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언어를 그리는 작가, 정수영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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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6

일상의 언어를 그리는 작가, 정수영

정수영 작가에게 가장 평범한 하루는 어떤 날일까?

요즘 미술 시장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 미술 작품이 투자는 물론, 실제로 향유하기 좋은 최적의 아이템으로 급부상한 것. 이런 긍정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일상적 정물을 그린 정수영의 작품은 젊은 컬렉터에게 어떤 물건을 ‘예술’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며 주목받고 있다.
정수영의 작품은 ‘정물화’로 읽히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정물화로 규정짓지 않는다. 관심을 갖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주제가 일상에 흩뿌려진 정물일 뿐이라는 것이 정수영의 설명. 작가는 이 정물을 단순히 1차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이미 ‘배치된 정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이를 재배치한 ‘공간’을 화폭에 담는 것. 그곳이 거실이든 3단 선반이든, 결국 이들은 멈춰진 한 ‘장면’에 중립적으로 놓여 있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작품은 일종의 풍경화로 읽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결국 관람객에게 능동적 감상의 길을 열어둔 셈이다. 가장 일상적 대상이 예술의 주제가 됨으로써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삶을 반추할 수 있고, 내면에 숨겨둔 삶과 소비에 대한 욕망을 재고해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정수영은 관람객에게 여러 해석이 가능한 복잡다단한 회화로서 자신의 작업을 제시한다.





A Slice of quarantine(Life), Acrylic on Linen, 90×85cm, 2021

앞서 말했듯이, 여러 생각이 뒤엉킨 화폭은 일종의 실내 풍경을 담았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픽과 회화를 넘나드는 듯한 화면으로, 이는 작가의 작업 방식에 기인한다.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기 전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포토샵으로 이번 작품에 담고 싶은 정물을 이리저리 배치해본다. 전반적 작업 방식을 ‘Serious Collector’를 통해 설명하면, 당시 아트 토이 붐이 일어 부모님이 사 온 목각 인형이나 ‘브릭 베어’ 시리즈, 카우스의 작품을 골랐다. 그리고 이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이러한 물건을 누가 소장할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정수영은 아무래도 30대 젊은 직장인이 이런 재미난 오브제 컬렉팅에 관심을 보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선반을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 포토샵으로 먼저 시뮬레이션한 뒤 모든 요소의 자리가 정해지면 캔버스에 이를 옮겼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컬렉팅과 컬렉터에 대한 의미를 재고할 수 있다. 진중하게 미술품을 사는 사람이라면 젊은 컬렉터가 눈여겨보는 ‘아트 토이’가 무슨 작품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예술을 좋아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마치 나이키 리미티드 운동화를 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단순히 눈앞의 사물을 그리는 것만 작업이 아니라 이에 얽힌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도전하고 내밀한 욕망을 감싸는 장막을 하나씩 거두기 위한 자신만의 연구 활동이 모두 정수영의 작업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팬데믹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정수영이 활동하던 영국은 지독한 록다운을 겪어야 했다. 그 시기, 작가는 집 안에 머물면서 ‘일상’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중 ‘A Slice of Quarantine(Life)’은 팬데믹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높이 쌓인 피자 박스, 두 조각밖에 남지 않은 피자와 마시다 만 맥주, 뚜껑 열린 핫소스 등.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품 속 풍경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뿐 아니라 그녀의 작업 전반에서 이 점을 감지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정수영의 작업에 대해 “오브제를 통해 들추는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면모”라고 했다.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디스토피아’는 정수영이 처음 전시 제목으로 생각한 ‘Thistopia’라는 언어유희와 궤를 같이한다. 우리 삶이 마냥 행복하지 않은 ‘현시점’에서 일상을 눈여겨보고 붓으로 옮기는 작가의 시각이 투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 또 잠시 붓을 놓을 만큼 부침을 겪은 화가 정수영의 경험과 감정, 런던에서 직접 겪은 팬데믹 록다운 상황 등이 화면에 담겼다.
이렇듯 ‘정수영’이라는 사람으로 시작해 인간의 보편적 생활, 일상의 언어를 건드리는 작가의 작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작가가 들려주는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 전시장에 펼쳐지고 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김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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