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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5

패션, 아트, 인생!

파리지엔 디자이너 아녜스 베가 지난 2월, 그녀의 인생을 담은 예술 재단이자 미술관인 라 파브를 열었다.

개관전과 함께 갤러리 뒤 주르에서 진행한 전 풍경. 9월 19일까지 열린다. ⓒ Rebecca Fanuele. La Fab. la galerie du jour agnès b., 2020





라 파브 내부의 서점 리브레리 뒤 주르. ⓒ Rebecca Fanuele. La Fab. collection agnès b., 2020

고희를 넘긴 아녜스 베는 1984년부터 자신의 이름(본명은 Agnès Troublé)을 딴 브랜드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왔다. 그 표현 방식이 ‘옷’이었다면 ‘예술을 향한 사랑’과 ‘정치적 신념’은 단단한 밑바탕이 되었다. 1975년 파리 1구 주르 거리(Rue du Jour)의 오래된 정육점에 첫 번째 매장을, 그로부터 9년 후인 1984년에 기존의 공간을 확장해 ‘갤러리 뒤 주르(Galerie du Jour)’를 열었다. 이렇게 갤러리스트이자 컬렉터로서 첫발을 내디딘 그녀는 35년의 세월 동안 5000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 지난 2월, 파리 남쪽 13구에 예술 재단이자 미술관인 라 파브를 개관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녜스 베는 젊은 시절 바스키아의 스튜디오를 찾아가 만난 것은 물론, 그의 드로잉도 소장하고 있을 만큼 컬렉션에 적극적이었다. 지금 라 파브의 주소가 ‘장 미셸 바스키아 광장(Place Jean-Michel Basquiat)’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행운처럼 보인다.

라 파브는 공공임대주택인 건물의 지상 1·2층에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는 아녜스 베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전시가 열리는 공간과 기존의 갤러리 뒤 주르, 예술과 관련된 모든 책을 품은 서점 리브레리 뒤 주르(Librairie du Jour)가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다. 미술관 건축의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전형적 예술 지형도를 벗어난 선택은 지극히 패션 디자이너 아녜스 베다운 것이었다. 오랜 세월 “부는 재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적극적 사회참여를 실천해온 한 그녀는 자신의 방대한 소장품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기를 원했다. 평생 패션계의 스노비즘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만큼 예술적 엘리트주의를 경계하며 사진, 회화, 조각, 영상 등 계통 없이 자유롭게 예술가와 우정을 나누고 작품을 수집했다.





파리 남쪽 13구에 자리한 라 파브. ⓒ La Fab





전 전경. 벽 오른쪽에 걸린 작품은 길버트&조지의 ‘Commercial Street’(2013). ⓒ Rebecca Fanuele. La Fab. collection agnès b., 2020





왼쪽에 보이는 사진 작품은 마틴 파의 ‘Japanaise Endormie’(2018). ⓒ Rebecca Fanuele. La Fab. collection agnès b., 2020

그녀는 라 파브의 오픈과 동시에 주요 컬렉션을 소개하는 개관전 를 기획하고, 5월 23일까지 열 예정이었는데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한 달 만에 전시장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라 파브는 장기화된 팬데믹에 굴하지 않았다. 지난 6월 16일 다시 문을 열고 8월 1일까지 전시를 개최했다.

지금 특별한 느낌을 주는 이들의 전시명은 디드로(Diderot)와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등이 쓰고,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진 <백과전서> 속 단어 ‘hardi(대담한, 과감한)’의 정의에서 영감을 받아 준비한 것이다. 개관전은 아녜스 베의 총괄 지휘 아래 완성됐다. ‘예술가의 대담함, 예술이 품은 모든 형태의 대담함’에 이끌린다는 그녀는 전시 기획 전반과 시노그래피에까지 관여하며 자신의 새로운 공간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루이즈 부르주아, 앤디 워홀, 트레이시 에민처럼 잘 알려진 작가와 함께 시프리앙 가야르(Cyprien Gaillard), 에르베 프리우(Hervé Priou) 등 젊은 예술가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아 총 90여 명(팀)의 작품 150여 점이 수장고에서 나왔다.

아녜스 베는 사람들에게 ‘공동의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것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각이 섞이며 의견을 주고받고, 감정적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이다. 이제 막 닻을 올린 라 파브는 의욕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연 3회 정도 테마전을 선보일 예정이며, 동시에 자체 콘텐츠를 담은 팟캐스트와 영상, 출판 등도 기획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어우러져 제대로 예술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디자이너 아녜스 베. ⓒ Kate Barry

Mini Interview 아녜스 베

어떻게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게 됐나요? 전 어린 시절부터 침대 위에 엽서를 여러 장씩 붙이는 아이였어요. 그게 너무 좋았죠. 자라면서는 미술관 학예사를 꿈꿨고요.

라 파브의 개관을 마음먹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느 날, 소장품 수가 5000점이 넘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때 라 파브를 열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저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대중의 시각으로 함께 보는 게 참 즐겁거든요. 전 그 모든 작품을 독점하고 싶지 않아요. 그보다는 흩어져 있는 것을 모으고, 나누고 싶답니다.

젊은 작가에 대한 후원에도 적극적이죠. 작가들을 선택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궁금해요. 나아가 메세나(후원자)가 되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주세요.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작업이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죠. 물론 제게 말을 거는 듯 느껴지는 훌륭한 작품이어야 하고요. 저는 1984년부터 갤러리스트로서 작가들을 독려하기 위해 작품을 구매했어요. 그 행위는 작가에게 ‘계속하세요! 제가 보기에 당신 작품은 좋아요!’라는 말을 건네는 것과 같죠. 그걸 메세나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고, 작가들을 소개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재발견하도록 돕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요. 요즘은 메세나가 마치 침대에 누워 돈이나 기부하는 사람처럼 말하는 부류도 있는 것 같은데, 전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거든요. 로렌초 데 메디치야말로 ‘진짜’ 메세나였죠. 그는 진심으로 예술가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동반자였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힘들어하는 팬데믹 시기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기질을 타고났든 전 모든 사람에게 예술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그런 면면을 표현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요?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재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라 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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