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함을 지닌 신경균의 달항아리 만나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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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3

고고함을 지닌 신경균의 달항아리 만나기

신경균의 달항아리는 형, 색, 선의 아름다움이 모두 담겨있다.

전시장을 거닐며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행성이 연상되는 달항아리가 서로 다른 높이로 서 있으니 말이다. 달항아리의 둥근 모양만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보통 ‘달항아리’라는 단어를 접하면 창백한 순백색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경균의 것은 다르다. 어떤 작품은 보름달처럼 노르스름한 기운이 은은하게 감돌고, 다른 작품은 천왕성이 연상되는 푸른빛을 띤다. 작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깊이와 다채로움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오로라를 새겨 넣은 것처럼 여러 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의 달항아리는 바라보는 각도마다 새로운 추상화가 된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2009년 만든 작품부터 지난 2월 가마에 불을 지펴 완성한 신작까지 13점의 달항아리를 선보였다. 출품작 중 같은 색은 하나도 없는데,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가마에 불을 지필 때마다 작가는 의도에 따라 흙의 배합을 바꾸고 유약의 두께를 조절한다. 수학 공식처럼 정형화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유약을 두껍게 바르면 푸른빛이 강해진다. 불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성스레 도자를 빚고 그것을 가마에 넣으면 나머지는 불의 몫이다. 1350℃에 이르는 자유분방한 불이 춤을 추며 도자의 표면에 흔적을 남기는 것. 이는 작가조차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기도 하다. 신작 세 점은 유독 푸른빛이 강한데, 이는 작품이 가마에 들어갔을 때 비가 내려 환원(還元)이 잘된 덕분이다. 이런 측면에서 신경균의 달항아리는 ‘자연’이라는 작가와 작업한 공동 작품으로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위 왼쪽부터 경칩, White Porcelain, Ø35.2×H35.2cm, 2021. 항아, White Porcelain, Ø52.3×H50.1cm, 2009.
아래쪽 부귀만월, White Porcelain, Ø43.3×H46.8cm, 2021.

전시장에서 에디터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어딘가 불완전해 보이는 작품이었다. 신작 중 하나인 ‘경칩’에는 실수로 흙이 묻은 것처럼 작은 조각이 달려 있는데, 달항아리를 굽는 도중 가마 천장의 낙하물이 그대로 녹아 붙은 것이다. ‘응시 Ⅰ’과 ‘응시 Ⅱ’는 어떤가. 불길을 견디지 못해 형태가 뒤틀리고 배 부분이 찢어진 듯 벌어졌다. 일반 사람의 눈에는 실패한 작품으로 비칠 수 있지만, 신경균의 생각은 다르다. 작가는 지난 <노블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수행자의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고 말했다. 무릇 수행이란 궁극적으로 목적성 혹은 욕심이 담겨서는 안 되는 것. 40년간 오롯이 도자 작업에만 매진해온 그는 하나의 ‘결과’보다는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에 가치를 둔다. 과정의 측면에선 성공도 실패도 없는 법이다. 관람객에게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작품은 신경균 작업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주문대로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작품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볼 수 있다. 진열장에 갇힌 도자 작품을 감상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작가는 우리 그릇은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본래 생활 속에서 쓰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선조들이 장을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하던 달항아리도 마찬가지다. 장작 가마와 나무 물레 등 전통 기법을 고수하는 신경균의 손에서 탄생한 달항아리는 아기 살결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질감을 자랑한다. 작품마다 질감이 조금씩 다르니, 그 차이를 느끼며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이시우(작품), 김태화(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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