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창조적 변신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LIFESTYLE
  • 2022-04-01

전통의 창조적 변신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 시즌 2의 첫 번째 주인공 문채훈 작가와 마크 테토의 만남.

위쪽 현대적 미감을 더한 옻칠 유기 작품을 선보이는 문채훈 작가와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 진행자 마크 테토.
아래왼쪽 문채훈 작가는 작업 전 형태를 정리하기 위해 스케치를 먼저 한다.
아래오른쪽 문채훈 작가의 옻칠 유기 작품.

마크 테토 작가님은 옻칠과 유기라는 전통 공예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해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모던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문채훈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디자인 회사에 다녔어요. 취미 삼아 옻칠을 배웠는데, 그 시간이 즐겁고 흥미로웠어요.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기계로 작업하다 손으로 재료를 만지고 집중해 뭔가를 만들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죠. 옻칠은 마감재라는 점에서 어떤 소재와도 접목이 가능한 데다 어떤 형태로도 변화할 수 있잖아요. 변화무쌍한 옻칠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죠.
마크 테토 우연한 기회에 만난 옻칠이 작가님의 인생을 바꿔놓았군요. 하지만 옻칠 같은 전통 공예는 장인을 통해 기술과 문화가 계승되는 분야인데요. 문채훈 맞아요. 그래서 전통이라는 틀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젊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옻칠, 나아가 또 다른 전통 소재를 활용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알다시피 전통 공예는 장인을 통해 계승되는 만큼 소재의 조합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분야예요. 저 같은 현대 작가는 그런 면에서 자유로워 여러 전통 소재를 함께 사용해보자 싶었고, 옻칠과 엮을 수 있는 소재를 고민하다 유기를 찾았어요.
마크 테토 외국인인 제가 보기에도 유기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작가님이 유기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문채훈 다른 금속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색감과 빛깔이 좋았어요. 묵직하고 깊은 색채의 옻칠과 따뜻하지만 우아한 빛깔의 유기가 어우러질 때 느껴지는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대비감에 매료되었죠.
마크 테토 보통 전통 공예품은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그릇, 티 테이블 등 작가님의 작품은 일상에서 유용한 것이 특징 같습니다. 문채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통을 계승하고 손으로 공들여 만든 수공예품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했어요. 결국 동시대적 가치를 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쓰임이 있어야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오랫동안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크 테토 작가님이 생각하는 쓰임새는 어떤 건가요? 문채훈 꼭 편리하고 합리적인 쓰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일이 편리하진 않죠. 무겁고, 세척하기 번거로우며, 전자레인지나 식기세척기에 넣어서도 안 되고요. 하지만 이런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일은 감성적·심리적 만족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쓰임의 가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제 작품을 사용하는 분과 소통하려 애쓰기도 하고요.
마크 테토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문채훈 제 그릇을 구입한 고객이 몇 달 뒤 다시 찾아온 적이 있어요. 집에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그 그릇에 다과를 담아 냈는데, 자연스럽게 제 작품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좋은 그릇에 음식을 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데, 그 말이 제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어요. 덕분에 좋은 물건의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 작업에도 계속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위쪽 발베니 30년과 문채훈 작가가 작업한 옻칠 유기 트레이.
아래왼쪽 문채훈 작가의 작업실에 걸려 있는 작업 도구.
아래오른쪽 마무리 작업 중인 문채훈 작가.

마크 테토 이런 후기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죠. 한 인터뷰에서 할머니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도 봤습니다. 문채훈 제가 전통 소재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손으로 작업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데는 어릴 적 함께 산 할머니의 영향이 큽니다. 할머니 방에는 자개장, 문갑, 사방탁자, 함 등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죠. 장을 늘 깨끗하게 닦으셨어요. 오래되었지만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표면, 소중하게 장을 여닫던 할머니의 몸짓 등이 떠올라요. 이런 기억이 쌓여 제 취향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감으로 지금의 작품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마크 테토 본격적으로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죠. 전통과 현대의 미학뿐 아니라 실용성까지 고려한다면 많은 고민이 뒤따를 것 같습니다. 작업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문채훈 그릇은 개인적 취향을 반영하는 물건이죠. 제 작품의 모양이나 색 같은 시각적 면은 보는 사람에 따라 마음에 들 수도,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용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질 때 촉감, 손에 쥘 때나 입에 닿을 때 느낌 같은 것들이요. 또 그릇은 단독이 아닌, 여러 그릇이나 물건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조화로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죠.
마크 테토 하나의 작품을 위해 정말 많은 생각이 필요하네요. 그런 다음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하나요? 문채훈 고민에 대한 답과 아이디어가 쌓이면 가장 먼저 스케치를 하며 형태를 정리해요. 형태가 구체화되면 종이나 플라스틱처럼 다루기 쉬운 소재를 사용해 실제 사이즈로 만들어 형태감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합니다. 그렇게 형태를 완성한 뒤 장인 선생님이 유기를 제작해주면 제가 그 유기 표면에 옻칠을 하죠.
마크 테토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매끈한 유기 표면과 거친 질감의 옻칠이 대비를 이룹니다. 작가님만의 옻칠 기법이 있을까요? 문채훈 정확하게 보셨어요. 제가 작업한 옻칠은 독특한 결이 있는데, 이를 위해 옻칠과 흙을 혼합해 사용합니다. 그리고 붓질의 텍스처를 그대로 살려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죠. 초칠부터 마감까지 다섯 번 옻칠을 하는 사이 네 번 고온경화 과정을 거쳐 완성해요.
마크 테토 정성이 깃들어야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는군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문채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 가지예요. 실험적일 것, 영속적일 것, 아름다울 것. 실험적 소재를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기법이나 미감을 찾으려고 해요. 그렇게 아름답고 오랫동안 변치 않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마크 테토 옻칠과 유기라는 전통 공예의 맥을 이어오면서도 모던한 멋과 실생활의 쓰임까지 고려해 작업하고 계셨군요. 130년간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위스키를 생산하면서도 동시대적 가치를 품은 발베니가 왜 작가님을 찾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의 공식 질문입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요? 문채훈 문화 그리고 전통이라는 것은 어떤 한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긴 시간을 의미하죠. 그러려면 계속 변하고, 발전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해요. 장인정신이란 전통을 발전시켜나가려는 의지와 정신, 거기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에디터 문지영(프리랜서)
사진 김일다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