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의 새로운 도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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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7

정영주의 새로운 도전

뮤지컬과 드라마, 영화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그녀가 이번엔 뮤지컬 제작자로 변신했다.

“여배우란 말 안 좋아해요. 그냥 배우, 대한민국 배우입니다. 여배우 10명 모으는 거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여배우 10명이 나오는 공연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120석의 소극장에서 20일간 2350명의 관객이 보셨습니다. 혹시라도 저를 롤모델로 삼은 후배가 있다면, 버티세요. 끝까지 버티세요. 이런 날이 오네요.” 지난 2019년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베르나르다 알바>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정영주 배우의 수상 소감이다.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시청자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렇기에 그녀가 같은 작품의 배우이자 제작자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에 더욱 관심이 갔다. 정영주는 데뷔 30년 차를 바라보는 베테랑 배우다. <명성황후>,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모차르트!>,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굵직한 뮤지컬에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한 번이라도 무대 위 그녀의 모습을 봤다면 ‘천생 배우란 이런 거구나’ 느꼈을 것이다. 춤, 노래, 연기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공연장을 꽉 채우는 ‘포스’까지 갖췄으니 말이다. 이런 그녀가 배우가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하고, 또 우연이었다. “어릴 때 옷에 관심이 많아 명동에 있는 국제복장학원에 다녔어요. 그러다 어느 날 어떤 남자가 벽에 포스터를 붙이는 걸 봤죠. 연예인은 아닌데, 참 잘생겼더라고요.(웃음) 포스터를 확인해보니 에이콤배우학교 2기 단원 모집 공고였어요. 그곳에 가면 그 남자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던 셈이지만, 정영주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에이콤 단원이 됐다. 학창 시절 중창단 단장을 지내고, 일찍 사회로 나와 에어로빅 강사로 일할 만큼 끼가 남달랐기에 가능했다. 입단 후 8개월간 트레이닝을 거쳐 처음 오른 무대는 창작 뮤지컬 <스타가 될 거야>. “첫 공연이 지금도 기억나요. 무대에 오르기 전엔 말도 못하게 긴장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그것도 잊을 만큼 신나더라고요. 당시엔 부족한 점이 많아 선배들에게 혼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다음 날 공연 생각에 하루하루가 즐거웠어요.”





위쪽 뮤지컬 <모차르트!>에 출연한 정영주. 사진 제공 EMK뮤지컬컴퍼니
아래쪽 1월에 개봉하는 정영주 주연의 <큰엄마의 미친봉고> 스틸 컷. 사진 제공 브이컴퍼니

배우 일이 재미있긴 했지만, 활동 초기만 해도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워낙 호기심이 많아 관심사가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 하지만 작품을 거듭할수록 배우라는 직업에 확신이 생겼다. “작품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더군요.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싫증을 느낄 새도 없고요. 좀 더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늦깎이로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에 입학하기도 했습니다.” 배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을 묻자 그녀는 주저 없이 2005년 뮤지컬 <뱃보이>를 꼽았다. “박쥐 인간을 낳은 메레디스 역을 맡았어요. 처음에는 ‘아들을 둔 엄마인데 엄마 역할쯤 못하겠어’ 하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죠. 제 오만으로 무대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캐릭터를 분석했고,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이렇게 공들인 걸 알아봐주셨는지 <뱃보이>로 처음 뮤지컬상을 받았어요. 그 전까지는 어디 가서 스스로 ‘배우’라고 소개하기 망설여졌는데, 이 작품 이후로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어요.” 아는 사람만 알던 배우 정영주를 알아보는 이가 많아진 건 TV 드라마로 활동을 넓힌 뒤부터다. 2015년 넷플릭스에서 제공한 워쇼스키 자매의 <센스8> 출연을 시작으로 2016년 <시그널>에서 오므라이스 이모로 신스틸러 역할을 맡더니, 2019년 <황금정원>에서 악녀 신난숙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무대 위에서 해온 연기를 카메라 앞에서 선보이니 어색한 점이 많았어요. 발성이나 시선 등 손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다시 신인이 된 것처럼 하나하나 물어가며 고쳤죠. 이왕 기회를 잡은 만큼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요.” 어느새 무대만큼 카메라가 편안해졌다는 그녀는 강제규 감독의 영화 <보스턴 1947>에도 모습을 비칠 예정이다. 정영주는 1월 22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하는 <베르나르다 알바>를 통해 제작자로 데뷔한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1930년대 스페인의 한 농가를 배경으로 남편의 8년상을 치르는 동안 극도로 절제된 삶을 강요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와 다섯 딸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8년 국내 초연 당시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4관왕을 달성한 웰메이드 작품. “이렇게 좋은 작품을 짧은 기간 일회성으로 선보인다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다시 무대에 올릴 방도를 찾다가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작자로 나섰죠. 미국 제작사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라이선스를 얻는 데만 반년 넘게 걸렸어요. 극장 확정, 배우 캐스팅, 무대 세팅, 스태프 복지 등 신경 쓸 일도 많고요. 코로나19까지 겹쳐 준비하는 데 배로 힘들었지만, 어느새 개막일이 다가왔네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포스터.

<베르나르다 알바>가 언급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설명이 있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이야기라는 것. 국내에서 여성 배우로만 꾸민 유일한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그런 평가를 받을 만도 하다. 하지만 정영주는 ‘여성 서사’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 나아가 가족 이야기입니다. 가족의 관계가 어느 지점부터 간섭이 되는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죠.” <베르나르다 알바>는 최근 <렌트>, <제이미>, <베어 더 뮤지컬> 등 ‘퀴어 프렌들리’ 취향을 강요받던 뮤지컬 팬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3년 만에 돌아온 <베르나르다 알바>는 초연 무대와 어떻게 다를까. “안무 베이스는 그대로예요. 음악은 조금 업그레이드했고요. 현악기나 퍼커션으로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축소하는 식으로요. 이 외에는 다 바꿨어요. 연출, 무대, 소품, 조명까지 모두. 초연을 보신 분들도 새롭다고 느끼실 거예요.” 감상 포인트를 묻자, 그녀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기본 뼈대인 플라멩코의 매력을 느껴볼 것을 주문했다. “인간 내면의 욕망과 갈망이 플라멩코의 정열적인 몸짓과 음악으로 표출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특히 격정적인 탭과 박수 소리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끌어올리는데, 관객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겁니다. 마음껏 즐겨주세요.”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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