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때때로, 인생 예찬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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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3

시시때때로, 인생 예찬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깊고 날카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연극 연출가 박근형. 그의 무대에선 모든 삶이 생생하다.

“예, 예. 저보다는 배우들을 주목해주시는 게 좋은데요.” 수화기 너머 처음 들은 연출가 박근형의 목소리는 나긋했다. 때로 수줍은 듯, 자신을 낮춰 말하는 데도 익숙한 사람인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지금 박근형은 명실공히 한국 연극계 최고의 연출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이지만 사철 어두운 색 야상에 야구 모자를 쓴 채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그의 이름을 건 대규모 행사나 기자간담회에서도 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아 그의 얼굴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뜻 유약해 보이는 그의 첫인상에 속아선 안 된다. 부드러운 모습 이면에 아름드리나무의 뿌리처럼 곧은 심지가 숨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연극을 쉽게 느꼈으면 해서 오래 일하긴 했어요.” 결국 인터뷰를 수락하겠다는 그 말에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터온 사람 특유의 단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윽고 여름처럼 노란 볕이 내리쬐는 서울 명륜동에서 그를 만났다.






1 연극 <청춘예찬>(1999)은 배우 윤제문과 김영민 등 새로운 캐스팅으로 재차 무대에 올릴 때마다 각광받았다.
2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2006)는 올해의 예술상,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 대산문학상 희곡상 수상과 함께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BEST 3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3 일명 ‘엄사장 시리즈’라 불리는 박근형 작 . 연출 연극은 배우 엄효섭과 2005년 <선착장에서>라는 이름으로 뻔뻔한 중년 ‘엄사장’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다루며 시작됐다. 이후 <돌아온 엄사장>(2008), <엄사장은 살아있다>(2015), <브라보! 엄사장>(2020) 까지 이어지고 있다.

막연한 동경의 세계, 연극
“연극에 대해 워낙 아는 정보가 없었어요. 배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막연히 형들의 세계를 동경했어요. 마치 유랑극단처럼 전국 각지를 떠도는 재밌는 일 정도로 생각했지요.” 공개된 박근형의 경력은 1985년 76극단에서 시작되지만 배우로 입문한 시기는 그보다 빨랐다. 그는 신촌에 오래 살았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를 가면 당시 대학생 형들이 마당극 같은 걸 만드는 걸 볼 수 있었다. 무작정 한 연극 단체를 따라 들어가 본 연극의 세계는 짐작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굉장히 할 게 많더라고요. 성실해야 하고, 세상에 관한 안목도 있어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연극은 나같이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 말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 해야 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험난한 고행길이었죠.” 지금 박근형이 생각하는 연극인의 자세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를 만난 극단 골목길 사무실 입구에는 간판이 없지만 연습실에는 ‘연극은 체력!’이란 커다란 글씨가, 출입문에는 ‘디테일이 생명이다!’란 글귀가 붙어 있다.
“그전에는 그냥 연극 무리에 있었다고 봐야죠.” 박근형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창작극 <청춘예찬>(1999)으로 각광받기 전까지 실패를 거듭했다. 배우로서는 딱히 존재감 있는 역할을 맡지 못했다. 스태프를 하다 갑자기 배우가 빠지면 할 사람이 없어서 2~3년에 한 번쯤 무대에 오르는 식이었다. 연출을 시작한 1986년 이후 유명 연출가로 우뚝 선 지금도 그런 우연은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다. 몇 년 전에도 공연 마지막 날 배우가 갑자기 입원하는 바람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아버지 역을 맡았다. 그가 연출한 극이지만 아침에 대사를 몇 줄 줄여서 외우고, 낮 공연 무대에 섰다. 박근형은 배우에서 연출로 전향한 게 아니라 지금껏 각기 다른 방법으로 ‘연극을 해온 것뿐’이다. 한시도 연극을 놓은 적이 없다. 젊은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친구들이 생활고에 지쳐 몇 년 만에 연극을 그만두려는 걸 보면 못된 말을 많이 했다. 아무도 안 시켜주면 대학 등록금을 빼서라도 ‘우리끼리 하면 되지‘, 그러면서 끌어냈다. 그의 기억 속 첫 연출작은 1982년 스무 살 시절, 입대를 앞둔 친구와 충무로 ‘건넌방소극장’을 빌려 무대에 올린 헤롤드 핀터의 <생일 파티>란 작품이었다. 공연 당일, 친구가 나타나지 않아 그가 연출 겸 배우로 무대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겪는 인생의 헛웃음 나는 상황. 그는 그런 극을 만든다. 세상을 낮은 위치에서, 아웃사이더의 시선에서 관찰하고 사회적 비판을 공감의 웃음으로 바꿔놓는다.
그의 극에는 유난히 아버지의 부재와 상실, 여성의 희생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내용이 많다. 이 모든 것은 외동아들에게도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느낀 연민처럼, 쉽사리 주목하지 않는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한다. 평론가들은 이를 현대사회의 산업화로 인한 상실로 해석하곤 하는데, 박근형의 공식 프로필을 받아보면 그곳에 뜻밖의 힌트가 있다. 연출가, 극작가, 극단 골목길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전임 교수에 이어 이런 항목이 나온다. ‘1963년 월남한 실향민 박창봉(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조산리)과 지갑남(함경남도 신흥군 단봉리) 사이에서 막내이자 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남.’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보다 단호한 선언이 있을까.
“얼마 전 누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살인한 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청년을 뉴스에서 봤어요. 저는 그런 사람을 보면서 생각하죠. 용서받지 못할 사람인 건 알지만,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저렇게 말할까 싶어요. 우린 그 사람 입장을 모르잖아요. 시사 프로그램이나 뉴스에선 그 마음을 다루지 못해도 무대에서는 그런 걸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거죠.” 박근형은 뭔가 대작을 계획하기보다는 동네에서 욕 먹는 능글맞은 엄사장의 속사정을 말하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청년의 슬픔을 주목한다. 세상이 봐주지 않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2003년 창단한 극단 이름도 ‘골목길’이라 정했다. “골목길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나 같았어요. 그런 게 또 연극적이고 좀 궁상스러운 걸 좋아한 것 같아요.”(웃음)






