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멘타 15' 반드시 기록될 역사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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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16

'도쿠멘타 15' 반드시 기록될 역사

나치즘의 암흑기를 쇄신하고자 1955년부터 5년에 한번 100일 동안 독일 카셀에서 꽃피우는 '도쿠멘타'

올해 도쿠멘타 15 포스터.

이번에 개최하는 도쿠멘타 15는 그간 서구에서 활동한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을 연임한 데 비해 최초로 비서구권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컬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가 아티스틱 디렉션을 맡으면서 주목받았다. 예술계는 비제도적 스타일로 예술 활동을 지속한 루앙루파가 보여줄 다양성을 기대하면서도 자율적 컬렉티브가 도쿠멘타라는 오랜 역사의 체계적 독일 예술 제도 안에 포섭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우려했다. 인도네시아어로 예술 공간 혹은 공간 형태를 뜻하는 루앙루파는 예술가가 작업에 집중할 (물리적·정신적)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2000년 자카르타에서 출발했다. 공공 미술, 공연 예술, 영상 예술 등을 분석·매개·제공하고 시각예술의 담론을 공유하는 공간 역할을 했을뿐더러, 2018년에는 지식 공유 교육 플랫폼 굿스쿨(Gudskul)을 만들기도 했다. 이 중 아홉 명의 멤버가 도쿠멘타 15에 참여한다.





왼쪽 도쿠멘타 15가 열리는 전시장 중 한 곳인 루루하우스.
오른쪽 아티스틱 디렉션을 맡은 인도네시아 컬렉티브 루앙루파.

루앙루파가 도쿠멘타 15의 예술 실행 개념으로 내세운 ‘룸붕(Lumbung)’을 번역하면 ’공동의 곳간’으로, 커뮤니티를 위해 초과 수확한 곡물을 보관하는 장소다. 루앙루파는 명확한 주제를 내세우는 대신 강력한 실행성을 지닌 룸붕 개념을 들어 협업 네트워크를 구성해 지식과 생각, 프로그램 등을 연결하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지역사회 구조에 깊은 예술적 뿌리를 두고 실험적이면서 경제적 접근 방식으로 룸붕의 가치를 공유하는 컬렉티브 14팀을 초청했다. 이들은 예술의 과거·현재·미래를 논의하고, 각 지역사회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면서 도쿠멘타의 방향성을 잡아갔다. 또 뜻이 맞는 룸붕 아티스트를 초대해 ‘마젤리스(Majelis)’라는 그룹 회의를 통해 작업하고, 참여자는 서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토론·조언하면서 공동 작업 방식을 실험해나갔다. 소통·연대하며 장기적 국제 교류와 지속 가능한 연결을 담보한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어도 결국 연결돼 있다는 점을 상기하듯 루앙루파는 룸붕 아티스트를 국가나 도시가 아닌 시간대별로 발표했다. 조용한 도시 카셀에서 일어나는 복작거리는 움직임이 오픈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왼쪽 방글라데시의 컬렉티브 브리토 아츠 트러스트(Britto Arts Trust)의 대규모 벽화.
오른쪽 컬렉티브 ‘INSTAR’의 작업.

