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맨의 시선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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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8

노블레스맨의 시선들

시대 전환 속 우리가 엿본 여덟 개의 시선.



조미료는 죄가 없다
집에서 떡국을 끓였는데 뭔가 심심한 느낌이 들 때 김가루를 넣으면 맛이 확 바뀐다. 토마토 통조림을 조려 만든 스파게티 소스에 알 수 없는 빈 곳이 느껴질 때 파르메자노 레자노 치즈를 강판에 갈아 뿌리면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만들기 위해 잘게 썬 양파를 반짝거리는 갈색으로 볶은 뒤 붓는 치킨스톡에도 이 맛이 가득하다. 요리사들의 왕이며 왕들의 요리사라 불린 오귀스트 에스코피에가 이 맛을 내는 육수를 가리켜 요리의 모든 것이자 기초라고 말했을 때 그가 머릿속에 떠올린 감각이며 유명 레스토랑에 가면 으레 기대할 수 있는 맛이다. 감칠맛, 바로 글루탐산의 맛이다(프랑스 요리에서 육수에 해당하는 단어 ‘퐁(fond)’은 기초라는 뜻이다). 중국 음식점 증후군이라는 오명 때문에 MSG(MonoSodium Glutamate) 하면 아시아 음식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편견이다. 이탈리아 음식에도, 프랑스 음식에도 글루탐산의 감칠맛이 녹아 있다. 미슐랭 별 개수가 늘어나면 감칠맛도 더 깊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식재료에서 그 맛을 끌어내느냐, 조미료로 더하느냐의 문제일 뿐 감칠맛은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감칠맛은 각기 따로 놀던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을 묶어주면서 맛의 밸런스를 맞춘다. 단맛과 짠맛은 더 진하게, 신맛과 쓴맛은 강도를 누그러뜨려 둥글둥글하게 만든다. 실험 삼아 먹다 남은 커피에 MSG를 조금 넣으면 쓴맛이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는 조미료 때문에 음식 맛이 똑같아진다는 불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감칠맛에는 맛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데 더해 맛의 여운을 길게 늘려주는 효과도 있다. 조미료를 지나치게 많이 넣은 음식을 먹고 뒷맛이 텁텁하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요리의 성공은 글루탐산의 적절한 사용에 달려 있다. 에스코피에가 이것 없이는 아무 요리도 할 수 없다고 말한 요리의 기초, 육수를 봐도 그렇다.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를 넣어 맛이 우러날 때까지 끓인다. 글루탐산은 고기 단백질을 이루는 주요 아미노산 중 하나로 많이 들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단백질로 결합한 형태라 별맛이 없다. 육수를 뽑는다는 건 입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미각을 자극하는 유리 글루탐산을 녹여내는 과정이다.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을 늘리기 위해 발효를 통해 미생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우유에서 느낄 수 없던 감칠맛이 치즈에 풍부한 것은 발효시켜 유리 글루탐산 함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채소를 육수에 더해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양파, 당근, 토마토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양은 적지만 맛을 내는 유리 글루탐산의 비율이 높다. 채소를 넣고 10분만 끓여도 단맛과 감칠맛 성분이 우러난다.
MSG를 대량생산한 뒤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기가 쉬워지긴 했다. 하지만 통념과 달리 맛없는 음식에 MSG를 퍼붓는다고 요리 맛이 좋아지진 않는다. 원래 글루탐산이 풍부한 토마토소스에 파르메자노 레자노 치즈를 뿌리면 맛이 더 좋아지는 것처럼, MSG 효과는 원래 맛 좋은 음식에 더할 때 강력해진다. 소고기, 닭 뼈, 멸치, 표고버섯, 포르치니, 갑각류 같은 재료를 풍성하게 넣은 음식에 MSG를 더하면 감칠맛은 그야말로 폭발하는데, 이 식품에 글루탐산과 힘을 합쳐 감칠맛을 수십 배 이상 증폭시키는 핵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감칠맛은 음식과 음식의 페어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요리에 와인이 잘 어울리는 이유 중 하나로 와인에도 상당량의 글루탐산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꼽는다. 