극단 골목길과 함께한 배우들. 앞줄에 박해일과 황영희가 보인다.

담백한 박근형표 연출의 등장
2000년대에 박근형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연극은 과장된 연기와 감정 표현, 진폭이 큰 전개가 주를 이뤘다. 반면 박근형은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했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대사에 운율을 넣고 비극적 장면에 해학을 곁들이는 등 표현 방법 자체가 달랐다. 사실적이면서 거품 없는 이야기로 울림을 줬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말 웃기는 상황에서도 박근형이 연출한 무대 위 배우는 웃지 않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관객에게 배우가 웃음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 알아서 웃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요즘 스타일’이다. 어떻게 20년을 앞서갈 수 있었을까?
“저는 외국 연극을 많이 보거나 정보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자’, ‘했던 대로 왜 해야 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면이 있어요. <청춘예찬>을 쓸 때도 ‘청소년 극은 꼭 행복하게 끝나야 하나? 인생이 실제로 그런가?’ 라는 의문이 들었죠. 아무리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인생은 정말 가치가 없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는 그렇게 순수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면서 이면의 그늘진 굴곡과 날카로운 세상 풍자를 빼놓지 않는 책임감 있는 연출가였다. 그의 신선한 시도에 대중도 당연히 응답했다. 1999년 <청춘예찬>으로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 청년예술대상 희곡상, 한국연극협회 신인연출상, BEST 5 작품상과 문화관광부 장관상 등 당시 받을 수 있는 10여 개 상을 모두 차지했다. 또한 이 작품은 배우 박해일을 영화계에 입성하게 한 작품. 배우 김영민을 비롯해 연기에 욕심 있는 젊은 배우라면 누구나 탐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혼한 부모를 대신해 돈을 벌다가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한 살 많은 고2 청년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웃음과 비극으로 그린다. 임순례, 박찬욱, 봉준호 등 작품 욕심 많은 영화감독들이 박근형의 팬을 자처하며 새로운 배우나 캐릭터를 찾을 때면 항상 그의 무대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인물을 심도 있게 그려왔기 때문인지, 연출가 박근형을 주제로 한 국내 논문을 공연 예술 분야만큼 인문 철학 분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구자들이 주로 다루는 ‘박근형’ 테마는 <경숙이, 경숙 아버지>(2006) 같은 작품에서 그린 아버지의 캐릭터와 인물 간 경계성, 그로테스크한 연출법이다. 자신을 학계에서 주목해왔다는 사실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다며 놀라는 한편 반가워했지만, 그 이유는 스스로도 알 도리가 없다. “전 논리적이지 않아요. 이론적으로 극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요. 그래서 대사도 어렵게 못 쓰죠. 실력이 부족해서 집도 척척 못 지어요. 기둥부터 세워놓고 그 사이를 뭘로 메우나 하면서 일단 가거든요. 제 연극이 그래서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아요. 어쩌면 그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상상의 여지가 생기는 게 아닐까요?”
실제로 그가 쓴 작품에는 지문이 적다. 소품도 적다. 많은 것을 배우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직접 쓰고 연출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머릿속에 그려놓기는 해도 글로 남기진 않는다. 말이 글에 갇히는 것을 걱정한다. “지문이 많으면 거기에 배우도, 저도 갇혀버려요. 예를 들어 ‘술을 앞에 두고 마신다’를 쓴다 쳐요. 극에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면 구체적으로 써야겠지만, 제가 쓰는 방식이면 말을 하다 그냥 배우가 원할 때 술을 마시면 돼요. 술잔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어요. 물을 마셔도 돼요. 좋게 말하면 자유를 주는 거지만, 배우에 따라 무척 난감해하는 이들도 있어요.(웃음)”
그래서 박근형의 작품은 배우에겐 어렵고, 관객에겐 세련된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는 연기 지도를 할 때도 배우에게 특별한 발성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폼 잡고 말하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난 네가 좋아.” 이 한마디가 어떤 사랑의 수식어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수식이 없을수록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 게다가 연극은 즐겁게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배우에겐 대사가 안 되면 평소 즐기는 기타를 치면서 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성대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뽕짝’ 연습을 시킬 때도 있다. 이마저도 권유일 뿐 강요하진 않는다. 누구나 ‘칼은 혼자 가는 것’이니 스스로 연습해야 하며 자기 몸에 맞는 걸 받아들이는 방법이 따로 있다. 