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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3

촘촘하게 엮어낸 미학

발베니 메이커스가 말총을 소재로 작업하는 정다혜 작가를 만났다.

말총 공예가 정다혜 작가와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 진행자 마크 테토.





왼쪽 말총으로 제작한 모빌을 걸고 있는 정다혜 작가.
오른쪽 정다혜 작가는 말총을 촘촘히 엮어 입체적 형태를 만든다.

마크 테토 제가 외국인이라 그런 걸까요? 말총 공예라는 말이 매우 생소합니다. 정다혜 말총은 말갈기나 꼬리의 털을 의미해요. 외국인뿐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낯선 소재죠.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말총은 망건이나 탕건, 갓을 만드는 데 쓰는 보편적 소재였습니다. 마크 테토 요즘은 흔히 사용하는 소재가 아닌데, 말총의 어떤 점에 매료되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정다혜 말총이 입체가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털이 얇은데도 촘촘히 엮다 보면 스스로 일어서는 구조적 형태감을 갖추죠. 짜임새도 아름답고요. 또 말총을 햇빛에 비추면 빛이 통과하면서 스스로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모습이 정말 신비로워요. 마크 테토 말총 공예품이 제주 특산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님 역시 제주 출신이라 말총 공예에 대한 사명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정다혜 제주 사람으로서 지역 공예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말총 공예를 시작하고 공부하면서 사명감이 생긴 건 사실이에요. 본래 말총 공예는 제주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지역마다 품질 차이가 있지만, 과거 베 짜는 농민의 모습이 일반적이었듯 말총 공예도 전국적 산업이었어요. 마크 테토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정다혜 단발령 시행으로 말총 모자를 쓰지 않으면서 단번에 사양산업이 되었죠. 공예는 문화와 수요, 공급 조건이 맞아야 성행할 수 있어요. 500년 가까이 이어온 독창적 공예 문화인데, 수요와 공급이 부족해 한순간에 사라진 점이 안타까웠죠. 지금은 말총 공예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이 큽니다. 마크 테토 젊은 작가가 남들이 걷지 않는 공예의 길을 선택하고, 전통을 지키려는 모습이 대단해 보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다양한 패턴이 인상적인데, 제작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정다혜 우선 나무 틀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말총을 빙 둘러 묶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바늘에 말총을 꿰어 고리를 감아가며 엮는 거죠. 이때 고리 간격을 조절하면서 무늬를 만들 수 있어요. 직조하듯 한 줄 한 줄 짜는 방식이라 무늬가 한 번에 만들어지진 않아요. 원하는 무늬는 작업 전에 미리 설계해야 합니다.





말총 공예품과 발베니 30년.

마크 테토 일반 실이 아닌 만큼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정다혜 작업 중간중간 말총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적셔야 해요. 말총이 마르면 툭 끊어지거든요. 다 짠 후에는 찌거나 삶는 열처리 과정을 거쳐 형태를 고정하고 건조합니다. 마크 테토 이야기만 들어도 많은 인내가 필요할 듯합니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다혜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말총의 입체성에 반했기 때문에 여린 털이 입체가 되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그 작업 과정이 제 삶의 방향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마크 테토 삶의 방향성과 입체성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정다혜 얇은 말총 한 가닥을 이어 입체적 형태를 만들기까지는 많은 인내심과 성실함이 필요해요. 급한 마음에 성글게 엮으면 형태가 무너지기 십상이거든요. 꾸준함만이 답인 셈이죠.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결실을 맺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묵묵히 살다 보면 언젠가 제대로 된 삶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마크 테토 맞아요. 인생에서 성실함을 꾸준히 유지하기란 쉽지 않죠. 그러고 보니 작가님의 작품은 보이는 것 이상의 더 큰 가치를 품고 있네요. 실용적인 작품을 만드는 일 외에도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다혜 마미선추(馬尾扇錘), 마미향갑노리개, 망건, 방건 같은 유물 복원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유물을 재현하는 일이 제 작업의 지향점은 아닙니다. 유물마다 형태도, 무늬도 제각각이라 흥미로운 데다 유물을 재현하다 보면 그 물건을 만든 분에게 속성 과외를 받는 느낌이 들어 궁극적으로 제 작업에 도움이 되죠. 예를 들어 무늬를 만드느라 고리 간격을 넓히거나 좁히면 형태가 망가질 수 있는데, 유물은 그런 부분을 지혜롭게 해결했더라고요. 또 당시의 미감을 느낄 수 있어 좋고요. 말총 공예의 섬세한 구성과 미감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크 테토 전통 공예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시대에 맞게 감각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님을 보면 발베니가 절로 떠오릅니다. 130년간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위스키를 생산하면서도 동시대적 가치를 품고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의 공식 질문입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요? 정다혜 제가 생각하는 장인정신은 꾸준함이에요. 매일 꾸준히 작업하다 보면 실력은 자연스럽게 늘기에, 화려한 기술보다는 묵묵히 작업하는 성실함이야말로 장인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왼쪽 정다혜 작가가 만든 말총 공예품.
오른쪽 촘촘하게 엮어 구조적 형태감을 갖춘 말총.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김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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