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의 새로운 얼굴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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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7

천우희의 새로운 얼굴

정답이 없는 수천 갈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희망을 보는 천우희.

레드 원피스 Bmuette.

이렇게 홍보 이슈 없이 만나니까 좋네요. 저도요. 홍보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작품 위주로만 말하게 되니까요. 물론 제 연기에 대한 것도 좋지만, 저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것도 말할 수 있으니까 더 좋아요.
영화 <앵커>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죠? 그렇죠.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개봉 시기가 불투명해요. 빠른 시일 안에 개봉하면 좋겠어요. <앵커>에서는 기존에 제가 보여드린 모습보다 좀 더 성숙한, 전문직 여성의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본능과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인데, 스릴과 미스터리는 물론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있어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 맡은 역할은 평범하면서도 주체적인 인물로,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 보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배우 천우희가 타고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세울 만한 건지 모르겠지만, 공감 능력은 확실히 있어요. 그리고 주변 분위기를 흡수하는 체질이고, 집중력도 좋아요. 짧아서 그렇지.(웃음) 한번 빠지면 스파크가 튀어요.
그렇다면 노력하는 부분도 있나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꾸준히 나아가는 것. 완벽주의라 그런지, 계획이 흐트러지면 참을 수 없어 원점으로 돌리곤 해요. 특히 연기 면에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자책하는 편이죠. 제 그런 성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젠 왜 그렇게 완벽을 추구하나 싶어요. 사실 모두가 완벽할 수도, 모든 걸 잘 해낼 수도 없잖아요. 100이 아니라 70만 되어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스스로에게 포용력이 생긴 것 같아요. ‘왜 내가 이걸 못 해내지?’라고 다그치기보다는 일단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매 순간 최고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 신, 매 작품에서 베스트가 나올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고 있어요. 많이 바뀌었죠.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가장 큰 계기는 코로나19인 것 같아요. 이 위기를 계기로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되게 울적했죠. 영화 상영도 밀리고. 지금 저는 배우로서 좋은 시기잖아요. 30대는 제가 꿈꿔온 미래거든요. 하필 이 시대에, 이 순간에, 왜 이런 초유의 사태가 온 거지? 억울했어요. 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것을 하게 되더라고요. 자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취미도 생겼죠.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만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제겐 어떤 동력이 된 거예요.
천우희가 생각하는 천우희는 어떤 배우인가요? 연기를 할 때와 연기를 준비할 때 좀 달라요. 준비할 때는 너무 복잡한 사람이에요.생각을 많이 하죠. 길을 걷다가도, 샤워하다가도 생각하고. 끊임없이 여러 목소리가 떠오르는데, 그 혼란스러움이 저는 즐거워요. 재미있어요. 조각가가 흙으로 인물을 빚는 느낌이죠. 하지만 연기를 할 때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사람이 돼요. 연기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해나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주어진 상황, 시공간에 몰입하죠. 다른 생각은 할 틈이 없어요.





드레스 LEE y. LEE y., 헤드피스 Kowgi.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인물을 잘 소화해요. <우상>과 <곡성>에서 뿜어내는 기운은 시퍼렇게 날 서있고, <한공주>와 <버티고>에서 발산하는 슬픔은 저미듯 아프죠. 그렇게 생각했어요. 타고난 기질이거나 타오르는 갈증이거나. 연기는 그때그때 제 안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려 끄집어내는 건데, 연기를 하며 제 기질을 맞닥뜨릴 때도 있고 갈증이 있던 부분을 끌어올 때도 있어요. 사실 전 어릴 때나 지금이나 저 자신이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도 싫고,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의외죠?(웃음) 그러면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선생님이 제게 반에서 가장 말썽꾸러기인 친구를 짝으로 붙여주곤 했어요. 두루두루 모난 데 없는 아이였죠.
그런데 그렇게 가슴에 칼을 품은 사람처럼 연기를… 바로 거기서 오는 갈증이었어요. 어려움 없이 자랐고, 착하고 반듯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 이면에 반발심이 있었죠. 저항하고 싶고, 청개구리처럼 굴고 싶었거든요. 계속 스스로 평범하다고 말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독특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회나 가정에서 요구하는 착한 아이, 착한 딸의 모습이 있잖아요. 그걸 충족시키고 싶었어요.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었죠. 한국 사회는 누가 눈에 띄면 모난 돌이 징 맞는다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한편에서 억눌림이 있었던 거죠. 제 존재의 정체성을 찾고 싶고,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항상 가슴속에 지니고 있었어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 연기와 맞닥뜨리면서 좋은 쪽으로 그 에너지가 발산이 된 거죠. 생각해보면 어린 천우희는 남들이 볼 때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겠지만, 제 안엔 불 같은 것이 들끓고 있었을 거예요. 나를 숨기고 싶은 마음과 내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요.
10대 때 천우희에게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면, 지금의 가장 큰 갈망은 뭘까요? 현재에 집중하는 것. 어떤 면에선 대범한 편인데, 또 어떤 면에선 의외로 겁쟁이예요. 연기는 허용된 공간과 상황에서 어떤 울타리도 장애물도 없이 벌어지는 일이잖아요. 모든 게 가능하죠. 그러니 그 순간을 믿고 거기에 집중하고 온전히 현재의 그 한순간만을 바라볼 수 있어요. 배우 천우희는 이게 가능한데, 인간 천우희는 그렇지 못해요.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죠.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코로나19라는 파도를 겪으면서부터는 온전히 이 순간, 현재만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퍼플 색 튜브톱 드레스 YCH.