그저 매듭이 안 풀리거나 방향을 잡지 못할 때 실마리를 던져주는 정도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도 무대에 오르면 못하는 게 있고 어색한 부분도 있거든요. 계속 알려줘도 안 되면 그냥 대사를 빼버려요. 대사는 잘하는데 걸음이 부자연스러워서 촬영감독 역인데 휠체어에 앉혀버린 적도 있어요. 배우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하는 걸 잘 숨기는 것도 중요해요. 빨리 하고 퇴장할 줄 알아야 하죠.” 축구로 치면 공을 잡자마자 잘 패스해야 한다. 골을 넣을 생각으로 기술을 부리다 보면 뺏기기 십상이니 공을 잡으면 다른 사람에게 얼른 넘기라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연출가로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가 처음부터 잘하겠어요. 저를 만난 배우 대부분이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믿었어요. 그럼 저는 연출가로서 재능이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해요. 다 못한다면 조금 덜 못하는 걸 찾아서 칭찬해주면 돼요. ‘잘했어, 잘했어. 이렇게만 해!’ 그런 식으로요.”
그렇게 그의 도움으로 성장한 배우는 엄효섭, 윤제문, 고수희, 황영희 등 지금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놀라울 만큼 리얼리티 넘치는 연기와 묵직한 집중력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4 2018년 박근형이 각색을 맡아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 연극 <페스트>.
5 2019년 공연 BEST 7에 선정된 박근형 작 . 연출의 연극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를 올여름 부산시민회관(7월 31일~8월 1일)과 서울 아트원씨어터(8월 27일~9월 13일)에서 볼 수 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관객
“우리의 존재 이유는 딱 하나, 관객이에요.”
하루 두 갑 피운다는 담배와 술잔을 앞에 놓고 인터뷰 내내 편하게 앉아 있던 박근형이 두 눈을 날카롭게 번쩍인 순간이다. 배우들이 연습실 밖에서 친해졌으면 하고, 두 딸을 결석까지 시키며 배우들 MT에 데려간 이유도 오로지 ‘관객’ 하나 때문이었다. 관객은 배우들이 나누는 교감을 느끼니까. 단원들이 연습 시간에만 왔다 가면 기술만 익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아서 머물면 사람들의 이면을 알게 되고, 서로의 취향을 맞춰주면서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비록 작품을 끌고 갈 주연은 못 되더라도 친화력이 좋은 사람은 극 분위기를 좋게 하고, 관객 동원도 잘해요. 사람마다 쓰임이 다양해서 누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알아야 감독은 제대로 캐스팅할 수 있죠.”
박근형은 이렇게 자신이 쓰고 그린 연극에 대해 얼마든지 쉽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연극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40년 가까이 오롯이 그만의 방법론을 구축해왔으니까. 지금 박근형이 경계하는 것은 단 하나, 생각의 늙음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연극계는 칠순 선배들도 왕성하게 활동할 만큼 생각이 젊고 세대 차가 크지 않아 안도하지만, 가끔 후배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침묵을 공기로 느낀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때 선배를 보며 생각한 것처럼, 고루할 거란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동료들이 있으니까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극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세상일에 대해 ‘어떻게 되겠지, 나하고 관계없어’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나이를 떠나 늙은 것 같아요. 뉴스를 보고 견해가 어떻든 간에 ‘그런 일은 원래 그랬어’ 해버리면 이미 늙은 거지요. 세상 돌아가는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같이 있어야 해요.”
마치 그가 쓴 쉬운 대사처럼 세상살이에도 명쾌한 답을 내는 극작가건만, 자기다운 것에 대한 정의는 아직 내리지 못했다. 시시때때로 그 자신이 변하기에 그의 작품을 의도와 달리 해석한 기자나 평론가의 비판에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이미 자신은 기성세대고, 소재나 양식 면에서 젊은 사람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작 과정 자체를 기록해 관객에게 보여주는 요즘 연극 트렌드가 신선해 보이긴 하지만, 그의 기준에선 ‘재미없기 때문에’ 따라가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성숙한 연출가와 연출 지망생이 적은 것이 걱정이다.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연극인들(구체적으로 지금 40대 중반을 넘긴 사람들이다)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거창한 건 질색이라지만, 그래도 훗날 박근형이란 인물을 어떻게 봐줬으면 하는지 물었다. “글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연극한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연극은 정말 한 순간도 지겨운 적이 없었어요. 재미있어서 늙어서도 계속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걸 정하는 건 내가 아니에요.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올 거예요. 안타깝지만 그때가 올 걸 알고 있고, 당연히 받아들일 거예요.”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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