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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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ATURE
  • 2020-01-31

위대한 유산

우리는 이 도시,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1 잊혀진 장소와 역사가 다시 열리어 눈앞에 펼쳐지는 서울의 비경.

서울의 미래유산, 창신동 채석장 이야기
조진만 _
건축가. 조진만아키텍츠 소장으로, 서울시 공공 건축가 중 한 명이다.

서울의 풍경은 굽이치는 산과 언덕의 자연, 도시가 묘하게 어울린 독특한 매력이 있다. 우리는 높은 곳에 올라 자연이라는 경관을 자신의 깊은 내면세계와 결합해 우리가 경험치 않고 보지 못한 감성의 풍경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주한 풍경을 벗어나도 그 장소는 향수로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게 된다. “풍경은 나를 통해 스스로 사유하며 나는 그것의 의식으로 성립된다.” 세잔의 말이다. 풍경은 거기서 일어나는 여러 상호 관계의 놀이 속으로 우리를 흡수하기도 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긴장감으로 보는 이에게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또한 그 안의 뭔가 특별한 것이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느낌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원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꿈에 빠지기도 하고 몽상가가 되기도 한다. 그 속에서 지각적인 것은 감정적인 것으로 바뀌고, 사물의 물리성은 흐릿해져 저 너머로 이어지는 무한함 속에 잠겨버린다. 발아래 드넓게 펼쳐진 풍경 속에서 관찰자에게 그것은 단순한 지역의 일부분이 아닌 우리 삶이 끊임없이 활력을 얻는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도시의 맑은 바람과 높은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서울의 옥상, 창신동. 창신동은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이다. 창신동은 일제강점기 경성부에서 직영 채석장으로 운영됐으며 현재 잘린 땅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국은행, 옛 서울역, 옛 서울시청,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이곳에서 나온 돌을 사용했다. 이곳에서 나오는 화강암의 질이 좋고 위치가 동대문 바로 밖이기 때문에 실어 나르기도 편했다. 해방 이후 채석은 중단됐고, 1960년대 무렵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뤘다. 채석장 절개지는 창신・숭인 지역의 독특한 주거지 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아파트 공화국이 될 뻔한 이곳은 주민들의 반대와 자립으로 도시재생지역 1호로 지정된 마을이기 때문에 이곳만의 방식, 사람 냄새를 제대로 풍기고 있다. 또한 봉제업체 1100여 개와 봉제 종사자 3300여 명이 몰려 있어 우리나라 봉제 산업 1번지로도 불린다. 서울시는 지난해 ‘이음피움봉제역사관’을 열었고, 창신동 봉제 장인이 참여하는 ‘상상패션런웨이’와 ‘소잉마스터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또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옛 집터에 있는 한옥을 매입해 2017년 ‘백남준기념관’을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채석장은 어느새 100년의 역사를 품고 있지만, 현재는 방치된 채 자원 회수 시설과 청소 차량 차고지, 무허가 주택, 경찰기동대 등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다. 비록 아픔과 서러움이 깃들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가꾸고 보존해야 하는 소중한 역사・문화 자원이다. 새로운 전망대를 촉매로 장소의 기억과 독특한 자연경관의 재생을 도모한다. 도시에서도, 가로에서도 닫힌 이 폐쇄된 공간을 확장으로 열어낸 해법에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는 60m 아래 역사적인 채석장과 이를 둘러싼 도시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길을 통해 15m 위 언덕의 공원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기존의 가로를 따라 공동체를 위한 작은 광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곳의 건축은 순전히 현재와 역사, 도시와 자연, 사람과 풍경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존재할 뿐이다.




2 사라진 을지로 풍경. 세운상가 옆 철거된 블록으로, 다니엘 텐들러가 좋아하던 스폿이다.
3 독특한 을지로의 골목 풍경.

