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철의 시, 선우예권의 사랑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ARTIST&PEOPLE
  • 2024-03-14

연광철의 시, 선우예권의 사랑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을 부르기 위해 다시 만난 성악가 연광철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명곡과 명가수 그리고 명연주자가 만났다. 오는 3월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위해 베이스 연광철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한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음악이 다룬 수많은 감정 중 이제껏 가장 많이 노래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사랑’이다. 이 단순하고 익숙한 단어 안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감정은 작곡가들에 의해 셀 수 없이 많은 리듬과 멜로디로 재해석되었으며, 수세기에 걸쳐 연주자와 가수들에 의해 새로이 탄생했다. 그중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의 ‘시인의 사랑’은 그가 작곡한 수많은 가곡 중 가장 위대한 곡으로 꼽힌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 감정을 오롯이 겪어낸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을 ‘현존하는 최고의 베이스’로 꼽히는 베이스 연광철이 노래한다. 그가 노래하는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피아노 연주는 선우예권이 맡았다. 독주를 주로 하는 피아니스트로서는 드물게 성악가의 독창회에 협연을 자청할 만큼 평소 연광철의 팬이라 밝혀온 선우예권은 이번에도 슈만의 감정선을 연광철의 목소리와 함께 객석에 전달하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대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전공도, 세대도 다르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하나의 노래를 함께 완성할 두 음악가를 만나 그들이 그려낼 ‘시인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았다.





연광철
연광철은 2018년 베를린 슈타츠 오퍼에서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의 영예인 ‘카머젱거’를 수여받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베이스’로 불리는 그는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로 알려진 오페랄리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파리 국립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등 세계 주요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섰으며, 유럽 3대 음악제 중 하나로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100회 이상 공연해 ‘최고의 바그너 가수’로 공인받았다.

