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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의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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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간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대미술을 수집해온 컬렉터 요프 판칼덴보르흐. 포를린덴 뮤지엄 개관 10주년을 맞아 한 사람의 방대한 컬렉션이 특별한 뮤지엄으로 확장된 시간과 그 철학에 대해 들었다.

포를린덴 뮤지엄 외부. © Pietro Savorelli
피트 아우돌프가 설계한 뮤지엄 정원. © Antoine van Kaan

네덜란드 바세나르의 자연 속에 자리한 포를린덴 뮤지엄(Museum Voorlinden)이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화학 기업 칼딕(Caldic)을 일군 사업가이자 컬렉터 요프 판칼덴보르흐(Joop van Caldenborgh)가 수십 년에 걸쳐 모은 컬렉션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2016년 문을 연 이후 지난 10년간 유럽을 대표하는 프라이빗 미술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예술과 자연,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 리처드 세라, 루이즈 부르주아, 안젤름 키퍼를 비롯한 현대미술의 거장부터 동시대 작가의 작품까지 폭넓게 선보이는 동시에 독자적 컬렉션과 전시 프로그램을 구축해왔다. 특히 이배, 하종현, 시우진 등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도 꾸준히 소장하며 컬렉션의 지평을 넓혀왔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Celebrating the Icons of Art〉는 포를린덴이 지금껏 지향해온 예술의 의미를 되짚는 자리다.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는 앙리 마티스, 호안 미로, 프랜시스 베이컨,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미언 허스트 등 20세기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시대를 넘어 아이콘이 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뮤지엄의 컬렉션을 이루는 명작이 한자리에 모인 풍경은 지난 10년간 포를린덴이 구축해온 미적 취향과 시선을 압축해 보여준다. 그 중심에 요프 판칼덴보르흐가 있다. 열여섯 살 때 신문을 배달해 모은 25길더로 첫 작품을 구입한 소년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안목과 기준으로 컬렉션을 일구었다. 집과 회사의 벽을 넘어설 만큼 장대해진 컬렉션을 위해 결국 자신만의 미술관을 만들었고, 직접 모은 작품과 공간, 그리고 그 주변의 자연까지 다음 세대와 공유하기로 했다. 지금도 새롭게 수집한 작품을 기증하며 포를린덴의 방향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그와 뮤지엄의 의미와 컬렉터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프 판칼덴보르흐. © Lidian van Megen

10대 시절 처음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수집을 시작한 계기를 기억하나요?
처음부터 컬렉터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뭔가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소년 시절에는 시가 밴드를 모았고, 우표 수집에도 꽤 열성적이었죠. 10대 시절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헤이그 시립미술관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몇 시간씩 바라보곤 했죠. 그때 추상미술과 미니멀한 예술에 매료됐어요. 열여섯 살 때는 신문을 배달해 번 돈으로 네덜란드 추상미술가 페테르 스트뤼컨(Peter Struycken)의 판화 포트폴리오를 처음 구입했습니다. 이후 미술품 사는 일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마흔 살 무렵 집 안의 벽을 따라 작품이 일곱 겹씩 세워진 것을 보고 ‘이제야 내 컬렉션이 만들어졌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60여 년간 컬렉팅을 이어오면서 작품을 선택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었나요?
현대미술을 수집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방식이 변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 관심사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했어요. 여전히 미니멀 아트와 제로(zero) 아트를 수집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도 많아요. 지금의 컬렉션에는 수많은 선택과 여행 장소, 그리고 관심을 갖고 따라온 작가와 예술 운동 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회화와 조각, 사진부터 영화, 설치, 아티스트 북,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부터 아직 성장하고 있는 신진 작가까지 폭넓게 포함돼 있어요.

포를린덴 뮤지엄 내 설치된 제임스 터렐의 ‘Skyspace Twilight (Yellow)’. © Florian Holzherr

작품을 구입할 때 ‘이 작품은 내 컬렉션에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지점은요?
먼저 작품이 내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소름 돋게 하거나, 미소 짓게 하거나, 목을 움켜쥔 듯 강렬한 느낌을 주거나, 눈썹을 치켜올리게 만들어야 하죠. 평소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 페어, 작가의 스튜디오 등에서 많은 작품을 봅니다. 그러다 어떤 작품이 눈에 들어오면서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죠.

개인 컬렉션을 넘어 더 많은 이와 작품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수십 년간 개인 컬렉터로 활동하던 중 2011년 로테르담 쿤스트할에서 제 컬렉션 일부를 선보이는 전시 〈I Promise to Love You〉를 열었는데, 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고 관람객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그때 ‘이런 일을 더 자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바세나르에 있는 아름다운 영지를 발견했고, 국제적 수준의 채광과 온도, 습도 관리, 보안 시스템을 갖춘 포를린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65회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대규모 개인전부터 우리 컬렉션을 선보이는 작은 전시까지 다양하죠.