요즘은 유튜브나 방송에서 MSG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시연도 자주 보인다. 여기에 굳이 암흑의 이미지를 덧씌울 필요는 없다. 서구 문명 최초의 요리서라 불리는 로마의 <아피키우스>에 나오는 레시피 대부분에 글루탐산이 풍부한 생선 발효 조미료 가룸이 등장한다. 때문에 정말 집밥을 즐기고 싶다면 요리할 때 조미료를 넣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기보다는 얼마큼을 넣어 무엇과 조합하느냐를 실험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정재훈 약사이자 푸드라이터. 마트와 편의점, 노포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숨어 있는 요리와 먹기의 과학에 대한 글을 쓴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다음 카드는 무엇인가요?
지난 3월, 제네시스 신형 G80이 데뷔했다. 그런데 반향이 생각보다 크다.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끌시끌하다. 올 상반기 국내 자동차업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시 첫날 계약만 약 2만2000대였고, 지난달엔 현대자동차 쏘나타보다 많이 팔렸다. 현재 출고 대기가 6개월이란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등 수입차 중 가장 많이 팔리는 프리미엄 중형 세단보다 좋다는 입소문이 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제네시스가 독일 브랜드를 뛰어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G80은 잘 팔릴 만한 차다. 동급 트림으로 볼 때 제네시스가 경쟁 모델로 지목한 E-클래스나 5시리즈보다 출력이 높고 옵션도 더 좋은데, 가격은 10%가량 싸다. 게다가 안팎 디자인이나 소재, 조립 품질 등에도 흠잡을 데가 없다. 존재감이 확실하고 고급스럽다. 무엇보다 스타일링의 설득력이 높다. 이제 G80은 그저 그런 고급 중형차가 아니다. 누가 봐도 당당한 최신 프리미엄 모델이다.
심지어 운전 감각마저 괜찮다. 좋은 재료로 공들여 만든 새 플랫폼을 밑바탕 삼아 독일차 수준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민첩하고 안정적으로 돌아 나가는데, 승차감은 매끈하다. 점잖은 척, 든든한 척하다 넘어가는 무게를 못 이겨 뒤뚱거리던 이전 제네시스와는 딴판이다. 현재 프리미엄 중형 세단 시장에서 이만큼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차는 없다. 그런데 G80의 한계는 딱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제네시스는 G80이 E-클래스, 5시리즈, 아우디 A6 등과 동급이라고 하지만, 실제 구성은 벤츠 CLS, BMW 8시리즈 그란쿠페, 아우디 A7 등 그보다 위급 차종에 초점을 맞췄다. 즉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중형 세단을 더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오랫동안 일궈온 ‘쿠페형 세단’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G80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패스트백 스타일링, 다양한 옵션, 화려한 소재 등이 그 증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G80은 독일제 동급 모델보다 최소 20% 이상 저렴하다.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당연히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이다. 가치가 높은 차를 싼 가격에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네시스로선 장기적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수익성 이야기를 꺼내려는 게 아니다. ‘가성비로 타는 차’라는 이미지가 문제다. 프리미엄 시장에선 가격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뒤에서 폭풍 할인을 하더라도 가격표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가성비 브랜드’라는 부정적 이미지는 한번 생기면 떨쳐내기 어렵다.
물론 제네시스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현대차랑 한식구니까. 가성비로 글로벌 시장에 안착한 현대차가 ‘싸구려 차’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제네시스의 이런 움직임이 걱정스럽기보다는 조금 흥미롭다. 그들은 대체 무슨 패를 쥐고 있을까? 스스로의 전략에 매몰되지 않을 만큼 파격적일까?

