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뒤 기억에 남을 작품을 기다리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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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0

100년 뒤 기억에 남을 작품을 기다리며

도예사학자 장남원에게 물었다. 100년 후에도 인정받는 도자 작품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1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난 장남원 교수. 왼쪽에 국보 제107호인 백자철화포도문호가 보인다.

Namwon Jang
오늘도 많은 작가가 도자를 매체 삼아 물레와 가마 앞에서 작품 그 이상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의 눈에 도예는 심미성과 실용성 사이에서 가치 판단을 해야 하는 대상으로 비칠 확률이 높다. 1000년 전 항아리의 가치를 따지는 연구자라면, 어쩌면 적절한 잣대를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도예사학자 장남원은 선뜻 그 답을 내놨다.

장남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로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관장을 겸임하고 있다. 한국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공예사 전반을 연구했다. 그중에서도 도예사에 몰두해 50여 편의 논문과 <고려 중기 청자 연구>(2006), (2013) 외에 30여 권의 관련 서적을 공동 집필했고, 국내 주요 박물관의 공개 강의와 대중을 위한 강연, 저술 활동에도 힘쓰는 학자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 서울시문화재위원 등을 맡고 있다.


지금도 컨템퍼러리 아트의 테두리 안에서 도예를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현대에 서 있는 우리가 도자를 바라보면 구분하기 어렵겠죠. 저 앞에 놓인 오브제를 도자기라 불러야 할지, 조각이라 불러야 할지.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달라요. 예컨대 고려시대에 흙으로 뭘 빚었나 보면 기와, 타일, 건물, 난간, 기둥의 장식까지 정말 다양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만든 건 생활 자기예요. 흔히 도자기라고 부르는 말 역시 유약을 입힌 자기에서 도기로 범주를 넓히면 궁궐의 꽃담 장식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IT 기기처럼 생활 전반을 흙이 커버했다는 의미죠. 또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범주를 보여줍니다. 도자는 기본적으로 흙으로 만들어 구운 것인데, 지금 우리가 그걸 구분하며 고민하는 건 도예 분야의 분화가 지금 일어나서예요.

도예는 오랜 역사를 이어왔는데, 이제야 분화가 일어났다고요?
근대에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생기면서죠. 한국에선 1959년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과에 도자 전공이 처음 개설됐습니다. 대학이 도예를 하나의 학과로 끌고 들어오면서 순수예술과 그 경계가 부딪치게 된 거예요. 그 전에는 고민할 것이 없었습니다. 원래 도자기를 만들던 사람들은 삼국시대까지 모두 숙련된 장인, 즉 도공이었어요. 그런데 근대를 지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하나의 예술 분야이자 공방의 무엇으로 분화됐죠. 도공이라는 기술자의 호칭 대신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작가가 탄생하고, 몇 대째 대를 이어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의 후예란 소개말을 듣게 됐죠. 비록 호칭은 서로 다르지만, 여전히 도예에 사용하는 흙과 안료 등은 같은 범주 안에 있고 대신 기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즉 도예의 영역이 모호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늘날 더 다양해진 거예요. 그걸 어떻게 나눌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포괄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결국 도자기를 보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예술인지, 실용인지 구분하면 되겠네요.
그럼요. 설령 지금 우리가 갤러리에 전시된 모던하고 미니멀한 작품을 선호한다 해도 밥은 밥그릇에 담아 먹잖아요. 전통적인 ‘기(器)’의 형태에 들어간 것을 쓰게 됩니다. 예술 작품으로서 도자와 실용품 간의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지금 이천에서 만드는 밥그릇이나 파리와 밀라노에서 특별전을 하는 작품도 도예로서 분명히 거쳐야 하는 공통의 과정이 있다는 거예요. 먼저 도자를 만들거나 매체로 다루는 사람은 흙을 잘 알아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가공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 어떤 것이든 불을 거쳐야 완성된다는 점은 같아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구분하든 문제없지요. 도예를 하는 작가 자신이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느 때보다 도예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도자를 매체로 활동하는 회화 작가도 늘었죠.
멋진 감각과 재능을 지닌 작가가 늘어나 도예를 오브제로서, 작품으로서 새로이 만드는 것은 대환영이에요. 또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같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 덕도 있고, 해외 아트 옥션이 활성화되면서 주목받게 된 영향도 있어요. 과거엔 도자를 특정한 쓰임의 목적만을 위해 샀다면 지금은 예술품으로 가치가 있고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기대와 목적이 있어 삽니다. 같은 항아리라도 박물관은 역사성을 따져 수집하지만, 개인은 현물로서 가치, 부동산에 비해 그래도 팔기 편한 물건으로 간주할 거예요. 이런 관심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어요. 가장 친숙하게 쓰던 물건을 사람들이 새롭게 재발견하고 있으니까요.