도시인 아이덴티티
다니엘 텐들러 _
건축가. ‘어번디테일’의 소장으로, 한옥 등 다양한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독일에서 건축 및 도시계획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과제 주제를‘돈화문로 마스터플랜’으로 정하고 이 도시 서울에 왔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한옥이 골목골목 남아 있는 흥미로운 동네, 익선동을 답사하며 시민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독일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 그녀는“부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유럽은 건축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고 옛 건물도 유지・보수가 잘되어 있어서 아름답잖아요. 부럽습니다.” 문화적 인식이 깊은 아주머니라 생각했다. 이번엔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 동네 익선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 이 낡은 동네, 이제 재개발할 때가 됐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가능성이나 역사적 가치를 논하기 전에 당장 내가 불편하고 낡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구나. 몇십 년 동안 서울은 궁궐 같은 커다란 문화유산을 제외하곤 옛것을 지우고 개발하는 데, 역사적 요소를 버리는 데 익숙했다. 한동안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단시간에 많은 집을 지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했기에 도시를 개발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우리가 중요시하는 요소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도시환경이 1년에 일정 퍼센트 이상 달라지면 시민에게는 심리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 그리고 정체성에 환경 요소가 미치는 영향이 큰 까닭일 것이다. 그래선지 요즘 오래된 동네가 핫 스폿이 되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나의 사무실이 위치한 을지로가 그렇다. 을지로는 서울에서도 아주 특색 있는 동네다. 을지로만큼 조선시대에 생긴 골목, 일제강점기에 지은 한옥과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는 동네는 서울에서 드물다. 1950~1960년대 주택, 1970년대 상가 건물도 대부분 남아 있다. 1960년대까지 주거지였다가, 공장과 공방이 들어오면서 원주민이 떠나고 산업별 골목이 생겨났다. 을지로3가와 4가 사이 철공소 골목의 인상적인 분위기는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레트로’, ‘뉴트로’라는 뜨거운 해시태그를 타고 젊은이들은 저렴한 임대 공간을 활용한 가게를 속속 열었고, 결과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운상가 한쪽은 이미 철거하고 블록을 재개발하고 있다. 서울의 중심인 데다 아직 개발이 안 된 평지 부지가 이토록 풍요로우니 복잡한 법적 문제만 풀면 투자하기에 이만한 동네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도시를 생각할 때 과연 돈으로만 따져서 되는가에 대해 물을 필요가 있다. 다음 세대에게 남길 도시가 어떤 도시였으면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익을 포기하고 을지로를 남겨야 한다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주고, 우리의 과거를 보여주고, 우리의 도시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네가 없어진다는 것은 결국 영혼 없는 도시가 되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나를 포함해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서울의 매력으로 ‘다양한 모습’을 꼽는다. 도쿄는 비슷비슷하고, 베이징은 거리가 대개 직각으로 답답하다. 서울은 아파트, 붉은 벽돌의 다세대주택지, 북촌 등 한옥이 밀집한 동네, 아기자기한 골목이 있어 구경하기 즐겁고 살기도 좋다는 평가가 많다.
당장 낡아서 문제이긴 하나, ‘언젠가는 밀어버리겠지’라는 예측보다는 을지로 같은 동네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서울이니까. 그래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잊지 않고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으니까.




4 포르투 상 벤투 중앙역의 야경.

낯선 도시, 바라보기와 대하기
한승욱 _
도시관찰자.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5년 전, 영화 < 리스본행 야간열차 >를 보았다. 해운대에 있는 영화의전당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야 극장 안 불이 켜진다. 불이 밝혀지자 이곳저곳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당황했다. 영화가 끝나고 박수 소리를 들은 것은 초등학교 때 반공 교육용으로 단체 관람한 < 똘이장군 > 이후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놓친 감동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사서 읽었다. 책에서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영화를 보며 품은 의문이 잊혀갈 무렵, 출장으로 리스본과 포르투에 가게 되었다. 최근에 유명 가수들이 버스킹을 한 음악 프로그램의 배경이 된 두 도시이기도 하다.
박한 출장비를 아끼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했다. 코메르시우 광장 쪽 바다가 보이는 구시가지에 위치한 오래된 5층짜리 건물이었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갈 때 여행 가방의 바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3~4일 머무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동네의 작은 빵집에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산책하고, 출근 시간에는 동네 주민들 틈에 섞여 노면 전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출장이었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 게스트로 초대됐다. 도시 재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리스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 < You’ll Soon be Here >는 이렇게 말했다. “리스본은 최근 관광산업으로 급성장한 유럽 도시 중 한 곳이다. 포르투갈 국내총생산의 15%, 일자리의 8%가 관광과 관계가 있다. 관광은 세계 경제위기 때 피해를 입은 도시들에 큰 기회를 제공했다. 매년 6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리스본을 방문한다. 하루에 20만 명의 관광객이 오는 날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리스본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리스본의 원주민이 떠났다. 현재 구시가지에는 1만2000명만이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된 지역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내가 머무른 바로 그곳이었다. 방이 2개인 그곳의 하루 숙박비는 65유로였다. 다큐멘터리는 말했다. 내가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그곳에 살던 할머니가 내던 한 달 집세가 50유로였다고. 투어리피케이션(tourification)이다.
‘투어리즘(tourism)’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합성어 투어리피케이션은 문화・관광을 활용해 도시 재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도시 재생의 목적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매몰될 때, 관광 자본이 생활 자본을 파괴하면서 발생하는 도시・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고도로 진화한 관광 자본은 낯선 도시가 지닌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체계적으로 제거한다. 스스로 여행자라고 느끼는 방문자에게 여정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모든 것이 방문자의 편안함, 편리함, 효율성을 위해 준비된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커뮤니티 호텔이 그러하다. 마을 전체가 호텔이 되어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동네를 산책하고, 마을 어귀의 한 주택에서 잠을 잔다. 지역성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관광 자본이 기존 삶의 생태계를 조금씩 파괴하고 있지만, 일생에 한 번, 단지 며칠 동안 머무는 방문자들은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다. 관광이나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개개인의 욕망 혹은 취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낯선 도시를 향한 나의 시선이 누군가의 삶을 대상화하고, 나의 발길이 그들 생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느냐, 못하느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그들과 그곳을 대하는 태도(attitude)로 나타난다. 오랫동안 이어온 타자의 삶과 그 삶의 공간에 대한 ‘존중이 담긴 태도’가 필요한 지금이다.




