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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2

어제는 영화감독 내일은 디자이너

멀티 아티스트 알렉스 이스라엘과 함께 예술가의 역할과 크리에이티브를 재정의했다.

1 인프라신 × 엘더 스테이츠먼(Infrathin × The Elder Statesman)을 입은 알렉스 이스라엘과 패리스 힐턴.

‘Waves’와 ‘Self-Portraits’를 그리는 아티스트, 선글라스 브랜드 프리웨이와 패션 브랜드 인프라신 설립자이자 디자이너, 영화감독, 영상 디렉터, 웹 시리즈 제작자까지. 알렉스 이스라엘은 하고 싶은 건 우선 시작하고 본다. 그렇다고 두서없는 건 결코 아니다. 장르는 다양하지만 컨셉은 유지한다. 캘리포니아의 청량한 하늘빛, 반듯한 안경 프레임, 자신의 날렵한 옆모습 등을 각인하며 ‘Made by Alex Israel’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렇기에 그가 가는 곳은 곧 캘리포니아, 손이 닿은 것은 곧 알렉스 이스라엘 그 자체다.






2 ‘Wave’ 앞에 서 있는 알렉스 이스라엘.

알렉스 이스라엘
멀티아티스트, 작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영상 디렉터 등 하나의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알렉스 이스라엘. 시그너처는 고향 캘리포니아 하늘의 노을빛과 자화상으로, 대다수 작품에서 그 두 심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휘트니 미술관, LACMA, 뉴욕 현대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LA가 미국 미술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했어요. 그리고 LA 미술을 논할 때,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노을을 그리는 당신을 빼놓을 수 없죠. LA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LA에 연고가 깊어요. 저뿐만 아니라 부모님, 조부모님 모두 캘리포니아 출신이죠. 사실 LA에 살 때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몰랐어요. 예일 대학교 진학을 위해 코네티컷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고향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LA의 태양과 바다, 여유와 건강함이 넘쳐흐르는 창의적 라이프스타일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2010년, 선글라스 브랜드 프리웨이(Freeway)를 런칭했어요. 알렉스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처음 시작한 활동이죠?
정확히 말하면 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어요. 프리웨이, 웹 비디오 시리즈 그리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석사 졸업 전시 작품 ‘Property’가 그것이죠. 모두 제가 학생일 때, 그러니까 2010년까지 스스로에게 던진 존재론적 질문에서 파생한 프로젝트예요. 당시에는 뭔가 귀중한 오브제를 선보이는 전시 형태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상적 물건인 선글라스와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웹 비디오를 택했죠. 대여한 영화 소품을 전시한 ‘Property’도 마찬가지예요. 대여한 물건은 반납이 필수잖아요. ‘Property’는 전시가 끝나면 사라질 작품이죠. 그렇게 잠시 존재하는 조각을 만드는 실험을 해본 거예요.

처음부터 여러 일을 동시에 하셨군요.
한 가지 형태를 다루거나 하나의 플랫폼에 머무는 창작자로 인식되고 싶지 않았어요. 꼭 예술 작품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자유롭게 하길 원했죠. 이를테면 프리웨이처럼요. 프리웨이를 예술이 아닌 선글라스 브랜드로 설명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저는 제가 만드는 모든 게 예술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예술이다’ 또는 ‘예술이 아니다’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권리는 작가에게 굉장한 자유를 줍니다.

지금은 파인 아트, 디자인, 영화, 인터넷, 소셜 미디어 등으로 활동하는 플랫폼이 더 확장됐습니다. 의자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는 전통적 작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이르는 열쇠는 지식이라고 믿어요. 폭넓은 정보를 얻을수록 편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존 발데사리 스튜디오 인턴을 거쳐 소더비, 블룸 앤 포, 하우저 앤 워스에 근무하면서 글로벌 아트 신을 접했고, 제 작업의 정체성을 복합 매체(multi-disciplinary)로 규정해야겠다는 통찰력을 얻었죠. 작가로서 특정 코너에 갇히거나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히는 건 지양하자고 결심한 것도 그때예요. 순수 미술 외에 다른 영역을 넘나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앤디 워홀 같은 작가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제가 인터넷에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란 점도 간과할 수 없죠. 대중매체에 관심을 갖고 여러 매체를 다루는 지금의 제 모습은 그런 복합적 성향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작가 알렉스 이스라엘과 감독 알렉스 이스라엘, 디자이너 알렉스 이스라엘 간에 차이는 있나요?
아니요. 차이는 없어요. 모두 저니까요.

멀티아티스트, 작가,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 영화감독 등 당신을 지칭하는 호칭은 굉장히 다양하죠. 그중에 특히 마음이 가는 게 있나요?
글쎄요. 아티스트? 저에게 아티스트는 예술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창조적인 프로예요. 물론 저도 그런 아티스트죠!

당신의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주제가 알렉스 이스라엘 그 자체일 수 있겠네요.
2010년대 초반에는 셀프 브랜딩과 셀피처럼 끊임없는 자기 노출이 인터넷과 미디어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그런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고자 작품에 나 자신을 등장시켰습니다. 나아가 나 자신을 브랜드화하고 로고에도 제 옆모습을 사용했죠.