2 이윤신 작가가 운영하는 생활 도자기 브랜드 이도도자기의 테이블웨어 ‘이꼴(YQUAL)’.
3 도예가 박영숙과 협업으로 완성된 이우환의 작품.
4 보물 제2058호 백자 청화 매조죽문항아리.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부분은 없을까요?
미술사에서 도예를 연구한 학자로서 물론 우려되는 점은 있어요. 한 시대 혹은 국가의 도자 산업 수준은 생활 도자기 자체가 건실해야 발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 디자인 등 모든 것이 시대와 지역의 습성에 잘 맞아야 해요. 고려청자의 전통 제작 방식을 배웠다고 아직도 그 시대 모습 그대로 만든다면 보통 사람들은 찾고 싶지 않을 거예요. 옛 방식만 고수하는 작가가 있다면 현대에 화합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그렇게 되지 않은 탓이겠죠? 요즘 사람들의 일상에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그에 맞는 형태를 고민해야 합니다. 누군가 도예 작품을 사고 싶어도 그것을 얹을 테이블은 물론 거실을 비롯한 집 안이나 전시실의 색과 취향, 분위기까지 어울린다고 판단해야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적어도 도예에 관심이 있는 작가들은 현대적 감각에 호응하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인가요?
회화로 대표되는 예술품에는 감성적인 작가가 필요하죠. 작품 역시 한 개인의 개성이 담긴 사회적 산물이지만, 도예는 공예의 범주 안에서 회화보다 훨씬 보편성을 띠어요. 작가 자신도 도자를 다루는 감각을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우리 생활에 작품으로서 필요한 아름다움에 대해 같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박물관의 국보도 전시장에 두니 장식품으로 보이지만 제작 당시에는 술이든 꽃이든 무언가를 담아두고 쓰던 용기였습니다. 어떤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도 그 시대에 쓰임이 있었던 것만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어요.

요즘 주목받고 있는 달항아리는 은은한 미감으로 특히 인기가 있습니다.
역사계에서 달항아리는 일종의 금기어 같아요.(웃음) 어떤 작품이 유행하는 데는 그 나름의 배경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모시 저고리 같은 미니멀한 복식까지도 다시 찾는 추세예요. 서양화 쪽에서 보면 1970년대에 유행한 백색 추상이 지금 다시 소환되고 있어요. 왜일까요? 지금의 생활양식에 미니멀한 작품이 매우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달항아리에 대한 관심은 김환기 작가와 더불어 미술 시장에서 급부상했죠. 김환기 작가가 달항아리를 좋아해 수집했고, 그의 사후에 미술관에 전시되는가 하면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수 있을 만큼 소비되었어요. 문화평론가 유홍준의 저술 활동 덕도 봤고요. 하지만 미술계에서 보이는 관심만큼 역사계 쪽에서 제대로 연구 대상이 된 적은 없습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개체 수가 적고 유적, 유물로서 남아 있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시대에 호응하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필요에 맞춰 변화한 것이군요.
그럴 수 있지요. 달항아리는 빈 듯한 모습만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죠. 조선시대 국가의 주요 행사를 소개하는 의궤 도설 편에는 궁정에서 사용한 모든 자기가 이름과 용도까지 명확히 묘사되어 있는데, 거기에도 달항아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그만큼 귀하지 않은 존재였거나, 사용 시기가 매우 짧아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지금 남아 있는 달항아리보다, 현대인이 좋아해 현대에 만든 작품이 훨씬 많다고 볼 수 있어요. 달항아리는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만들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크기도 커서 만들다 실패하기 쉬우니 실력 있는 작가에게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당연히 그만큼 완성품 가격도 높습니다. 달항아리를 만들거나 사서 그 미감에 어울리는 공간에 두는 것도 쉽지 않지요. 그런 것이 작가와 수집가를 끊임없이 유혹하지 않나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코렐 같은 일반 식기도 훗날 작품으로 칭송받거나 유물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럼요. 다이소나 이마트에서 파는 자체 브랜드의 변형된 자기도 다 역사의 한 챕터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코렐은 도자기를 대중화했다는 역사적 포인트가 분명하고, 대기업에서 꾸준히 기록하고 만들기 때문에 더 근거가 명확할 겁니다.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동일한 개체가 많은 것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거예요. 가마터에 남은 그릇의 종류와 개수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도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거든요.

