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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음악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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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정점을 향해갈 무렵, 잘츠부르크 하계 축제의 막차에 올라탔다. 그 여정에서 만난 음악제를 세 달에 걸쳐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라인가우 음악제와 잘츠부르크 축제, 그리고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다.

라인가우 엘트빌에 위치한 에버바흐 수도원 경내.
테너 롤란도 비야손과 소프라노 셀린 셴의 수도원 음악회. © Ansgar Klostermann

라인가우에서 마주한 오르페오

8월 하순 독일 중부에 위치한 에버바흐 수도원 대성당의 아침은 제비가 지배했다. 전날 밤 들은 오르페오의 노래에 화답하듯, 지지배배 활공하고 솟구치며 높은 처마를 쉼 없이 드나든다. 1987년 비스바덴 출신 서적상 미하엘 헤르만이 프랑스 프라다에 여름 축제를 모델로 라인가우 축제를 창설할 때, 4분음표와 포도송이를 결합한 로고로 와인 산지인 지역색을 살렸다. 올해도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26개 공연장에서 170여 개의 공연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1136년에 창건해 900년 역사를 눈앞에 둔 에버바흐 수도원에서는 라인가우 축제의 개·폐막 음악회가 열린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까지 건축양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시토회 수도원 경내는 탐방이 가능한 박물관이다. 1098년에 창설된 시토회는 노동으로 자급자족하며 청빈을 실천했다. 13세기 초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그 자급자족조차 소유욕으로 보고, 탁발로 연명하며 빈민 구제에 매진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1327년 어느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동명 영화의 주요 장면은 에버바흐 수도원에서 촬영했다. 프란체스코회 출신의 윌리엄 수사는 보수적인 베네딕토회, 그리고 배후의 교황청 종교재판관과 정면 충돌한다. 영화뿐 아니라 많은 공연 영상을 통해 보아온 이곳에서 마침 딱 내 관심사인 음악회가 열렸다. 작년 말 크리스티나 플루하르가 이끄는 라르페지아타 앙상블이 테너 롤란도 비야손과 발표한 <나는 오르페오다(Orfeo son io)>라는 제목의 음반이 고스란히 이날 프로그램이다. 신화 속 음악가 오르페오는 현존하는 첫 오페라의 주인공이며, 그 존재감은 현대까지도 이어진다. 바로크에서 고전까지 여러 오페라에서 발췌한 곡으로 신화의 줄거리를 재현하는 공들인 선곡이다. 공연에선 음반에 빠진 소프라노 부분까지 더해 극적인 묘미를 더했다. 간간이 기악만으로 된 춤곡이 경건한 대성당을 신명 난 무도장으로 바꿨다. 수도원의 금욕 공간이 때때로 세속의 유혹에 굴했던 것처럼.

잘츠부르크 카피텔 광장에 설치된 슈테판 발켄홀의 작품 ‘스페라’.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프롤로그’에서 의인화한 음악이 등장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계속되는 몬테베르디와 루이지 로시의 곡은 행복한 연인이 에우리디케의 죽음 뒤로 저승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따라간다. 베네치아 작곡가 안토니오 사르토리오의 ‘오르페오, 잠들었나요?’는 기존 신화를 뒤집는다. 오르페오가 저승에 가는 대신 저승에서 온 에우리디케가 잠든 오르페오를 원망하는 장면이다. 소프라노는 나무와 돌마저 감동케 할 그의 노래라면 그 힘을 슬픔의 왕국 쪽으로 돌리기만 해도 자비를 얻어낼 텐데 왜 그러지 않느냐며 야속해한다. 비야손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천 가지 고통’과 그 유명한 ‘에우리디케 없이 나는 어떻게 하나’로 신화를 복원한다. 앨범과 공연 모두 20세기로 오르페오를 소환한다. 탱고 작곡가 카를로스 가르델의 화자는 연인을 잃고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가는데 홀로 슬픔에 잠겼다고 노래한다. 영화 <흑인 오르페> 작곡가 루이스 본파는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사랑의 노래가 영원히 이어지길 기원한다. 깊어가는 여름밤, 수도원 밖에선 분명 비야손의 음성과 플루하르의 류트에 맞춰 제비가 지저귀고 포도나무가 숨죽이고 풀벌레가 춤을 췄을 것이다.

올리비에 메시앙이 작곡하고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연출한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에버바흐 수도원의 와인 저장고.