류민 자동차 칼럼니스트. 수동변속기와 전기모터 모두를 사랑하는 이중인격자다.





아이폰S E 2세대가 스마트폰 시장을 바꿀 수 있을까?
아이폰SE 2세대(이하 아이폰SE 2)가 나오자마자 사서 쓰고 있다.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디자인이 너무 익숙한 탓이다. 새 차를 샀는데, 타던 차와 똑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오죽하면 어떤 기자는 이 폰을 ‘재활용폰’이라고 이름 붙였다. 모양도 옛 모델과 똑같고 부품도 거의 같다는 말이다. 냉소적인 작명 센스지만, 반만 맞았다. 재활용한 리퍼폰과 재고 부품을 활용해 만든 폰은 다르다. 아이폰 8s나 아이폰9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낫다. 어차피 말장난이긴 하지만.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쓰면서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손에 쥐었을 때. 스마트폰은 원래 한 손으로도 조작할 수 있는 기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한 번은 주머니에 넣었을 때다. 스마트폰은 원래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제품이란 걸 알았다. 지난 몇 년간 화면이 큰 스마트폰을 쓰면서 완전히 잊고 있던 감각이다. 스마트폰이 폰이 아니라 PC에 가까워지면서, 그 뛰어난 기능에 홀려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았다. 사실 아이폰SE는 애플에서 귀하게 대접받는 제품은 아니다. 마진율은 유지하지만, 값이 싸서 많이 팔려도 매출이 크게 늘지 않는다. 다만 애플이 아이폰X 폼팩터를 내놓으면서 기기 값을 너무 올린 탓에 기변할 생각이 사라진 구형 아이폰 이용자에게는 매력적이다. 지금도 가장 많이 쓰는 아이폰7과 아이폰6s 유저만 이 폰으로 바꿔도 애플은 차고 넘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애플 아케이드나 뮤직, 애플TV 가입자가 늘면 더 좋은 일이고. 새로 살 이유도 충분하다. 포기할 수 없는 홈 버튼과 익숙한 디자인으로, 불편했던 사용 경험을 바꿔줄 최신 프로세서와 늘어난 램을 가지고 있다. 같은 부품이지만 카메라 성능도 조금 나아졌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OIS, 방수・방진, 무선 충전도 다 들어갔다. 컴퓨터 OS와 마찬가지로 익숙함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스마트폰 사용 경험은 대부분 앱 사용 경험이라, 새로 배울 필요 없이 쓰던 대로 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출시했는데, 효자가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쓰러진 애플 매출을 되살렸다. 중국의 IT 매체 ‘기즈차이나’에 따르면, 2020년 4월 아이폰 중국 매출에서 4월 24일 출시된 아이폰SE 2가 차지하는 비율이 24%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출시되자마자 높은 판매 순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아이폰SE 2는 그동안 가장 많은 스마트폰이 판매되면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300~600대 미드 레인지 스마트폰 시장에 불을 지폈다. 한국에서는 5G 출시 이후 버림받은 LTE 스마트폰 시장을 되살렸다. 이제 제조사들은 그동안 외면했던 냉정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은 더는 사치재가 아니라는 걸. ‘섹시하고, 강하고, 승리하는’ 스포츠카가 있어야 다른 보통 차가 팔리는 것처럼, 쓰지 않는 기능이라도 일단 넣어서 첨단 기술로 포장해야 팔리는 제품이라 여겼는데, 아이폰SE 2가 그런 환상을 깨뜨렸다. 사람들에겐 그저 내가 쓰는 앱이 잘 돌아가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스마트폰이면 충분했다.
컴퓨터 성능이 적당히 좋아지자 한번 사면 오래 쓰는 것처럼, 이제 스마트폰도 굳이 바꿔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현실이 드러났으니 전략도 바꿔야 한다. 애플은 새로운 디자인의 아이폰12를 내놓으면서도 가격은 더 떨어뜨릴 예정이다. 구글은 출시 예정이던 보급형 스마트폰 픽셀 4a 출시를 취소하고 기본 사양과 가격 조정에 들어갔다. 삼성은 새 폴더블 스마트폰 가격을 확 낮추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로나19 사태와 아이폰SE, 저가형 중국산 5G 스마트폰이 대거 등장하면서 시장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3G에서 LTE로 옮겨갈 때처럼 LTE에서 5G로 쉽게 옮겨갈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 외주 제작이 쉬워지면서 해외에선 자체 브랜드로 출시하는 폰도 많아졌다. 계속 높아지는 스마트폰 가격에 대한 반감도 높고, 제품은 많은데 별 차이점을 못 느끼겠다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2020년대 스마트폰 시장은 어떻게 될까? 일단 팝콘을 준비하자. 뭐가 됐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듯하니까.

이요훈 철학을 전공한 IT 칼럼니스트. 시사・경제・과학 방송에서 IT 분야에 대한 설명을 맡고 있다. 오타쿠가 아님에도 사람들은 그를 오타쿠라 부른다.





