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신현빈의 고백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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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4

담백한 신현빈의 고백

담백하고 거짓 없는 배우 신현빈의 궤적을 만나다.

원피스 Longchamp, 이어링 Mulberry, 네크리스 Engbrox, 브레이슬릿 Lazy Dawn.

카메라 앞에서 담대해 보이더군요. 긴장하지도,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의식하지도, 어떤 흉내를 내려고 하지도 않는 담백한 모습이라 좋았어요. 사진을 보면 어떤 감정인지 티가 나기 마련이죠. 그래서 굳이 척하지 않으려고 해요. 사실 포토 월에 서서 ‘파바바박’ 찍히는 사진은 아직도 괴로운데, 남들은 모를 수 있지만 최소한 나나 내 지인들은 아는 불편함이 얼굴에서 보여요.(웃음)
<너를 닮은 사람>이 종방했어요. 깊은 증오와 질투에 사로잡혀야 했던 이 작품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이렇게 사람 때문에 괴로운 상황을 겪어봤는지 돌이켜보게 됐어요. 제가 극에서 맡은 해원은 이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야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희주(고현정)와 해원 같은 언니 동생 사이가 남자친구와의 사이보다 깊은 관계일 수 있지 않나요? 연인과는 미래를 꿈꿔도 언젠가 헤어질 수 있지만, 좋은 친구 사이는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지내잖아요. 거기서 오는 상처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해원 주변에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저 역시 그런 이에게 힘을 얻거든요.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신현빈도 구해원 같은 감정을 품어본 적이 있나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저 역시 친구와의 관계에서, 연인 관계에서, 일로 엮인 관계에서 가져본 적이 있죠. 함께 촬영하는 배우들과도 서로 지난 일을 돌아보며 경험을 나누곤 했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 인물들에겐 비슷한 점이 있더라고요.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는 가지만, 그래선 안 되는 행동을 모두가 했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죠. 사람은 입체적이고, 각자 입장이 다르니까.
구해원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내면의 뭔가가 망가졌다고 생각하죠. 신현빈이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나다운 것. 뭔가를 할 때 진심이고 싶어요. 마음에 없는 말을 꾸며내거나 애써 하려 하지 않아요. 이건 좀 나답지 않은데? 가짜인데? 싶은 일은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하죠.
거짓말을 못하나요? 거짓말, 하려면 하죠. 간혹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잘해요.(웃음) 하지만 최대한 그 상황을 피하려고 거짓말이 아니라 다른 방식을 택해요. 거짓은 아니지만 진실을 말하지도 않는다거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의 장겨울 같은 꼿꼿한 면이 있네요. 맞아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사회화된 편이고,(웃음) 더 밝고 장난도 잘 치죠. 겨울이는 오해받기 쉽지만 알고 보면 괜찮은, 현실적인 사람인데 막상 작품 속 인물로 만나본 적은 드문 캐릭터라 좋았어요. 무뚝뚝하고 사회성이 떨어지지만, 알고 보면 성실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그런 캐릭터가 남자 캐릭터는 많아도 여자 캐릭터는 드물잖아요. 그래서 이 캐릭터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설득하고 싶었고, 연기하면서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는 조금 예민한 구석이 있는데, 겨울이를 연기하면서 덤덤한 기운을 받았죠.
장겨울로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 2010년에 데뷔해 <방가? 방가!>와 <무사백동수>로 신인연기상을 받았고, 11년간 영화와 드라마 양쪽에서 열심히 일해왔어요. 사람들이 당신을 너무 늦게 알아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작품이 잘되고 안 되는 문제, 다음 작품이 정해지지 않은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운 시기를 보내긴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시점이 왔어요. 어차피 계속할 건데, 어떻게든 되겠지. 그럼에도 괴로운 일과 날들은 오겠지만. 그 당시 어떤 작품 때문에 미팅을 갔는데,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만나면 불안과 조급함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왠지 마음이 평온해 보인다고.
오늘 제가 당신에게 느낀 점이 그거예요. 어떤 변환점을 겪은 건가요? 일이 없어서 오랫동안 여행을 했어요. LA에서 뉴욕까지 가기도 했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전부인 것 같지만, 지구는 넓고 우주를 생각하면 제 고민은 먼지 같은 것에 불과하죠. 별거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지탱해준 것도 커요.





원피스 Gucci, 이어링 Hoze, 코르사주 Eenk.





톱과 팬츠, 벨트, 이어링, 링, 슈즈 모두 Bottega Veneta.

