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의 예술적 여정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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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7

뮌헨의 예술적 여정

칼럼니스트 정준호가 전하는 뮌헨의 가치.

마이클 잭슨 추모 공간이 된 오를란도 디 라소의 동상.

지난 부활절, 서울에서 유럽 여행을 연재하는 동안 현지에선 잘츠부르크 여름 축제가 한창이었다. 직접 가지 않아도 구독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주요 공연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현장감을 제일로 삼는 사람이라면 관심 없겠지만, 나처럼 ‘바로 지금 여기’가 더 중요한 이에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영상물은 현장에서의 감상 못지않게 의미 있다. 심지어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는 오페라 가수의 얼굴과 표정까지 영상 속에는 낱낱이 드러나니까. 바이에른 방송에서 생중계하는 오데온 클래식 콘서트와 바이로이트에서 공연한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손바닥 보듯 쉽게 살펴보며 부활절 뮌헨에서의 여정을 추억했다. 원래는 뮌헨에서 린더호프로 갈 계획이었다. 린더호프는 독일 남부의 동화 같은 성. 달력 그림으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이나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루트비히>에 나오는 헤렌힘제처럼 바그너 신봉자였던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 국왕이 지은 성이다. 린더호프에 가려면 오버암머가우라는 소도시를 거쳐야 한다. 목각 성물(聖物)로 유명한 이 도시에서는 10년에 한 번 도시의 역량을 총동원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는 무대 공연을 펼친다. 무려 400년 가까이 이어진 오버암머가우의 수난극이지만, 2020년 시즌이 코로나19로 연기되는 바람에 작년에 겨우 열렸다. 다음 공연은(또 다른 환란이 없다면) 2030년에야 다시 만날 수 있겠으나 수난극 없이도 부활절을 맞아 이 도시에 가는 기분은 색다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인가! 날씨도 궂고 차도 놓치는 바람에 오버암머가우며 린더호프며 다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낯익은 시내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뮌헨이니 말이다.







렘브란트의 '그리스도 생애 연작' 중 일부.
뒤러의 자화상.
'이수스 전투' 일부분.
비텔스바흐 분수.


