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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7

BEYOND THE MOVIE

칼럼니스트 정준호가 <사운드 오브 뮤직>을 통해 변함없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위쪽 ‘도레미 송ʼ의 배경지 미라벨 정원.
아래쪽 잘츠부르크 축제 극장이 된 마구간.

부활절 축제 기간 잘츠부르크에 체류하며 <탄호이저>를 관람했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잘츠부르크 하면 모차르트와 함께 떠올리는 좋은 생각(마이 페이버릿 싱, My Favorite Things)의 대부분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다. 훈훈한 가족애와 동화 같은 풍경, 꿈속 같은 음악이 어우러진 고전 영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주저 없이 좋아하는 영화로 꼽기도 하지만, 외려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 한 번도 보지 않았거나 싫어한다는 사람도 가끔 만난다.
필자가 얼마 전 잘츠부르크를 다시 방문해 묵은 호텔 직원 게오르크의 말대로 이 도시의 겉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촬영 중 줄리 앤드루스(마리아 수녀 역)가 묵은 자허 호텔에는 ‘마이 페이버릿 싱’ 가사 속 ‘바삭한 애플파이(crisp apple strudel)’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크리스토퍼 플러머(폰 트라프 대령 역)가 머문 맞은편 브리스톨 호텔은 자허의 유명세가 못마땅한 듯 짐짓 거만해 보였다. 두 호텔 옆에는 또 다른 명물인 잘츠부르크 인형극 창시자 안톤 아이허가 설립한 잘츠부르크 인형 극장이 있다. 줄리 앤드루스가 이곳에서 인형극을 본 뒤 <사운드 오브 뮤직>에 한 장면만 꼭 넣자고 피력해 급조된 것이 음악 ‘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Goatheard)’다. 영화에서 인형극은 트라프 대령이 아내를 잃고 오랫동안 멀리해온 음악을 다시 불러오는 존재다. 내친김에 열린 무도회에서 가정교사 마리아는 대령과 오스트리아 민속춤인 렌들러를 추는데, 이때 나온 곡이 바로 ‘외로운 양치기’의 세 박자 편곡이다. 잘츠부르크와의 연결 고리는 이뿐 아니다. ‘도레미 송’으로 각인된 미라벨 궁전 정원에는 아이허의 명판이 붙어 있고, 트라프가 아이들의 음악성을 알아보고 이들을 합창 대회에 참가시키는 등장인물 엉클 막스는 막스 라인하르트를 모델로 했다. 그는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함께 1920년 잘츠부르크 축제를 창설한 3인방인데, 극 중 대령의 가족이 우승한 합창 대회 장면의 배경인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와도 연관이 있다. 암벽을 깎아 만든 승마 갤러리를 무대 전면으로 바꾼 인물이 바로 라인하르트인 것. 트라프 가족은 합창 대회가 끝난 뒤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들이 나치군에게 쫓기다 숨은 수녀원 묘지도 실제로 극장 바로 옆 성 베드로 수도원 묘원이다. 이렇게 <사운드 오브 뮤직>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잘츠부르크는 돌아서는 골목마다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해 탄성을 자아낸다.





여름 음악 축제 개막 공연이 열리는 잘츠부르크 대성당 광장.

