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시간, 베니스 비엔날레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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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31

성찰의 시간, 베니스 비엔날레

색다른 인간 세상 바라보기를 제안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위쪽 참여 작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몬 리의 ‘Brick House’.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Marco Cappelletti
아래왼쪽 카타리나 프리치의 1987년 작 ‘Elefant/Elephant’.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Marco Cappelletti
아래오른쪽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세실리아 비쿠냐의 작품.

초현실로 제시한 포스트 휴머니즘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거대한 조각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 타이틀 ‘The Milk of Dreams’가 새겨진 중앙 파빌리온 입구의 가벽을 지나면 카타리나 프리치(Katharina Fritsch)의 1987년작 ‘Elefant/Elephant’가 등장한다. 제목 그대로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포유류인 코끼리를 주름 하나까지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업. 전시장 중앙 좌대에 올린 짙은 녹색 코끼리 조각상의 압도적 크기와 놀라울 만큼 섬세한 완성도는 초현실적 감각을 일깨운다. 이 코끼리는 자연의 위대함 그 자체를 상징하며, 모계사회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전시장이 생기기 전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에 살았던 ‘토니’라는 이름의 코끼리 등을 다층적으로 아우르는 원초적 기념비로 제시된다. 아르세날레 전시장 초입에는 청동으로 제작한 흑인 여성 흉상이 자리한다. 시몬 리(Simone Leigh)의 ‘Brick House’는 눈이 없는 여성의 얼굴과 흙으로 만든 아프리카 전통 가옥이 결합한 모습이다. 흑인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과 몸이 지닌 안식처로서 의미를 흑인 여성 작가의 시각으로 형상화한 작업이다.
총감독을 맡은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 큐레이터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는 두 여성 작가의 기념비적 조각품을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전시장 초입에 배치함으로써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제시할 담론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남성과 여성, 자연과 인간, 인간과 기계, 인공과 자연, 몸과 정신, 추상과 구상 등 20~21세기의 해묵은 이원론적 대립 관계를 여성 . 젠더 비순응 작가가 주체가 되어 초현실주의와 포스트 휴먼 관점으로 새롭게 성찰하려는 야심 찬 시도가 전시장 곳곳에서 확인된다. 비엔날레에 초대된 58개국 작가 213명은 여성과 젠더 비순응 예술가가 대다수이며, 이 중 180여 명은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국제적 규모의 미술 전시에 한 번도 출품한 적 없는 매우 ‘낯선’ 작가다. 남성 중심주의를 의도적으로 제고하고, 국제 미술계와 문화계가 마주한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작품 세계를 느슨하게 결합하는 주제는 앞서 잠시 언급한 ‘The Milk of Dreams’다. ‘꿈의 우유’로 직역할 수 있는 신선한 단어의 조합은 영국 출신의 초현실주의 여성 예술가 리어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이 발표한 동명의 동화책에서 빌려왔다.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상상의 프리즘을 통해 우리의 삶을 재가시화하는 마법의 세계를 펼쳐 보였듯,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다른 세계의 생물과 몸의 변형, 인간의 정의를 상상하는 여행”을 제안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에는 인체의 무수한 변형 이미지가 강박적으로 병치되어 강렬한 시각적 잔상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생명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며 식물과 동물,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 심오한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진다.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동시대 미술에서 두드러지는 초현실주의적 작품 경향의 역사적 맥락과 연결 고리를 확인하고, 이전 세대와 ‘대화’를 시도하는 장치로 캡슐형 전시 다섯 가지를 마련했다. ‘전시 속 전시’로 배치된 이 전시들은 동시대 미술의 쇼케이스 현장이 되기 마련인 비엔날레에 미술관적 효과를 불러왔으며, 전시에 새로운 서사 구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The Witch’s Cradle]은 여성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에 대항하며 마녀처럼 자기 변태의 방법론을 작업에 적용한 여성 작가에게 주목한다. [Corps Orbite]는 텍스트 해방을 위한 실천 도구로 활용한 19~20세기 작가와 예술가를 소개한다. [Technologies of Enchantment]는 테크놀로지와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계처럼 프로그래밍된 창작 방법론을 실험한 작가들을, [A Leaf a Gourd a Shell a net a Bag a Sling a Sack a Bottle a Pot a Box a Container]는 여성의 신체와 자연 생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그릇 형상 이미지나 도상과 연루된 작업을 펼쳐 보인다. [Seduction of the Cyborg]에서는 하이브리드 신체를 탐구한 선구자를 소환한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받은 한국의 젊은 여성 미술가 이미래와 정금형의 작품은 마지막 챕터 전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주목받았다. 이미래의 그로테스크한 신작 ‘Endless House: Horse and Drips’는 모터, 강철 막대, 실리콘 오일 등으로 구성한 키네틱 조각으로 기계나 낯선 생명체의 내장 기관을 연상시킨다. 안무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정금형은 자신의 몸과 DIY 부품으로 만든 애니매트로닉스 피겨를 사용해 사람과 기계의 에로틱한 관계를 탐구한 ‘Toy Prototype’을 공개했다.