5, 6 명동9길에서 건축선 후퇴로 원래의 폭을 잃어버린 골목길 모습.

우리는 오래된 골목길을 설계할 수 있는가?
전보림 _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 공동 대표로, 파트너 건축가 이승환과 함께 운영한다. 2019년 젊은건축가상 수상자 3팀 중 한 팀이다.

나는 건축가다. 비록 한국에서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이긴 해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건축가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다. 건축가가 하는 일, 즉 설계의 중요성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의 무엇이든 그 가치를 만드는 데 기획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드라마 <도깨비>를 쓴 김은숙 작가가 회당 1억 원이 넘는 원고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애플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모두 기획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설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인 건축과 도시의 기획이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제아무리 설계가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라 해도 도저히 설계로 만들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흔적, 즉 역사다.
누구나 한 번쯤 놀이공원에 가봤을 것이다. 놀이공원 입구에는 대부분 옛날 건축물이 늘어선 거리가 있다. 싸구려 재료로 만든 서울랜드 세계의 광장이든 비교적 돈을 들인 디즈니랜드의 건축물이든 옛날 건물인 척 만들어낸 것들의 어색함과 조야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오래됨이란 아무리 그럴듯해도 결국은 그런 척 만든 가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방 한두 칸 크기의 인테리어라면 모를까, 건축물과 도시의 규모에 이르면 급조한 역사의 어설픔은 표 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는 지금 돈만 있으면 세상에 만들어내지 못할 게 없는 것 같은 기술이 진보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우리의 도시에 남긴 흔적을 후다닥 만들 재간은 없다. 기껏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다만 그 흔적을 지우는 재주뿐이다.




7 5, 6번 사진은 명동센트럴 작업 전후의 모습.
8 옛 모습을 간직한 을지로 골목길 풍경.

오래된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서울에서 골목길은 도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소중한 유물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별함은 K-팝뿐 아니라 역사의 흔적에서도 나온다. 그 어떤 건축가도 오래된 골목길을 설계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지금 서울은 그 소중한 골목길을 너무 쉽게 지우거나 바꾸고 있다. 지금의 건축법은 바닥면적 5000m2 이상의 건물을 새로 지으면 기존의 건축선에서 후퇴해 전면에 공개공지(사적인 대지 내에 조성하는 공적 공간)를 만들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그 공개공지를 만드느라 골목길을 만들어온 건축선이 깨지는 것이다. 길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길의 폭이다. 골목길을 만들던 건축물의 선, 즉 건축선이 달라지면 그 길은 더 이상 예전의 골목길이 아니다. 좁은 길에서 만들어내던 활력과 긴장감이 확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무실에서 설계한 건물, 명동센트럴을 예로 들어본다. 명동 메인 거리에 있는 이 건물은 다행히 규모가 작아 기존의 건축선을 유지해 지을 수 있었지만 근방의 큰 건물인 엠플라자는 기존 위치에서 후퇴한 건축선 때문에 골목길 폭과 모양이 달라지면서 건물 주변의 길이 죄다 맥 빠진 길이 되어버렸다. 특히 명동9길에 면한 쪽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난다. 도시의 유산을 지켜야 할 건축법이 오히려 이젠 설계로 만들 수 없는 소중한 골목길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건축법을 바꾸어 골목길의 스케일을 지켜야 한다. 사실 공개공지는 어떤 길에서도 가로의 연속성을 깨뜨린다. 넓은 길이 좁은 길보다 좋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구닥다리 가치관이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겐 명동보다 좁고 더 드라마틱한 을지로의 골목길이 남아 있다. 을지로만큼은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켜켜이 쌓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도시의 흔적이 낡고 좁다는 핑계로, 개발이익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뭉개지고 지워지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9, 10 스테이폴리오가 최근 제안한 수평적 호텔 ‘서촌유희’ 프로젝트의 모습.