필자가 잘츠부르크를 처음 방문한 1993년, 현지 방송에서 우연히 독일 영화를 보았다.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을 맞은 1956년 현지에서 촬영한 서독 영화 <트라프 가족(Die Trapp-Familie)>이었다. 3년 뒤 1959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나왔고, 이를 토대로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발표되었으니 <트라프 가족>이 훨씬 앞선 작품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뮤지컬은 아니지만, 워낙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 이야기라 <트라프 가족>에도 귀에 익은 독일 민요와 가곡이 줄을 잇는다. TV에서 스치듯 본 것뿐이지만, 그 뒤로도 이 영화는 필자의 머릿속 깊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어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자마자 영화를 수소문했다. 그사이에도 <사운드 오브 뮤직>은 수없이 많이 봤고, 작품의 만듦새와 배우들의 이면 등 많은 정보를 접했다.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트라프 가족> 등장인물은 가족처럼 친숙했다. 새엄마 마리아 수녀의 회고록에 기초한 두 영화를 비교하며 새롭게 알게 된 점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앞 이야기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라프 대령은 해군으로만 알려졌을 뿐 자세한 배경은 나오지 않는다. 바다가 없는 오스트리아인데, 웬 해군일까? 정확히 말해 트라프 대령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해군 잠수함 함장이던 실존 인물이다. 그 무렵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와 크로아티아가 면한 아드리아해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오스트리아에 아드리아해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트라프 대령의 잠수함은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게오르크 폰 트라프는 1880년 달마티아 지역 차라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이어 해군에 복무하며 1911년 영국계 오스트리아인 아가테 화이트헤드와 결혼했다. 당시 영국의 조선 기술자였던 아가테의 할아버지 로버트 화이트헤드는 아드리아해에 자리 잡고 자신의 이름을 본뜬 ‘화이트헤드 어뢰’를 개발해 오스트리아 해군에 납품했다. 영국계 군수 기업 가문이 적성국이 될 오스트리아 해군 장교 집안과 연을 맺은 것이다. 알다시피 황태자의 암살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는 패했고, 제국은 해체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라프 가족은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탈출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탈리아 북부로 가서 미국행 배를 탔는데, 전쟁 후 대령의 고향 차라가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면서 트라프가 이탈리아 시민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위쪽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 헬브룬 궁전.
아래쪽 <사운드 오브 뮤직> 속 폰 트라프의 저택을 찍은 레오폴츠크론.

2015년에는 또 다른 영화가 나왔다. 트라프 가족의 큰딸 아가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트라프 가족: 라이프 오브 뮤직>이다.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가테에 따르면, 새엄마의 존재감은 전작만큼 크지 않다. 엄마 대신 가족을 돌보는 데 지친 그녀에게 새로운 엄마가 생겼더라도 서로 다른 세상에 살던 이들의 만남이 그리 원만하진 않았을 터. 아가테는 엄마를 잃은 뒤 다시는 노래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우연히 축제에 참여한 소프라노 로테 레만의 눈에 띄어 가족과 함께 합창 대회에 나간다. 그리고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향한 트라프 가족은 순회 합창단으로 어렵사리 생계를 꾸려나갔다. 마냥 떠돌 수 없던 이들은 고향과 자연환경이 비슷한 버몬트에 정착해 미국에 온 고향 사람에게 집처럼 편안한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호텔(Trapp Family Lodge)을 열어 오늘에 이른다.
필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처음 본 뒤 근 40년 동안 이 가족의 이력에 대해 모르는 것이 거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것이 궁핍하던 시절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디즈니 영화는 현실 도피처였던 셈이다. 반대로 선진국에서 자라 시청각의 홍수 속에 사는 MZ세대는 어떨까? 최소한 영화를 보고 노래를 따라 하거나 잘츠부르크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까? 예술가에 대한 처우가 지금과 달랐던 당시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를 홀대해 쫓아내다시피 했다. 훗날 그의 고향에서 시작한 음악제는 원래 호젓한 음악의 고향으로 돌아가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오늘날 축제 기간은 호젓하기는커녕 허영과 허세를 좇는 물결로 넘실댄다. 그 때문에 진지한 음악가들은 다시 잘츠부르크를 떠나 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새 공간을 열었을 정도다. 트라프 가족에게도 잘츠부르크는 잠시 살았으나 고향도 아닌, 오히려 힘든 기억이 많은 장소였다. 잘츠부르크를 동경하게 만든 건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장면이었을 뿐이다.
공원에서 만난 토박이 노신사는 미라벨 궁전 옆에 짓고 있는 현대식 스파를 가리키며 혀를 찼다. 동대문의 복합 문화 공간이 연상되는 알루미늄 외관의 거대한 스파는 분명 이 도시의 이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에게 게트라이데 거리 끝에서 ‘K-뷰티’라는 간판을 보았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밖은 늘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많은 ‘K’를 내세우며 문화 강국임을 자처하는 우리는 청담동에서, 이태원에서, 홍대에서 무엇을 낳을 수 있을까?





위쪽 성 베드로 수도원 묘원.
아래쪽 마르코 파인골트 다리에서 바라본 자허 호텔.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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