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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 2023-04-06
저 바다에 음률이
청량한 바닷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거리 곳곳엔 벚꽃이 흩날리는 통영의 아름다운 계절엔 다채로운 현대음악의 향연이 펼쳐진다.

위쪽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 SihoonKim
아래왼쪽 이번 음악제 기간에 파치 앙상블의 아시아 초연이 열린다.
아래오른쪽 체코 출신 아다멕이 직접 개발한 악기 ‘에어머신’.
소설가 박경리는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며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여건을 갖춘 곳”이라고 했다. 백석은 시 ‘통영’에서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으로 통영을 묘사했다. ‘코발트블루 화가’ 전혁림은 평생을 캔버스 가득 새파란 물감으로 통영 바다를 그렸다. 쪽빛 바다가 낳은 예술가 중 윤이상은 지역과 정서적 결속력이 가장 강한 작곡가다. 그는 한국 전통음악의 연주 기법과 서양 악기를 접목했고, 도가 사상·정중동·음양설 등 동양 사상을 기반으로 서양 현대음악을 전개해 20세기의 중요한 작곡가로 꼽힌다. 통영은 윤이상의 업적을 기리고 예술 정신을 잇기 위해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를 열었다. 그리고 지난해 20주년을 맞았다. 그사이 통영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2015년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로 선정되었고, 유럽의 여러 유력 매체에서 통영국제음악제를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소개하기도 했다.
작년, 재단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음악제를 새롭게 전환하고자 독일에서 활동 중인 작곡가 진은숙을 예술감독으로 선임했다. 부임 당시 그녀는 “통영국제음악제는 이미 해외 음악가 사이에 아름다운 자연과 훌륭한 음악, 윤이상의 예술혼이 어우러진 축제로 알려졌다”며 “음악제가 더 국제적 규모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진은숙 감독이 부임한 첫해 ‘다양성 속 비전(Vision in Diversity)’을 주제로 펼친 음악제는 음악적 요소 못지않게 비주얼을 접목했고, 현대음악뿐 아니라 국악 같은 전통음악도 프로그램에 포함했다. 하지만 스무 살 잔치는 일부 성공했고, 일부는 아쉬움을 남겼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예정된 음악가 중 일부가 통영에 올 수 없었고, 매주 바뀌는 정부 정책과 규정으로 공연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3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진행하는 올해 음악제는 진은숙 감독이 첫해에 이루지 못한 바람을 성취하는 축제가 될 것이다. 지난해 그녀가 공들였지만 끝내 참여하지 못한 파치 앙상블의 아시아 초연이 이번 음악제 기간 세 차례 열리고, 올해 음악제의 주제 ‘경계를 넘어(Beyond Borders)’와 어울리는 소리꾼 이희문의 국악 공연도 차질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20세기 미국 작곡가로 명성을 높인 해리 파치가 발명한 악기와 한 옥타브를 43음으로 나눈 미분음 음계 등을 사용한 파치 앙상블의 연주는 전통과 기술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최근 사랑받는 현대음악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왼쪽 진은숙 예술감독. © Priska Ketterer
오른쪽 상주 연주자로 참여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 Marco Borggreve
이 외에도 다양성과 함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제의 목표는 프로그램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 회화, 현대음악이 어우러진 온드레이 아다멕의 작품 ‘디너(Le Dner)’ 아시아 초연 역시 장르의 ‘경계 없는’ 무대로 기대를 모은다. 상주 작곡가로 이번 음악제에 참여하는 체코 출신 아다멕은 직접 개발한 악기 ‘에어머신’을 사용해 이색적인 무대를 보여줄 예정이다. 또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제안으로 공동 제작한 ‘북 오브 워터(Book of Water)’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기후 변화를 주제로 음악뿐 아니라 연기와 영상이 어우러진 극무대로 펼쳐진다. 네덜란드 작곡가 미셸 판데르 아가 작곡과 연출, 대본을 맡은 2021~2022년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처음 선보인다.
그리스 출신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최근 지휘자로 출사표를 던진 스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상주 연주자로 음악제에 참여한다. 이들이 연주할 곡으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세기의 작곡가 조르지 리게티와 탄생 150주년을 맞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주요 작품이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어 있다. 특히 4월 1일 공연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II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과 교향곡 1번 외 윤이상의 ‘교향악적 정경’을 아시아 초연해 음악제 공연 중 가장 먼저 티켓이 매진되었다. 상주 연주자들은 개·폐막 공연으로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I·III에도 참여한다.
한편, 지난 2월 7일부터 12일까지 프랑스 공영방송국 라디오 프랑스에서 주최하는 ‘2023 프레장스 페스티벌’에서는 진은숙 예술감독을 집중 조명했다. 올해로 33회째인 프레장스 페스티벌은 매년 20세기 후반 이후의 작곡가 중 한 명을 집중 조명하는 ‘작곡가의 초상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올해 처음으로 아시아 작곡가로 진은숙을 선정했다. 이곳에서 그녀의 2021년 작품 바이올린협주곡 2번 ‘정적(靜寂)의 파편’이 연주되었는데,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그 공연을 만날 수 있다. 폐막 공연(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III)으로 아시아 초연한다.
통영은 물리적 거리로 결코 가까운 곳은 아니다. 그러나 온화한 봄 바람을 가르며 쪽빛 바다 위를 넘실대는 클래식의 향연을 직관하는 묘미는 지금 아니면 누릴 수 없을 터. 국내 대표 음악제를 넘어 국제 현대 음악제로 나아가는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라인업은 먼 걸음도 기꺼이 감수할 만하다.

기후 변화라는 주제를 음악·연기·영상으로 펼쳐내는 ‘미셸 판데르 아: 북 오브 워터’.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글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