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프로젝트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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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4

개인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프로젝트

개성 강한 두 작가 문경원과 전준호가 던진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공통의 물음.

오는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문경원과 전준호 작가가 선보일 ‘자유의 마을(Freedom Village)’ 제작 현장.





전준호(왼쪽)와 문경원(오른쪽) 작가.

문경원과 전준호는 2007년 타이완 아시안아트 비엔날레에서 처음 만났다. 서로의 작업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오늘날 예술의 의미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됐다. 그 답을 찾고자 2012년 제13회 카셀 도쿠멘타에서 첫선을 보인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는 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큰 반응을 이끌어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자 선정,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 참여, 2018년 테이트 리버풀 개인전 개최 등 기념비적 타이틀을 섭렵한 이들은 오는 9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선정 작가로서 다시 한번 우리로 하여금 예술의 역할과 가치를 사유하게 할 예정이다.





이례적 산책 Ⅱ_황금의 연금술(Anomaly Strolls Ⅱ_Alchemy of Golden Leaf), Single Channel HD Film, 13min. 39sec., Metal Scrap, Monitor, 290×230×180cm, 2018





묘향산관 (MyoHyangSanGwan), Film Installation with Sound, 19min. 39sec., 2014~2017





빚는 달, 항아리 안의 삶(A Molded Moon, Life within a Vase), Single Channel HD Video Installation with Sound, 11min. 14sec., 2016

늦었지만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작가로 선정된 걸 축하드립니다. ‘자유의 마을’이란 신작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한데 이전에도 동명의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더라고요. 이를 확장한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전준호(이하 전): 맞아요. 이전 작품이 리서치에 기반한 아카이브 작업이라면, 현재 준비 중인 건 한층 심화된 형태의 작업입니다. 작품의 일부를 구성하는 영상 촬영을 거의 마쳤습니다. <아트나우>가 나올 때쯤이면 편집본의 그래픽 작업을 하고 있겠네요. 다채널 영상 설치와 아카이브, 회화를 비롯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어하는 전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 스스로 영상의 일부가 된 듯 느낄 수 있도록 조명이나 공조 장치를 활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자유의 마을이란 다소 민감한 소재를 2021년 서울 중심부에서 꺼내놓는 것도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비무장지대에 남은 유일한 마을로, 주민의 주거 자유가 제한되는 특수한 장소잖아요. 몇 년 사이 예능 프로그램과 CF에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많고요.
전: 12년 동안 스위스 취리히, 미국 시카고, 영국 리버풀 등 다양한 국가의 도시에서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장소에서 작업하는 만큼 그 지역의 인프라와 사람 등 특수성을 작품에 반영하려 해요. 한국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고민했고, 자유의 마을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경원(이하 문):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은 여전히 한국의 아이덴티티처럼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 작업이 좀 더 도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주목한 건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이념과 사상의 충돌이 빚어낸 기형적 세계입니다. 이런 균열은 지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이 그렇죠. 사상·종교·이념 갈등으로 오랜 세월 인간이 첨예하게 대치해온 비현실적 모습을 다루려는 것으로, 자유의 마을은 세계를 투영하는 일종의 창(窓) 역할을 합니다.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질문’이라는 큰 방향성 아래 진행합니다. 두 분이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모여 현재의 멋진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생각하고요.
문: 작가들은 이기적으로 보일 만큼 뚜렷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제 작업을, 나아가 예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기 위해선 미술계 안에서 맴도는 비평이나 담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고요.
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작가)는 예술로서 소통하고 있나?’, ‘예술은 결국 우리 리그만의 문제인가?’, ‘예술이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라면 나는 이것을 왜 하고 있나?’ 같은 물음이 커졌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예술계를 조금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처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모습을 작품에 녹여내는 거죠.
건축가 이토 도요, 디자이너 정구호, 뇌 과학자 정재승 등과 함께 지구 환경의 대변화 이후 생존자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주거 환경을 만든 ‘공동의 진술’(2012)이 대표적 예가 될 수 있겠군요.
문: 그렇죠. 그 작품을 준비하던 시기에 일본 도호쿠 지역에 큰 지진 피해가 있었어요. 이토 도요는 난민용 셸터를 디자인하는 한편, 도시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은 혹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탁상공론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실천적 예술이요. 그래서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는 워크숍이나 출판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전개하지만, 중요한 건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예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지만, 그중에서도 대중의 이목을 모으는 건 영상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걸 보면서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현대미술적’ 영상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단편영화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전: 저희는 누구보다 작가의 습성을 잘 알아요. 작가 자신도 모호하다 느끼는 부분을 작품에 넣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지에서 온 소식’은 미술계의 시각에 한계를 느끼고 시작한 프로젝트인 만큼 좀 더 명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상 작품들이 상업 영화의 전형성을 따르는 건 아니에요. 전체적으로 내러티브 형식을 띠지만, 이미지와 이미지가 분절된 상황에서 파생되는 의미나 상징성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영상 작품은 영화와 실험적 영상의 경계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 HD Film Installation, 10min. 30sec., 2015





