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로의 여행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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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8

브르타뉴로의 여행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역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간. 이곳은 마치 숨은 보물 같은 매력을 지녔다.

위쪽 브르타뉴 공작의 성이 비쳐 보이는 분수 ‘물의 거울’.
아래왼쪽 낭트 식물원 입구까지 이어진 초록색 선을 활용한 장 쥘리앵의 위트 있는 작품.
아래오른쪽 캄브론 거리의 여자아이 동상. 동상의 인물이 되려고 올라서는 진취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프랑스 서부에 자리한 브르타뉴 지역은 좀 생소했다. 보통 프랑스 대표 여행지로 파리나 니스를 떠올리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이곳에서 한국인, 아니 동양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도시가 품은 찬란한 역사와 고유한 매력을 느끼며 곧 이곳의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과 루아르강을 따라 펼쳐지는 예술 작품들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고, 목조 가옥을 앗아간 대화재와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조선업으로 흥하던 도시가 망하고 되살아나기까지의 과정을 엿보기도 했다. 과거의 흔적과 현대가 뒤엉킨 브르타뉴는 복잡하고 다채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지역을 여행해야 하는 이유가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다.





위쪽 낭트 대학교와 예술 대학교 사이에 설치된 ‘In a Silent Way’.
아래쪽 마신 드 릴에 있는 카멜레온 기계. 관광객이 직접 조작해 움직일 수 있다.

 Nantes  예술의 도시로 거듭난 낭트
프랑스로 병합되기 이전 브르타뉴 공국의 주도이자 항만도시로 번영을 누린 곳, 18세기 조선업으로 번성하며 부를 쌓았으나 동아시아에 밀려 쇠하고 빛을 잃어버린 도시. 여기까지가 낭트의 과거다. 그럼 지금은? 도시 재생으로 빛나는 가치를 발산하는 예술의 도시이자 젊음의 도시이며, 떠오르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낭트는 행정적으로 페이드라루아르(Pays de la Loire)에 속하지만, 옛 브르타뉴의 주도였고 브르타뉴 공작의 성까지 있으니 브르타뉴 지역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문화 예술 도시 재생의 선례가 된 낭트를 거닐다 보면 자연스레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도로 위에 그려진 초록색 선을 따라가면 좀 더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다닐 수 있다. 무려 22km에 걸쳐 죽 이어진 이 선은 낭트의 주요 스폿들을 연결해놓은 장치. 초록색 선에 발걸음을 맡기면 지도 없이도 낭트를 속속들이 여행할 수 있다. 장 쥘리앵(Jean Jullien)의 시그너처 캐릭터 형태의 거대한 조형물이 곳곳에 재치 있게 놓인 공원, 18세기 건축양식의 미감이 드러나는 백화점 파사주 폼므레(Le Passage Pommeraye), 낭트 미술관, 브르타뉴 공작의 성과 성이 물에 잔잔히 비쳐 ‘물의 거울’이라 부르는 분수, 힙한 문화 공간으로 변모한 과자 공장, 현대미술 작품까지 과거와 현대의 상징들이 어우러진 것이 바로 낭트의 매력이다. 상점의 벽 간판 하나도 예사롭지 않고, 미술관과 공원에는 자유롭게 드로잉하고 있는 주민들을 보며 낭트가 왜 ‘예술의 도시’인지 알게 된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였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로컬 마켓이 너무나 궁금했던 까닭에. 장발장이 훔쳤다는 커다란 빵부터 유기농 식재료, 무심한 듯 놓인 꽃 등이 가득한 북적거리는 시장에선 정겹고 구수한 현지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마켓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일드낭트 구역이 나온다. 마치 다리를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대로 나눈 듯,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현대적 분위기가 풍기는 일드낭트는 인근의 섬을 메우고 재개발한 지역이다. 산업의 변화로 1980년대에 버려진 대형 공장과 창고, 조선소 부지를 새롭게 탈바꿈시킨 것. 힘을 잃었던 이 지역이 이제는 젊은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작업하고, 디자인 학교와 스타트업이 자리해 창의적 산업이 꽃피는 중심지가 되었다. 일드낭트에 왔다면 테마파크 마신 드 릴(Machines de l’le)은 꼭 들러야 할 명소. 버려진 공장과 조선소 건물을 허물지 않고 거대한 놀이공원으로 개조하고, 공장에서 쓰던 고철과 자재를 재활용해 동물과 곤충 기계를 만든 신비한 곳이다. 정글 같은 공간에 상상 속 동물과 곤충 형태의 기계가 움직이고, 방문객이 직접 조작할 수 있어 신선한 경험을 안겨준다. 다른 한편에는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해양 생물 회전목마도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이 신기한 세계를 즐길 수 있다. 낭트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 예술 도시 재생 사업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Travel Tip  낭트 주민이 사랑하는 레스토랑, 아틀랑티드 1874
낭트에서도 고지대에 위치해 루아르강이 한눈에 펼쳐지는 근사한 경관을 자랑하는 뷰 맛집이자, 미슐랭 1스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같은 건물 위층에는 숙박 시설도 운영하고 있어 경험해볼 만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쥘 베른 박물관, 다다시 가와마타 작가가 디자인한 에르미타주 전망대 등 관광 명소도 있으니 식사를 마친 뒤 둘러볼 것.