도쿠멘타 15는 크게 네 지역으로 구획해 총 32개 장소에서 선보인다. 그중 미테 지역에서는 루앙루파의 비전과 기획 방향을 살펴볼 수 있다. 주목할 만한 곳은 기존 백화점 건물을 탈바꿈한 루루하우스, 도쿠멘타의 주요 건물인 프리드리치아눔의 프리드스쿨과 루루키즈(Rurukids)다. 현재 도쿠멘타 15의 정보를 제공하는 웰컴 센터이자 만남의 장으로 기능하는 루루하우스는 개인 공간인 거실을 공공 공간으로 개방하며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가능하게 한 루앙루파의 과거 예술 실험을 바탕으로 구상했다. 도쿠멘타 15를 시작하기 전부터 다양한 지식·기술·경험·가치를 공유하고자 연구실·주방·거실· 작업장·인쇄소·라디오 방송국 등을 마련했으며, 마젤리스를 진행하는 공간으로 활용해 다양한 커뮤니티, 예술가 및 학생 그룹과 함께 공간성을 실현했다. 여전히 이 공간에서 다양한 예술 실험을 진행해 살펴보기 쉽지 않지만, 벽면과 기둥에 도쿠멘타 15의 기획 방향과 구획이 다이어그램으로 세밀하게 펼쳐져 있으니 주목할 것.
한편 프리드리치아눔은 굿스쿨을 실행한 채 도쿠멘타 15를 진행하는 동안 프리드스쿨이라는 학교로 전환, 삶에 뿌리를 둔 수평적 교육의 다양한 모델을 적용하고 시연하는 데 활용된다. 차가운 이미지의 박물관이 따뜻하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다양한 예술가와 집단은 서로 이웃으로 협력한다. 또 루루키즈는 예술가들이 어린이, 10대 청소년과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루앙루파가 2010년 설립한 이니셔티브로, 대형 미끄럼틀이나 루루키즈 시네마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작가와 어린이가 놀이를 통해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구현했다. 세 공간은 “창작 과정은 사람, 물질, 기타 생물체에 의해 형성된 지역 문화 생태계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는 루앙루파의 비전과 공유 공간을 지향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나머지 공간은 그야말로 컬렉티브의 향연이다. 이번 도쿠멘타는 룸붕의 기치를 이어가면서 전시장에 작가가 아닌 컬렉티브를 초대했다는 특징이 있다. 루앙루파가 다른 컬렉티브를 룸붕 멤버로 초대하고, 룸붕 멤버가 다시 다른 컬렉티브를 초대한 셈이다. 그동안 전시 맥락으로 선보인 역대 도쿠멘타와 달리 수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전 세계 컬렉티브와 작가가 박람회 스타일의 전시에 참여한다.
각 컬렉티브의 성향과 의지에 따라 다양한 활동과 재현 방식을 채택하는 만큼 전시를 기대한 관람객이라면 “제각각이라 당황스럽다”는 첫인상을 받을 여지가 많다. 전시를 추구하는 몇몇 컬렉티브는 주제나 동선이 있는 작품을 구획하고 관람객 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이번 도쿠멘타 15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없어 동선을 별도로 구획하지 않았다. 심지어 각 활동은 여전히 ‘실행 중’이다. 따라서 관람객은 작품을 관람하기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컬렉티브의 플랫폼 구성을 확인한다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 다시 말해 관람객을 위하고 배려하는 전시라기보다는 예술가가 자신의 네트워크와 공유를 위해 구성한 예술가의, 예술가에 의한, 예술가를 위한 박람회에 가깝다.





왼쪽 애덤 코케쉬(Adam Kokesch)의 작품 ‘Untitled (Meander)’(2021) 설치 전경.
오른쪽 칼스위스 (Karlswiese)에서 선보인 시네마 카라반(Cinema Caravan)과 타카시 쿠리바야시(Takashi Kuribayashi)의 스크리닝.

그럼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보자면, 컬렉티브의 구성이 서구 백인 남성과 유럽 중심주의의 편향성을 따르지 않는다. 아시아 컬렉티브가 다양하게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민주의 지배 이후를 이야기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담론과 유럽 중심 예술의 대안에 대한 담론이 도쿠멘타 15 실행 기저에 작동한다. 이를 반영하듯 도쿠멘타 15의 유색인종, 특히 아시아인의 참여도가 높으며, 이에 반달리즘이 작동하기도 했다. 뉴델리에 기반을 둔 컬렉티브 파티 오피스 b2b 파데샤(Party Office b2b Fadescha)는 LGBTQ+ 및 인종차별 공격을 받은 뒤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카셀을 떠났다.
더불어 이번 도쿠멘타 15의 열기는 타링 파디(Taring Padi) 작업의 철거로 한층 뜨거웠다. 타링 파디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 컬렉티브로, 1998년부터 정치나 사회정의와 관련한 메시지를 벽화·포스터·현수막 등을 통해 표현했다. 프리드리히 광장에 설치한 ‘People’s Justice’(2002)는 1967년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수하르토 독재정권 아래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대형 현수막으로, 인물의 과장된 묘사와 풍자가 특징이다. 다양한 등장인물 중 이스라엘 비밀 요원 모사드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돼지로, 나치 슈츠스타펠(Nazi Schutzstaffel)의 약어인 ‘SS’를 새긴 검은 모자를 쓴 유대교 남성은 뾰족한 송곳니와 붉은 눈을 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 때문에 이 작업은 도쿠멘타 오픈 후 반유대주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3일 만에 철거되는 고충을 겪었다.
여기에 다양한 논의가 뒤따랐는데, 국제적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군사적 폭력을 다룬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하고, 인종차별적 명예훼손이라며 반대하는 입장과 “유대인을 박해한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아 현재 도쿠멘타의 수장이자 매니징 디렉터 자비네 쇼르만(Sabine Schormann)이 사임까지 한 상황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쿠멘타 15지만, 다양한 컬렉티브를 한자리에 모아 예술의, 도쿠멘타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하다. 루앙루파의 선정과 예술 실행을 둘러싼 모든 담론 그리고 현상이 현재 전 세계 예술계에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은 루앙루파의 제안처럼 여전히 우리가 함께 찾아야 하는 과정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문선아(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 디렉터)
사진 제공 도쿠멘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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