앞으로 도예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에 일본 나고야의 노리다케 공장에 다녀왔는데, 현재 그들은 그릇뿐 아니라 세밀한 반도체 기기의 부속까지 생산하고 있어요. 산업적인 면에서 흙의 무한한 가능성은 작가뿐 아니라 현대의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남사와 같이 한국 고유의 자기 브랜드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독일이나 러시아, 일본처럼 더 특화되고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저 자신이 1960년대에 발굴한 당진가마터 유물을 1990년대에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마치 어제 만들다 깨진 듯한 도자기의 생생함에 반해 비색 고려 청자에 집중하게 되었죠. 그래서 도예 자체의 매력을 먼저 말하고 싶어요. 도자기는 그 자체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과 만족감이 큽니다. 일회용 그릇이 가장 편한데, 급할 때 아니면 쓰지 않는 건 왜일까요? 무엇이든 담아주고, 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매끄러운 표면이 안정감을 주는가 하면, 다기처럼 공기구멍이 보이는 거친 표면은 수더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들 역시 도예란 매체에 끌리는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뭔가 담는 행위는 그 시간과 공간의 조화도 함께 즐기는 거예요. 순수예술로 접근해 작품 활동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실용기도 잘 만들려고 애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어렵겠다 싶고 도와드리고 싶어집니다. 박영숙 작가의 백자에 대한 집요한 고민은 물론이고 권대섭, 이윤신, 이정용, 김희경, 한익환 작가의 작품도 높이 삽니다. 작품으로 봐도 아름답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품질 역시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0년 후에도 인정받는 도자 작품은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점차 우리는 도자를 예술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먼저 한국 공예사에서 도자기를 다룬다면 달항아리의 부활 같은 것으로 한 꼭지를 쓸 수 있을 거예요. 외국 도자기 중 퓨전 용기가 많아진 것, 다이소나 이마트에서 파는 전용 브랜드 제품과 현대에 맞게 개량한 생활 도자기 파트가 커진 것 등 글로벌한 취향을 주요 내용으로 다룰 겁니다. 요즘 인스타그램과 ‘먹방’의 유행 덕에 남한테 내가 어떤 그릇을 쓰는지 보여주는 것도 중요해졌거든요. 유럽 정찬 식기를 쓰는 사람도 늘었죠. 이런 모습이 18세기 유럽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중국 도자기를 수집하고, 마이센을 발전시키고, 영국의 로얄덜튼을 키우는 과정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역사적으로 명멸하는 것의 조건은 아주 명확합니다. 송나라 때나 고려시대나 도예사에서 가장 많이 만들고 또 후대에 남아 연구되는 건 10cm 남짓한 작은 반찬 그릇이에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사라져요. 명확한 필요조건을 갖추고 심미성을 반영한 도예 작품이라면 100년 후 그 가치를 인정받겠지요. 설사 귀족이나 왕이 쓰던 것이 아니라 해도 이렇게 멋진 것을 만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할 겁니다. 실력과 예술적 감각을 겸비한 젊은 도예 작가들이 잘 버텨서 후대에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흙으로 만든 도예 작품은 아직까지 사람이 만드는 무언가 중 쉽게 부식하지 않고 유물로 가장 오래 남으니까요.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촬영 협조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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