속도보다는 방향을
이상묵 _
기획자이자 건축가. 숙소 큐레이션 예약 중개업 스테이폴리오의 대표다.

뉴 노멀 시대에 뉴 서울(new Seoul)의 비전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온고지신의 자세에서 피어난다. 최근 연남동, 성수동 등 색깔 있는 동네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일어나고 있는 골목과 지역 재생의 흐름은 아이러니하게도 SNS를 통해 아파트에서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에게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얽혀 그 안에서 새로운 매력이 읽힌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동네 서촌은 또 다른 결의 맥락을 지닌 곳이다. 경복궁의 서쪽 문을 뜻하는 영추문을 끼고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사이의 동네를 일컫는 서촌은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효자로를 기준으로 왼편에 자리했다. 청운동, 효자동, 창성동, 통의동, 신교동, 통인동, 옥인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사직동 등 조그마한 동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조선시대 고위 공무원이나 관료들이 지낸 북촌과 달리 서촌에는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 사이 신분인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몇백 년이 지났지만 두 계층의 다른 성향이 그 골목길에 드러난다. 북촌의 골목은 정갈하게 나뉘어 있지만 서촌의 골목은 구불구불 얼기설기 이어져 있다. 수성동계곡에서 내려온 옥류동천의 흐름은 길을 형성했고, 이 길을 따라 동네의 골목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어느 나라의 궁이든 그 근처에는 문화 예술인이 많이 살았다. 조선의 첫 궁궐 경복궁 앞에 터를 잡은 서촌도 그러했는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시인 이상과 윤동주, 화가 박노수와 이중섭이 이곳에 기거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여겨 개발을 하더라도 본래 있던 길을 파괴하는 일이 드물었다. 세계적 도시로 개발된 서울에서 이렇게 오래된 터전을 지킨 동네는 드물다. 궁궐과 가옥, 건물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지그시 껴안은 인왕산은 조선시대 문화 예술인에게도 품을 내주었다. 조선 영조 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은 서촌에 살며 ‘인왕제색도’ 등 인왕산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풍류라 함은 자연을 가까이하고, 멋과 음악, 예술에 대한 조예와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선비들이 그런 것처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 삶의 양식 속에서 새롭게 풍류를 해석하는 듯하다.




11 서촌유희 프로젝트를 즐기는 방법을 담은 가이드.

서촌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일상 속 궤도를 소중히 여기는 그들은 그들만의 삶과 터전을 가꾼다. 길에 놓인 화분, 골목과 담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그걸 실감한다. 북촌과 달리 주로 토박이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고 전문직 종사자와 디자이너, 큐레이터, 문화 예술인이 다수 모여들었다. 옛것과 현대적인 것이 켜켜이 쌓인 시공간에서 저마다 소우주를 펼치는 사람들이다. 동네의 정주성(이동이 비교적 적고 한 곳에 머물러 서식하는 성질)은 그만큼 중요해졌고 골목 경관을 이루는 한옥의 가치 역시 새롭게 평가되었다. 서촌에 터를 잡은 지 5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골목과 길이 어우러진 이곳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동네의 감성과 깊이를 새롭게 느낀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파도가 한차례 지나간 뒤 다시 고요를 찾은 서촌에서 최근‘누와’라는 한옥 스테이를 기획하게 된 것도 이 지역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다. 탑처럼 쌓은 다소 고압적인 수직 호텔 대신, 호텔 안 요소를 수평으로 흩뿌려 관광객으로 하여금 동네를 방랑하도록 하는 ‘수평적 호텔’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길과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기억의 흔적을 좇으며 여행자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허락하고, 서촌 특유의 지역성도 살린다는 취지다. 동네 풍경에 거스름 없이, 으스대지 않는 모습으로 길과 골목을 배려한 건축은 기억을 잇는 좋은 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기획자이자 건축가로서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동네의 잠재력을 매몰하지 않고 시대에 맞는 눈높이로 해석해보는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시작은 남은 것에 대한 기록과 변화시켜야 할 것에 대한 나름의 원칙을 만드는 일. 그리고 이를 지키고 가꾸는 일에 ‘사람’이 빠질 수 없다. 기억의 흔적을 담은 동네를 매만질 때에는 속도보다는 방향을,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후대에 남길 여지와 여백을 두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12 성수연방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 팀 푸하하하프렌즈가 그린 스케치.
13 공장을 새롭게 고쳐 문을 연 성수연방.

