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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9

아주 사적인 방

전 세계 명사의 개인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해온 작가 프랑수아 알라르의 은밀한 초대에 응했다.

위쪽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 프랑수아 알라르.
아래왼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 아일린 그레이의 주택.
아래오른쪽 폴 세잔의 아틀리에. 생전에 세잔이 즐겨 사용한 화구와 정물이 그대로 보존됐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죠? 전 세계 아름다운 건축물과 아티스트의 공간을 촬영하는 만큼, 작가님의 눈에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비쳤는지 궁금합니다. 카메라에 담고 싶은 뭔가를 발견했는지도요. 현대적 분위기 속에 고궁 등 역사적 건축물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시아 주변국이 장식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한국은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미를 따르는 듯하고요. 그 모든 것이 집약된 달항아리의 순수한 형태는 꼭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네요.(웃음)
피크닉의 새 전시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ee)>(~7월 30일)에서는 코코 샤넬의 아파트,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실 등 비밀스러운 공간 사진 200여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짚고 싶어요. 추측하자면, 매거진 촬영으로 명성을 높이던 시절 취향 좋은 이들의 공간을 방문해 그곳을 찍고 싶다는 열망이 컸을 것 같습니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면, 인테리어 일을 하던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고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아름다운 집에서 자란 성장 배경이 제 작업을 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제 할아버지는 프랑스에 처음으로 한지를 수입한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덕분에 어릴 적 제 방은 여러 종류의 한지로 꾸몄고요. 알게 모르게 인테리어 감각을 익힌 거죠. 또 어릴 때부터 건축지나 패션지에서 사진 구경하는 걸 좋아했어요. 사진작가별로 독창적 면모가 돋보였는데, 저 또한 그런 작업을 하길 바랐습니다.
현재 개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생각을 한층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일까요? 개인 작업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긴 해도 딱히 상업 작업과 구분하지는 않아요. 누군가의 요청으로 사진을 찍을 때도 반드시 저만의 것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인 피터 린드버그를 비롯해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그렇게 작업한다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에 사진이 실려도 그 작가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요.
어떤 공간에 마음이 끌리나요? 평소 그런 매력적인 공간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저는 행복한 우연을 믿어요. 공간을 찾는 데 어떠한 규칙도, 제한도 두지 않아요. 그게 노하우라면 노하우겠죠. 한국에 오기 전엔 노구치 이사무의 집을 찍었는데,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15년이 걸렸어요.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올바른 입구를 찾는 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입구’라는 표현이 어딘가 시적으로 느껴집니다. 아직도 입구를 찾고 있는 공간이 많아요. 좋은 공간을 만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니까. 하고자 하는 의지도 중요하고요. 모든 게 입구에 포함되는 개념이죠. 물론 간절히 바랐지만 막상 가보면 실망하기도 하고, 기다림 이상의 가치를 선사하는 곳도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어진 시간을 적절히 다루는 것입니다.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음을 알고, 한 공간을 생각하다가도 다른 공간으로 시선을 돌려보기도 하는 거죠.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탐색하고 구도를 잡아 촬영하는지 궁금합니다. 셔터를 누르는 시간은 찰나지만, 그전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집주인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진 않습니다. 내 집을 찍게 놔두겠다는, 또 그 집을 찍겠다는 양측의 합의만 있을 뿐이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것처럼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는 본능의 역할이 커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저를 이끌어주는 것이 있어서, 그 순간 사진은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집니다.
본능에 따르기 때문일까요? 작가님의 작품을 모아서 보니 ‘기법적으로 어떤 작가다’라고 소개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아일린 그레이의 집을 촬영할 때는 공간을 과감히 클로즈업하는 방법을 택했고, 치나티 재단 미술관은 광활한 대지에 건설한 미니멀리즘 성지 자체로 그려냈죠. 즉 사진마다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은 작업할 때 주연보다는 조연을 자처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스타일이 달라 보였다면, 공간 자체보다는 공간과 관련된 인물의 내면을 담는 데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드러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생각대로 기록하고 해석함으로써 내가 본 것을 다른 이도 보게 하는 거죠. 그 수단이 반드시 사진일 필요는 없어요. 최근 사진에 페인팅을 더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기존 작업보다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습니다. 사진과 회화 사이 연결 고리를 찾는 일도 즐겁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일에 자부심을 갖고 내면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작업을 볼 수 있기도 하고, 출품작을 고르며 사진을 찍던 순간이 다시금 떠올랐을 것 같아요. 유독 기억에 남는,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아를 자택을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이요. 이곳을 소개하면, 열여섯 살 때부터 촬영한 모든 사진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아버지가 수집한 부처님상, 안드레 빌라스가 찍은 피카소의 손 사진, 첫 월급으로 구입한 사이 트웜블리의 ‘로만 노트(Roman Notes)’까지. 제 세계가 응축된 공간이라 자화상처럼 느껴져요. 2020년 봄,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봉쇄된 기간 아를 자택에 오랜 시간 머물렀어요. 그때 <뉴욕타임스>에서 집 안 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곧이어 집 안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공간에서 다른 이들의 프라이빗함을 존중하며 촬영했듯, 제 공간도 그렇게 접근했어요. 동시에 ‘프리베’는 ‘친밀함’이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있는데, 사적이면서도 친밀한 공간을 보여주고자 했죠. 이때 찍은 사진을 엮어 <아를에서의 56일>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미지로 회고록을 작성한 느낌이더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새는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라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다만 더 나은 사진을 원한다면 스스로 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뭔가 ‘쓰고자’ 하는 것이 있어야 하죠. 한 문장에 그치는 것이 아닌, 책 한 권을 쓴다고 상상해보세요.





아를 자택에서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자가 격리 기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이대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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