포를린덴은 컬렉션을 전시하는 건물 그 이상입니다. 건축과 자연광, 주변 풍경, 조각 정원 모두가 관람 경험의 중요한 일부를 이룹니다. 예술과 건축, 자연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과의 만남입니다. 가능한 한 최고 관람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고, 그 시작은 자연광이었습니다. 포를린덴이 네덜란드의 복잡하고 분주한 도시권 안에서 하나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바랐어요. 오래된 영지에 자리한 데다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곳에서는 일상을 잠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뮤지엄을 둘러싼 정원은 피트 아우돌프가 설계했습니다. 건물 외벽의 70%가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실내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건물 자체는 축구장 하나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고, 어디에서든 쉽게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갤러리 사이의 시선은 바깥 풍경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는 의도적으로 숨겼습니다. 예를 들어 밝은 출구 표지판이나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문 같은 것들이요. 수백 점의 작품으로 관람객을 압도하지도 않습니다. 엄선한 작품만을 보여주고, 각각의 작품이 마땅히 받아야 할 공간과 관심을 충분히 제공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관람객과 작품 둘뿐이죠.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Celebrating the Icons of Art〉를 통해 소개 중인 론 뮤익의 ‘Boy’. © Antoine van Kaan

소장품을 관람객과 공유하면서 자신의 컬렉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나요?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수년 동안 매료되어온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이유로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 역시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컬렉션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순간 변화합니다.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0주년 기념 전시에는 덴마크의 아로스 오르후스 미술관에서 대여한 론 뮤익의 ‘Boy’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이 거대한 조각을 보았을 때는 물론 그 압도적인 크기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저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거대한, 거의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큰 신체와 그에 대비되는 내향적 자세였습니다. 무릎을 끌어안고, 시선은 관람객을 향하지 않은 채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죠. 그 앞에 서면 관람객은 공감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 긴장감, 초현실적 사실성과 실존적 질문이 뒤섞인 느낌이야말로 제가 그의 작품에 매료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작품이 너무 커서 한눈에 볼 수 없다는 불만을 얘기했어요. 어디에서도 작품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뒤로 물러서면 손 뒤에 얼굴이 가려지고, 가까이 다가가면 신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보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 역시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됐습니다.

하종현, 이배, 천경우, 시우진 등 한국 작가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무엇이며, 당신의 컬렉션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화학 산업에서 성공적 경력을 쌓으면서 세계 곳곳을 다닐 수 있었고, 지금도 계속 여행하고 있습니다. 사업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게 됐고, 그곳에서도 제가 늘 하던 일을 했습니다. 아트 페어와 미술관,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영감을 찾았죠. 그렇게 많은 한국 작가들이 컬렉션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늘 구조와 연속성, 패턴과 추상에 매력을 느꼈고, 논리와 수학에도 관심이 있어 자연스럽게 단색화라는 한국의 미술 운동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단색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서보 화백을 만나기도 했는데, 세상을 떠나시기 불과 일주일 전이었죠.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고, 2019년에는 포를린덴에서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의 독특한 건축적 설치 작품은 오랫동안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10주년 기념 전시 〈Celebrating the Icons of Art〉에서는 소장품과 함께 현대미술사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아이코닉한 작품’이란 무엇일까요?
‘아이코닉하다’는 말은 흥미롭습니다. 물론 흔히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정말 아이코닉한 작품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이콘으로 생각하는 작품이 수십 년 후에는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죠. 바로 그것이 현대미술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아직 역사가 그것을 판단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예술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이 오래 남을지, 또는 무엇이 공감을 불러일으킬지를 모두 함께 결정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100년 동안 아이콘이 된 작품과 오늘날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포를린덴 컬렉션 작품 중 하나인 안젤름 키퍼의 ‘Jericho’, 2007. © Twan Thio

10년 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장 뜻깊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포를린덴을 개관하기 전에는 많은 시간을 들여 계산하고, 계획하고, 꿈꿨습니다. 빛이 어떻게 들어와야 하는지, 갤러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컬렉션을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지까지 세심하게 고민했죠. 하지만 문을 연 뒤 사람들이 이곳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뮤지엄이 어느 순간 저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성격을 띤다는 것입니다. 매년 다시 찾아오는 가족이 있고, 특정 작품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작품 앞에서 몇 시간씩 머무는 관람객도 있고요. 사람들이 예술 앞에서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은 제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한 갤러리에 들어갔다가 나이 지긋한 남성과 한 아이가 나란히 서서 작품을 바라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함께 작품을 바라보았죠. 저는 바로 그런 조용한 순간이 이 뮤지엄을 만든 모든 시간과 노력을 가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직접 다니시나요? 포를린덴이라는 공간이 생긴 뒤 작품을 수집할 때 새롭게 고려하게 된 조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지 않겠어요. 저는 여전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지금 이 순간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수집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는 현실적 조건도 고려해야 합니다. 작품이 실제로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지,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죠. 어떤 작가들은 엄청난 규모의 작품을 만듭니다. 대표적 예가 리처드 세라의 216톤짜리 코르텐 스틸 조각 ‘Open Ended’입니다. 이 작품을 들여올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과연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결국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건물 외벽 일부를 열어야 했죠.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관람객을 만족시키거나 방문객 수를 늘리기 위해 작품을 수집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포를린덴을 상상한다면, 어떤 뮤지엄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나요? 처음부터 지켜온 가치 중 앞으로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포를린덴이 계속 열려 있고, 호기심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현재에 뿌리내린 공간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컬렉션을 만들어온 방식이고, 뮤지엄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미술에는 끝이 없습니다. 새로운 작가가 등장하고 컬렉션은 계속 성장하며, 전시는 달라지고 새로운 세대는 저마다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볼 테니까요. 그 변화 속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은 처음 시작할 때의 정신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 본능을 따르는 자유로운 태도, 그리고 예술과 그것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죠. 20년 후에도 포를린덴이 여전히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를 바랍니다.

  • 글 양윤정(프리랜서)
  • 에디터 김수진
  • 사진 포를린덴 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