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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3

나는 이렇게 느꼈다

음악가, 출판인, 건축가, 다큐멘터리 PD 4인이 타 장르를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

너무나 독특한 서점 탐방기

일본 전국의 현역 서점 직원 22명이 자신이 가본 가장 독특한 서점 22곳을 소개하는 <꿈의 서점>. 전문가의 세심한 시선이 개성 만점 서점들과 만나면서 ‘꿈의 서점’의 넓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일본 서점 직원 22명이 함께 쓴 책 <꿈의 서점>.

세상에 아직 못 읽은 책이 수없이 많은데도 나는 종종 ‘책에 대한 책’을 읽는다. ‘체험의 효율’ 측면에서 보면 무언가 겹치는 일을 하는 기분인데 간간이 서점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의 동기는 책을 통해 또 다른 좋은 책을 추천받거나 언젠가 나만의 서점을 열기 위해 시장 동향을 파악한다는 등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이란 단어가 붙은 것이면 뭐든 들춰보게 되는 거다.
‘서점에 대한 책’에서 인상적인 서점에 대한 글만 읽고 굳이 찾아가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글에 담긴 서점의 뒷이야기가 실제 매장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탓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서점이야말로 영업을 위한 공간을 넘어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생산하는 생물이 아니던가. <꿈의 서점>은 일본 각지의 현역 서점 직원들이 자신이 직접 가본 인상적인 서점 22곳을 소개한다. 각자 자신이 몸담은 서점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소개할 서점을 직접 선별했다는 점에서 다른 ‘서점 관련서’와는 차별화된다.
<꿈의 서점>을 읽다 보면 ‘먹는 것과 읽는 것에 목숨을 건다’는 나라답게 일본에는 기상천외한 서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과연 운영이 될까 싶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자리한 서점부터 거리의 독서가들에 의해 잠시 생겨나는 관념적 서점까지, 이들은 서점이라는 개념을 허문다. 비록 일본의 서점이라고는 도합 열 군데도 못 가봤지만, ‘더 가봤자 이 독특한 서점들 축에 끼지도 못할 만큼 삼라만상의 세계였구나’ 싶었다.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그 서점들은 먼 곳까지 아득히 뻗어 있었다. 개중 어떤 곳은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우리가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을 과감히 구현한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경우, 서점에서 뻔히 보이는 책을 손님이 못 찾고 있거나 주인장이 수도 없이 비슷한 대답을(화장실 위치 같은) 되풀이하고 있으면, 그 모습을 본 손님으로서 대신 처리해주고 싶은 오지랖을 느낀다. <꿈의 서점>에는 그 간단한 일을 단골이 처리하는 서점이 이미 어딘가에 있다는 식이다.
혹시 그런 곳도 있을까? “너 그 책 안 갖다 놔!”라며 부모에게 혼나는 아이를 볼 때면 조용히 책을 대신 구입해 전하는 서비스(멀리 테이블에 칵테일 한잔 보내는 느낌으로?)가 있는 서점. 이 책에 실린 서점들을 보면 충분히 있을 법도 하다. 22명의 저자가 현장 견학차 책방을 방문한 게 아닌 걸 보면 그들도 휴가 때 서점에 갈 만큼 결국 책벌레인 게 분명하다. 전국 각지의 서점을 유랑한 저자들이 각자의 평범한 서점으로 돌아와 다시 그만의 ‘꿈의 서점’을 키워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꿈의 서점’은 늘어가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책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멋진 이야기와 반전이 담겨 있다. 그러니 궁금하면 한 번쯤 읽어 보시길.

글. 김목인
김목인은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영미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림은 움직이는 거야

홍수연은 붓을 사용하기보다 캔버스를 직접 움직여 우연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엄밀한 구축과 배치 그리고 우연적 효과가 자아내는 해체의 미학.




홍수연의 ‘Drawing for Invisible Hand #21’(2012년).