조커의 광대 분장과 도시 재생의 민낯
며칠 전 매스컴을 통해 강원도 정선의 한 마을이 소개되었다.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폐광촌으로 남은 곳이었다. 석탄산업의 쇠퇴로 그곳 마을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강원랜드 같은 대체 산업은 기대했던 긍정적 효과보다는 예상된 부정적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 폐광촌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마을 호텔을 테마로 한 ‘고한 18번지’의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그곳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풍경과 삶의 방식이 녹아 있는 풍경, 그것을 문화적 경관(Cultural Landscape)이라 한다. 문화적 경관을 자원으로 해 마을 전체가 호텔이 되었다. 이른바 ‘마을 호텔(Community Hotel)’이다. 이처럼 관광을 테마로 하는 도시 재생이 주목받는 첫 번째 이유는 일자리 만들기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효과가 크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관광을 테마로 한 도시 재생의 경제적 효과는 실제로 어떤 속성을 가질까? 유사한 사례가 있다. 한때 풍요로움을 상징하던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글래스고는 중심 산업이던 중공업이 쇠퇴하면서 활기를 잃었다. 도시를 되살리기(再生) 위한 노력의 결과로 글래스고는 1990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다. 많은 관광객이 글래스고를 찾았고 지역경제는 활성화되었다. 그런데 한 도시사회학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된 이후 관광객은 증가했으나 지역의 실업자 수와 알코올중독자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지역경제 활성화가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젊은 층은 자신이 머무르는 독특한 공간을 SNS에 남기면서 취향을 드러낸다. 공간을 향유하기보다 공간을 이미지로서 포스팅하는 방식으로 소비하다 보니 조금 특이하고 포토제닉한 공간이 인기다. 레트로의 유행도 한몫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서울의 이화마을, 부산의 감천마을, 통영의 동피랑마을 등에 사람들이 몰렸다.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는 셀카봉을 들고.
알록달록 파스텔 톤으로 꾸민 마을 풍경이 참 예쁘다. 빨갛고 파란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해시태그를 달고 포스팅을 확인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초면 충분하다. 감천마을의 명물인 ‘어린 왕자와 여우 조각’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은 그 조각이 마을과 어떤 맥락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문득 영화 <조커>가 오버랩된다. 조커의 하얗게 분칠한 얼굴과 빨간 입술의 광대 분장,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 하루벌이가 끊어지면 생활이 어려운 분장하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 조커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조커는 그저 알록달록한 분장을 한 광대일 뿐이다. 혹자는 관광을 테마로 한 도시 재생을 ‘가난 포르노’라며 극단적 평가를 한다. 너무 자극적인 표현이라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알록달록한 분장으로 감춰진 도시의 민낯은 늘 다큐멘터리의 서사보다 더 사실적이다.

한승욱 도시와 사람을 바라보고, 그 생각을 글과 스케치로 남기는 도시 연구자. 9년간 교토에서 지낸 시간의 켜가 도시를 깊게, 그리고 오래 바라보게 하는 사유의 틀이 되었다.