젠트리피케이션 다시 보기
손창현 _
오티디코퍼레이션 대표. 건축을 전공하고 공간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 두산백과 발췌)은 도시 공간의 재구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본주의경제에서 사회적・경제적・공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1960~1970년대에 도시의 변화를 이해한 관점 중 하나로, 최근에 갑자기 대두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현재 우리의 도시, 특히 서울에서 그 부작용이 언급되는 것일까?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지가와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으로 지역의 원주민들이 쫓겨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과연 부정적 현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도시는 살아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 같아서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창 번창하던 지역이 쇠락하기도 하고 몰락한 곳이 다시금 새롭게 생기를 얻어 활성화되기도 한다. 사람의 삶이 그러하듯 우리의 삶을 담고 있는 도시 역시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속성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쇠퇴기와 재활성화의 연결 고리는 필연적 숙명이라 하겠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온전히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현상의 단편만 이해하는 것과 같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사람들인 ‘젠트리파이어’는 문화의 유행을 이끌어가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SNS를 통해 좀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도시 건축 공간을 새롭게 해석해 미디어 콘텐츠로 재생산해내며 결과적으로 물리적 도시 건축이 변하는 생태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을지로 등 쇠퇴해가던 거리가 새롭게 생명을 얻어 환생한 사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선순환적 역할을 이해하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 도시의 성장이 택지 개발을 통해 새로운 주거 공간의 확장과 이로 인한 구도심의 노후화 단계를 거쳤다고 하면, 미래에는 다시금 도심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많은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노후화된 구도심 혹은 주택가가 젠트리파이어로 새롭게 바뀌는 현상은 서구의 도시와 서울이 같은 맥락을 가지긴 하지만, 불과 수십 년 만에 슈퍼메가시티로 변신한 서울은 고속 성장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드러낸다. 여기에 최근 소비문화의 중심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이 맞물리며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던 젠트리피케이션이 서울의 경우 2~3년 정도로 압축되어 나타나고 있다. 소위 핫 플레이스로 뜨면 지가와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하고 첫 번째 단계의 지역 개척자 혹은 지역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된다. 또 마지막 단계에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거리를 뒤덮어 그 지역 고유의 지역성이 사라진다. 경리단길이 불과 몇 년 사이 정체성을 잃고 생명이 끝나버린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측면을 완화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아 보인다. 표면적 이유는 빠른 임대료 상승이지만, 사실 사람들의 공간 소비 사이클이 빨라지는 것에 근본적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또 시장 경쟁 체제에서 사유재산에 대한 과도한 간섭은 되레 시장 주체의 자율성을 저하시킬 우려도 있다. 상권 활성화로 자연스레 발생하는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 욕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이보다는 좀 더 다차원적 해결 방안이 훨씬 유효할 것이다.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측면인 지역성 붕괴에 따라 단기간에 지역이 재슬럼화되는 부분을 대안으로 주목했다. 만약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퇴출되기 쉬운 저효율 콘텐츠(동네 책방이나 개인 공방 등)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면 이러한 부정적 결과는 막으면서 도시의 성장과 변화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하던 작업이 건물의 방치되고 버려진 공간에 콘텐츠를 넣어 활성화하는 작업이라 한다면, 최근 성수동에 선보인 복합 시설‘성수연방’을 통해서는 좀 더 도시적 스케일로 확장해 성장시키고자 한 것이 그 실천 방안이다.

 

에디터 전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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