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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3

그라플렉스의 작품세계

그라피티와 그래픽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경계없는 아티스트, 그라플렉스

재미난 피겨 작품으로 가득한 자신의 스튜디오에 선 그라플렉스.

 그라플렉스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처의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 등 독특한 이력을 보유한 예술가 그라플렉스. 그는 회화, 조각, 설치, 일러스트, 아트 토이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간다. 몽블랑과 나이키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며 직접 ‘볼드’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작품에 등장시킨다. 작품에 재미와 즐거운 요소를 가득 담아내며 탄탄한 마니아 팬덤을 구축한 작가이기도 하다.





Ring My Bell, Spray Paint on Canvas, 80×80cm, 2020 © Grafflex

만화가를 꿈꾸셨다고요. 만화의 어떤 점을 좋아하세요?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봐요. 만화 속 세상에서는 과장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 재미가 있다면 모든 게 받아들여지는 곳이잖아요.

혹시 ‘재미주의자’세요? 네! 가끔 강단에 서거나 후배들을 만나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답은 “좋아하는 것을 그려라”예요. 작가로서 자리를 잡으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10년, 20년 할 수는 없잖아요. 만화 속 재미처럼 우리도 재미있는 걸 해야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죠. 재미는 정말 중요해요.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같은 상황을 보는 다른 시점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걸 즐기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저마다 차이가 있어서 흥미로워요. 각자 자신의 삶에선 주인공이지만 타인에겐 잘 보이지 않죠. 서로 소중히 여기는 것도 다르고 기쁨을 느끼는 포인트도 다르잖아요.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고 재미있어요. 가령 똑같은 상황에 부닥쳐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게 참 인간적인 거 같아요.

작가님이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궁금하네요. 자주 즐거움을 느끼는 편입니다. 눈이 없는 스마일을 그린 ‘Make Smile’ 연작은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한 지 약 4년 만에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작한 작품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도 느낀 만족감과 행복감을 작업에 담고 싶었어요. 눈이 없지만 웃고 있다는 건 특별한 이유 없이 행복한 상태예요. 자연스럽게 얻는 만족감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Make Smile’ 연작도 그렇지만, 작가님은 아이콘처럼 직관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그림을 그리잖아요. 다양한 요소를 종합해 단순한 구상 형태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준다면요? 다중적 의미를 가진 아이콘을 즐겨 만들어요. 예를 들면 원이나 네모를 사용하되, 구성이나 색을 바꾸며 의미가 달라지게 하죠. 마치 일기 쓰듯 작업하던 때가 있었어요. 하루의 일을 생각하면서 정형화된 아이콘을 그려봐요. 그러면 같은 동그라미라도 어제와 오늘 그린 게 다르거든요. 그런 식으로 트레이닝을 많이 했죠. 하지만 아이콘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는 건 경계합니다.

작품 하나의 의미에 가두고 싶지 않은 거죠? 작가가 설명하는 순간부터 그것밖에 안 보이니까요.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자 해요. 작품은 그릴 때까지는 내 것이지만 완성된 후에는 나름의 인생을 살기 위해 떠나는 것 같아요. 그림마다 자기 이야기를 갖는 데 매력을 느껴요.

전반적 작업 과정은 어때요? 예전과 지금의 방식이 달라요. 과거에 더 자유로운 그림을 그렸다면, 최근에는 그래픽 요소가 강하죠. 스케치는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까지 하고 스케치하듯 그래픽 툴을 열어서 기본 형태를 완성할 때까지 움직여요. ‘균형’을 중시하는 만큼 배치 방식을 많이 고민해요. 마음에 드는 형태가 나오면 캔버스에 옮겨 담는 작업을 합니다. 손으로 스케치하면 막상 그래픽으로 옮겼을 때 느낌이 달라서 이제는 무조건 그래픽 툴을 기초로 구성해요.





Rise, Spray Paint on Canvas, 130×130cm, 2022 © Grafflex

작가님을 대표하는 캐릭터 볼드도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나요? 예전에 아메바컬처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며 여러 캐릭터를 디자인했어요. 그때 아티스트로서 스스로 캐릭터를 만든다면 어떨지 고민해봤죠. 캐릭터를 만들 때는 상업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얼굴이 제일 중요해요. 하지만 나를 위한 캐릭터에선 그런 면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선에 팔다리만 달린 형상에서 시작했어요. 캐릭터에 볼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양한 시리즈로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캐릭터에게 일종의 자유로움을 준 것 같아요. 당시에 가장 원하는 것이 자유였고요. 볼드는 제 분신이자 롤모델이에요. 다시는 디자이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담대한 의지도 볼드라는 단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저에게 처음의 각오와 이야기를 꾸준히 상기하게 해줄 그런 존재랄까요.

하지만 그 경험이 작가 생활을 하는 데 분명 자양분이 됐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줬어요. 덕분에 모든 걸 3D로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가지 툴을 다룰 수 있고,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 좋은 점이 많았죠. 그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지 제대로 깨달았다는 점이 제일 좋아요. 회사에 다닐 때는 한 달에 한두 점 완성하기도 쉽지 않으니까 너무 그림을 그리고 싶더군요.

캐릭터 외에 선의 사용이나 화면 구성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요? 비율이 중요해요. 작은 그림이든 큰 그림이든 선의 두께는 똑같았으면 해요. 초대형 작품인 경우에는 달라지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캔버스 사이즈에 상관없이 선의 두께를 똑같이 그려요. 그림이 커지면 밀도가 높아질 뿐이에요. 비율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는 게 좋아요.

색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최근 색감이 조금 달라졌어요. 초기엔 완벽한 원색을 썼거든요. 사실 그래픽 툴로 특정한 색감이나 효과를 넣기는 쉬워요. 버튼 한 번만 누르면 톤을 바꿔서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질감 표현도 마찬가지죠. 멋있어 보이는 그림을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 걸 없애고 싶었어요.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원색이라 해도 구성과 균형에 최대한 집중하는 거죠.

그럼 좋아 보이는 그림 말고 좋은 그림은 어떤거라고 생각하세요? 기분 좋은 그림인 것 같아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작품처럼 보기만 해도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당연히 좋은 그림이죠.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재미를 추구하는 만큼 그림에서도 똑같이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집 현관 근처에 스마일을 가득 그린 작품을 걸었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거든요. 기쁨과 재미를 전하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스트리트 컬처와 예술 신을 넘나드는 일군의 동시대 작가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디자이너로 출발했으니 그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그림에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이 결국 그림에도 궤적을 남겨야 한다고 믿거든요. 단순히 유행에 영합하기보다는 왜 그림을 그리는지 고민하고 제 안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2023년 계획은 세웠나요? 개인적으로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작업의 세계관을 바꿔보려고 하거든요. 우선 3월에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오랜만에 개인전을 앞두고 있어요. 작업실도 옮길 예정이고요. 스케줄을 비우고 압박감 없는 상태로 그림도 실컷 그리려고요.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진행 노블레스 컬렉션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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