건축은 명상이 될 수 있을까?
수도승의 구도 과정과 결과물 정도로 여겨지던 명상은 이제 앱이나 요가 등을 통해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되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며, 심리적 안정을 취하게 하고, 창의성과 집중력을 높이는 데 명상이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일반인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까지도 명상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종교적이거나 신비한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던 명상은 이제 뇌와 명상의 과학적 검증을 통해 단계적으로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필자도 건축가지만 명상과 명리에 관심을 갖고 명상과 명리를 건축에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우선 명상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눈을 감고 몸을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만들고 호흡에 집중하며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을 자각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인정한 채 흘려보내는 행위를 하면서 텅 빈 상태를 지향해나가는 것이다. 이런데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뇌 과학자 닐스 비르바우머는 “자연은 뇌 영역을 지칠 줄 모르고 밤낮으로 일하는 생각 펌프로 창조했다”고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한 ‘텅 빈 상태’에 주목했다. 뇌는 “방어 체계가 끊임없이 가동되면 영원한 비상사태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뇌는 ‘텅 빈 상태’를 갈망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텅 빈 상태’란 무엇일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외부 세계와 나를 구분 짓거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감각이 둔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한 예로 피아니스트나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자신의 일에 집중한 나머지 어떤 소리나 감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텅 빈 상태’를 동양에서는 공(空)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의 근간이 되는데 이런 근간을 인지하지 못하는 ‘공’은 존재와 우주의 시작과도 연결된다.
명상은 한자로 어두울 ‘명(冥)’과 생각할 ‘상(想)’이다. 사전에서 어두울 ‘명’을 찾아보면 어둡다, 어리석다, 그윽하다, 가물가물하다, 생각에 잠기다, 밤, 저승, 하늘, 바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두워서 가물가물하고 심오하고 깊은 것은 우주를 닮았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빛은 어둠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어두울 ‘명’은 생명의 시작점에 맞닿아 있는 단어다. 생각할 ‘상’은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되 그것을 마음으로 헤아리는 것을 뜻한다. 즉 명상은 ‘생명의 시작점을 마음으로 헤아리며 바라보는 행위’다. ‘나’라는 생명의 시작과 지속은 부모, 형제, 친구, 동료뿐 아니라 생명체, 지구와도 연결되어 있다. 닐스 비르바우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아가 지나치게 형성된 존재다. 하지만 자신의 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자아라는 고치에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과 융합해야 한다.” 건축 역시 지나치게 형성된 존재다. 건축은 지칠 줄 모르고 사람들의 편의와 욕망에 의해서 더욱더 견고히 만들어져왔다.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은 인간의 욕망으로 어떤 산업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자연과 지구의 관계를 훼손하고, 거주가 목표가 아니라 돈을 벌 목적으로 지은 건물은 도시를 이기적으로 만들어 인간과의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
미니멀하고 심오하며, 중후한 공간감은 명상을 위한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명상의 근본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1995년 유네스코 50주년을 맞아 본관 뒤 정원에 명상 공간(meditation space)이라 명명한 원통형 콘크리트 건물을 설계했다. 문짝이 없는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6m 높이의 원형 천장과 벽 틈 사이로 은은한 빛이 들어오는 텅 빈 단순한 건물이다. 들어온 방향의 반대로 나가면 돌다리가 있고 그 밑으로는 수 공간이 있다. 물 아래 깔려 있는 돌은 히로시마 원폭의 영향을 받은 돌을 가져왔다고 한다. 안도의 명상 공간은 고요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평화와 생명에 대한 관계의 메시지를 명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명상적인 건축은 대단하고 고결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는 공간과 장소를 청소하고 환기하고 쓰는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일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가끔 시원한 공기를 환기해서 숨이 쉬어지면서, 집 주변 공원의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를 보고 싶은 순간의 마음이 나를 잠시나마 잊고 살아가게 만든다. 건축이 명상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나 스스로를 자각하고 동시에 우리 모두와 자연이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일상에서 깨닫도록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시작하는 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대균 착착건축사무소 소장. 인문학을 바탕으로 보편적 세심함을 추구하는 것을 건축적 방향으로 삼고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집을 그린다. 대표작으로 고령성당, 천주교서울대교구 역사관, 이상의 집 레노베이션 등이 있다.