여자 배우들과 친하죠? 전미도, 안은진, 김고은, 한효주, 최희서 등 배우 친구가 많아요. 많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는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니라 친구가 되고 나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지금도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과 만나요. 좋은 팀을 만나서 그 모임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제도 미도 언니, 은진이랑 단톡방에서 이야기하는데 언니가 좋은 말을 해줘서 삼겹살 먹다 말고 울었다니까요.(웃음)
딱 보면 알겠어요. 신현빈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에요. 그녀들도 여자 친구들이 많은 타입이에요. 희서도 지금 같이 촬영하는 송혜교 선배랑 친해졌고, 효주도 한지민·이지아·추자현 선배 같은 회사 식구들이 있고, 고은이도 같이 작품 하는 배우들과 금세 친해지고. 여자 넷이 주연인 <미스트리스>할 때는 한가인 언니, 구재이, 최희서 넷이 얼마나 친했는지 몰라요. 처음엔 감독님이 여자 넷이 하는 드라마인데 괜찮을까 걱정이 많으셨다는데, 저희는 서로 굉장한 동지애로 해나갔어요. 같은 일을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게 귀한 일이잖아요. 무척 소중하게 느껴져요.
전문직도, 명랑한 인물도, 외국인 노동자도, 복수에 불타는 인물도, 나락까지 간 인물도, 넓은 폭의 인물 군상을 소화했어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몰입하나요? 전 누군가에게 궁금증이 생기면 깊이 파고드는 편인데,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인물에 대해 궁금해지면 이렇게까지 생각해요. 이 사람, 카페에 가면 음료는 뭘 시킬까? 뭘 먹고, 뭘 입고, 어떤 노래를 들을까? 그러다 보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려지죠.
어떤 성향의 인물이 힘을 좀 덜 들이고도 연기할 수 있어요? 없어요. 저를 연기하라고 해도 어려울 거예요. 저도 제가 어떤지 정확히 모르니까. 사람은 평생 자기 얼굴이 어떤지 모르고 산다잖아요. 물론 배우는 화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보게 마련이지만 카메라는 왜곡이 있고, 지금 말하는 제 얼굴이 어떤지는 저도 몰라요. 모두가 그럴 거예요. 그만큼 쉬운 건 없어요. 비중이 적으면 쉬울까요? 하지만 특별 출연은 짧게 나온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확실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서 어려워요. 다 나름의 어려움이 있어요. 쉬워지는 날이 오긴 하려나.(웃음)
유명 웹 소설 원작 <재벌집 막내아들> 주연을 맡았어요. 비서가 재벌집 아들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산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회귀물이 유행이에요. 요즘 사람들에겐 다시 태어나 유리한 게임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신현빈도 회귀하고 싶은 때가 있나요? 저는 이 작품을 제안받으면서 회귀물이 인기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슬픈 현상이죠. 하지만 저는 회귀하지 않을래요. 지금의 제가 나쁘지 않거든요. 스무 살, 꿈으로 가득 찬 새내기 시절, 제 그해 목표는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였어요. 하도 “아우, 스무 살이면 정말 좋겠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까. 나는 저런 소리 안 나오게 살아봐야지 싶었죠.(웃음)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 때 재미있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과제가 많은데 애들이랑 술도 마셔야지, 공부도 해야지, 놀아야지, 얼마나 힘들어요. 잊어버려서 그렇지, 당시에도 힘든 일이 많았을 거예요. 저는 ‘각자에겐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주의’가 됐거든요. 친구들이 애기나 강아지를 보면서 “쟤들은 아무 걱정도 없을 거야” 하면 저는 “있을 거야. 네가 늦게 들어와서 밥 안 주는 것도 쟤한텐 엄청난 걱정이야”라고 해요.(웃음)





셔츠와 튜브톱, 스커트, 이어링, 링, 슈즈 모두 Dior.

