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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12

보이지 않는 이들의 공간

그림 병풍 앞으로 지름 2m가 넘어 보이는 테이블을 색이 바랜 소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다들 2017년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한 연말을 보내고 있을 즈음, 송파구에 위치한 보성고등학교 내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찾았다. 몇 년 사이 부쩍 국내 언론과 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전인건 사무국장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1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인건 사무국장.
2 DDP에서 전시 중인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전 전경.

감각적인 해시태그, 무빙 이미지 앞에 마련한 한복 포토 존, 명사 초청 인문학 강좌, 스타와 함께하는 도슨트 투어. 발랄한 현대미술관의 이벤트 페이지가 아니라 간송미술관의 인스타그램이다. SNS를 보면 현재 간송미술관이 지향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다. SNS 팔로잉, 셀피, 인문학 강의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홍보용 포스트가 다수 올라와 있다.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 중인 신윤복의 작품을 이용한 해시태그 이벤트가 진행 중이고, 가장 최근 올라온 작품은 ‘이부탐춘(嫠婦耽春)’으로 아래와 같은 해시태그 문구가 눈길을 끈다. #봄바람휘날리는 #일광욕중 #동물들의 #커플놀이 #나만빼고다 #커플.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 보화각(葆華閣)은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이다. 1968년 간송미술관으로 재편하고 1971년부터 일반인에게 소장품을 공개한 이래,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의미대로 성북동 전시장에선 1년에 두 차례 보물을 접하는 기쁨을 누린 미술 애호가가 셀 수 없이 많다. 미술관의 풍경이 바뀐 것은 2008년 가을. 웹 소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주인공으로 신윤복이 등장하면서 간송미술관은 아는 사람들만 드나들던 곳에서 너도나도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드라마 자체는 크게 인기를 끌지 않았어요. 웰메이드 드라마였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았죠. 하지만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감상을 올리고 미술관의 바이럴 홍보가 되면서 관람객이 확 늘어났습니다.” 어느 순간 미술관 앞으로 하나둘 줄을 서던 관람객은 한성대역까지 늘어서게 되었다. 방문객 수가 늘어나면서 간송미술관은 1990년대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미술관 발전 계획에 속도를 냈다. 현재 성북동은 보화각의 복원과 보존 공사를 준비 중이다.
2014년 3월 미술관은 DDP에서 <간송문화전>이라는 전시를 시작했다. 70년 만에 간송 선생의 소장품이 성북동 미술관 밖으로 나온 것은 당시 대단한 이슈였다. 전시 개관 3주 만에 관람객은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는 역대 고미술 전시 중 최다 관람객 기록이었다. 많은 장소 중 DDP를 전시장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좀 더 많은 대중을 위한 지속적 전시를 위해 오랫동안 간송미술관이 아닌 외부 전시 공간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재단을 만들던 당시 지금은 고인이 되신 DDP 백종원 대표이사님이 제안을 해주셨어요. 덕수궁,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공간도 생각했지만 그곳은 이미 문화 공간이라는 고정된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DDP는 새로 조성한 공간이고, 여전히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공간이라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DDP에서 전시를 여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2014년에 열린 첫 <간송문화전>은 자하 하디드의 동시대 건축과 간송미술관의 오래된 소장품을 아우른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과 어색함이 공존했다. 인공광을 받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매우 낯설었던 기억을 전인건 사무국장에게 고백했다.
“자연광에 의지하는 전시는 2주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1개월 이상 가는 전시는 감당할 수 없어요. 빛을 조절할 수 있는 인공광이 필수죠. 사실 첫 전시는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기획 기간만 1년이었죠. 거대한 돔 형태의 전시 공간에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경암건축 윤창기 대표와 다양한 설계안을 고민하다 하우스 인 하우스(house-in-house) 컨셉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설계안도 세 번이 바뀌었죠. 기획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진의 노하우를 반영했습니다.”




3 DDP에서 전시 중인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전 일부.
4 2016년 11월 열린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문화로 세상을 바꾸다>전 전경.




5 <간송문화전>에서 전시를 감상하는 관람객들.
6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살아 생전 모습.