BBC에서 K리그를 생중계하던 날
전 세계 스포츠가 멈췄다. 거의 유일하게 한국 스포츠만이 대중과 만나고 있다. K리그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멈춘 덕분에(?) 목마른 전 세계 축구 팬의 이목을 한 번에 끌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개막 하루 전, K리그의 중계권이 독일, 중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무려 17개국에 팔렸다고 알렸다.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K리그 개막전을 12시간 앞두고 영국에서 급히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공영방송인 BBC에서 생중계를 검토 중이니 사전 정보 제공과 실시간 중계에 필요한 도움과 함께 직접 문자 중계 참가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BBC는 일단 한 경기를 생중계한 후 현지 반응을 보고 나머지 경기에 대한 중계권 구입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프로 축구를 종주국에서 생중계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상황은 열악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중계권 판매를 대행사에 일임한 탓에 경기 당일까지 BBC의 생중계 결정을 모르고 있었다. K리그에 적극적인 해외 중계권 판매가 사실상 처음인 탓에 해외 중계권사를 위해 제공하는 정보는 사실상 전무했다. 영국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의 프로 축구 명칭이 ‘K리그’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태반이었고, 중계에 필요한 모든 인력은 봉쇄 정책으로 각자 집에서 기술적 지원에 나서야 했다. 어쩌면 영국 사람들은 멈췄던 축구 경기가 펼쳐진다는 사실만으로 목마름이 해결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욕심이 났다. 매일 EPL만 보던 종주국 사람들의 시선을 ‘듣보잡’ K리그가 사로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강한 흥미를 유발할 만한 무언가를 던져줘야 했다. K리그의 역사와 배경, EPL과는 다른 점, 수많은 영광과 좌절을 맛본 양 팀의 소소한 이야기. 심지어 K리그 전 구단 선수의 연봉을 합쳐도 맨체스터시티 선수 한 명의 연봉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적 차이 등을 정리했다. 영국 팬들에게 연대감을 안겨줄 아이템도 찾았다. 전북의 지휘봉을 잡은 조제 모라이스 감독은 토트넘 핫스퍼의 조제 무리뉴 감독의 오른팔로 오랜 기간 유럽 무대에서 활약해 그들에게도 결코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또한 미들즈브러에서 활약한 마흔한 살의 이동국과 카디프 시티와 위건 애슬레틱에서 뛴 김보경 역시 전북에서 건재했다. 수원에는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에서 활약한 김두현이 코치로 있었고, 풀럼과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애덤 타가트, 블랙번 로버스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몸담았던 도닐 헨리도 있었다. BBC의 생중계를 보던 한 영국 팬은 오래된 이동국의 미들즈브러 시절 유니폼을 꺼내 입고 ‘인증샷’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BBC의 중계를 지켜보던 이들이 정작 관심을 보인 것은 우리의 기대와 달랐다. 그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축구 경기 모습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컸다. 모든 선수들이 도착과 함께 발열 체크하는 장면, 경기 전 관계자들이 모여 마스크를 쓰고 사전 회의하는 장면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해프닝도 있었다. 결승골을 넣은 이동국은 ‘덕분에 챌린지’의 일환으로 손바닥 위에 엄지를 올린 세리머니를 펼쳤다. 엄지를 살짝 흔들면 영국에서 수화로 ‘동성애자’를 뜻한다. 성 평등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칫 세리머니의 다른 의미를 전달할 뻔했다. 결국 K리그의 BBC 중계는 한 차례에 그쳤다. 영국 팬으로부터 ‘당장 저 선수를 우리 팀으로 영입하라’는 반응이 나오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요소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하필 그들에게 더 흥미진진한 독일 분데스리가의 재개가 결정된 탓도 있다. BBC의 K리그 사상 첫 중계 마지막 인사는 “다음 주 분데스리가 중계에서 만나요!”였다. K리그는 하룻밤 꿈을 꿨다. 마지막이 아니길, 다음이 곧 오길. 꿈같은 그날이 올 땐 우리의 K리그가 더욱 탄탄하길 바란다.

김동환 ‘풋볼리스트’ 기자. 축구에 관한 글을 쓰고 해설을 한다. 축구와 관련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관심이 많다.





