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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3

두 사람, 하나의 예술

앤디워홀과 바스키아가 만나다.

Exhibition View of <Basquiat×Warhol, Painting Four Hands> at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2023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1928년에 태어난 앤디 워홀(Andy Warhol)과 1960년에 태어난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두 예술가는 32년이라는 나이 차에도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이자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 동료였다. 애석하게도 워홀이 죽은 지 1년 만에 바스키아도 유명을 달리할 만큼 둘은 마치 운명처럼 서로 연결돼 있었다.
지난 4월 5일,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Basquiat × Warhol. Painting Four Hands>전이 막을 올렸다. 9월 28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두 예술가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자리다. 2018년 바스키아 전시를 개최해 약 7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은 루이 비통 재단은 그 후 지속적으로 그의 작품을 연구했고, 그 결과물에 워홀과의 협업 작품을 더해 이 전시를 준비했다. 이 두 예술가의 개별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모두 미술계뿐 아니라 대중의 인기까지 사로잡았으니까. 하지만 이들이 함께 작품을 완성했다는 건 의외로 모르는 이가 많다.





Jean-Michel Basquiat, Andy Warhol, Collaboration No. 19, 1984~1985. Courtesy of Zidoun-Boussuyt Gallery, Luxembourg ©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3

워홀과 바스키아는 1984년과 1985년 2년에 걸쳐 무려 160여 점에 이르는 그림을 함께 그렸다. 이들의 첫 번째 협업을 떠올려보면 그 사이엔 원래 한 명의 인물이 더 있었다.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다.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완성한 캔버스를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협업했는데 함께 작업하는 동안 워홀과 바스키아는 친한 친구가 됐고, 나중에는 클레멘테 없이 100점이 넘는 그림을 함께 완성했다. 워홀이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사용해 캔버스에 팝아트의 상징이나 뉴스 헤드라인을 담으면, 바스키아는 그만의 신표현주의 스타일로 작품에 상징, 그림, 단어 등을 더했다. 둘은 사전에 논의하지 않고 교대로 자유롭게 작품에 각각의 레이어를 얹어나갔고 책, 잡지, 신문, 텔레비전, 광고, 의학 다이어그램 같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자유자재로 차용했다. 원래 워홀은 1950년대부터 친구나 어시스턴트와 함께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지만, 바스키아와 함께한 그림은 조금 남달랐다. 워홀 고유의 팝아트 작품 위에 바스키아의 스타일을 마구 표현하는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이 전시에선 두 작가가 공동 서명한 캔버스 80점을 포함해 300점 이상의 작품과 관련 문서를 대거 선보인다. 또 1980년대 뉴욕 미술계의 에너지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두 작가의 개별 작품뿐 아니라 키스 해링(Keith Haring), 제니 홀저(Jenny Holzer), 케니 샤프(Kenny Scharf), 마이클 헐스번드(Michael Halsband)의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1985년에 열린 바스키아와 워홀의 전시 포스터였던 마이클 헐스번드의 유명한 사진 시리즈 ‘복싱 글러브’도 만날 수 있다.
생전에 바스키아는 워홀을 예술계의 핵심 인물로 여겼으며 예술의 대중화를 이끈 새로운 언어의 창시자로서 그를 존경했다. 워홀 또한 바스키아의 그림에서 새로움을 발견했고, 바스키아의 영향으로 다시 대형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Jean-Michel Basquiat, Andy Warhol, OP OP, 1984~1985. Courtesy of Zidoun-Boussuyt Gallery, Luxembourg ⓒ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 Licensed by ADAGP, Paris 2023

개성 강한 두 아티스트가 이렇게 100여 점의 작품을 함께 완성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들의 협업을 가까이서 지켜본 주변인들의 증언은 예사롭지 않다. <Warhol: The Biography>(1989)에서 워홀의 어시스턴트 로니 커트론(Ronnie Cutrone)이 둘의 협업을 묘사한 장면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것은 미친 예술 세계의 결혼 같았고 그들은 이상한 커플이었습니다. 그 관계는 공생적이었죠. 장-미셸은 앤디의 명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앤디는 장-미셸의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장-미셸은 앤디에게 다시 반항적 이미지를 가져다주기도 했죠.”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키스 해링은 이렇게 밝혔다. “장-미셸과 앤디는 건강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장-미셸은 앤디의 철학을 존중했고 그의 업적, 숙련한 색깔과 이미지에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앤디는 장-미셸이 쉽게 그림을 구성하는 것, 끊임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흐름에도 놀라워했습니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능가하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건 말 대신 물감으로 이루어지는 물리적 대화였습니다”라고.
마지막으로 앤디 워홀이 1984년에 출판한 책 <The Andy Warhol Diaries>에서 직접 밝힌 소회를 덧붙인다. “바스키아는 내가 다르게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었다(Jean-Michel got me into painting differently).” “그래서 아주 좋다(So that’s a good thing)”고 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두 천재의 긍정적 시너지를 이룬 만남이 올여름 파리에서 다시금 꽃피운다니, 당장이라도 파리로 달려가고 싶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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