스무 살의 신현빈과 지금의 신현빈,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요? 지금이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죠.
<슬기로운 의사생활> 오디션 영상에서 신원호 피디가 이렇게 말해요. “성격이 담백해 보이네요. 잘 보이려 오버하지 않고, 스타처럼 뻐기지도 않고, 지나치게 낮추지도 않고.” 하하하. 잘 보이려 하지 않는 걸 좋아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 부분을 재미있어하신 것 같아요. 이런 면이 캐릭터랑 맞는 부분도 있다고 보셨을 테고. 저는 크게 애쓴다고 안 될 게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반면 어떻게든 될 일은 되고요. 세상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요. 일종의 운명론자죠.
강해 보이는 당신 마음의 누름돌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은 언제나 일이든 관계든 여러 가지 상황에서 괴로워하게 되는데, 어떻게 되든 나라는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나의 평판과 이후 행보에 차이가 생길 순 있겠지만, 나라는 개인은 이렇든 저렇든 나예요. 주변 사람들이 사회에서 괴로운 상황을 만날 때면 저는 이런 얘기를 해주곤 해요. 중요한 건 서로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이죠.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구나 좋은 얘기에 휩쓸릴 때도, 나쁜 얘기에 휩쓸릴 때도 많은데 사실 전자여도 괴로워질 때가 많아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죠. 내게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 의레 하는 칭찬일 수도, 무심결에 던진 나쁜 말일 수도 있는데 하나하나 반응하며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회사 다니는 친구들도 그 안에서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그런 것에 일일이 흔들리면 불행해질 거예요.
남의 말에 대범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물론 들어야 하는 말도 있어요. 내가 들어야 할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이 뭔지도 잘 판단해야죠. 배우가 항상 하는 말들 있잖아요. ‘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그렇게들 하는데, 문제는 촬영하는 순간 외의 ‘순간’이에요. 나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정립하지 않으면 위험해지는 직업인 것 같아요. 그게 이 일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균형을 찾아야죠. 배우로서 나와 일상생활을 하는 나 사이에서. 배우라는 게 자신 자체로 평가받는 직업이다 보니 분리하기 어렵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완전히 공감해요. 일과 나 사이에 간격을 둬야 건강할 수 있죠. 제가 미술이론을 전공했는데, 학교 다닐 때 그런 얘길 많이 들었어요. 아티스트가 자기 작업에 너무 매몰되면 안 되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크리틱도 할 줄 알아야 발전하고 진짜 아티스트가 된다고. 배우도, 다른 직종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신에게 너무 과몰입하면 괴로워요. 오히려 스스로에게 야박하게 굴게 되거든요.
어린 시절 현빈은 차분하고 소수의 친구와 깊게 어울리는 모범생이었을 것 같아요. 모범생까진 아니고, 그냥 성실한 느낌을 잘 냈죠. 근데 이제 좀 삐딱한.(웃음) 큰 문제 안 되는 사소하고 소소한 위반을 수없이 했어요. 딱히 그렇게 성실하지도,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 그런 아이였어요.
미술이론 전공자인데, 연기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도 있나요? 이미지보다는 향. 집중할 때 향의 도움을 받는 편이에요. 배역에 어울리는 향수를 뿌리고 연기를 해요. 겨울이는 비누 냄새. 깨끗하게 잘 씻고 다니니까.(웃음) 해원이는 이것저것 뿌려보고 섞어서도 뿌려봤는데, 아닌 것 같아서 헤매다 바이레도의 ‘믹스드 이모션’을 한번 뿌려보고 이거다 싶어 정착했어요. 우디하고 스모키하면서도 과일 단내가 나요. 같이 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죠.(웃음)
그렇다면 인간 신현빈이 내고 싶은 향기는요? (손목을 내밀며) 중성적이면서도 살짝 달콤하죠? 메종 프란시스 커정 향수예요. 이 향을 쓴 지 꽤 오래됐어요. 이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제가 왔구나 하고 안대요. 예전에 여행을 갔다가 시향한 뒤 방에 들어가 씻고 다음 날 일어났는데도 향이 계속 나는 거예요. 사람마다 향이라는 게 다르니까 호불호도 강하고 안 맞는 분도 많다는데, 저랑은 딱 맞아요. 친구들이 이 정도면 제 피에 이 향수가 흐르는 거라고 하더군요.(웃음)
앞으론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최근에 친구들과 한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끼리, 여자끼리 나와서 한바탕 하면 재미있을 텐데. 장르적인 것도 좋고 일상적인 것도 좋고.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순 없으니까 주어진 것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죠. 배우로서는 항상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요.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으니까.
신현빈은 어떤 걸 믿나요? 아까 나눈 이야기에 있어요. 나를 둘러싼 상황이 달라진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사람은 좋은 영향도 나쁜 영향도 받지만, 그것과 나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절 지탱해주는 말이에요.

 

에디터 이예지(프리랜서)
사진 김희준
헤어 소피아
메이크업 한나
스타일링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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