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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5

아시아 요트 넘버원은 누구?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아시아 요트 넘버원 하지민을 만났다.

요트 국가 대표 선수는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도 일정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민(해운대구청)은 연간 20회, 2주에 한 번꼴로 경기에 참가한다. 인터뷰도 설 연휴를 보내기 위해 잠시 호주에서 귀국한 당일, 이동 중 짧은 시간을 내어 했다. 키 187cm, 구릿빛 피부와 군살 하나 없는 몸에서 느껴지는 건강한 에너지. 한강공원에서 만난 우리나라 요트 일인자는 경기용 슈트를 제외하면 예외 없이 사계절 내내 입는 반소매 피케 셔츠 차림 그대로였다.
하지민은 요트 중 가장 많은 선수가 참여하는 1인용 레이저 스탠더드 종목에 참가한다. 엔진과 선실이 없고, 돛과 밧줄로만 이뤄진 전장 4.23m, 중량 59kg의 자그마한 딩기 요트를 모는 경기다. 오로지 물살과 바람에 의지해 바다를 누비기에 어쩌면 가장 원초적으로, 오롯이 체득한 자기 몸 하나를 믿어야 한다. 하지민은 열 살, 부산의 한 주니어 레저 클럽에서 처음 요트를 보자마자 반했고, 한 번도 운동이 재미없다고 느낀 적이 없다.
누군가의 기대나 강요가 아닌 자연스러운 시작. 그것이야말로 그의 우승 비결일지 모른다. 1989년생인 그는 2004년 아시아태평양 레이저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2006년 전국체육대회 남고부 우승, 2007년 해군참모총장배 우승, 최근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금메달 3연패, 지난해 전국체전 11연패까지 한국을 넘어 아시아권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주말 요트 캠프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갈 때까지 운동선수로 진로를 정하지 못했어요. 특활반이 없는 고교로 진학해 공부하면서 대회에 참가하느라 힘들었죠.” 요트 선수로 진로를 정하고 열아홉 살 남짓,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연소 국가 대표 타이틀을 달 때까지도 부담감이 따랐다. “그래도 저는 지금이 더 재밌어요. 마음의 여유도 생겼죠. 바다에 나갈 때마다 매일매일 배우거든요. 어릴 때는 경기에 지면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나 스스로 준비 부족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니까요. 왜 실패했는지 요인을 분석하고 복기했다가 다음 경기 때 앞서 부족한 걸 채우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1 경기 중 포착된 하지민 선수의 모습.
2 하지민 선수는 참가 번호 외에는 경기용 보트에 특별한 별명을 붙이지 않는다.

그의 성격은 이토록 따뜻한 봄 바다처럼 잔잔하다. 승부에 대한 집착이나 실패에 대한 격앙된 감정 표현을 하지민에게 듣긴 힘들다. 소위 ‘멘탈 갑’. 그것이 안정적인 경기 운용의 비결이지만, 한때는 스스로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요트는 지금도 영국 왕세자 가족이 경기에 열심히 참관할 만큼 귀족과 부호들이 즐기는 종목이잖아요. 특히 예의 면에서는 룰이 엄격하기에 함부로 욕도 못해요.(웃음) 그래도 경기 중에는 다른 선수가 내 수역에 들어오려고 하면 크게 소리를 지르고 어필하는 게 필요한데, 잘 그러지 못했거든요. 2011년쯤 집중 훈련을 했어요.”
챔피언의 남다른 점은 하나 더 있다. 읽고 학습하기를 즐긴다는 것. 정확히는 활자 보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 운동하다 피곤하고 졸리면(!) 영어 공부를 했다는 선수. 한국에 요트가 도입된 지 50년이 넘었지만, 학창 시절 이론서가 많지 않아 영국과 노르웨이 등 요트 강국의 원서를 사서 읽곤 했는데, 지금은 해외 경기를 나갈 때마다 현지 스태프들과 대화하며 스스로 객관화하는 법을 배운다.
“저는 요트를 바다 위 체스에 비유하곤 해요. 보통 한 경기에 선수가 40명 정도 참가하고 10~12회 정도 경기를 나가 벌점 실책 점수가 적게 나온 순으로 평균을 내어 순위를 매기거든요. 출발하는 순간부터 바로 5분, 10분 뒤의 바람과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예측하면서 가야 하니까. 전략과 전술적인 대응도 필요하고요.” 한국에서 날씨계측기를 보유한 것은 그가 소속된 해운대구청이 유일하다. 그 점이 고마우면서도 다른 요트 강국처럼 경기 데이터 분석가의 부재는 아쉽다. “일반 스포츠 종목은 특정 경기 시즌에 맞춰 최대 근력을 훈련하는 식의 주기화가 가능한데요. 요트는 아무리 중요한 경기도 평상시처럼 하는 게 더 중요해요. 경기를 치를 곳의 지형 지물이라든지 현지 조건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좋죠. 3주 전에 미리 가서 직접 식사 준비도 하고 자전거도 가져가서 동네를 돌아보거나 인근 헬스장을 다니면서 정착하는 것에 집중해요. 경기를 마칠 때까지 리스크를 줄이고 평균치를 올리는 것이 전략입니다.” 그의 차분한 성격이 이해되는 대목. 그 밖에도 기초 체력 관리 차원에서 평소에도 사이클을 타거나 암벽등반을 한다. 해외 경기 중에도 자전거를 싣고 가서 150~200km를 탄다는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민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한 온라인 게시판에 금메달 인증 사진을 직접 올려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국내에선 누구도 요트 경기 중계를 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가끔 들르던 게시판에 ‘심심해서’ 올린 것일 뿐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어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자신이 요트계를 대표해 인터뷰한다는 사실이 쑥스러울 뿐이다. 어차피 요트는 평생 할 것이기에. 국제 대회에서 양궁, 빙상 다음으로 요트가 ‘숨은 효자 종목’이란 수식어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요트인’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저처럼 소속은 있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를 세미-프로페셔널이라고 해요. 요트는 자기 관리만 잘하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유리한 종목이에요. 올림픽에서 최고령 선수 기록은 요트에서 종종 볼 수 있을 정도죠. 지자체 팀마다 규모는 다르지만, 장비 지원은 대부분 하고 있기 때문에 선입관을 갖지 말고 일단 요트를 즐기고 입문하는 친구들이 늘면 좋겠어요.”
150일도 채 남지 않은, 7월 29일 2020 도쿄 올림픽 얘기에는 다시 무덤덤하다. “완벽한 준비를 하고 올림픽에 임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이 제겐 마지막 메이저 대회가 아닐까 싶어 열심히 해보려고요.” 결과를 걱정하진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경기를 중도 포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을 어느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황종현(인물)   취재협조 대한요트협회, 서울마리나 Y스파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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