 듯한데, 함께 진행할 프로젝트를 결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조금이라도 아는 지역을 먼저 살펴요. 투자 목적이 짙은 도시계획은 거절합니다. 어셈블 스튜디오가 기획하든, 제안을 받든 장기적 관점에서 도시와 거주민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만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자기 주도적으로 하죠.

자기 주도적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합니다. 어떤 도시에 계획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프로젝트를 시행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검은 말 워크숍(Blackhorse Workshop)’, ‘슈거 하우스 스튜디오(Sugar House Studio)’처럼 주로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실, 대안 공간을 만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작가에겐 임대료가 저렴한 작업실이 절실하니까요. 이 두 사례는 어셈블 스튜디오의 자체 기획이고, ‘머터리얼 인스티튜트(Material Institute)’ 같은 경우는 미국 뉴올리언스가 먼저 제안한 사업이에요. 시작점에 차이가 있어도 모든 프로젝트의 목적은 같아요. 사람과 공간의 연결성을 찾고, 지역민에게 도움이 되는 도시로 가꾸려 하죠.




30대 중반의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어셈블 스튜디오.

지역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언제나 그들을 우선시해요. 그저 아름답기만한 공간은 무용지물이죠. 어셈블 스튜디오는 건축가나 디자이너지, 해당 지역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에요. 그래서 작은 스케치라도 지역 주민이나 단체와 공유하고 소통하죠. 그래서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지역민의 참여도에 달려 있습니다. 아! 저희가 잘 모르는 도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반드시 지키는 규칙 한 가지가 있어요. 지역에 대한 기초 베이스를 쌓은 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거죠. 저희가 도시의 메커니즘이나 커뮤니티를 무시한 채 무작정 “이곳엔 극장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런 태도는 강압적이죠.

어셈블 스튜디오에 터너상을 안겨준 ‘그랜비 포 스트리츠’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지역민과 협업해 빈집이 즐비한 리버풀 거리를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죠. 도시가 활력은 되찾은 건 물론이고 관광객도 부쩍 늘었습니다. 도시가 명성을 얻은 건 좋지만 한편으론 젠트리피케이션이 걱정됩니다. 항상 젠트리피케이션을 생각해요. 어셈블 스튜디오의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지역도 있죠. 하지만 미래는 컨트롤 밖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는 일에 집중하죠. 그 도시에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지, 많은 사람에게 가치 있는 일인지 등 프로젝트의 장단점을 면밀히 살피고 진행 여부를 결정해요. 지역의 의뢰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개발 사업에 초점을 맞춘 건 아무리 매력적인 프로젝트라도 거절합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도시의 생명이 오래 이어질 거라고 우리가 믿을 수 있고 또 장기적 도시계획을 세우는 사람과 일하는 걸 선호하죠.

당신의 말처럼 미래는 예측할 수 없죠. 그렇다면 어셈블 스튜디오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도시가 다시 쇠락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도시는 유기체니까요. 물론 향후 50년의 모습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도시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인프라, 운영체계, 거버넌스를 완벽하게 구축하려 해요. 저희가 떠나도 유지될 수 있도록요.




‘그랜비 포 스트리츠’ 내에 자리한 그랜비 윈터 가든(Granby Winter Garden)의 컨셉 이미지.

당신은 어떤 도시를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자연과 인류의 문화가 적절한 밸런스를 이룬 곳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식물을 기르고 동물과 어우러지는 그런 도시요. 현대인은 종종 도시에 대한 회의감을 표현하곤 하지만 도시에는 여러 문화가 녹아 있고, 그만큼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죠. 그래서 좋은 도시는 다양성(diversity)과 밸런스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첫 프로젝트 ‘시네롤리엄’은 언제나 소중합니다. 오래전에 끝난 프로젝트지만 어셈블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함께했단 점에서 굉장히 특별해요. 프로젝트를 멀리 바라보고 조화를 이루는 법, 디테일, 다양한 운영 모델 등 여러 교훈을 안겨주었죠. 또 ‘시네롤리엄’은 발전하는 자세를 가르쳐줬어요. 덕분에 어셈블 스튜디오는 ‘우리가 100%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3 어셈블 스튜디오에 터너상을 안겨준 ‘그랜비 포 스트리츠’의 진행 과정.
4 마리아 리소고르스카야가 주도하는 ‘머터리얼 인스티튜트’. 뉴올리언스의 전통 공예와 하이패션을 접목해 지역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

어셈블 스튜디오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터너상 수상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터너상은 ‘아티스트’에게 수여하니까요. 사실 저희 멤버들은 호칭에 연연하지 않아요. 대다수가 건축을 전공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건축가는 아니니까요. 어떤 멤버는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기도 해요. 터너상 덕분에 우리를 아티스트라고 소개할 명분이 생겼다는 점은 신나네요.(웃음) 저는 대화 상대에 따라 디자이너, 건축가, 가끔은 아티스트라고 저를 달리 소개해요. 현대사회는 무엇이든 유연하잖아요. 아마 제가 아티스트라 소개해도 듣는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거예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전 천체물리학자는 아니라는 점이죠.

터너상 수상 당시 대중과의 소통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죠. 소통하는 예술이 중요해진 이 시점에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무엇이든 해봐야 알 수 있어요. 저도 워크숍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대중의 생각이 이렇게 자유롭고 실험적 예술에 열려 있는지 몰랐을 거예요. 추상적 언어를 막연하게 나열하는 것보다 실행에 옮기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마리아 리소고르스카야
어셈블 스튜디오는 지역사회와 예술, 공간을 연결하는 실험적 작업을 하는 예술 단체다. 현재 18명의 멤버가 있으며, 마리아 리소고르스카야는 창립 당시부터 함께해왔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어셈블 스튜디오에서 런던을 중심으로 공간 연구와 정책 개발을 주도하며, 작업 공간을 구축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대표 프로젝트는 뉴올리언스에서 진행한 머터리얼 인스티튜트로 전통 공예를 되살려 이 지역을 패션 디자인의 허브로 만들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   사진 제공 어셈블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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