나는 왜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가
1989년 MBC가 제작하고 방영한 다큐멘터리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어릴 때 스웨덴에 입양된 어느 미혼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큐멘터리 속, 그녀가 겪는 삶의 문제는 공감하기 어려웠으나 단출한 아파트로 표현되는 집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아파트보다 좋았다. 소파와 침대, 주방 가구 또한 세련돼 보였다. 무엇보다 별다른 직업이 없는데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보다 윤택한 삶을 보장하는 듯했다. 방송이 끝나고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계속 눈물 흘리는 어머니에게 나는 “스웨덴으로 입양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가 등짝을 맞았다. 며칠 뒤 버스를 타고 합정동에 자리한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가 스스로 입양이 가능한지 물었고,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와선 입양을 보내달라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니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권리가 있고, 부모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니 유학보다는 입양이 합리적이라고 말이다. 그때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신촌에서 양념갈비와 냉면을 사주었다. 아버지는 스웨덴으로 입양 가면 이 맛있는 걸 못 먹을 거라고 농담을 했는데, 나는 어이없게도 그 말에 수긍하고 말았다. 양념갈비와 평양냉면이 없는 스웨덴은 어쩐지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주된 소재로 예능을 만드는 프로듀서로 살아가고 있다. 2008년 KBS <누들 로드>를 보면서 TV 프로듀서라는 직업적 한계와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예능이든, 광고든 다 잘 만들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 살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음식 다큐멘터리를 <누들 로드>보다 잘 만들 자신은 없지만 음식 예능을 <누들 로드>처럼 만들어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매일 음식 맛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지만 삶은 언제나 다른 면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혈당이 높은 걸 알았고,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었다. 하지만 혈당은 좀체 떨어지지 않고, 집중력과 함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쉬고 싶었다. 와 <조커>의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가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What the food>을 보았다. 대여섯 번쯤 보았다. 느끼는 바가 있었다. 식단을 바꾸자 혈당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몸무게도 줄었다. 그래도 쉬고 싶었다.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떠났다. 순례길에 함께한 책은 강수돌 선생이 쓴 <팔꿈치 사회-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였다. 경쟁에 지친 스스로를 돌보기에 제법 좋은 책이다. 책을 읽을수록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책 내용을 비교해보고 싶었다. 돌아와선 넷플릭스 를 정주행했다. 전 세계에 24명뿐인 F1 드라이버.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우승을 향해 달리는 그들에게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적 모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피라냐 클럽이라는 F1 팀 간 경쟁을 넘어선, 그리고 치사할 정도로 서로 약점을 물어뜯으며 감정을 도발하는 모습은 적나라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1위를 향해 달려가는 드라이버를 뒤에서 같은 팀 드라이버가 들이받아 팀이 우승을 놓치는 모습을 보니 특히 감정적 동요가 컸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 스스로의 가치보다는 팀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능이 같은 차를 타고 똑같이 달리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뒤를 받힌 건 내가 아닌 앞차의 실수라고 말하는 드라이버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넷플릭스 <더 라스트 댄스>를 보고 있다. 마이클 조던이라는 스포츠 영웅의 모습과는 별개로 프런트와 구단주 그리고 선수가 갈등하는 모습에 스스로를 투영해본다. 전체 NBA 선수들 연봉 순위 120위권 밖의 말도 안 되는 연봉을 받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스코티 피펜’의 활약을 보면서 ‘팀을 위한 희생’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회사가 큰 매출을 올리는 상황에서 조기 승진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부여하던 기억이 그렇고, 회사를 대기업에 비싸게 파는 것이 회사의 비전이라는 대표이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 노동의 가치는 자본가에게 돈을 벌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라고 되묻던 허탈함의 기억이 그렇다. 세렝게티 대평원에서 사냥하는 암사자와 물소를 보면서 포식자의 입장에 자신을 이입하기도 하고, 먹이가 되는 자신을 이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불행할 것 같다. 먹이가 되어도 불안하고, 수없이 사냥을 시도해야 하는 포식자의 삶도 고단해 보인다. 그러니 나는 그 장면을 찍은 카메라맨이나 연출자에게 이입해본다. 다큐멘터리는 드라마 앵글과는 다르다. 드라마는 연출자가 설정하는 앵글을 포함한 모두가 설정이지만, 다큐멘터리는 연출자가 설정한 앵글 빼고는 모두 실제다. 앵글 너머 실제와 마주하는 것. 그조차도 빈틈이 많은 말이지만, 그 실체를 마주하는 기분은 ‘아프다’는 것이다. 스스로 어디가 아픈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사랑하게 하고 스스로 삶을 살게 해주는 것. 내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어쩌면 지금 남자들이 다큐에 열광하는 이유다.

