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미리암 칸의 <나의 유대인들> 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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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7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미리암 칸의 <나의 유대인들> 전

제14회 루벤스상 수상자로 스위스 작가 미리암 칸이 선정됐다.

스위스 작가 미리암 칸. @Photo by Philipp Ottendörfer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지겐(Siegen)은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가 태어난 도시다. 이 위대한 화가를 품은 지겐시는 지난 1955년 순수예술 담론에 기여하고, 시대의 증언이자 거울로서 예술을 제고하고자 루벤스상을 제정했다. 5년마다 수여하는 루벤스상의 역대 수상자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 시그마 폴케(Sigmar Polke),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 니엘 토로니(Niele Toroni) 등에 이어 올해 14번째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가는 스위스 바젤 출신의 여성 작가 미리암 칸(Miriam Cahn)이다.
1982년 카셀 도쿠멘타, 1984년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 등 일찍이 세계 미술계 한가운데서 활약한 미리암 칸은 확신에 찬 페미니스트로서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며, 회화 작업에서 독자적 미학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겐 현대미술관(Museum für Gegenwartskunst Siegen)에서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수상 기념전은 <나의 유대인들(Meine Juden)>로,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인 여성으로서 존재, 젠더, 사랑, 섹슈얼리티, 폭력, 반유대주의, 전쟁과 도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작가가 특별히 디자인한 14개 전시실에서 강렬한 색채의 회화 작품부터 천장 높이의 초크 드로잉, 파스텔과 수채화 작품, 조각, 퍼포먼스 비디오, 초기 스케치 및 직접 쓴 텍스트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Mein Gepäck mit den Armen Meiner Grossmutter Tragen, 2022.
Courtesy of die Künstlerin, Meyer Riegger, Berlin/Karlsruhe und Galerie Jocelyn Wolff, Paris Photo by Heinz Pelz

미리암 칸의 작품 기저에는 인본주의가 깔려 있다. 여기에는 미리암 칸의 유대인 아버지와 비유대인 어머니가 모두 난민이었고, 어떠한 정치적 상황도 피해갈 수 없던 작가의 성장 배경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리암 칸에게 유대인은 자신의 정체성인 동시에 소속의 선택에 가깝다. 전시에 앞서 “오늘날 독일에서 ‘나의 유대인들’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밝혔듯, 작가에게 ‘유대인들’은 모든 약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던져온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질문은 전시 제목이 되어 전면에 등장한다.
미리암 칸의 작품은 어딘가 불편하고 불안하다. 이에 대해 작가는 공격적으로 보이기보다는 그저 화가 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업의 좋은 동력이 되는 분노는 에로티시즘과 잔혹성이 결합된 양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에서는 인종차별주의·반유대주의·성차별주의 같은 이데올로기가 드러나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뒤집어 양가적 해석을 만든다. 예컨대 출품작인 ‘할머니 팔에 들린 나의 짐(Mein Gepäck mit den Armen Meiner Grossmutter Tragen)’에서 강인한 여성을 상징하는 할머니가 짊어진 짐은 작가를 평생 따라다니는 ‘유대인’이라는 꼬리표로 읽히기도 한다.





<나의 유대인들>전 전경. Courtesy of die Künstlerin, Galerie Jocelyn Wolff, Paris, und Meyer Riegger, Berlin/Karlsruhe @Photo by Philipp Ottendörfer

미리암 칸은 걸프전과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리아 내전을 지켜보며 전쟁과 민중의 고통과 연관된 이미지를 탐구해왔다. 무기와 탱크, 원자폭탄 등은 1980년대부터 검은 분필 드로잉과 컬러 수채화 드로잉의 주제였다. 또 2015년 난민 위기 맥락에서 출발한 집의 상실, 해외 도피는 작품 ‘빨리 떠나야 한다!(Schnell Weg!)’에서 드러나듯, 겁에 질린 실존의 순간이다. 그리고 실존이라는 주제는 미리암 칸 작품의 트레이드마크인 벌거벗은 신체 이미지로 치환된다. 작가에게 누드는 사방에서 위협받는 벌거벗은 삶이다. 신체는 부분적 윤곽선으로만 표현되거나 분절된 상태가 대부분이다. 특정 제스처는 상징적인데, 가령 누워 있는 것은 꿈·섹스·부상·사망 등을 나타낸다. 열화상 카메라 촬영 기법처럼 노출되고 달아나는 신체를 밝고 음란한 색상으로 포착한다. ‘사라예보(Sarajevo)’에서는 4개의 두상이 안료와 접착제로 고정된 채 불안하게 뒤틀린 몸과 팽창된 짐 가방이 등장하는데, 붉게 빛나는 내부의 에너지는 작가의 영혼처럼 느껴진다.
마리암 칸은 생물학적 형태로서 젠더의 이분법적 분리를 재정의한다. ‘잘못된 색(色)들(Falsche Farben)’에서는 흑인 남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백인 여성을 보여줌으로써 흑인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풍자한다. 또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에서 머리가 없는 것을 젠더 관점의 결여로 본 작가는 ‘보여줘!(ZEIGE!)’에서 똑바로 앞을 바라보는 여성과 감춰진 성기를 보여준다. 섹스는 미리암 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도발적이고 외설스럽기까지 한 인체 묘사에서 사랑과 폭력성이 동시에 느껴진다. 여성의 자기 주도권을 역설해온 작가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함으로써 남성의 시선에 머물러온 전통적 신체 표현에서 탈피한다.





Schnell Weg!, 2021. Courtesy of die Künstlerin, Meyer Riegger, Berlin/Karlsruhe und Galerie Jocelyn Wolff, Paris @Photo by Heinz Pelz

미리암 칸에게 전시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신체를 그림 도구로 사용하는데, 종이 위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완성되는 작품은 짧게는 3시간, 보통은 이틀 내로 제작한다. 또 전시 공간에서 공연하듯 직접 작품을 배치한다고. 작가의 반복적 신체 사용은 전시장 곳곳에서 감지되며, 어디선가 이 작품과 전시를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안겨준다. 한편, 전시 작품은 눈높이에 맞춰 걸려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강렬한 눈빛은 아이 콘택트를 요구하지만, 우리는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다. 이러한 장치는 도리어 인물과 적정한 거리 두기를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는 여성, 도피하는 가족, 지중해에 익사한 난민은 모두 ‘나의 유대인들’이다. 낯선 사람으로 머무는 것, 익숙해지기 전 낯선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작가로서 미리암 칸의 모토다.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성별, 국적, 피부색, 종교와 상관없이 인류의 절대적 평등을 믿는다. 이 세상의 실존적 문제와 그 모순을 용기 있게 다루는 미리암 칸의 작품이야말로 현대사의 간극과 사각지대를 채우는 예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김정아(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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