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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1

AI의 감성 자작곡

베토벤 탄생 250주년, 독일에서는 AI가 ‘미완성 교향곡 10번’을 완성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베토벤(1770~1827년)은 열두 살 무렵부터 궁정에서 하프시코드(쳄발로) 연주자로 경력을 쌓았다. 당시 하프시코드 연주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겸한 자리. 악보의 저음 성부 선율만 보고도 연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화음을 채워야 하기에 곡 전체를 보는 눈과 화성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요했다고 한다. 베토벤 자신이 즉흥연주의 대가였기 때문일까? 그는 특유의 거친 불협화음과 어린 시절 오르간 연주를 통해 배운 연음을 활용해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해냈다.




1 베토벤이 생전에 남긴 열 번째 교향곡 스케치. ‘미완성 교향곡’이란 표현은 후대 사람들이 붙인 말이다.

독창성.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데 필요한 자발적 사고와 창의력은 인공지능(AI) 입장에서 보면 규칙을 잡아내기 힘들다. 이 골 아픈, ‘베토벤 데이터베이스’에 담긴 미완성 교향곡을 올봄 그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고국 독일에서 AI를 통해 완성할 거라는 소식이 들린다. 복원이 아니라 AI가 그의 기존 작품을 학습해 창조해내는 것. 말 그대로 직접 작곡을 한다는 의미다. 프로젝트는 최대 통신 기업 도이치텔레콤이 후원하고 미술품 진품 판정 프로그램 등으로 문화계에서 AI 창작 시도를 꾸준히 해온 뉴저지 주립대학교 AI 전문가 아흐메드 엘가말(Ahmed Elgammal) 교수와 하버드 대학교 로버트 레빈(Robert Levin) 교수, 코넬 대학교 마크 고섬(Mark Gotham) 교수, 작곡가 발터 베르초바(Walter Werzowa), 베토벤하우스 본(Beethoven-Haus Bonn)의 크리스틴 시거트(Christine Siegert) 등이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오늘날 ‘미완성 교향곡 10번’이라 불리는 베토벤의 작곡 스케치는 남은 부분만 연주했을 때 11초 남짓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여기에 1분 30초가량을 더해 이미 도이치텔레콤 홈페이지에 링크로 공개했다. 완성곡의 초연은 오는 4월 28일 본(Bonn)에서 열리는 ‘텔레콤 포럼’에서 디르크 카프탄(Dirk Kaftan)의 지휘 아래 베토벤 오케스트라 본(Beethoven Orchestra Bonn)이 연주하기로 했다. 사람이 듣기 좋은 음악은 사실 과학에 가깝다.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일정한 법칙, 화성악을 기반으로 한다. 즉 정석에 가까운 클래식 음악일수록 특정 작곡가가 많이 쓰는 화성과 선율 작법 등 규칙이 명확하다는 의미다. 당연하게도 AI를 통한 작곡은 같은 사람이 그려도 매번 다른 각도와 힘의 정도로 뻗어나가는 회화보다는 쉽지 않을까?




2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도 많은 베토벤 관련 서적이 발행되고 있다. <베토벤 x 최은규>의 표지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1902) 중 ‘온 세계에 보내는 입맞춤’ 부분. 일명, ‘베토벤 벽화’로 불리는 작품으로 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 <합창> 중 ‘환희의 송가’를 재현한 것이다.
3 도이치텔레콤 베토벤 프로젝트 팀. 이들은 스마트폰용 증강현실 앱 BTHVN20 AR로 베토벤이 20대에 거닐던 주요 스폿 등을 디지털로 구현해 제공할 예정이다.

