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버추얼 인플루언서 시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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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9

지금은 버추얼 인플루언서 시대!

매력적인 외모의 가상인간,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뜨고 있다. 광고를 점령한 이들의 매력은 뭘까?

위쪽 신한라이프 광고에서 활약한 가상 인간 로지.
아래쪽 가상 인간 루이(왼쪽)는 파트라 X 생활지음 모델로 발탁됐다.

올여름 가장 화제를 모은 TV CF는 단연 ‘신한라이프’ 광고였다. 동양적 얼굴에 서구적 체형, 젊은 세대가 딱 좋아할 만한 외모를 갖춘 20대 여성이 지하철 안이나 옥상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발랄하게 춤을 춘다. 언뜻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실제 사람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녀의 이름은 로지(Rozy)로,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기업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만든 가상 인간이다. 완벽한 기술력에 깜박 속았다는 평이 대다수. 정체가 알려지자 광고는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공개한 지 한 달여 만에 유튜브 누적 조회 수 1000만 뷰를 돌파했다. 모델료가 값비싼 톱스타였다면 이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가상 인간이 보여준 엄청난 파급 효과에 시대가 변해간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30대 이상 독자에겐 로지가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세기말에 이미 가상 인간을 보았으니 말이다. 1998년 데뷔 음반 타이틀곡 ‘세상엔 없는 사랑’과 함께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이 그 주인공이다. 지금 보면 가짜라는 티가 확 나도 당시엔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20만 장 넘게 앨범을 판매하고 CF에도 출연하는 등 인기를 구가했지만, 2집 앨범이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자 홀연히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퇴장에 컴퓨터바이러스로 사망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아담이 어딘가 살아 있다면 후손들을 흐뭇하게 지켜보지 않을까. SNS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로 종횡무진 활약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버추얼 슈퍼모델 슈두.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뜻을 지닌 래아(Reah)는 LG전자가 창조한 가상 인간이다. 스물세 살의 작곡가 겸 DJ라는 구체적 설정도 그럴싸하다. 지난해 5월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해 일상을 공개하고 있는데, 한강에서 맥주 마시는 사진이나 전시 관람 인증샷은 여느 또래 여성의 취향과 다를 바 없어 거리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1월에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1’에서 진행한 LG전자 발표에 연사로 나섰다. 향후 음악 앨범 발매 등 다양한 활동으로 LG전자 마케팅에 활용될 예정이다.
디오비스튜디오의 가상 인간 유튜버 루이(Rui)는 래아나 로지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여러 명의 얼굴 데이터를 수집한 뒤 AI 기술을 활용해 가상의 얼굴을 생성하고, 이를 실제 사람이 촬영한 영상에 합성하는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 일종의 가상 인간 부캐인 셈인데, 본캐는 과거 아이돌 연습생 출신으로 알려졌다. 루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루이커버리’에 브이로그나 노래 커버 영상 등을 올리고 있다. 어찌나 감쪽같은지, 활동하고 4개월이 지나 가상 인간임을 고백하기 전까지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현재 구독자는 2만5000명 정도. 인기에 힘입어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안심여행’ 캠페인 모델에 이어 파트라 × 생활지음 브랜드 모델로도 발탁됐다.
해외에도 가상 인간이 있다. 가장 대표적 인물은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에서 2016년에 선보인 릴 미켈라(Lil Miquela)로, 열아홉 살의 브라질계 미국인이다. 양쪽으로 말아 올린 머리와 주근깨 가득한 볼, 두툼한 입술과 살짝 벌어진 앞니가 특징이다. ‘가상 인간’ 하면 떠오르는 조각 같은 외모는 아니지만, 이런 모습이 오히려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BlackLivesMatter’를 인스타그램 계정에 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까지 더해져 인기 폭발 중이다. 현재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300만 명에 달한다. 뮤지션으로도 활동하며 꾸준히 음원을 발표하는데, 2017년에 발표한 ‘Not Mine’은 스포티파이에서 150만 회 이상 재생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엄청난 영향력에 샤넬, 지방시 등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의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 해 수익은 1170만 달러(약 13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할리우드의 유명 연예 에이전시 CAA와 파트너십을 맺어 머지않아 TV나 영화에서 그녀를 볼 수 있을 듯하다. 한편, 브러드는 사치스러운 백인 여성 버뮤다(Bermuda), 섹시한 흑인 남성 블로코(Blawko)라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도 제작해 운영 중이다.
이마(Imma)는 일본의 CG 전문 회사 모델링 카페에서 탄생했다. <레옹>의 마틸다가 연상되는, 똑떨어지는 분홍색 단발머리가 그녀의 시그너처 스타일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34만 명을 보유한 SNS 스타로 작년 8월 이케아의 일본 도쿄 하라주쿠 지점의 모델로 발탁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전시장에 스크린을 설치해 3일 동안 먹고 자며 요가와 청소를 하는 등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 것. 이후 이마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고 일상이 바뀌었다. 집에서 행복을 찾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고,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홈 라이프에 대한 인사이트를 세상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이케아 광고로 세계적 관심을 모은 가상 인간 이마.
남성 가상 인간 블로코는 허벅지에 소속사 브러드의 이름을 새겼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상 인간 릴 미켈라.


다양한 사례를 보며 느낀 의문 한 가지. 대기업, 패션 브랜드, 공기업까지 나서 가상 인간을 모델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언택트 시대에 최적화됐다. 광고 촬영을 위해 해외 로케이션은 둘째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도 어려운 현실은 가상 인간에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클릭 몇 번으로 의상과 메이크업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은 물론, 지구 반대편에도 쉽게 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로지는 영국의 가상 인간 슈두(Shudu)와 함께 패션 잡지 화보를 제작했다. 한국과 영국 제작진이 한 번도 만나지 않고 100% 온라인으로만 작업을 완료했다. 휴먼 리스크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아무리 자기 관리에 철저한 인간 모델이라도 ‘사람’이다 보니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나이 듦을 피할 수 없는 건 당연지사. 미투, 학폭 등 예상치 못한 사생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반면 가상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모습 그대로다.
가상 인간이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간과 유사한 인공의 존재가 나타날 때마다 언급되는 이론이 있다. 일본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1970년에 소개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인간을 어설프게 닮으면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난 이 이론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가상 인간은 고도화된 컴퓨터그래픽스 기술을 무기로 실제 사람 같은 외모를 갖췄다. 오히려 요즘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해 제작한 외모는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실제로는 개발사들이 운영하지만, 가상 인간이 직접 SNS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여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상 인간을 주로 소비하는 신인류, MZ세대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태어나면서 디지털 세상을 경험한 MZ세대는 가상 인간을 ‘버추얼’로 보기보다는 ‘인플루언서’로 받아들인다. 진짜든 가짜든, 그 인물의 매력에 집중하는 것. MZ세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소비층으로 올라설 것이기에 버추얼 인플루언서 관련 사업은 전망이 밝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 규모는 2019년 80억 달러(약 9조3000억 원)에서 2022년 150억 달러(약 17조44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상당 부분을 가상 인간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 인간이 두각을 나타내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메타버스, AI, VR, 홀로그램 등 기술 발전으로 가상 인간이 실감 날수록 실제 사람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점, 가상 인간에게 빠져들수록 현실 세계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그렇듯, 가상 인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비관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앞으로 마주할 다채로운 가상 인간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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