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공공 미술과 커미션 프로젝트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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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4

런던의 공공 미술과 커미션 프로젝트

다채로운 문화 행사로 풍성한 가을의 런던. 그 중심에는 공공 미술과 커미션 프로젝트가 있다.

헤더 필립슨의 ‘THE END’. @Photo by David Parry PA Wire

해마다 런던 리전트 공원에서 열리는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을 비롯해 동시다발적으로 선보이는 다양한 기획전 외에도 가을의 런던 미술 신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다.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열린 마음만 있다면 만날 수 있는 공공 미술과 커미션 프로그램을 찾는 것만으로도 동시대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와 미술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2020년 트래펄가 광장의 네 번째 좌대 커미션(Fourth Plinth commission)으로 녹아내리는 크림 모양 조각상을 선보인 헤더 필립슨(Heather Phillipson)을 보자. 2021년 테이트 브리튼 커미션(Tate Britain commission) 프로젝트와 올해 터너상(Turner Prize) 후보로 지명되는 영예를 누리지 않았는가. 올가을, 런던 미술계를 대표하는 커미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올가을부터 네 번째 좌대 커미션을 장식할 삼손 캄발루의 ‘Antelope’. @Photo by James O Jenkins

네 번째 좌대 커미션: 삼손 캄발루(Samson Kambalu), 9월 14일부터 약 2년간
1805년 나폴레옹을 물리친 트래펄가 해전을 기념하고자 만든 트래펄가 광장에는 승전 영웅 넬슨 제독과 함께 영국의 역사적 인물들 동상이 있다. 총 4개의 좌대 중 윌리엄 4세의 기마상이 자리해야 할 곳은 예산 부족으로 오랜 기간 비어 있었고, 왕립예술협회(Royal Society of Arts)가 이 좌대를 예술 프로젝트에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1999년 마크 월린저(Mark Wallinger)의 작품 ‘Ecce Homo’가 그 막을 올린 네 번째 좌대 커미션은 런던시 주최로 시민들이 참여해 새로운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선정, 좌대에 올린다. 그동안 레이철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등 유명 작가가 거쳐간 이 프로젝트는 영국 공공 미술 커미션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올가을에는 영국 출신 작가 삼손 캄발루가 목사이자 민족운동가인 존 침렘브(John Chilembwe)와 선교사 존 촐리(John Chorley)가 함께 찍은 사진을 조형물로 재현한 ‘Antelope’를 공개한다. 당시 공공장소에서 흑인의 모자 착용을 금지했는데도 1914년에 찍은 사진 속에서 침렘브는 영국 선교사들과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식민주의의 부당한 역사에 맞선 침렘브의 정신을 기려 촐리 선교사는 실제 크기로, 침렘브는 훨씬 크게 표현했다. 영국의 ‘찬란한’ 과거를 추앙하는 트래펄가 광장에 식민주의의 아픔을 고발하는 작품을 세워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물론, 정치적 억압과 통제하에 고군분투한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프로젝트다.





세실리아 비쿠냐의 ‘Quipu Womb’(2017). © Cecilia Vicuña @Photo by Joe Humphrys
세실리아 비쿠냐의 ‘Bendigame Mamita’(1977). © Cecilia Vicuña;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테이트 모던 현대 커미션(Tate Modern Hyundai Commission):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10월 11일~2023년 4월 16일
2014년에 시작한 테이트와 현대자동차의 파트너십으로, 해마다 테이트 모던 터빈 홀(Turbine Hall)을 실험 무대로 삼아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 프로젝트다. 올해의 주인공은 칠레 출신으로 영화 제작자, 시인, 시각예술가, 행동주의자로 폭넓게 활동하는 세실리아 비쿠냐다.
1970년대 살바도르 아옌데에 맞선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칠레를 떠난 작가는 디아스포라적 자아와 조국에 대한 무상함을 전통적 재료와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번에도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표작 ‘Quipu’는 염색한 천으로 매듭을 만들어 정보를 기록하던 고대 안데스의 의사소통 체계를 차용, 공인된 역사 속 지워진 기억과 정체성을 되살리는 작품이다.
작가가 1970년대부터 오랜 시간 천착한 또 다른 작품 ‘Precarios’는 바닷가에서 자신을 둘러싼 바람, 그림자, 물의 감각을 표현하고자 작은 나뭇조각을 해변의 모래사장에 꽂아놓으면서 시작됐다. 여행하듯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자연 재료와 잔해를 공간의 빛이나 공기의 흐름 같은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유동하는 형상으로 구현한 작품은 인간의 착취로 고통받는 생태계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담긴다.
세실리아 비쿠냐는 “종(種)의 말살은 단순한 멸종이 아니라 그것이 내포한 아이디어와 관점의 몰살”이라고 말하며, 삭막하고 획일화된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발 빠른 관심을 촉구한다. 현시대의 당면 과제를 대하는 작가의 시적이고 섬세한 언어가 터빈 홀의 거대한 무채색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기대된다.





휴 로크의 ‘The Procession’ 테이트 브리튼 설치 전경. © Tate Photography (Joe Humprhys)

테이트 브리튼 커미션: 휴 로크(Hew Locke), 3월 23일~2023년 1월 22일
테이트 브리튼의 메인 홀 듀빈 갤러리(Duveen Gallery)를 활용하는 테이트 브리튼 커미션 역시 해마다 무료로 관람객에게 개방한다. 현재 휴 로크가 과거 유산과 현재의 역사적 연결 고리를 강조한 신작 ‘The Procession’을 선보이고 있다. 테이트 브리튼 공간이 반영한 미학과 역사, 특히 테이트 브리튼의 설립자로 설탕 정제 공장을 운영한 헨리 테이트(Henry Tate)를 출발점으로 삼은 작품이다.
실제 사람 크기의 조형물 150여 개가 줄지어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진짜 퍼레이드를 참관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기쁨의 축제 혹은 슬픔의 장례 행렬, 강제된 혹은 자발적 참여로도 읽힐 수 있다. 특히 카리브해, 노예무역, 자원 교환, 자연재해 등 여러 이미지를 콜라주한 강렬한 색감의 의상과 오브제가 조형적 아름다움을 넘어 역사적·문화적 상징성으로 가득한 집단적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후반 영국 제국주의 시기에 설립한 테이트 브리튼에서 세계화, 식민주의, 순례와 이주, 카리브해 문화의 정체성을 말하는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각기 다른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에서 또 다른 미래로 함께 전진해나가는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며 작품 옆에서 행렬에 참여한 듯 걸어봐도 좋겠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차재민(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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