3 (왼쪽 위 부터) Self-Portrait(Still Life with Mr. Brown),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8~2019, Self-Portrait(Chinese Theater),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7, Self-Portrait(Wheel of Fortune),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7, Self-Portrait(Neon),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7, Self-Portrait(Griffith Observatory),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7, Self-Portrait(with Eli),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7~2019, Self-Portrait(Santa Monica Pier),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9, Self-Portrait(Eli Study), Acrylic on Sintra, 24×20in, 2019, Self-Portrait(Mulholland Dr.),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9, Self-Portrait(Mulholland Study), Acrylic on Sintra, 24×20in, 2019, Self-Portrait(Stained Glass),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96×84×4in, 2019, Self-Portrait(Helicopter Study), Acrylic on Sintra, 24×20in, 2019




4 As It Lays 2 with Tom Hanks (Production Still), 2018
5 루이 비통 × 알렉스 이스라엘(Louis Vuitton × Alex Israel). 모델 칼리 클로스(Karlie Kloss)가 ‘웨이브 블랭킷(The Wave Blanket)’(2019)을 걸치고 있다.

인상적인 프로젝트 몇몇을 살펴보면,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웹 시리즈 를 통해 톰 행크스, 귀네스 팰트로 등 LA 출신 유명인을 인터뷰했습니다. “옐프(Yelp) 리뷰를 읽어본 적 있나요?”, “아보카도 토스트를 좋아하나요?” 같은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인터뷰이의 모습을 비디오로 기록했죠. 마치 당신의 파인 아트 시리즈 ‘Self-Portraits’의 영상 버전 같았어요.
는 초상화(portraitur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며 토크쇼와 초상화를 접목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인터뷰이를 LA 출신으로 꾸린 건 일종의 LA 군상화를 만들고 싶어서였죠. 제가 사랑하는 LA 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을 부각하고 싶었거든요.

2017년에는 넷플릭스에 영화 을 공개했죠?
은 젊은 관객에게 창작의 이점, 창작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려주려는 시도였죠. 대단한 성공이나 평단의 환호를 바란 건 아니었어요. 개봉 당시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고요. 젊은 세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자 만든 영화인데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아 아쉬웠죠. 그러다 갑자기 주연배우 노아 센티네오(Noah Centineo)가 하이틴 스타로 떠오르면서 도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가 출연한 두 편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는데, 그것을 본 관객에게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을 추천한 거죠. 그 두 영화를 좋아하면 도 좋아할 거라는 맥락이었겠죠? 덕분에 엄청난 관객층을 얻고 넷플릭스 검색 순위에도 올랐어요.

한데 대중의 반응은 상당히 차가웠어요. 평점도 낮은 편이었죠.
하이틴 스타가 나온다는 정보만 갖고 시청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아마 사람들은 이 실험적 예술영화란 걸 모른 것 같아요. 하지만 전 개의치 않았어요. 이 넷플릭스의 첫 번째 예술 작품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죠. 그리고 제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도 성취했어요.




Photo by Kevin Todora
6 Self-Portrait (Wetsuit), Acrylic on Aluminum, 79.5×28×22in, 2015

젊은 세대에게 창의적 활동의 중요성을 전달하겠다는 목적 말이죠?
그렇죠. 을 본 10대가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며 무언가를 탐구하길 바랐어요.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그들이 영화의 의도를 이해하고, 나아가 예술 작품으로서 영화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죠. 일종의 실험이었어요. 시청자가 적을 때는 몰랐는데, 그 수가 증가할수록 제가 바라던 바가 실현되더군요. 10대 친구들에게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도 많이 받았죠! 저는 그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운 좋은 캐스팅의 덕을 톡톡히 봤죠.(웃음)

가고시안 홍콩에서 전을 개최하며 유니섹스 패션 브랜드 인프라신(Infrathin)을 런칭했습니다. 티셔츠와 모자에 당신의 페인팅 ‘Waves’를 닮은 그러데이션 컬러를 입혔죠. 앞서 프리웨이를 두고 예술 작품이 아니라고 했는데 인프라신도 마찬가지인가요? 아니면 페인팅 이미지를 사용한 만큼 예술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인프라신은 단어 그 자체에서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예요. 마르셀 뒤샹이 예술 작품의 오라를 정의하기 위해 만든 단어로, 간단히 설명하면 ‘2개의 동일한 물건 사이에 존재하는 알아채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입니다. 예술적 오라는 제가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고민한 부분이죠. 그래서 인프라신으로 상표등록을 하고 패션 브랜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인프라신이 예술 작품인지 단순한 패션 브랜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 둘 사이에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요즘 당신의 관심은 어디에 쏠려 있나요?
그간 비디오게임을 만들어볼까 구상해왔어요. 그 전에 틱톡(TikTok)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보려고요!


7 ‘Lens(Purple)’(2014)와 ‘Lens(Yellow)’(2014). 파리 알민 레슈 갤러리(Almine Rech Gallery)에서 2015년에 열린 전 전경이다.
8 영화 의 포스터.

다양한 장르에 몸담은 당신에게 이 시대의 창작(creative)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예술가(artist)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 거라고 예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예술과 작가의 정의는 계속 진화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 세계적 코로나19 방역 대책의 일환으로 반려견과 함께 자택 격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고려할 때 남은 2020년에 보다 극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미래 예측은 원래도 힘들지만, 우리는 더더욱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어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예술의 진화를 추구하며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적 작업을 이어가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제공 가고시안 디자인 오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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