먼저, 베이스 연광철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두 번째 만남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두 분이 다시 한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선우예권 우선, 제가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라 많이 졸랐다고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요. 선생님께 직접 연락드리진 못했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한번 무대에 함께 서고 싶다고 소속사에 지속적으로 말씀드렸죠. 그러다 이런 기회가 생겼고요. 연광철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성악으로 독창회를 여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런 공연 기획을 했다는 게 반가웠어요.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그 제의를 받아들였고요. 게다가 예권 씨와는 이미 합을 맞춰본 적이 있어서 함께하는 무대를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요. 또 이번엔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슈만의 다른 곡을 그가 독주로 선보이는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저만의 독창회가 아니고 같이하는 공연이라 굉장히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기쁜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두 음악가의 만남이라, 하나의 무대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습니다. 연광철 아무래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은 저희 같은 음악가는 긴 시간을 들여 합을 맞추기보다는 서로 준비된 상태에서 만나 공연을 준비하는 편이죠. 예권 씨는 테너와 여러 차례 공연한 적이 있고, 저도 한국 무대에서 경험이 쌓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음악적 감성을 교류하며 준비합니다. 슈만은 특히 ‘음악적 뉘앙스’가 중요하거든요. ‘시인의 사랑’을 예로 들면 성악가는 시를 전하는 위치고, 피아노가 많은 부분을 이끌어야 하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무대가 될지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선우예권 이번 공연은 16곡으로 이뤄진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1부에서 들려줄 예정이에요. 2부에서는 피아노 솔로곡 ‘다비드 동맹 무곡’을, 이후 연광철 선생님과 몇몇 가곡 셀렉션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피아노 솔로곡을 포함한 모든 곡이 슈만의 노래예요. 그래서 피아노곡도 전체 무대와 잘 어우러질 수 있게 시적이고 몽환적인 감정이 많이 담긴 것으로 골랐어요. 관객 중 클래식이 익숙하지 않은 분이 있더라도 그날만큼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슈만은 실제 삶에서 극과 극의 감정을 느끼며 산 인물이고, 그런 감정을 곡에 잘 담아낸 작곡가거든요. 저를 포함한 현대의 많은 사람이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에 문득 숨이 막히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지금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그런 각양각색의 감정을 연광철 선생님의 목소리와 멜로디 라인을 통해 한 번 더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시인의 사랑’은 독일어 가곡이라 공연만으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거 같아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연광철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 실린 시 16편을 슈만이 골라 작곡한 가곡집이죠. 시인 하이네가 젊은 시절 사랑한 사촌 여동생이 있었는데, 고백했지만 관심은커녕 비난과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그녀 역시 원하는 사람이 아닌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본 하이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상에 빠져 시를 짓게 되었는데, 그중 슈만이 공감한 일부를 발췌해 곡을 붙인 겁니다. 슈만이 결혼한 해에 엄청나게 많은 가곡을 썼는데, 시작하는 곡부터 피아노 선율을 들어보면 10대에서 20대 초반에 느낄 수 있는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 수 있고, 곡의 중반으로 가면서 리듬이 빨라지다 느려지는 것을 듣고 있으면 사랑의 감정 변화가 와 닿습니다. 자조적인 마음과 아픔, 이런 과정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묵은 감정을 흘려보내는 것까지. 독일어를 알지 못해도 음악을 들어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곡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10대부터 20대 초반의 풋풋한 사랑을 표현한 곡이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다소 거리가 느껴질 그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시나요? 연광철 그런 부분이 고민이 될 수는 있겠죠. 이제 60대지만 사실 크게 문제가 되는 거 같진 않아요. 저 역시 20대를 지나온 덕에 그때의 감정을 충분히 기억하고 또 표현할 수 있거든요.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 오히려 더 표현하기 어렵죠. 다만 베이스이기 때문에 테너나 고음을 내는 가수에 비해 관객에게는 조금 더 차분하게 들리거나 그때의 감정을 회상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공연장에 가보면 클래식 관객이 많이 늘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두 분도 체감하세요? 선우예권 전보다 젊은 관객이 많이 늘어난 거 같아요. 다만 제 경우 2017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관객과 팬이 늘었는데, 이런 관심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클래식에 대한 관심의 스펙트럼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선우예권
선우예권은 2017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대중적으로 알려진 피아니스트다. 이전에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 윌리엄 카펠 국제 피아노 콩쿠르, 저먼 피아노 어워드 등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자로 유명하다. 2017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직후 라벨의 ‘라 발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소나타 2번’ 등을 담은 실황 앨범 〈클라이번 골드 2017〉을 발매해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연광철 선생님도 같은 마음일까요? 더 오랜 시간 무대에 섰으니 관객의 변화가 확실히 보일 것 같은데요. 연광철 클래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큼 예권 씨를 비롯해 우수한 연주자가 많이 나타난 것도 그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음악가들이 직접 홍보하면서 관객의 반응이 좋아진 원인도 있는 거 같고요. 음악이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감상법에 따른 감동의 농도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 연주자가 그날 연주하는 그 공간에 가지 않으면, 레코딩만으로는 그만한 감동을 느끼기 어려워요.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음악가의 표정과 숨소리, 심지어 관객의 기침 소리까지 다 같이 공유하는 것과는 애초에 감동의 농도가 다르죠. 그런 점에서 관객도 무대를 많이 경험할수록 공연을 더 즐겨 찾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은 유럽보다 더 치열하게, 늦게까지 일하는 문화가 있어서 주말을 제외하고는 공연을 접하기가 쉽지 않죠. 음악을 온전히 즐기는 문화는 삶의 패턴이 바뀌면 좀 더 확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업으로 삼은 두 분이 여전히 이렇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점이 새삼 놀랍습니다. 음악을 하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온 적은 없나요? 선우예권 클래식 음악의 힘이 그만큼 대단한 거 같아요. 저에게는 연주하고 음악을 듣는 일련의 작업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장 생생하게 전해주는 거 같아요. 물론 연습실에서 몇 시간이고 고군분투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지만, 그건 프로로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과정을 거쳐야 더 성숙해지고 완성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요. 그게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무대 경험이 훨씬 많은 연광철 선생님의 경우는 조금 다를까요? 오랜 경험이 있으니 무대가 조금 더 쉽게 느껴지진 않을지 궁금합니다. 연광철 성악가는 몸이 악기이기 때문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육상 선수와 비슷해요. 계속 트레이닝해야 하죠.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는 개인의 노력에 달렸어요. 어제 100m를 10초에 뛰었다고 2년 뒤에도 그렇게 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성악가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상황이 다르거든요. 그날의 날씨, 기압은 물론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서도 몸의 컨디션이 달라요. 기압에 따라 오케스트라 사운드도 변하거든요. 소리가 덜 올라올 때가 있고, 더 올라올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새로운 걸 하는 느낌이에요. 무대에 서는 매 순간 처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죠. 음악가는 대부분 시간 위에서 살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억은 남지만 유형으로 남는 것이 없거든요. 그래서 계속 무대에 서야 해요. 이른바 ‘내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줘야 하죠.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색깔로, 새로운 분위기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이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 음악가를 힘들게 하는 요소이기도 해요.
누구보다 바쁜 일상에서 균형을 잡고 음악가의 삶을 이어가는 비결이 뭘까요? 연광철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명확해지더라고요. 제 일을 잘하는 것이 곧 가족을 위하는 거예요. 물론 어렵죠. 일례로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디즈니 월드에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중요한 공연이 생겨서 가족들만 보낸 적이 있어요. 이처럼 지난 뒤에 그때를 떠올리면 아쉬운 기억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음악을 성실히 하고 또 충분히 제 몫을 해냄으로써 다른 것을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우예권 그리 잘 이루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많은 것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느낌이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하는 타입도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거 같고요.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삶의 균형을 맞추는 거죠.
하루 종일이라도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지막으로, 음악 말고 열정을 느끼는 다른 무엇이 있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선우예권 저는 딱히 없는 거 같아요. 너무 재미없는 사람 같나요? 굳이 꼽아보면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으러 다니는 것 정도일까요? 연광철 저는 시골 출신이라 자연에 관심이 많아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과수원을 하셔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자연은 우리가 거부하거나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파란 사과를 사람의 힘으로 갑자기 빨갛게 만들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런 건 해가 떠야 가능한 일이에요. 성악가는 살면서 다양한 배역을 맡는데, 젊을 때 나이에 맞지 않는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아요. 제게 맞는 배역을 맡을 시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성악가는 현장 경험이 쌓이고 몸이 성장할수록 소리가 더 좋아지거든요. 연주자와 달리 세계적 성악가는 어린 나이에 되기 어려워요. 몸과 생각이 성장해야 하고, 자기 몸을 통해 음악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을 아는 것은 성악가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음악 이야기로 귀결되네요.(웃음)

 

에디터 남미영(denice.n@noblesse.com)
사진 김제원
장소 오드(ODE)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