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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0

벨기에 아티스트와의 소통

벨기에 출신 아티스트 리뉘스 판더펠더의 성실하고 상세한 답변.

5월 27일부터 한 달간 갤러리바톤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앞둔 벨기에 출신 아티스트 리뉘스 판더펠더와 언택트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는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안트베르펜에서 보내온 성실하고 상세한 답변은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게 했다.



 







1 스위스 루체른 쿤스트뮤지엄의 전시 전경(2018).
2 벨기에 겐트 현대시립미술관의 전시 전경(2016).




아티스트는 스튜디오에서 창의적 활동뿐 아니라 일상 활동도 함께 합니다. 당신의 작품을 보면서 스튜디오가 궁금해졌어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스튜디오가 있다고요?
- 2001년부터 안트베르펜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 미술학교를 다닌 이래 줄곧 이 도시에 머물고 있어요. 안트베르펜은 다소 작은 도시지만 루벤스(Peter Paul Rubens), 반에이크(Jan van Eyck), 엔소르(James Ensor) 같은 대가들이 이곳에서 살았거나 이곳을 거쳐갔죠. 스튜디오를 여러 번 옮겼는데 5년 전 드디어 완벽한 곳을 찾았습니다. 뒷마당에 큰 스튜디오가 딸린 집이죠. 이곳에선 삶과 일을 구분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스튜디오와 연결되어 있어서 저에겐 잘 맞아요.

일상은 어떻습니까? 기상과 취침 시간은 일정한가요?
- 일상은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죠. 오전 7시에 일어나 8시에 일을 시작합니다. 오후 5~6시까지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후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저녁 시간을 보냅니다. 밤 8시부터 12시 정도까지 다시 작업하고요.

작업을 시작한 이래 당신은 목탄 드로잉에서 월 드로잉, 목탄 페인팅에서 조각, 그리고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품 세계를 확장해왔습니다. 전에 한 인터뷰에서 “스튜디오 벽 안에 나만의 소설을 구체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 몇 년 전부터 제 작업을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페이크 자서전(fake autobiography)이에요. 흰 벽으로 둘러싸인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떠나지 않을 이곳에서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내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하거나, 과거의 인물이나 아티스트를 만나는 상상을 했죠. 처음에는 드로잉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야기를 하려면 좀 더 다양한 매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중 영상 작업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죠. 그래서 단시간에 진행하는 드로잉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요.

첫 영상 작품 ‘더 빌리저스(The Villagers)’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시작한 작업인가요?
- 파리에 있는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아파트를 촬영한 아름다운 다큐멘터리가 영상 작업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 작품에서 카메라는 앙드레 브르통의 거대한 아프리카 조각 컬렉션과 집 안을 마치 훑듯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세밀하게 포착합니다. 당시 저는 스튜디오에서 대규모 무대 세트를 만들고 있었어요. 판지와 나무, 페인트로 만든 페이크 세트와 설치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죠. 일종의 평행 우주인데, 페이크 자서전에 따라 살고 있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스튜디오는 매달 완벽하게 다른 무언가로 변신했어요. 하루는 정글, 또 다른 하루는 산이었다가 어느 하루는 20세기 초 예술가들이 교류한 바(bar)로 변했죠. 무대 세트에서 저 자신을 촬영한 사진은 목탄 드로잉을 위한 일종의 스케치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에서 저는 드로잉과 세트의 일부를 보여주곤 했어요. 하지만 세트가 너무 클 때도 있고 촬영 후 파손되기도 했죠. 그래서 스튜디오의 아름다운 설치물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브르통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 작업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3,4 영상 작품 (2017~2019)의 스틸컷과 촬영장 비하인드 컷.
5 팀 판라러 갤러리에서 연 전시의 설치 전경(2019).




영상 작품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촬영과 편집, 캐스팅과 스태프 관리는 어떻게 진행했나요?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 처음으로 세트 영상 촬영을 하면서 스크립트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와 스태프들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작업했습니다. 무대 세팅 후 촬영은 이틀에 걸쳐 아주 느리게 진행했어요. 편집 후 사운드 작업까지는 2년이 걸렸고요. 제작비는 모두 제가 부담했습니다. 막대한 예산, 다수의 스태프, 전문적 분위기로 영상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캐스팅도 매우 자연스러웠죠. 출연진 모두 제 지인이니까요. 처음에는 페이크 자서전에 부합할 수 있게 주역을 제가 직접 맡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는데 곧바로 카메라 뒤에서 구성과 촬영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더 빌리저스’에서 살인 사건의 목격자 혹은 원인 제공자인 아주 작은 역을 맡았습니다.

2019년 벨기에 팀 판라러 갤러리(Tim van Laere Gallery)에서 ‘더 빌리저스’를 처음으로 상영했습니다. 당시 관람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팀 판라러 갤러리에서 개최한 전시는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관람자는 갤러리에서 영상을 보기 전 만찬 자리를 가로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호텔 복도를 따라 다음 자리로 이동하면, 그곳에서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프로젝션 룸에 모인 관람자들은 그곳에 오랜 시간 머물며 작품에 집중했어요. 사람들이 영상에 긴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이 기뻤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좋은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편집하는 내내 고민한 부분이었어요.