전준호, 꽃밭명도(Mirror That Blossom in a Flower Garden), Media Installation, 2018





문경원, 프라미스 파크_광주(Promise Park in Gwangju), Woven Carpet Installtion with Light, 760×760×1.5cm, 2021. 사진 제공 광주비엔날레





전준호, 마지막 장인(The Last Master), Sophora Japonica Wood, Mirror Installation, a Novel, 31×70×116cm, 35×480×415.6cm(좌대), 2012~2014

그간의 영상 작품에는 고수, 이정재, 임수정, 한효주 같은 톱스타가 출연했습니다. 유명 배우의 참여는 작품에 힘을 실어주지만, 작품보다 그들에게 시선이 갈 위험성도 내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영상 작품 제작은 시스템적으로 영화 촬영과 비슷하게 진행합니다. 50명이 넘는 스태프가 움직이는 일이다 보니, 영화사봄의 오정완 대표님이 몇 년째 프로듀서로서 이 부분을 도와주고 계세요. 영상 컨셉에 맞는 배우를 섭외하는 일까지 포함해서요.
문: 작품 출연은 무엇보다 배우의 의사가 중요합니다. 미술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보니 커머셜 측면의 개런티나 리워딩은 어려워요. 주로 협업 아티스트로서 함께하고 싶은 배우들이 참여합니다. 달리 말해 스스로 출연을 결정할 수 있는 배우들과 함께하는 거죠.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의 명성이 아닌 연기력이에요.
‘세상의 저편’(2012), ‘q0’(2014), ‘축지법의 비행술’(2015) 같은 영상 작품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등 SF 혹은 판타지 요소가 돋보입니다.
문: 유용한 방법론으로 기능합니다. 지나간 시간을 다루면 이미 존재하는 사실에 묶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면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지죠. 다만 SF 혹은 판타지 요소를 통해 무책임한 주장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를 냉철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우화인 셈이죠.
전체적으로 작품의 배경이나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나요?
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사건부터 각자 경험한 일까지 문경원 작가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영상 작품 ‘묘향산관’(2014~2017)의 경우, 베이징에 갔을 때 북한에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운영하는 식당에 들른 적이 있어요. 남북한의 민간 교류가 불가능한 오늘날, 특별한 허가 없이도 북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그 공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죠. 마침 문경원 작가도 그곳을 알고 있었고, 서로 경험을 공유하며 하나의 이야기로 발전시켰습니다. ‘자유의 마을’도 마찬가지예요. 문경원 작가가 리서치 중 발견한 자유의 마을에 대해 말해준 것이 작품의 출발점입니다.
전준호 작가님은 부산에, 문경원 작가님은 서울에 작업실이 있잖아요. 거리가 먼데 함께 작업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문: 전준호 작가가 자주 서울에 옵니다. 사실 그런 물리적 거리가 협업을 원활히 하는 완충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둘은 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크지만, 그만큼 의견이 엇갈릴 때도 많아요. 예술이란 게 본질적으로 시각 혹은 취향을 일치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충돌이 있을 땐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충분한 거리와 시간이 도움이 됩니다. 그럴 때 개인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그게 10년 넘게 협업을 이어온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웃음)
두 분은 공동 작업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계십니다. 공동 작업이 개인 작업에, 혹은 개인 작업이 공동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전: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작가로서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공동 작업은 끊임없이 상대와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제 의도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상대를 납득시키기 어렵죠. 그래서 스스로 검증을 마친 의견이 오가고, 그것을 수차례 여과한 작품이란 결과물이 나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직관과 우연이 개입할 여지가 적은데, 그런 아쉬움이 개인 작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도 합니다.
문: 개인 작업만 하다 보면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객관화하기 힘들어요. 쉽게 지치거나 나태해지는 지점도 존재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공동 작업이 주는 긴장과 이완이 개인 작업에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다만 방금 전준호 작가님이 공동 작업에서 직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고 말씀하셨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협업 중에도 순간순간 번뜩이는 생각으로 합의를 보는 부분이 있거든요. 예컨대 영상 편집 중 ‘저 부분은 뺐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던 차에 전준호 작가가 같은 의견을 주면 즉흥적으로 작업에 반영해요. 이러한 직관이 모여 더 나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요.
10년 넘게 ‘미지에서 온 소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이를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 답을 얻으셨나요?
전: 끊임없이 되뇌는 질문이지만, 아직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어요. 다만 기존의 질서와는 다른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낯설고 어려우면서도 새로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 보편화된 삶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것. 어떻게 보면 이런 질문 자체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문: 프로젝트 초기에 가졌던 예술에 대한 생각과 질문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작은 실천을 하면서 예술에 가졌던 회의로부터 시작된 의구심이 바뀌었습니다. 스스로 체감한 변화를 통해 적어도 예술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작은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에디터 황재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서승희(인물)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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