위쪽 루아르강에 잠긴 듯한 집은 현대미술 작품 ‘La Maison dans la Loire’.
아래쪽 라볼 인근 작은 마을 풀리겅 지역의 평화로운 전경.

 Saint Nazaire  강 위의 미술 작품을 따라, 생 나제르
낭트에서부터 프랑스에서 가장 긴 루아르강의 에스튀에르(estuaire,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 생 나제르까지 이어지는 길 위에는 그야말로 예술 세계가 펼쳐진다. 비스듬하게 반쯤 물에 잠긴 집 한 채,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 조형물, 가시만 남은 거대한 바다뱀 같은 현대 예술 작품으로 구성한 이 구간은 낭트 일대를 되살리기 위한 에스튀에르 프로젝트의 일환. 크루즈를 타고 2시간 반가량 60km에 이르는 길을 지나며 조선업으로 막대한 발전을 이뤘을 때 운영하던 공장 모습과 이제는 랜드마크가 된 크레인을 볼 수도 있고, 옹기종기 모여 형성한 마을, 정글같이 풀이 무성한 지역까지 전혀 다른 모습의 풍경이 스쳐간다. 종착역 생 나제르에 도착한 뒤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항구도시인 만큼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먹으니 더 맛있는 기분. 소화도 시킬 겸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잠시 여유를 누렸다. 내리쬐는 햇살은 따스했고, 대서양이 시원스레 바라보이는 경치를 즐기며 마음이 설다. 아름다운 해변은 휴양지로 더할 나위 없었는데, 알고 보니 생 나제르는 휴양지로 사랑받는 도시라고 한다. 프랑스인은 바캉스를 위해 평화로운 항구도시 생 나제르와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라볼(La Boule)을 방문한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처럼 유명 인사들에게도 인기 휴양지인 라볼에서 하루를 묵으며 잠시 이곳의 평화를 만끽했다. 수십 척의 요트가 묶여 넘실거리고, 밤중에는 가로등이 몇 곳 없는 덕에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며 황홀했던, 평화로운 동네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위쪽 생 말로에서 가장 오래된 성벽.
아래왼쪽 렌 시내에 현존하는 목조 가옥.
아래오른쪽 갈레트와 시드르.