‘더 빌리저스’를 처음 볼 때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외모가 비슷비슷한 서양인을 구별하느라 바빴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 자동차 수리하기, 잠들기, 일하기, 등산하기, 식사하기 같은 일상적 활동을 시각적으로 읽게 되었죠. 또 연식이 다양한 컴퓨터와 주변기기, 캠핑하는 남자에겐 다소 어울리지 않는 페이턴트 가죽 구두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체 스토리는 어떻게 짜고 디테일한 시각적 요소는 어떻게 구현했는지요?
- 영상 제작은 하나의 유기적 성장 과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 영상을 온전히 제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죠.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촬영했고, 한정된 스튜디오 공간에서 특정 대상을 촬영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 텔레비전이 없는 식사 장소에 어떻게 텔레비전을 구현할 수 있을까요? 텔레비전 프레임은 개봉한 카드 상자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네모 구멍을 낸 벽 뒤로 사다리를 세워 어시스턴트 마르턴(Maarten)이 그 위에 섰습니다. 그는 미식축구 선수 차림을 하고 상자에 얼굴만 나오게 한 채 인터뷰하는 장면을 연기했습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다른 역할을 맡았죠.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면 그는 능청스럽게 미식축구 선수에게 질문하는 인터뷰어 연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핸드메이드 트릭이 영상에서 실제처럼 보이는지 저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그리고 영상이라는 매체의 역사에서 초반에 행한 트릭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미지를 너무 쉽게 믿어요. 중간이 잘린 테니스 코트 그물, 절반으로 잘린 차, 가짜로 보이는 구름, 물뿌리개와 호스를 동원한 가짜 비 등 완벽히 가짜라는 여러 단서를 영상에 마련했습니다.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세트 표면을 세심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핸드메이드 구조물과 맞지 않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앰비언트 사운드 외에 판지로 만든 LP 레코드플레이어에서 ‘실제’ 음악이 흐르고, 판지로 만든 손잡이로는 낼 수 없는 ‘실제’로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 버거 가게에서 갑작스레 터진 총소리가 강하게 들렸습니다. 이런 불일치가 영상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대 세트에서 실제 사운드를 기록하진 않았어요. 당신 말처럼 판지로 만든 문은 소리를 낼 수 없거든요. 하지만 소리가 없는 영상을 원하진 않았기 때문에 촬영과 편집을 끝낸 후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친구와 함께 실제 사운드를 찾아 녹음했습니다. 쾅 문 닫히는 소리, 복도에서 나는 발소리, 정지하는 자동차 소리 등 핸드메이드 무대 세트 이미지와 우리가 영상에 입힌 실제 사운드의 불일치가 좋았습니다. 저는 모든 작업이 가짜와 실제 사이에 있는 것을 좋아해요.







6 A High Pitched Voice..., Charcoal on Canvas, Artist Frame, 180×124cm, 2019
7 The Loudest Voices..., Charcoal on Canvas, Artist Frame, 129×99cm, 2019




세트와 인물, 이들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관계를 당신의 드로잉이나 페인팅에 포함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 오랫동안 영상에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왔어요. 보이스오버(해설하는 목소리)를 사용하는 문제도 고심했죠. 하지만 모두 클리셰로 느껴졌습니다. 자막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모두 영상의 시각적인 부분을 산만하게 만들 뿐이죠. 결국 그림을 보는 것과 영상을 시청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영상은 텍스트 없이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목탄을 사용하는 데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 목탄은 드로잉이라는 매체의 기본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드로잉은 페인팅이라는 매체와 달리 항상 흥미로운 대상이었어요.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드로잉은 수평적이고 페인팅은 수직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드로잉은 수평적으로 읽히고 우주를 설명하며 지도 같은 개념과 관련이 있는 ‘계획(plan)’이죠. 이것은 평행 우주를 고안한 제 방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 목탄을 사용하면 대형 드로잉도 빠르게 완성할 수 있어요. 크기는 저에게 매우 중요해요. 제가 그린 대형 드로잉 앞에 서면 관람자는 자신과 같은 사이즈로 작품 속에 선 대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작업할 때 기존 미술 작품, 이미지, 사진, 특히 미술사를 참고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아티스트에게도 영향을 받나요?
- 미술사 자체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드로잉 소스로 종종 다른 아티스트의 독창적 작품을 사용해요. 더불어 아이폰 사진, 제가 만든 영상 스틸 수천 장을 컴퓨터에 저장해두는데, 이들이 작품을 위한 영감을 주곤 합니다. 저는 미술사 자체를 배제하고 싶지 않아요. 미술사는 제 개인적 세계의 일부죠.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드로잉 시리즈를 저는 ‘대화’라고 부릅니다. 모두 과거에서 끌어내고 상상력을 동원해 가짜로 만든 대화죠.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 축하합니다. 당신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을까요?
-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라 관람자들이 전시를 보며 제가 스튜디오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관람자들과 저 자신을 연결하는 공통분모가 생긴다면 좋겠어요. 전시를 할 때마다 꿈꾸는 희망 사항이죠. 또 관람자가 개인적으로 작품과 나누는 이야기를 즐기기 바랍니다. 우리 사이에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이 존재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 즉 삶의 이야기로 통하니까요.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갤러리바톤, 리뉘스 판더펠더   류정화(전시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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