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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머무는 장소를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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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건축, 음식과 농업, 지역 이야기를 하나의 경험으로 엮는 아트팜. 하우저 앤 워스 설립자 이완과 마누엘라 워스 부부는 오랫동안 예술을 다뤄온 감각으로 장소의 역사와 풍경을 섬세하게 읽어내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공간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위쪽 스코틀랜드 브레이머의 케언곰스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더 파이프 암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을 복원했다. © Simphotograp
아래쪽 전통적 스코틀랜드 유산과 고급스러운 패브릭, 앤티크 목재 가구, 러셀 세이지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패턴의 벽지가 조화를 이루는 더 파이프 암스의 인테리어. © Simphotography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호텔 객실, 레스토랑 테이블, 정원 풍경, 그리고 음식과 농장의 생산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명목 아래 이를 둘러싼 경험 전체를 문화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출신 아트 딜러 이완 워스(Iwan Wirth)와 마누엘라 워스(Manuela Wirth)가 전개하는 ‘아트팜(Artfarm)’은 이러한 변화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다. 세계적 갤러리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를 이끌어온 두 사람은 예술로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실험해왔다.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아트팜은 현재 호텔, 레스토랑, 바, 리테일 공간을 아우르는 독립적 호스피탤리티 회사로 성장했다. 스코틀랜드의 케언곰스 국립공원부터 영국 서머싯, 런던 메이페어, 스페인 메노르카, 미국 LA와 뉴욕, 워싱턴 DC, 그리고 스위스 상부 엥가딘까지 세계 곳곳의 다채로운 장소에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아트팜의 특징은 프로젝트마다 해당 장소의 문화와 관습, 역사와 사람들을 흡수해 각기 다른 스타일로 완성한다는 것이다. 즉 브랜드의 정체성을 장소에 덧씌우지 않은 채 장소 자체를 읽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전통적 스코틀랜드 유산과 고급스러운 패브릭, 앤티크 목재 가구, 러셀 세이지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패턴의 벽지가 조화를 이루는 더 파이프 암스의 인테리어. © Simphotography
더 파이프 암스 스파 전경. © Artfarm

아트팜의 출발점은 미술관이나 호텔이 아니라 영국 서머싯의 농장이었다. 이완과 마누엘라 워스는 10여 년 전 가족이 소유하던 농장을 복원하고 확장하면서 지역의 자연과 공동체, 농업에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군 122만 평에 달하는 규모의 더슬레이드 농장에는 과수원, 정원, 벌통, 삼림, 포도밭 등이 포함되며, 이곳에서 소와 양을 기르는 일상이 펼쳐진다. 팜 숍에서는 농장에서 기른 소와 양의 고기를 판매하고,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선보인다. 과수원에서 재배한 사과는 음료가 되고, 벌통에서 얻은 꿀은 주방과 칵테일, 리테일 제품에 활용된다. 포레이징팀은 농장 주변의 야생식물과 열매, 버섯 등을 채집해 잼과 피클, 소스 등 소량 생산 제품을 만든다. 농업 역시 지속가능성의 순환 구조를 고려한다. 가축을 위한 사료와 축사에 사용할 짚을 직접 재배하고, 사용한 짚은 다시 토양을 위한 비료로 활용한다. 워스 부부가 농부와 예술가 사이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컬티베이트(cultivate)’, 즉 무언가를 경작하고 돌보며 시간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아트팜이라는 이름도 이 아이디어가 발전해 나온 것이다.

루이 라플라스가 디자인을 맡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천장 들보를 살리고, 지역 공예품을 매치한 체사 마르체타 내부. © Dave Watts
흰색 벽과 층을 이루는 돌 지붕이 특징인 엥가딘 양식의 체사 마르체타 건물. © Dave Watts
건물이 간직한 클래식한 요소를 유지하며 현대적 미감을 더한 침실. © Dave Watts

여러 프로젝트 중 가장 대담한 실험으로는 스코틀랜드 브레이머에 위치한 ‘더 파이프 암스(The Fife Arms)’를 꼽을 수 있다. 케언곰스 국립공원 한가운데 자리한 빅토리아 시대의 옛 코칭 인을 복원한 호텔로, 46개의 객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지역의 인물과 장소, 사건 또는 문화적 주제를 연구해 객실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이야기를 가구와 장식, 예술 작품을 통해 풀어낸 것.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오래된 물건부터 현대미술가에게 특별히 의뢰한 작품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오브제가 한데 어우러져 호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트 컬렉션을 방불케 한다. 장언리, 수보드 굽타, 제임스 프로섹 등 세계적 작가들이 참여해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자연을 다룬 작품과 공예품도 배치했다. 이는 하우저 앤 워스에서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기획해온 워스 부부의 경험이 호텔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된 결과다. 두 사람은 갤러리에서 작품의 연계성을 고민해 전시를 구성하듯, 호텔에서는 예술과 건축, 역사적 오브제, 지역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 엮었다. 더 파이프 암스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아름다운 호텔에 머무는 것뿐 아니라 예술과 역사, 공예와 사람을 통해 브레이머라는 장소를 읽어가는 경험에 가깝다.

전통적 목축용 방울, 조각 장식이 더해진 목조 의자, 따뜻한 촛불이 어우러진 다이닝 공간. © Dave Watts
다락에 위치한 아늑한 라운지 공간. © Dave Watts
이완 워스와 마누엘라 워스. © Joel Hunn

두 사람의 이러한 접근은 농장을 넘어 새로운 장소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스위스 소도시 실스 마리아에 문을 연 체사 마르체타(Chesa Marchetta)가 대표적이다. 체사 마르체타는 알프스 계곡과 호수, 역사적 건축물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에 자리한 13개 객실을 갖춘 아담한 호텔로, 지역 특유의 건축과 역사, 자연, 문화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예술과 음식, 디자인과 환대 언어로 다시금 연결한다. 실내디자인을 담당한 건축가 루이스 라플라스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입혀 객실마다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분위기를 구성하고, 전통적 엥가딘 가구와 지역 장인의 작품, 현대미술품을 함께 배치했다. 덕분에 객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오래되고, 새롭고, 지역과 외부에서 온 것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음식 또한 장소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스위스 알프스의 전통은 물론 이탈리아와 맞닿은 지역성을 바탕으로 제철 식재료와 전통적 조리법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이곳에서 지역성이란 메뉴에 ‘스위스’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넘어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식문화를 두루 경험하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 아트팜은 14개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회사가 강조하는 것은 확장보다 각각의 장소가 지닌 고유성이다. 정해진 표준은 없으며, 모든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완성된다. 이는 오늘날 하이엔드 호스피탤리티가 지향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과거 희소한 재료와 서비스, 세련된 디자인을 통해 차별화했다면 이제는 특정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완과 마누엘라 워스가 아트팜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은 그저 ‘예술이 있는 호텔’이 아니다. 예술을 시작으로 자연과 농업, 음식, 건축, 지역 공동체를 연결하며, 그곳에서 사람들이 직접 머물고, 먹고, 걷고, 대화하며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생활 방식을 만드는 일이다. 작품을 넘어 장소를, 장소를 넘어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완과 마누엘라 워스가 아트팜을 통해 이어가는 새로운 큐레이션이다.

  • 글 양윤정(프리랜서)
  • 에디터 김수진
  • 사진 아트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