이미지는 한껏 유동한다. 꽃잎 같은 이미지는 캔버스 위를 떠다니고 세포의 소기관 같은 이미지는 그 곁에 안착한다. 마치 얇은 콜라주를 얹은 듯한 이미지는 투명한 공간에 자리한 생명의 순환을 운율에 맞춰 읊는다. 작가 홍수연이 돌아왔다. 지난 10월 14일까지, 동교동에 위치한 스페이스 소에서 열린 전에서 형태와 배치를 ‘해체’하는 회화적 충동을 과감히 드러냈다. ‘Abstract: Intrinsic(추상: 내재적인)’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추상이라는 큰 틀의 구조를 유지하되 그것을 발생시키는 과정에 변화를 주었다.
알려진 대로 홍수연은 붓을 사용하기보다 캔버스를 직접 ‘움직여’ 이미지를 창출한다. 어떤 우연(偶然)의 이미지는 유연한 형태로 흐르고, 어떤 우이(偶爾)한 이미지는 표류한 상태로 머문다. 일견 자유로워 보이는 추상의 형태는 작가가 ‘구축(build up)’이라 일컫는 엄정한 규칙 아래 행해지는 계산의 산물이다. 그 우연의 중첩과 필연의 엇갈림 끝에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닫힌 평면 속에 고여 있지만 회화는 움직이는 이미지가 일시 정지(pause)한 하나의 ‘사건’이다. 그 사건 속에서 어떤 존재는 회화가 되고 어떤 회화는 존재가 된다. 회화가 존재로 향하고 존재가 회화로 되돌아가는 모든 과정에 작가가 자리한다. 그 과정을 조율하기 위해 작가는 회화라는 유기체의 안과 밖 ‘속도’를 유지한다. 어떤 작가는 속도의 항상성을 위해 이미지를 응축하고 어떤 작가는 그것을 해체한다. 그런데 홍수연은 응축과 해체를 동시에 수행하는 흔치 않은 작가다. 어떤 이미지는 꽃잎처럼 가볍게 흐느적대고 어떤 이미지는 폭발하듯 강렬하게 육박해 들어온다. 미시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는 천천히 소요하고 폭발하는 이미지는 빠르게 흐른다.
위아래로 오간, 작가가 의도적으로 남겨놓은 붓질 자국이 그 시간성의 알리바이를 증명한다. 각기 따로 움직이는 개별 이미지의 움직임은 경계를 짓고, 그 흔적을 사이에 두고 색채는 매끄럽게 열림과 닫힘을 반복하고, 이미지와 색채의 중첩은 또 다른 이미지가 되어 궁극의 추상성으로 완결된다. 추상이라는 구조와 이미지의 발생, 그 열림과 닫힘의 묵시적 연결을 바라보고 묵음(默吟)의 진동을 느끼며 우리는 영상이 창궐하는 시대에 화가는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예감한다. 그렇게 홍수연은 아폴론적 질서와 디오니소스적 혼돈을 동시에 품은 채 늘 진화해왔다.
드로잉을 새긴 반투명 트레팔지 여러 장을 중첩시킨 드로잉 신작도 이채롭다. 인간의 육안으로는 분간할 수 없는 미시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압축한 드로잉은 작가 홍수연의 추상(abstract)의 내재적(intrinsic) 기원을 추적하는 최정예 ‘에디션’이다.

글. 윤동희
미술 기자 출신인 윤동희는 현재 북노마드 대표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담긴 철학

그 옛날의 비틀스를 방불케 하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다시 한번 들어보았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방탄소년단.

모든 시대엔 그 시대를 담는 음악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 같은 힘이 바로 그 음악을 통해 퍼져나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음악이 그렇듯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걸 만드는 사람이나 그들의 음악을 즐기고 공유하는 사람이나 모두 비슷비슷한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
1960년대라는 시대를 음악으로 노래한 비틀스가 그랬고, 밀레니엄의 신세대를 예고한 서태지와아이들 같은 음악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2018년,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신화에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도전하고 있다. BTS의 음악이 점점 시대를 담는 음악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빌보드차트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걸 비롯해 세계 유수의 음악 전문 차트에서 연일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심지어 ‘BTS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1960년대에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 불린 미국 내 비틀스의 인기와 지금 BTS의 인기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엘런 드제너러스는 자신의 방송 프로그램 <더 엘런 쇼(The Ellen Show)>에 출연한 BTS를 향해 “비틀스가 미국에 온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들의 무엇이 지금 전 세계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걸까?
그걸 한마디로 정리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음악에 기존 가수나 아티스트가 담아내지 못한 고유한 가치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에 그 단서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며 든든한 ‘방탄막’이 되어주고 있는 팬덤 ‘아미(Army)’의 응원 속에 BTS 현상의 본질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주인으로 태어나 왜 노예가 되려 하니.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딴 위험한 정의가 제일 문제야.”(BTS, RM의 솔로곡 ‘Do You’ 중) “흔들리고 두려워도 앞으로 걸어가, 폭풍 속에 숨겨뒀던 진짜 너와 만나. 빛나는 나를, 소중한 내 영혼을 이제야 깨달아.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해. 좀 부족해도 너무 아름다운걸. 나는 내가 사랑해야 할 단 하나의 존재니까.”(BTS, ‘Epiphany’ 중)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는 노랫말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들은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노래한다. 또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을, 이기심보다는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정의롭게 살아가자고 노래한다. 이것이 기성세대에게 나약하고 이기적인 부류라 낙인찍힌 전 세계 청춘이 열광하는 이유.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돈과 명예를 위해 쉼 없이 뛰어온 기성세대까지 BTS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미 BTS의 성공 공식은 기존의 모든 가치를 갈아엎고 있다. 메이저들이 독식한 음반 시장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던 나약하고 힘없는 창작자들에게 어떻게 고유한 가치를 지키며 세계인과 호흡해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BTS는 1960년대에 비틀스가 기존 제도에 대한 반항과 자유를 공유하던 방식과 일치하는 점이 많다.
“밤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것을 멈췄고, 꿈꾸는 것을 멈췄습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시선에 저 스스로를 가뒀습니다. 우리는 유령이 됐습니다. 이때 음악이 작은 소리로 일어나서 너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BTS, 유엔 연설문 중) 이들의 말처럼 우리의 가슴과 심장은 늘 음악과 함께 뛰었다. 그것이 우리를 스쳐간 수많은 명곡, 전설이 된 아티스트들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는 일. 그것이 오늘 세대를 뛰어넘어 BTS가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인생의 메시지가 아닐까. BTS의 신화는 지금 이렇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돈이나 명예로는 표현할 수 없는 BTS의 철학이 아닐까 싶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이자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다.