잘츠부르크의 성 프란체스코

라인가우 축제가 한 세대 남짓을 보냈다면, 잘츠부르크 축제는 올해로 106회를 맞은 명실상부 여름 음악제의 효시다. 도착 첫날 필리프 조르당이 지휘하는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벨라 버르토크의 ‘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과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을 연주했다. 전자가 복잡한 리듬을 배분하는 정밀기계라면, 후자는 광활한 화음을 녹이는 파이프오르간 같다. 믿음직한 지휘자와 젊은 악단은 두 가지 숙제를 패기와 용기로 완수했다. 이튿날 본 올리비에 메시앙의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자연히 에버바흐 수도원을 떠오르게 했다. 20세기 프랑스 최고 작곡가는 필생의 역량을 이 오페라에 집약했다. 3막 8장 거대한 음악극은 1시간씩 두 번의 휴식을 포함해 6시간 동안 암벽승마학교극장에 몰아쳤다. 메시앙은 보나벤투라가 쓴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나 조토가 아시시 대성당에 그린 28점의 벽화에 묘사된 성인의 삶을 자유롭게 각색했다. 새들에게 설교하거나 성흔(stigmata)을 받는 장면은 잘 알려졌지만, 나병 환자의 치유와 천사의 음악 부분은 생소하다. 스타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는 여기에, 프란체스코가 세속의 옷을 모두 벗고 신에 귀의하는 서두와 늑대를 길들여 형제가 되는 막간 장면을 더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카스텔루치의 무대 위에서 흙더미나 검은 타르 따위를 보는 데 익숙했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축제의 화제작이던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이 대표적이다. 죽음과 부활을 다룬 두 작품에서 그는 멸종, 부패, 재생 따위를 날것 그대로 보여줬다. 전쟁과 반달리즘으로 사라진 고대 문명을 영사로 열거하거나, 집단 암매장 묘에서 시신을 발굴하고, 무대 위에서 나무를 심는 따위였다. 이번에도 종말론적 전쟁과 환경 재앙의 시대에 예술이 보여주는 저항의 몸짓이 그의 지속적인 화두임을 재확인해주었다. 우리의 성 프란체스코, 베이스 바리톤 필립 슬라이 역시 붉은 피나 검정 타르에 뒹굴며 지상에서 천국에 이르는 고난의 여정을 보여주느라 분투했다.

필리프 조르당이 지휘한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
호엔잘츠부르크 요새에서 바라본 알프스.

극중 ‘새들에게 하는 연설’은 앞서 피아노를 위한 ‘조류 도감(Catalogue d’oiseaux)’을 쓴 메시앙의 가장 독보적 업적으로 꼽힌다. 그는 실제로 오선지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새소리를 채록했다. 그의 음색을 특징짓는 미분음과 다중 리듬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메시앙은 황조롱이나 올빼미 소리를 묘사하려고 기존 악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거나 기상천외한 조합의 합주로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카스텔루치의 모형 새들은 날아오르는 대신 하늘에서 떨어져 퍼덕거리며 죽어갔다. 그 뒤로 수많은 20세기 멸종 조류의 이름이 투사되었다. 3막에서 성 프란체스코는 죽은 백조를 안고 들어와 종(種) 전체에 대한 연민을 호소한다. 그러고 보니 오전에 오른 호엔잘츠부르크 성채의 창공에선 흔한 칼새를 보지 못했다. 일시적이거나 우연이었기를 바란다. 에버바흐와 잘츠부르크의 전혀 다른 두 공연은 뜻밖에 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에우리디케를 잃고 어쩔 줄 모르는 오르페오와 설교를 듣고도 죽어가는 새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프란체스코가 겹친다. 정본 신화에서 오르페오는 결국 아내를 살리지 못했고, 뒷이야기는 작가마다 다르다. 멸종된 조류가 기적처럼 돌아온대도 환경까지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음을 이번 여름의 폭염과 홍수가 확인해주었다. 압도적 총주로 대작을 끝낸 지휘자 막심 파스칼과 빈 필하모닉엔 갈채가 쏟아졌지만, 내 머릿속엔 정적이 자리했다. 빈 필하모닉의 자리를 이어받을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수년 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재연할 때쯤엔 황조롱이와 올빼미, 칼새와 제비가 우리 곁에 없을지도 모른다. 새들이 없는 세상이라면 그곳은 이미 에우리디케의 저승이 아닐까.

  •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 에디터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