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임선혜가 말하는 '고음악'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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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3

소프라노 임선혜가 말하는 '고음악'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임선혜는 고음악계의 최고 프리마돈나 중 한 명이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2008년 <노블레스>가 인터뷰한 인물이다. 12년 전이면 그녀가 윌리엄 크리스티, 르네 야콥스 등 클래식계 거장들과 연이어 작업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리고, 한국에 역으로 소개되며 첫 리사이틀을 가진 때다. 그 화제의 인물을 <노블레스>가 놓칠 리 없었다. 에디터는 이번 인터뷰를 위해 옛 기사를 다시 읽었다. 30대 초반의 그녀는 꽤 당돌했다. ‘고음악 전문 소프라노’라는 수식어를 사양하고, 노래와 무용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시원스럽게 인정하는 모습이 ‘걸 크러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데뷔 20주년을 맞은 지금의 임선혜는 어떨지 궁금했다.

임선혜의 변화를 살펴보기 전, 우선 임선혜가 걸어온 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1999년 12월 에이전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음악의 대가 필리프 헤레베허가 지휘하는 콘서트에서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를 부를 수 있느냐는 대타 제안을 받은 것. 제대로 불러본 적은 없지만 앞뒤 재지 않고 “할 수 있다”고 답한 뒤 콘서트가 열리는 브뤼셀로 향하는 새벽 기차에서 악보를 외우고 딱 한 번 리허설한 뒤 무대에 올랐다. 결과는 대성공. 이후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이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며 고음악계에 발을 들인 그녀는 2000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피가로의 결혼> 바르바리나 역으로 오페라에 데뷔하고, 르네 야콥스를 만나 2006년 스위스 인스브루크 고음악 페스티벌과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돈 조반니>의 체를리나 역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 유럽 전역에 생중계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바흐·헨델·하이든·모차르트 등을 주요 레퍼토리로 세계를 누비고, 잊힌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월드 프리미어 리코딩 작업에 가장 먼저 호명되는 그녀는 지금 고음악계의 최고 프리마돈나 중 한 명이다.

여기서 잠깐, 임선혜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고음악’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르네상스부터 바로크, 고전파 초기까지의 곡을 그 시대 방식에 가깝게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현재의 금속 스트링 대신 양곱창을 꼬아 만든 현악기를 사용하는 식. 그래서 고음악의 악기 색은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덧붙이면, 소규모 편성이 많은 고음악은 음악가 간 소통이 활발히 이뤄져요. 정말 잘하는 공연을 보면 너울지는 것처럼 연주자의 몸이 들썩이는데, 서로 합이 맞아 흥에 겨워 그렇거든요. 이에 맞춰 성악가도 현대 재즈처럼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붙이기도 하고요. 이런 고음악의 매력을 많은 분이 경험하면 좋겠어요.”





‘임선혜 20주년 콘서트 - Songs on the Breeze’ 무대 모습.

이렇듯 2020년의 임선혜는 고음악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안하다. 오히려 고음악의 가치를 알리는 ‘전도사’처럼 느껴지기도. 2008년의 그녀가 고음악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정의하는 걸 부담스러워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에는 한 장르에 묶이는 게 겁이 났어요. 다른 장르도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한데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 가곡이나 현대 오페라에도 도전할 기회가 생기더군요. 드라마 OST나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 같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은 고음악이 저를 키워준 장르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어요. 또 다양한 경험을 하고 고음악의 품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지난 12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는지 묻자,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2002년 고음악 연주 단체 ‘레자르 플로리상’과 협연할 때였어요. 한 동료가 ‘유럽 문화를 잘 모르는 네가 우리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신기해. 마치 음악을 잘 흉내 내는 앵무새 같아’라고 말했죠. 순간 욱하면서도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활동 초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계약이 파기된 적도 있었고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이 틀렸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달라진 걸까. “유럽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저를 경험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동료가 아닌 같은 음악을 하는 동료로 받아들여졌어요. 또 고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소프라노라는 희소성이 저만의 개성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에디터가 보기에 임선혜가 변하지 않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애티튜드. 비련의 여주인공이든, 익살스러운 아가씨든 무대 위에서 행복한 모습은 어느 시점의 공연을 봐도 똑같다. “관객은 음악가들이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즐겨요. 다행히 저는 예나 지금이나 동료들과 좋은 음악을 만드는 일이 가장 재밌어요. 그 에너지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는 것 같아 기쁘고요. 또 고음악의 특성상 옛 곡을 발굴해 처음 소개하는 작업이 많다 보니 항상 공부가 필요하고, 그래서 늘 새로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어요.”

곡의 매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면 영영 빛을 못 볼 수 있기에, 임선혜는 사명감을 갖고 새 작품을 익힌다. 실제로 그녀 덕에 다시 조명받아 꾸준히 불리는 곡이 많다. “다른 성악가들이 제 월드 프리미어 리코딩을 레퍼런스 삼아 공부하고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로 재탄생한 옛 곡을 들어보고 싶다면, 올 초 발매한 두 번째 솔로 앨범 를 추천한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 레오나르도 빈치(Leonardo Vinci), 요한 아돌프 하세(Johann Adolf Hasse) 등의 숨은 명곡을 들을 수 있다.





‘한화클래식 2020: 소프라노 임선혜와 바로크 프로젝트’ 포스터.

오는 12월 이러한 고음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한화클래식 2020: 소프라노 임선혜와 바로크 프로젝트’는 임선혜를 필두로 국내 연주자로 구성한 바로크 앙상블 ‘한화 바로크 프로젝트’가 함께하는 무대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일정이 취소되면서 데뷔 20년 차를 조금 섭섭하게 보낼 뻔했는데, 감사하게도 한국 고음악의 현주소를 보여줄 기회가 생겼어요. 데뷔 초 좋은 스승들을 만나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면, 이제는 국내 고음악계의 대표 주자로서 동료들과 이정표가 되는 공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12월 12일에는 ‘바흐와 사랑에 빠지다’라는 제목으로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대표적 세속 칸타타 작품 ‘결혼칸타타’를 공연하며, 16일에는 페르골레시의 막간극 희극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를 선보인다. 두 프로그램 모두 올해 힘든 시기를 겪은 관객을 위로하는 밝은 내용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공연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묻자, 여유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편한 마음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별다른 공부 없이 공연을 즐기고, 나중에 프로그램 설명과 느낀 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임선혜가 생각하는 클래식 감상법은 무엇일까? “어떤 날엔 구성진 트로트가, 또 다른 날엔 가사를 모르는 팝송이 듣고 싶을 때가 있죠. 클래식도 마찬가지예요. 내 몸이 클래식을 원하는 것 같으면 부담 없이 시도해보세요. 어렵거나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을 때 클래식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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