시트로엥의 공간학

패밀리 카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 사용기.




프랑스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감성이 살아 있는 그랜드 C4 피카소.

40년 차 자가 운전자인 모친께선 무면허 아버지의 어이없는 잔소리를 40년간 들으면서도 큰 사고 한 번 없이 무탈한 드라이브 실력을 자랑했는데, 지난해 추석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앞서가는 내 차를 뒤따르던 모친의 애마가 추돌해버린 어이없는 접촉 사고. 그날 이후 모친의 자존감은 급속히 하락했고, 더 이상 장거리 여행에 차 두 대가 함께 움직이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3대가 같이 사는 우리 집 여섯 식구가 함께 탈 수 있는 적당한 패밀리 카가 어디 없을까? 이후 6개월 동안은 ‘차알못’에 결정장애인 내게 고민의 나날이었다. 설계를 맡은 죽전주택 건축주가 시트로엥 그랜드 C4 피카소(이하 피카소)를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차를 선택했을지 상상도 안 된다.
피카소. 외형에서 느껴지는 아담함과 달리 타고 보면 의외로 넓은 실내는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신기하다. 측면의 실제 면적과 체감 면적의 놀라운 차이. 공간을 다루는 건축가의 관점에서도 꽤 흥미로운 경험이란 생각이다. 피카소는 시트로엥의 7인승 MPV로 이미 유럽에선 여러 자동차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다. 푸조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민차 브랜드 시트로엥의 가장 큰 특징은 프랑스 특유의 아방가르드적 감성. 형태는 튀고 성능은 단단한데 덩치는 작고 실내는 넓다. 상충되는 모순적 가치가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는 신비한 기계 미학이라 할까. 불필요한 것은 배제하고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철저한 기능주의적 관점을 피카소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더욱이 100년 전 파리에서 활동한 어떤 위대한 건축가와 시트로엥의 인연은 내가 피카소를 선택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르코르뷔지에다. 그는 “건축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명언을 남긴 현대건축의 레전드다.
사실 르코르뷔지에가 좋아했다던 시트로엥이란 자동차를 학부 시절 책에서 읽고, 그것이 어떤 차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동경했다. 국내에 시트로엥이 한 대도 없던 시절. 어떻게 생겨먹은 자동차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르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를 통해 대략 가늠할 순 있었다. 그가 만든 ‘시트로앙 주택(Maison Citrohan)’이란 게 있다. 주택의 이름은 당시 첨단 자동차였던 시트로엥의 언어유희적 표현으로, 건축도 자동차 제작하듯 현대적 산업 시스템을 이용하자는 것. 자동차처럼 공장을 돌리고, 생산한 규격 부품을 이용하고 균일한 생산 라인을 구축한다면 양질의 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시트로엥은 당시 파리를 상징하는 여러 진보적 아이템 중 하나였는데, 르코르뷔지에는 시트로엥 자동차처럼 건축도 성능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사용자 입장에서 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부 시절 이후 20년간 시트로엥이란 단어는 내게 20세기 초의 파리 사회였고, 아방가르드의 동의어였으며, 젊은 날의 르코르뷔지에였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이 거의 그렇듯 피카소에서 아기자기한 디테일이나 고급스러운 장식, 보기 좋은 겉치레를 찾는 건 무의미하다. 대신 1.6리터 디젤엔진에 120마력, 최대토크 30.6kg·m로 알려진 평범한 사양을 의심하게 하는 훌륭한 퍼포먼스와 주행 성능은 이 자동차가 지향하는 목표를 바로 알게 해준다. 전면 헤드라이트 디자인은 진보적이다 못해 본 적이 없는 것이고, 아귀의 입처럼 넓게 퍼진 시트로엥 엠블럼은 어지간해선 잊기 어려운 첫인상을 만드는 주요인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국산 패밀리 카의 리더 ‘카땡땡’에 밀리지 않는 ‘사이즈’의 마술. 카땡땡에 비해 전장은 50cm가 짧은데 휠베이스는 20cm 차이다. 또 전방 시야는 너무 넓어 처음 며칠간은 피곤함을 느꼈을 정도. 진보적 디자인에 단단한 성능, 작은 덩치와 넓은 공간, 광활한 개방감을 아우른 시트로엥. 시트로엥을 직접 겪어보니 집을 이렇게 지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100년 전 르코르뷔지에가 시트로앙 주택을 왜 만들었는지 그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고.

글.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NAAULAB을 운영하며 꿈 많고 말도 많은 이들의 공간을 설계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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