하정석 올리브 TV <마스터 셰프 코리아> 전 시즌을 연출했고, 딩고 TV의 푸드 콘텐츠 팀장을 지냈다. 지금은 올 9월 한국에 런칭할 디스커버리 아시아 콘텐츠를 만드는 데 정진하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누가 죽였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지난 6월 3일 마지막 녹화를 마쳤다. 휴식기를 갖는다지만, 사실상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많은 개그맨과 관계자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폐지 반대 청원까지 이어졌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순 없었다. 사실 <개콘>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명 유지 장치로 연명하는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공영방송인 KBS는 개그맨을 발굴하고 또 일정한 일거리를 줄 수 있는 구조를 함부로 폐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2%대의 시청률에 구설만 무성한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였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개콘>의 침몰을 분석했다. 방송 관계자들은 밀착 카메라의 발전 덕에 ‘리얼리티 쇼’가 공개 코미디인 <개콘>을 밀어냈다고 주장했다. 만들어진 극적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보다 일상 속 예기치 못한 상황이 빚는 웃음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IT 관계자들은 급격히 찾아온 1인 미디어 시대가 취향에 맞는 웃음을 찾아가는 소비 방식을 정착시켰고, 예능의 소비시장 자체가 지상파에서 1인 미디어로 옮겨간 것이 주원인이라고 봤다. 그리고 일부 개그맨은 ‘성’, ‘정치’, ‘종교’라는 코미디의 3대 소재 영역을 모두 규제하는 것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쇠퇴하게 만든 주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누구는 제작진의 절대 권력과 강력한 위계질서를 낳은 공영방송의 제작 풍토 때문이라고 직언했다.
하지만 <개콘>이 사랑받을 때와 기세가 꺾인 때,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웃음’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말처럼 철저히 ‘사회적’이며, 사상가 미하일 바흐친이 간파한 것처럼 그 대상을 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공동체’가 존재해야 성립한다. 1999년 <개콘>이 등장할 무렵 서민들은 IMF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살맛 나던 시절을 그리워했고,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시절이 다시 오길 바랐다. 그때 ‘개그맨’이란 칭호를 쓰는, 선배 코미디언과는 다른 세대임을 선언한 입담꾼들이 자신의 무대를 방송국 공개홀로 가져오는 도발을 감행했다. 그것이 바로 <개콘> 이다. 공개 코미디라는 장르 명칭도 여기에서 나왔다. 이미 대학로를 중심으로 개그맨들의 재치와 순발력을 음악, 댄스 등과 접목해 콘서트 형식으로 버무린 무대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1960년대 TV 속으로 들어가버린 악극단의 전통이 극장식 쇼 무대라는 이름으로 변칙적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전혀 새로운 세대에 의해 현재적으로 재해석된 무대라고 볼 수 있다. 익숙하면서 신선해야 할 대중문화 콘텐츠의 특성을 제대로 갖춘 상품이었다. 게다가 소재나 주제에 대한 제한이 없는, 철저히 브레인스토밍에 의해 탄생된 아이디어가 무대 공연을 통해 검증되면서 완성된 코미디는 살아 꿈틀거렸다. 1998년 IMF가 방송에서 코미디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결과 아이디어가 바닥난 방송가에서 이 무대를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싱싱한 콘텐츠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초기 제작자들은 최대한 살아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극장과 방송국의 네트워크를 지켰다. 아이디어가 검증되는 공연 현장과의 소통과 녹화 당일 또 한번 검증되는 관객과의 소통, 이 수평적 피드백이 <개콘>의 전설을 만든 것이다.
또 <개콘>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엄하다던 기수 문화와 여성 개그맨에 대한 편견마저 깨졌다. 절대 권력과 기수 문화가 <개콘>의 전설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통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 해고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개콘>의 전설은 민주주의의 산물이며, 폐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개콘>이 주저앉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일까? 바로 강화된 검열과 소재에 대한 간섭 때문이다. <개콘>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의 뜻으로 무려 6주간이나 결방했다. 그리고 정치적 무능과 현실 비판 등을 소재로 한 여러 코너를 선보였다. 이후 검열과 간섭이 심해졌다. 이로써 <개콘> 특유의 맛이 사라졌다. 일반 대중은 일요일 밤에 <개콘>을 보며 바흐친이 주장한 ‘웃음의 축제적 기능’을 만끽했다. 그러나 검열과 간섭은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라는 괴상한 선 긋기를 낳고 개그에서 ‘풍자’와 ‘각성’을 제거했다. 그 결과 웃음을 연구한 학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혐오’와 ‘비하’ 그리고 ‘현실 도피’만 남았다. 방송과 IT 업자들은 저마다 <개콘>의 폐지에 대해 자연 도태론을 주장하며 새 상품을 팔고 있다. 그리고 개그맨들은 자신의 책임을 규제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웃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에 현재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 다른 <개콘>을 만들 수 없다. 웃음이란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처럼 ‘현실의 고통에 대해 쾌락의 원칙으로 항거하는 자아 표현’이기 때문이다. 풍자와 각성을 통한 절묘한 현실 비틀기를 배제한 웃음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검열과 간섭이라는 금단의 설정이 존재하는 한, 그동안 <개콘>이 선물한 통쾌한 웃음의 해방구를 재회하기는 어렵다. 이는 구조 조정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성수 문화를 통해 세상을 해방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문화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는 것에 그친 실패한 혁명가. 이젠 동세대의 과오를 바로잡고 의자를 내주는 일이라도 잘 수행하려고 유튜브와 방송, 원고 쓰기를 하고 있다.

 

에디터 <노블레스 맨>피쳐팀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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