천우희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지금 가장 행복해요. 행복이라는 게 뭘까요? 행복하다는 게 뭐지? 기쁘고 즐겁다는 감정만 행복일까요? 행복은 그 순간을 지나면 결국 기억이고 추억이잖아요. 제가 느끼는 행복은 뭐냐면,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 행복감이라고 생각해요.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내가 지금 살아서 어떤 걸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가장 두려운 순간은? 매번 두렵죠. 겁이 좀 많거든요. 두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저는 섬세한 사람이라, 감각에 대한 역치가 낮아요. 남들이 느끼는 게 10이라면 저는 50 정도죠. 그 감각이 연기를 할 때는 도움이 되지만, 살아가는 데는 피로감을 주기도 해요. 왜 나는 두려울까? 왜 나는 두려움을 두려워할까? 본능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의 근원엔 두려움이 있어요. 종교든 경제활동이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이 두려움이라는 본능에 대해 멀리 도망치는 것만이 답일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두려움을 나쁜 것이라고 배워왔기에 항상 두려웠던 건 아닐까 싶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해프닝이라는 게 일어나면 안 돼요. 항상 안전한 길로 가야 하죠. 다르게 생각하면 두려움의 한 면에는 두근거림이, 흥분과 역동성이, 도전과 성장이 있어요. 이 두려움을 내가 꼭 배척할 필요 없이 함께 갈 수는 없을까요.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두근거리는 이야기인데요. 워낙 반골 기질이 있어서인지.(웃음) 두려움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는 두려움 밖 영역이라 더 좋았고요. 가상 인물, 예술이라는 매체를 경유해 내가 아닌 걸로 가장한 채 무엇이든 할 수 있잖아요. 왜 연기를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결국 그건 제 본능이고 욕망인 것 같아요.
이렇게 생동하는 당신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나요? 몇 번의 고비나 미끄러짐이 있었죠. 다만 전 그걸 슬럼프라고 빠져들지 않고, 그냥 지나가길 바랐어요. 삶의 굴곡이 내 인생을 더 역동적으로 만들어주고 빛나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겨내야지’라기보다 받아들이고 아파하면서 지나가길 기다렸고, 그런 순간은 늘 출구를 찾기 마련이더라고요. 그러고 나면 쑥 탈피한 느낌이에요. 고통과 생채기가 성장에 도움을 준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네요.





홀터넥 톱 Blumarine, 스커트 Prada.

2004년에 데뷔해 어느덧 18년 차 배우입니다. 한 분야의 프로페셔널로서 신인 때는 모르던 걸 알게 되었다면 무엇인가요? 연기가 다가 아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고 싶었고, 계속 해나가고 싶었고, 연기 속 세상에서만 살고 싶었어요. 연기에 몰두하고 세상을, 사람을, 연기로만 배우려 했죠. 그런데 그 안에서만 살다 보니 세상과 사람에 대한 경험치가 많이 부족해진 것 같아요. 지나고 나니 연기라는 건 삶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이더군요. 너무 연기로만 인간을 탐구하려 한 것 같아요.(웃음) 좀 더 많은 경험으로 삶을 풍족하게 꾸렸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신인 천우희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야, 연기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리고 “나가 놀아.”(웃음) 이젠 좀 더 용기를 내 많은 것을 알아가고 싶어요.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다음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는 지금의 아쉬운 점을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과 기대감이 담겨 있죠.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어 하는 걸까?’ 피카소가 그랬죠. 결국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고. 예술이라는 건 창조하고 싶은 마음과 파괴하고 싶은 충동 두 가지로 하는 건 아닐까요? 이전과는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 확실치 않은 것으로 계속 달려나가고 싶은 충동.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인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완벽한 답은 없기에 역설적으로 모든 게 다 답이 될 수 있죠. 저는 여기서 희망을 봐요.
인간이니까요. 인간이니까. 전 신도, 동물도, 자연도 아니고 인간이죠. 불확실성, 완벽할 수 없음, 두려움에 대해 기꺼이 포용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면?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답을 구하려 애쓰지 않고 받아들이려 해요. 연기, 관계, 자기 자신에게도. 그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연연하지 말고, 너무 애쓰지 말고.
물음표에서 괄호가 된 것 같네요.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맞아요. 그리고 현재진행형이죠!

 

에디터 이예지(프리랜서)
사진 목정욱
헤어 이일중
메이크업 이나겸
스타일링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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