이후 <간송문화전>은 다섯 차례 더 진행되었고 2016년 말 DDP와 2년 더 전시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 Old & New 法古創新: 현대 작가 간송을 기리다>,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 <훈민정음과 난중일기: 다시, 바라보다>전을 열었고 현재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전이 진행 중이다.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정선>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작품마다 부착한 작품 설명문, 예를 들면 “승려들이 살마의 왕래가 빈번한 대로에 탁발행각에 나서고 있다. 마침 인정에 약한 여인들을 만난 듯한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고깔 쓴 재담승이 부채를 펴 들고 사설이 한창이다”와 같은 간결하고 맛깔스러운 설명문은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한 수다. 전인건 사무국장은 1971년부터 개최한 매 전시마다 발행한 <간송문화전> 도록의 뒷부분을 펼쳐 보였다. “도록마다 작품 설명이 있죠?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서 작품을 연구한 후 작성한 설명문을 기초로, 전시기획팀에서 전시 관람객에게 맞게 여러 번 퇴고했습니다. 비문이 없는 것은 아마도 백인산 선생님(현 민족미술연구소 실장)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 글이 비문이 없고 간결하거든요.”
전시는 실제 작품의 설치와 함께 인스타그램식 태깅과 키워드 분류, 디자이너의 의상 재현, 실제 현장 사진의 삽입, 애니메이션 제작, 비디오 프로젝션 매핑 설치 등을 시도했다. 성북동 미술관 전시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또한 현대미술을 포함한 다른 예술 장르와의 협업, 교육적 효과의 극대화, 젊은 세대의 감성과 조우 등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기획을 시도한 것도 눈에 띈다.
“대부분 고미술 전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관람하러 오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오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전시가 재미없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관람객에게 좀 더 친절하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배우면서 즐길 수 있는 전시를 지향하죠. <간송문화전>을 여섯 차례 진행했는데, 이제는 좀 더 과감하고 자유로운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간송미술관의 새로운 시도는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이라는 비영리 공익 법인을 설립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간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와 보존 중심의 활동을 하던 은둔의 미술관이 공식적으로 관람객 앞에 나서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전성우 이사장, 전영우 간송미술관 관장,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 등 1962년 간송의 서거 후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발족한 이래 50년 넘게 간송미술관을 지켜온 이들을 포함해 20여 명의 연구원과 연구위원으로 이루어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후원회와 사무국 그리고 실무를 담당하는 회사 간송씨앤디(CND)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간송미술관은 또 하나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대구에 오픈할 간송미술관 분관이다. 대구시와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016년 12월 대구 간송미술관 분관 건립 및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구시만큼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곳은 없었습니다. 시유지와 시 예산으로 미술관을 건립하고 운영비 일부도 시가 부담한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대구는 오랜 문화적 저력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문화 행정 행보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대구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불거진 문제도 있고 이우환미술관 유치에 실패한 경험도 있지 않은가.
“대구에는 간송미술관 팬이 많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대구 분관을 위해 무상으로 토지를 제공하겠다는 분도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문화적 저력을 지닌 대구의 원로들이 간송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는 데 대단히 적극적이었습니다. 2016년에 공청회에 참가했는데 눈물을 보이는 분도 있었습니다.”
미술관은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현재 대구미술관과 대구육상진흥센터 사이 7000m2 규모의 시유지에 들어설 계획이다. 대구시는 미술관 부지와 건립 및 운영비를 지원하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전시와 체험 및 해외 미술관 교류 행사, 전통 미술과 인문학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설계는 파리 퐁피두 센터와 런던 로이드 빌딩, 그리니치 밀레니엄 돔, 히스로 국제공항 제5터미널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보화각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한국 최초의 모더니즘 건축물입니다. 당시는 일본에도 그와 같은 모더니즘 건축물이 10개도 없던 때였어요. 한국의 고졸미를 담은 고미술은 모더니즘 건축물과 매우 잘 어울렸습니다. 리처드 로저스도 모던한 건축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분명히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간송 소장품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방의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장기적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설립되고, 그에 따라 예산을 포함한 운영상의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적 프로그램 부족과 접근성 및 시설의 편의성 문제를 겪으면서 이용자들의 외면을 받은 수많은 사례가 있다. 문화 기관을 운영하려면 장기적 계획과 지속적 후원이 필수인데도 말이다.
“당연히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운영에 대한 합의가 계약에 포함되었지요. 하지만 계약은 말 그대로 계약일 뿐입니다. 초반에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미술관이 들어설 부지는 대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현재 메디컬시티 조성, 지하철 3호선 개통 등 개발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다. 새로이 건설한 지역의 여러 기관과 함께 문화 공간으로서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계획이다. 간송미술관이 지방정부의 후원과 전문 운영 기관의 기획 및 운영을 결합한 성공적 사례로, 지방정부와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맺길 기대해본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올해 5월 대구미술관에서 ‘조선시대 회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인터뷰가 2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종의 모범 답안이 차곡차곡 쌓이자 엉뚱한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전인건 사무국장은 ‘정말’ 한국 미술을 좋아할까? 원래 좋아했을까? “어릴 때 자연농원에 한 달에 두세 번씩 갔어요. 도착해서 식사하고 나면 어머니와 저는 호암미술관을 찾았어요. 같이 간 아이들은 놀이공원으로 가는데 말이죠. 놀이공원보다 미술관이 좋았나 봐요.” 어릴 때부터 미술이 익숙했고, 글을 쓰고 역사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는 전인건 사무국장. 할아버지가 시작한 가업을 이어가야 할 위치에 있는 자의 느낌은 어떠할까? “간송이 남긴 유지고 뜻일 뿐 아니라 제가 생각해도 중요하고 누구든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 그가 이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주체의 변화, 공간의 변화, 방식의 변화, 콘텐츠의 변화가 한꺼번에 이루어지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변화, 그 방향성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대중’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강조했다. “사회에서 하이 컬처, 하이 아트가 선도하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고 중요하지만, 대중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지, 혹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즐길 수 있고 재미있게 생각하는 문화의 접점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미술관과 관람객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중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대중이 변화하는 만큼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그동안 연구와 보존 중심으로 운영해왔지만 이제 교육과 전시를 포함해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맞게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버님 자리입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전인건 사무국장은 상석에 놓인 소파 하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고 그 옆 소파에 앉았다. 이후 사진 촬영을 할 때도 집무용 책상과 함께 놓인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자, 같은 대답을 하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응접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전인건 사무국장의 모습이 벽에 걸린 이마동 작가의 ‘간송 전형필 초상’과 겹쳐졌다. 보이진 않지만 현시적 존재들의 공간. 그러한 공간의 무게감을 딛고 변화하고 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몇 년 후를 상상해본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류정화(전시 기획자, 엔더블에프이 디렉터)  사진 김제원(인물)  사진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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