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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1

도자기가 예술품이 되는 순간

이영재 작가의 도자기는 쓰임새에 충실하면서도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위쪽 마르가르텐회에 도예 공방의 이영재 작가.
아래쪽 쓰임새가 다양한 멋스러운 색감의 그릇들.

도예 작가의 작품은 예술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생활 자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마시고 먹는 음식을 담는 그릇은 아무리 뛰어나게 아름답고, 예술적 형태·색감·조형미를 갖췄더라도 기능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가치가 사라진다. 이 모든 조건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하는 생활 자기를 만드는 작가가 있다. 첫눈에 반해 빠지는 자극적 생김새는 아니다. 볼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색감, 군더더기 없이 단아하고 섬세한 한국적 미감, 어디에 놓아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형태감.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음식을 담아내도 잘 어울린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인비트윈 코리아 신미현 대표는 작가에게 직접 선물받은 생활 자기를 써본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도자기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닌데도 쓸수록 좋더라고요. 늘 마시는 차를 담아도 더 맛있게 느껴지고, 자연스럽게 자주 손이 가죠.”
이 묘한 매력의 도자기를 만든 주인공은 재독 도예가 이영재다.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는 그녀의 이름은 사실 국내보다 독일에서 더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2002년 첫 전시 이후 몇 번의 전시를 통해 마니아층이 두꺼운 그녀는 독일에선 최고 도예 작가로 손꼽히며 도자 공예를 순수 미술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뮌헨 현대미술관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최초의 도예 전시를 열었고, 2018년에는 유럽 최대 갤러리 중 한 곳인 칼스텐 그레브 갤러리에서 역시 도예 작가로는 처음으로 초대전을 선보여 도자 공예를 기술 중심으로만 여기던 독일인에게 충격과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에는 500년 역사를 이어온 퀼른의 성 베드로 성당으로부터 성배 제작을 의뢰받았다. 현대 조각의 거장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조각 작품인 제대 위에 올린 포도주를 담는 잔인 성작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금이나 은으로 만든 굽 높은 서양의 와인잔이 아닌 흙으로 빚은 한국 작가의 도자기는 동트는 새벽녘 정갈하게 단장한 뒤 정한수 한 사발 떠놓고 기도하던 우리네 할머니의 막사발을 떠올리게 한다. 그뿐 아니다. 요르단 왕실에서도 그녀의 그릇을 쓰고 있으며, 독일 최고 미술 컬렉터인 바이에른 왕족 후손 헤어초크 프란츠 폰 바이에른도 그녀 도자기의 팬이다. 일본에서는 3대가 쓰는 생활 자기로 유명하다.





쓰임새가 다양한 멋스러운 색감의 그릇들.

1972년 20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난 이영재 작가는 공부를 마친 뒤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에서 40여 년간 도자기를 빚고 있다. 그녀가 1987년부터 운영을 맡은, 에센시의 탄광 지대에 위치한 ‘마르가르텐회에 도예 공방(Keramische Werkstatt Margaretenhöhe)’은 단순한 형태와 완전한 기능, 생활 속 예술을 부르짖던 바우하우스 철학을 계승하는 유서 깊은 공방이다. 가장 독일다운 색채를 지닌 전통적 공방의 주인이 한국인 도예가라는 사실은 일말의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적 선의 예술을 구현하면서 동시에 실용적 쓰임새를 중시하는 그녀의 도자기는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절묘한 결합인 셈이다.
이영재 작가의 도자기는 땅의 단단한 기운이 느껴지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색감이 스며 있다. 자연과 대지는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도자기는 대지의 흙으로 창작하는 예술이에요. 물레 위에서 원심력을 이용해 형태와 에너지를 부여하는 거죠. 도자기와 자연은 긴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빚어낸 그녀의 작품은 작은 사발과 접시부터 큼직한 원통형 항아리와 방추형 항아리까지 다양하다. 하나같이 군더더기 없이 단아한 한국 고유의 선을 닮았다. 색감도 은은하면서 깊이가 있다. 청색과 옥색, 담담한 회색빛이 도는 흰색 등 여섯 가지 빛깔은 맑고 부드러운데 때로는 담백하고, 때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볼수록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이영재 작가는 자신의 도자기가 감상용이 아닌 기능에 충실한 그릇이기를 바란다. 실제 그녀의 그릇은 가볍고 견고하며, 식기세척기에 여러 번 돌려도 끄떡없을 정도로 탁월한 내구성을 지녔다. “쓰임에 충실한 한국의 도자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다산 정약용의 실학정신과도 맞닿아 있죠.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며 발전해온 우리 막사발이 이에 잘 부합하는 도자기예요.”
기능적이지만 예술성을 인정받은 도자기, 그러면서도 전시장의 화이트 월보다 집 안의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을 받고 자연의 공기를 머금을 때 더 빛나는 그릇. 생활 공간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뭔가를 담을수록, 손으로 매만지며 쓸수록 진가가 느껴지는 이영재 작가의 도자기와 함께하는 일상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 이영재 작가의 생활 자기는 국내에서 오직 노블레스몰(070-8855-8808, www.noblessemall.com)을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영재 작가의 달항아리는 2개의 사발을 대칭적으로 이어 붙인 듯한 방추형 항아리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이영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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