우리 귀에 AI가 만든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AI가 스스로 반복 학습하는 ‘딥 러닝’ 개념이 등장한 2012년 직후다. AI란 존재가 과학자 존 매카시의 1955년 논문에 처음 등장한 직후 미술품 복원처럼 단순 데이터를 쌓는 방법은 이미 완성되었다. 2016년 일본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AI 여고생 린나가 지난해에 연예기획사 에이벡스와 음반 출시 계약을 한 것처럼 유명 가수의 사후 목소리 재생뿐 아니라 아예 하나의 페르소나를 창조해 아티스트로 만드는 도전은 늘어났다. 구글과 소니 등 유수 회사들이 서로 기술력을 뽐내며 말러와 바흐 등의 작품을 완성하고자 시도한 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 2월에는 화웨이가 1·2악장만 남은 슈베르트의 8번 교향곡을 단서로 3·4악장을 완성해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작곡가의 매력이 드러나기보다는 지극히 기계적인 흐름이 반복되었기 때문. KBS 제1FM의 진행자인 클래식 평론가 최은규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이 또한 기대할 만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아직까지 AI가 완전한 창작 영역에서 인간을 넘어설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템포를 자유롭게 바꾸거나 강약 조절 등을 통해 인간 연주자처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AI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겠죠.” 그리고 국내에서도 AI가 작곡한 클래식 음악이 이미 냉정한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2016년 8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vs 인공지능’을 제목으로 미국 UC산타크루스 대학교 데이비드 코프 교수진이 개발한 AI 작곡가 로봇 에밀리 하웰이 만든 ‘모차르트풍 교향곡(Symphony in the Style of Mozart) 1악장 알레그로’를 연주했다. 당시 오케스트라는 각 작품의 작곡자를 밝히지 않은 채 모차르트 교향곡 34번 1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연주를 연달아 들려주고 평가를 부탁했는데, 관객은 ‘인간 모차르트’의 손을 들어줬다고. 이 AI 작곡가는 이미 대중음악을 포함 다수의 음원을 작곡해 아이튠즈와 아마존에서 판매하고 앨범까지 냈는데도 모차르트의 감성은 넘어서지 못했다. 한편, 대중음악계에서는 AI 작곡의 확산세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중음악 평론가 차우진은 그 원인으로 시장성 문제를 꼽았다. “유명 클래식 음악은 사후 저작권이나 변주에 큰 문제가 없고, 세대를 넘나드는 대중적 인기와 사료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대부분 동시대 사람들이 만들고, 법 위에서 AI가 자유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죠. 무엇보다 그 수익에 대한 확신이 적습니다.” 하지만 AI가 음악계에 일으킬 변화 자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기업과 대학에서 AI 뮤직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이지원은 이미 많은 개발사가 인간 대상의 AI 악기 레슨 서비스를 비롯해 다양한 AI 음악 분야 사업화를 추진 중이며 저작권법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고 말했다. 현재 저작권법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로 그 범위가 한정돼 있다(한국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올 하반기를 목표로 저작권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15초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틱톡은 몇 달 전 영국 AI 작곡 스타트업 주크덱을 인수했어요. 유튜브를 비롯해 영상 제작에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배경음악인데, 유저들이 그 음악을 고르는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플랫폼도 막대한 저작권료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죠. AI 작곡 서비스는 조만간 전 분야에서 수요가 엄청날 거예요.”




4 2018년에는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 1970년대 이전 곡을 AI에게 학습시켜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국내 최초의 AI K-팝 음반 레이블 A.I.M(Arts in Mankind)을 주크덱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앞서 독일의 베토벤 탄생 250주년 프로젝트팀이 성공적인 진행 과정을 알리며 강조한 것은 이 프로젝트가 결코 그의 천재성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인간의 협업이 어떤 방식으로 상상력을 드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겸허히, 베토벤이 남긴 800장의 스케치 중 입력값이 충분한 것만 투입했다고 말한다. 그간 인간의 감정을 포착하고 상호 교류한 많은 AI가 항상 공정한 데이터를 입력했다고 쳐도, ‘샘플’ 자체를 투입하는 연구자가 성장한 배경과 사회 통념 등 무의식적 판단이 들어가 문제라는 논란은 꾸준히 있어왔다. AI가 작곡하는 음악에 대해 논하는 지금, 재밌는 뉴스가 들려왔다. 지난 2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주용 교수팀은 수학 모형으로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분야인 이론물리학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문화 예술 창작물의 혁신성과 영향력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는 꾸준히 자신의 기존 작품과 관습에 차별화를 시도한 작곡가고, 베토벤은 사후 100년 가까이 최고의 영향력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 베토벤이 살던 시대 역시 지금처럼 인류가 직면한 일종의 기술과 문화의 전환기였다는 점이다. 18세기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예술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회화나 수공업 중심의 숙련된 전문가 개념에 가까웠다. 19세기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음악가를 ‘신이 내린 천재’라고 부르며 경외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 그들의 악보를 작품이라 평한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AI의 완전한 발전기로 2020년 자율주행 실용화 이후, 2045년을 낙관하고 있다. 베토벤은 생전에 전혀 사교적이지 않았고 말년에는 귀마저 들리지 않았지만, 당시 모차르트의 명료한 타건법 같은 대세를 따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인기가 높았다. 창작성을 점수로 증명 가능한 오늘날, 무엇이 18세기 이후 지금까지 가장 핫한 음악가를 만들어왔는지 우리는 유심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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