왼쪽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선보인 이미래의 그로테스크한 신작 ‘Endless House: Horse and Drips’.
오른쪽 정금형은 사람과 기계 사이의 에로틱한 관계를 탐구한 ‘Toy Prototype’을 공개했다.





위쪽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영국관의 소니아 보이스에게 돌아갔다.
아래쪽 한국관에서 열린 김윤철의 개인전 [나선(Gyre)] 전경.

파격의 수상 그리고 국가관
전시의 공식 개막과 함께 발표한 수상 결과에서도 여성 작가의 힘과 존재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평생공로상은 중앙 파빌리온의 서막을 연 카타리나 프리치와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n˜a)가 받았으며, 황금사자상은 시몬 리가,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은사자상은 알리 체리(Ali Cherri)가 수상했다. 시몬 리는 올해 미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는데, 국가관 전시에서도 여성 작가가 강세를 보였다.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영국관의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에게, 특별언급상은 프랑스관의 지네브 세디라(Zineb Sedira)와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한 우간다의 아카예 케루넨(Acaye Kerunen), 콜린 세카유고(Collin Sekajugo)에게 돌아갔다. 영국의 흑인 여성 예술가 소니아 보이스는 여성의 연대와 자연스러운 협업에 주목하며, 여성 음악가 다섯 명이 긴밀하게 대화하고 화음을 맞춰 노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기하학적 패턴의 벽지와 황금색 조각이 놓인 설치 작품으로 구성한 [Feeling Her Way]로 호평받았다. 프랑스관의 지네브 세디라는 탈식민지 운동에 영향을 미친 알제리의 영화 유산과 자전적 경험을 창작의 출발점으로 삼은 영화·조각·사진·퍼포먼스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 설치 작품을 발표해 프리뷰 내내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 작가이자 전자음악 작곡가 김윤철의 개인전 [나선(Gyre)]으로 꾸린 한국관도 외신의 이목을 끌었다.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착안, 발광다이오드(LED)와 고분자(폴리머), 하이드로겔 등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완성한 빛을 발하는 기계장치는 여타 국가관과 차별화된 풍경을 연출했다.





위쪽 이건용의 개인전 [Bodyscape] 전경.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아래쪽 하종현의 개인전 [Ha Chong-Hyun] 전경.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베니스 비엔날레의 또 다른 매력, 병행 전시
이건용, 하종현, 박서보, 전광영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의 베니스 프로젝트도 동시에 열렸다. 이건용은 ‘그린다’는 행위를 혁신적으로 전환하며 화면을 보지 않고 신체의 제약을 통해 그어진 선으로 구성한 ‘바디스케이프(Bodyscape)’ 연작의 최신작 20여 점을 베니스의 유서 깊은 장소인 팔라초 카보토(Palazzo Caboto)에서 선보이고 있다. 하종현은 팔라제토 티토(Palazzetto Tito)에서 회화의 물질성과 아름다움을 탐구한 60여 년의 미적 여정을 되돌아보는 회고전을 개최 중이다.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Palazzo Contarini Polignac)에서는 전광영의 개인전 [재창조된 시간들]이 열려 한지를 사용한 대형 조각 작품을 선보였다. 박서보는 스탐팔리아 재단(Fondazione Querini Stampalia)에서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얀 보(Danh Vo)와 3인전을 열었다. 광주비엔날레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전 [꽃 핀 쪽으로]를 스파치오 베를렌디스(Spazio Berlendis)에서 개막했다. 홍성담, 김창훈, 노순택, 박화연, 배영환, 서다솜, 안창홍, 진 마이어슨(Jin Meyerson), 최선,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호 추 니엔(Ho Tzu Nyen) 등 국내외 작가 11명의 사진·설치·회화 등을 만날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일제히 개막한 해외 작가의 쟁쟁한 개인전과 프로젝트도 놓칠 수 없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는 베니스 건립 1600주년을 기념해 팔라초 두칼레(Palazzo Ducale)에 초청을 받고 초대형 회화 설치 작품으로 스펙터클한 광경을 선사했다.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는 영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베니스의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e dell’Accademia)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동시에 팔라초 만프린(Palazzo Manfrin)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표작을 엄선한 회고전을 열어 베니스 비엔날레 프리뷰 기간 중 최고 화제 작가가 되었다. 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출품 중인 미국의 여성 조각가 루이즈 니벨슨(Louise Nevelson)의 대형 개인전 [Persistence]가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에서 개막, 1950~1980년대 제작한 콜라주 조각 60여 점을 공개했다.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에서는 마를렌 뒤마(Marlene Dumas)의 개인전 [Open-end]가 열려 1984년부터 현재까지 완성된 회화 작품 100여 점을 대거 선보였다.
좋은 예술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코로나19 여파로 한 해 미뤄진 세계인의 미술 축제는 오랜 기다림에 화답하듯 오늘날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초현실적 풍경으로 펼쳐 보인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위쪽 루이즈 니벨슨의 대형 개인전 [persistence] 전경. Photo by Lorenzo Palmieri
아래쪽 팔라초 만프린에서 열린 아니시 카푸어의 개인전. Photo by David Levene © Anish Kapoor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김재석(갤러리현대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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