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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3

예술 세계의 재구성

페인팅, 드로잉, 설치 등 전방위적 활동 범위가 말해주듯 카미유 앙로는 온갖 요소로 자신의 언어를 재구성한다.

1 자신의 조각 ‘A Remarkable Ascent’와 작가 카미유 앙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축해 보여주는 작가 카미유 앙로는 대표적 영상 작품 ‘Grosse Fatigue’(2013)를 통해 대략 13분 만에 세상을 창조한다. ‘엄청난 피로’라는 제목에 대번 고개를 끄덕이게 될 정도로 우주를 만드는 일은 고단해 보인다. 신화, 문학(시), 철학, 음악을 망라하는 방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생산한 파편적 이미지들은 이내 스크린을 점령한다. 비트를 따라 흐르는 힘 있는 내레이션은 이미지를 밀고 나가는 추진력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오류 난 팝업창의 증식이나 연결 고리를 알 수 없는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처럼 예상치 못한 결과물엔 순서나 위계가 없다. 그런가 하면 대규모 설치 작품이자 하나의 전시였던 ‘The Pale Fox’(2014)에서 작가는 오브제를 활용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다. 수백 장의 사진부터 신문 뭉치, 이베이에서 구입한 책, 조각난 과일, 머그잔 등을 동원해 ‘강박적 호기심’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탄생부터 죽음까지 일종의 우화로 표현한 것. 언뜻 유머로 점철된 듯 보이는 이 시도는 서아프리카의 도곤족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 서적을 토대로 한 것이다. 코스모스와 카오스를 오가는 작가의 미감은 몽환적 드로잉과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şi)를 연상시키는 매끈한 조각, 유럽 어느 도시의 벼룩시장,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를 너그럽게 껴안는다. 모두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한 사람의 사적이고 개별적인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이 결국엔 전 인류의 거대한 일과 맞닿는다는 상상력은 많은 예술의 원천이 되어왔다. 카미유 앙로 역시 사소함과 거시성 사이의 팽팽한 울림을 반영한 언어를 만든다. 다가오는 여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덕분에 우리는 좀 더 가까이에서 그 언어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구축된 시스템과 기존의 지식을 재해석하는 작가의 세계관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2 Bad Dad & Beyond, From the Interphones Series, Installation View, Metro Pictures, Interactive Sculpture, Mixed Media, 111.8×50.8× 22.9cm(Overall), 2015
3 Splendid Isolation, From the Interphones Series, Installation View, Metro Pictures, Interactive Sculpture, Mixed Media, 89.9×49.2 ×5.7cm(Overall), 2015




당신의 작품은 종종 ‘민족지학적’이라거나 ‘인류학적’이라는 말로 설명되곤 하죠.
언젠가 “나는 인류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인류학자와 예술가의 차이를 어떻게 보세요?

- 인류학자는 과학자로서 자기 분야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통찰하고 사고합니다. 문화인류학과 인류학이 식민주의가 낳은 사회과학이라면 저는 인류학에서 비롯된 죄의식, 자기비판, 탈식민 이론에 관심이 있어요. 예술가로서 저는 미결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으로서뿐 아니라 실행의 차원에서 인류학이 불안과 취약함을 지녔고, 그래서 스스로의 발견을 끊임없이 뒤집어나가야 하는 학문이라는 점도 흥미로워요.

Grosse Fatigue’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작가는 창조주인 것 같기도 하고, 창조의 유일한 목격자 같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창조 후의 기분은 어땠는지, 정말 ‘피곤함’만 느끼셨나요?
- 네, 바로 그거요! 사실 처음부터, 아니 시작하기도 전부터 피곤했죠. 아침에는 복통, 밤에는 불면증으로 고생했고 스크린을 너무 오래 봐서 눈에 염증이 생기기도 했어요. 이런 육체적 불편함이 작업에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Grosse Fatigue’에 나오는 이미지 중 유리로 된 눈알이 떨어지는 장면 같은 게 그것이죠. 이후 완성한 두 번째 영상 ‘Saturday’에 나오는 질 확대경 검사 신도 그랬어요.

관심사가 다양한데, 그중 어떤 시대나 문화권에 특별한 관심을 두시기도 하나요?
- 저는 종종 저를 불편하게 하거나, 화나게 혹은 진저리 치게 하는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가지고 도덕적 판단의 범위 밖에서 작업하려 하는 편입니다. 차이를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유사성도 인정하죠. 사회인류학자 메릴린 스트래선이 말한 ‘부분적 연결’이란 개념을 좋아합니다. 항상 하나의 토픽에 대한 연구로 시작하지만, 관심 범위를 넓게 가져가기 때문에 결국 많은 것이 도출되는 것 같아요. 갈등과 복잡성이 흥미롭다고 보는데, 개인적인 것과 글로벌한 것 사이의 갈등, 사적인 것과 공동체적 당위가 어떻게 얽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겠죠. 이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어떻게 그토록 다채로운 장르를 다룰 수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 복잡한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할 때는 영상이 좋아요. 무언가를 자유로이 표현하거나 화를 분출해야 할 때는 드로잉이 좋고요. 저에게 회화는 자기 수련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동작을 배워야 하거든요. 조각은 놀이이자 포옹이라고 할까요. 제 조각은 종종 설치미술의 일부가 되어 음악과 함께 ‘총체적 예술 작품(total artwork)’을 이루기도 한답니다.