 Rennes  찬란한 브르타뉴의 역사를 간직한 렌
라볼에서 렌으로 가는 길,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게랑드(Guerande) 염전에 들렀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사랑받는 게랑드 소금의 생산지. 이 드넓은 염전에서 일꾼들은 수고롭지만 100% 수작업으로 소금을 채취한다. ‘염전 일꾼의 집(La Maison des Paludiers)’을 방문해 이들의 땀방울처럼 고귀한 소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역사를 듣고 다시 렌으로 향했다. 렌은 브르타뉴의 주도인 만큼 규모가 꽤 큰 도시이자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 렌 시내의 광장을 거닐면 이 도시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목조 가옥, 1720년대에 일어난 화재 이후로 새로 지은 건물들과 브르타뉴 의회(Le Palais du Parlement de Bretagne)가 자리한다. 의회는 본래 낭트에 위치했으나 프랑스 편입 후에도 브르타뉴의 세력이 너무 강했던 터라 세력 분산을 목적으로 의회를 옮기면서 렌이 브르타뉴의 수도가 됐다고 한다. 그간 보았던 소박한 건물들과 다르게 의회 내부는 화려한 천장화와 벽화, 강렬한 색깔의 가구와 금으로 뒤덮은 센터피스 등으로 채워져 있어 당시 왕의 권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요즘 렌은 파리지앵 방문객이 많다. 파리에서 이곳까지 초고속열차(TGV)로 2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근처 휴양지 생 말로나 몽생미셸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좋기 때문이라고. 파리에서 차로 4시간 넘게 달려 몽생미셸에 도착하는 것보다, 렌을 방문해 이 도시의 매력을 즐기며 더 여유롭게 여행하는 것도 나름의 꿀팁이다.

 Saint Malo  푸르른 바다를 품은 도시, 생 말로
‘해적의 도시’라 부르는 생 말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무역이 활발하던 16세기, 외부로부터 침략 시도가 많아 정부에서는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주민 일부를 해적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생 말로는 눈독을 들일 만큼 아름다운 도시인 건 맞지만, 1660년대에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목조 가옥이 사라졌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포탄을 대거 터뜨려 또 한번 도시가 파괴된 아픔이 서려 있다. 바다를 곁에 두고 이어지는 성벽을 거닐다 보면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포탄과 요새를 발견할 수 있다. 생 말로의 바다는 해초 때문에 에메랄드빛을 띠어 무척 아름답다. 사실 감성에 젖어들기에는 바닷바람이 너무나 거세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미는 듯 강렬했다. 바람에 조금 지칠 무렵, 허기를 달래러 브레이즈 카페(Breizh Cafe)로 향했다. 브르타뉴는 갈레트와 크레페의 본고장이자 솔티드 캐러멜이 유명한 지역으로, 브레이즈 카페는 이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겸 아카데미다. 프랑스 전역에 여러 지점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갈레트 반죽에 들어가는 메밀까지도 직접 재배하니 지금껏 먹어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브르타뉴 정통 방식으로 즐기려면 우리나라 막걸리처럼 둥글넓적한 볼에 담아 나오는 사과주 시드르(cidre)를 꼭 함께 먹어보자.





 Mont-Saint-Michel  신비로운 섬, 몽생미셸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곳이라 만조 때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바위섬 위의 수도원. 입구에 도달하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하필 세찬 비바람이 내리쳐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버렸다. 다리가 없던 시절엔 뻘을 맨발로 건너며 수행의 일환으로 생각했다는데, 당시 수도사들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안개가 자욱이 끼고 해안선의 경계도 모호해 망망대해 속 미지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 빙글빙글 계단을 올라 맨 꼭대기의 예배당에 도착하니 어둑하고 웅장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절로 경건해졌다. 몽생미셸은 작은 성당에서부터 조금씩 커져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돼 색다른 느낌을 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생 말로에서 산 솔티드 캐러멜을 한 알 먹으며 그간의 여행을 음미해봤다.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맛이 꼭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브르타뉴와 닮은 듯 했다.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사진 김은주
취재 협조 프랑스 관광청, 에어프랑스, A Modern Journey through An Old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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