피나코테크로의 여행
독일의 관문은 프랑크푸르트라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내게는 뮌헨이 그런 존재다. 뮌헨을 방문할 때면 늘 먼저 찾는 곳이 바로 회화관을 이르는 ‘피나코테크’. 고전 미술 위주로 다루는 ‘알테 피나코테크’와 근대미술을 전시하는 ‘노이에 피나코테크’, 현대미술관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중에서도 특히 알테 피나코테크를 가장 좋아한다. 더욱이 이번 방문 때는 내부 단장으로 알테만 문을 열었고, 다른 곳의 주요 작품도 이곳으로 옮겨 전시 중이던 터라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다. 좌우로 나뉜 높은 계단을 올라 첫 방에서 화사한 여인의 전신화를 마주했다. 언제 가도 미술관 안주인처럼 맞이하는 모습이 여전히 반가운, 온통 장미로 꾸민 비취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은 루이 15세의 왕실 정부였던 퐁파두르 여후작이다. 왕비에게 후사를 얻은 국왕에게 연인이 공인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퐁파두르 부인은 단순한 애인에 그치지 않고 뛰어난 식견으로 대외 정책에 관여한 인물. 이 외에도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첫째로 치는 그림들은 퐁파두르 부인 전신화 반대편 끝에 있다. 많은 방을 지나면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이수스 전투’, 한스 멤링의 ‘성모마리아의 일곱 가지 기쁨’, 렘브란트의 ‘그리스도 생애 연작’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수스 전투’를 보고 있자면 기원전 333년의 고사를 현재로 소환하는 듯하다. 장엄한 산세와 바다 너머로 해가 지는 전장의 한가운데에 황금 갑옷을 입고 박차를 가하는 이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의 추격에 전차를 타고 도망치는 이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다. 이처럼 역사나 성경의 정경을 대자연과 함께 녹인 화풍을 일컬어 세계 풍경화라 부른다. 하이라이트를 더 큰 그림 속에서 조명하려는 인간의 오랜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한스 멤링이 그린 ‘성모마리아의 일곱 가지 기쁨’도 마찬가지다. 수태고지와 동방박사의 경배,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의 승천 같은 이야기가 한 폭의 풍경 위에 빽빽이 자리하며, 마치 당대 신비극을 위한 스토리보드처럼 보인다. 렘브란트의 ‘그리스도 생애 연작’은 어떤가. 그리스도의 일생을 여섯 폭으로 나눠 그렸지만, 방식은 멤링과 같다. 이 연작의 특징은 렘브란트의 몇몇 그림과 마찬가지로 화가 자신을 그려 넣은 점인데,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주검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무리 중 하나이자 수난 현장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코러스의 일원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계 풍경화와 예술가 자아의 확대는 근대 ‘세계문학’ 및 ‘교양소설’의 등장에 상응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주창한 세계문학이란 그저 각국 언어로 된 전집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현대문학을 통해 세계사를 조명하자는 거대한 청사진이며, 대개 주인공은 영웅호걸이 아닌 편력으로 교양을 쌓은 작가 자신이다. 더 나아가 세계 풍경화와 세계문학이 결합하면 좀 더 큰 짜임새가 완성된다. 바그너는 이미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을 ‘무대신성축제극’이라 칭해 연극과 음악 등 모든 예술을 하나로 결합한 바 있다. 장차 탄생한 여러 예술 작품의 이론적 토대가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여왔음을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보수 중이라 몇몇 작품을 옮겨 전시 중인 덕에 가장 좋아하는 조반니 세간티니의 ‘밭갈이’로 종종걸음 쳤다. 알프스의 넉넉한 품속 두 필의 말에 쟁기를 달고 고랑을 파는 농부들은 가족일까, 이웃일까? 세간티니의 치열한 붓질에는 농부의 땀방울에 부끄럽지 않을 노력이 배어 있는 듯했다. 늘 보던 그림 외 새로 발견한 것도 많았다. 그간 간과했던 아담 엘스하이머의 ‘이집트로의 피신’이 그렇다. 얼마 전에 나온 고음악 앨범 표지가 바로 그의 작품 속 월출 장면에서 따온 것임을 알고 실물을 보니 반가울 수밖에. 마침 음반의 첫 곡은 오페라 예술의 씨앗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음악. 르네상스 작곡가 피에르 베르들로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희곡 <만드라골라>의 소네트(짧은 시가)에 붙인 ‘오 달콤한 밤’이다.







프로필렌 성문.

뮌헨을 찾는 이유
나는 옥토버페스트나 자동차 박물관이 아니라 그 도시만의 것을 좀 더 보고 듣기 위해 뮌헨을 찾는다. 더 오래되고, 더 오래 남을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므로. 미술관을 나와 호텔로 걸어오는 길에 그런 고집을 뒷받침하는 동상을 만났다. 루트비히 1세가 프로메나덴플라츠에 세운, 뮌헨에서 업적을 남긴 다섯 인물의 동상 중에는 르네상스 작곡가 오를란도 디 라소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그의 명성은 알프스 너머에도 자자해 여러 곳의 부름을 받던 라소는 뮌헨 궁정의 처우에 매우 만족해하며 정착했다. 그의 음악은 르네상스 음악이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20세기 말 이후 더욱 중요성을 더해갔다. 라소가 뮌헨에서 남긴 마지막 작품 <베드로의 눈물>은 바로 어제 작곡한 것처럼 생생한 감동을 준다. 마치 알트도르퍼와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라소의 동상이 온통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사진과 꽃다발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잭슨이 뮌헨을 찾을 때마다 공원 앞 바이에른 호프 호텔에 투숙한 것을 팬들이 기억하고 라소의 동상을 추모 공간으로 삼은 것. 아직은 잭슨을 기억하는 사람이 라소를 아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 터. 그렇다면 라소가 서거 500주기를, 마이클 잭슨은 타계 100년을 헤아릴 다음 세기라면 어떨까? 다시 묻자. 마이클 잭슨이 400년 뒤에도 지금의 라소만큼 기억될까?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조반니 세간티니의 '밭갈이'.
한스 멤링의 '성모마리아의 일곱 가지 기쁨'.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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