4 Installation View of Office of Unreplied Emails, 2016 and 11 Animals that Mate 4 Life, 2016 at the 9th Berlin Biennale for Contemporary Art, 2016




작품이나 전시 제목을 숙어, 속담, 관용어 등에서 차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목은 속뜻을 모르는 사람에겐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단이 되고, 본래 의미를 아는 사람에겐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장치가 될 텐데요. 제목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 관찰력이 좋네요. 그런데 전 제목에 대해 그렇게 체계적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전 외국어로 말하는 걸 좋아해요. 외국어의 문화적 함의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의미는 가려져 있다는 점이 좋아요. 이처럼 영어를 ‘오해’하는 경험이 상당 부분 작업에 영향을 줍니다. 일례로 ‘Splendid Isolation’과 ‘Bad Dad and Beyond’라는 인터랙티브 조각이 포함된 ‘Interphones’ 연작이 있는데, 이 작품은 관람객이 리시버를 들고 미리 작성한 대사에 반응해 버튼을 누르는 방식입니다. 각각의 작품에 준비된 대본에 따라 인터넷 연결이 끊겼는지 확인하는 법, 파트너가 바람을 피우는지 알 수 있는 법, 공격적인 개를 다루는 방법처럼 존재론적이거나 매우 사소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요. 영어는 복잡하고 감정적인 아이디어를 간단하게 묘사한다든지 메시지를 축약하거나 냉정한 의학적 표현으로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뻔하고 상투적인 표현의 의미를 드러낼 때도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어떤 것이 상투적으로 보일 때야말로 그것을 깊이 파고들어야 할 때라고 했죠. 동감입니다.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전시 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압도적이었어요. ‘요일’로 구획한 섹터를 통해 일상적인 것과 철학적이고 신화적인 지점을 독특하게 연결해 풀어낸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각 요일의 유래가 된 행성, 그리고 그 행성들의 신화적 의미를 다층적으로 해석하셨죠.
- 행성의 의미에 따라 생활을 더 잘 정돈하고, 요일별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책을 구입한 적이 있어요. 일종의 점성술 책인데, 시간을 주 단위로 나눈 것이 사회조직을 받쳐주는 자본주의적 근간이며 일과 여가를 분리한 것이 이성적 구조가 아니라 상상적이라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어요. 이렇게 주 단위로 시간을 구분하는 것이 사람들이 특정 요일에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행태에 묘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죠. 예를 들면 #tbt(throwback thursday, 과거 사진을 올리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목요일)나 #wcw(woman crush wednesday, 반한 여자의 사진을 올리는 수요일)가 있죠. 요일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느낌이었달까요. 우리는 일종의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의 믿음이나 미신과의 연관성을 찾으려 하는 것 같아요.







5 The Pale Fox, Exhibition View, Kunsthal Charlottenborg, Copenhagen, 2014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중 무엇을 믿으세요?
- 유토피아! 가능한 최고의 시나리오가 항상 실현될 수 있다고 믿어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실제로 높긴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난데없는 전염병 창궐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입니다. 이런 험난한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아직 뭐라 말하긴 이른 것 같네요. 이 위기를 분석하거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길 간절히 바라요. 최근 여러 기관에서 플랫폼에 올릴 ‘무료 디지털 콘텐츠’를 달라며 연락을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도 더 많은 즐길 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려는 탐욕에 충격을 받았어요.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앞으로 2년간 수입이 없을 텐데 지나치게 무감각한 행위 아닌가요? 원래 일종의 ‘자기 고립’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 이 시기를 예술가들이 창조적 고립 상태에서 흥미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현재 예술가들이 처해 있는 물리적 어려움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니까요. ‘공백을 채우라’거나 ‘활동을 계속하라’거나 ‘연결된 상태를 지속하라’는 호소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요구죠. 하지만 현재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차이를 이해하고, 작가들이 작업하는 물질적 환경이 구체적으로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의 이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예술가는 경험을 통해 아름다우면서 낯선 혹은 친숙한 것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으니까요. 조만간 컬렉터나 예술 기관이 국제적으로 힘을 쓰지 않으면 훗날 돌아갈 아트 신 같은 것은 남지 않을지도 몰라요. 작가들도 금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있고 부양할 가족, 육체의 필요가 있어요. ‘활동을 계속하는 것’도 좋지만, 관심과 공감이 함께 따라야 합니다. <페스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지금 우리에겐 “아무것도 잊지 않은 행복(a happiness that forgot nothing)”이 필요합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카미유 앙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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