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가장 주목한 전시 3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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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5

올겨울 가장 주목한 전시 3

'아트 얼리어답터' 에디터 3인이 선정했다.

놀라움의 5중주, 비디오 설치, 140×240cm, 2000

시간을 물질로 경험하다
이우환과 빌 비올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부산시립미술관과 그 옆 이우환공간(Space Lee Ufan)에서 빌 비올라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옆에 개관한 이우환공간은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1년 내내 볼 수 있는 미술관으로 인기가 높다. 2019년에는 이우환공간을 찾는 관람객에게 동시대 현대미술가를 소개하기 위해 <이우환과 그 친구들 I>전을 개최, 영국 조각가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를 소개했다. 그에 이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II>전의 주인공은 미국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Bill Viola)다. 빌 비올라는 뉴욕 시러큐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으며, 1974년부터 백남준의 조수로 5년간 일하기도 했다. 이우환과 빌 비올라의 공통점은 동양 사상에 서구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결합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를 탐구하는 빌 비올라의 영상은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우환공간 1층에는 빌 비올라의 1970년대 초기작 3점을 전시 중이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작품은 ‘투영하는 연못’(1977~1979)이다. 한 남자가 숲속의 수영장에 뛰어들면서 영상은 시작된다. 공중에 떠 있는 그의 몸은 정지했지만, 수영장 물은 여전히 움직인다. 남자의 모습이 공중에서 서서히 사라졌다가, 다시 물속에서 나와 숲으로 들어가며 끝나는 7분짜리 비디오 작품이다. 주인공 남자는 작가 자신이다.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신비로운 종교적 이미지를 비디오 매체의 합성과 시간 조작을 통해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작품 속 시간은 실시간, 정지, 타임 랩스(time lapse)라는 세 가지 층으로 분할된다. 또 이 작품을 통해 빌 비올라가 초기부터 ‘물’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은 그에게 정화와 부활, 탄생과 죽음의 상징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본관 3층에서는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제작한 작품 13점을 감상할 수 있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인사’(1995),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영구 설치된 ‘순교자’ 시리즈(2014), 5개의 거대한 영상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중앙대학교 김지훈 교수에 따르면, 빌 비올라가 비디오를 활용하는 방식은 영화 그리고 회화와 닮았다. 1970년대에는 구조 영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만들었고, 1990년대에는 필름 기술과 결합한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HD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고 렌더링, 색보정과 같은 디지털 후반 작업을 거쳤다. 빌 비올라는 백남준 연구로 유명한 미국 큐레이터 존 핸하트(John Hanhardt)가 쓴 책 <빌 비올라>에서 HD 비디오카메라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과거 위대한 화가는 유화라는 새로운 매체와 기법을 선택했고, 유화는 당시 가장 정교한 이미지 제작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HD 비디오카메라와 같습니다.”
2015년 국제갤러리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빌 비올라는 기자들과 함께한 식사가 끝나자 그 자리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고민하는 명상은 그의 생활이고, 우리에게도 작품을 통해 이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II: 빌 비올라, 조우>
기간 2020년 10월 21일~2021년 4월 4일
장소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공간





Tottenham Go Fifth, Pencil and Coloured Pencil on Paper, 21×29.7cm, 2020. Photo by Jo Moon Price

헬로, 로즈 와일리
86세 할머니 작가 로즈 와일리가 그려낸 특별한 일상은 희망의 메시지, 긍정의 힘을 전달한다.
‘대기만성’이란 단어는 로즈 와일리 같은 인물을 두고 쓰는 말이다. 20여 년을 가정주부로 살아온 그녀는 47세에 영국 왕립예술학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나 30년 가까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중 한 명으로 선정하며 76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2013년 테이트 브리튼, 2017년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그녀는 2018년 영국 왕실에서 문화계 공로상까지 받았다.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그녀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은 에디터의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충분했다.
전시는 8개 섹션으로 나뉜다. ‘로즈 와일리에게 영감을 준 생명들’, ‘역사 속 이야기, 뉴스와 광고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작품들’ 등 섹션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로즈 와일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림에 반영한다.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로즈 와일리의 독특한 시각과 유쾌한 회화 스타일을 거쳐 매력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예컨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 ‘팬지의 여왕’은 로즈 와일리가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를 보고 그 색감에 사로잡혀 그린 것이다. 캔버스 오른쪽에 배치한 팬지는 초상화의 의상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려 넣었다고 한다. 팬지의 꽃말은 ‘생각’인데, 로즈 와일리는 이를 직접 화면에 기재해 작품 해석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영화의 한 장면을 가져와 새롭게 풀어낸 작품 역시 인상적이다. ‘줄리엣’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줄리엣>에서 기차 헤드라이트가 사슴을 비추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지만, 로즈 와일리는 사슴이 르네상스 시대에 반(反)이성을 상징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언뜻 어린아이가 낙서한 듯 보이는 로즈 와일리의 작품. 하지만 그 속에는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축구를 소재로 한 섹션 ‘토트넘의 팬인 로즈 와일리가 그린 액티브한 순간들’이다. 대중의 환호를 받는 축구 선수는 로즈 와일리에게 흥미로운 작품 소재가 된다. 웨인 루니, 티에리 앙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낸 작품을 보면 그녀는 소문대로 ‘축덕’이 틀림없다. 더불어 그녀는 토트넘 소속 손흥민 선수의 활약상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이번 전시를 통해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에 그린 스페셜 에디션을 최초로 공개했다.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스포츠 팬의 마음까지 사로잡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권순학 작가가 로즈 와일리의 아틀리에를 재현해 체험형 공간으로 조성하고, 아이돌 그룹 멤버가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하는 등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대중성에 초점을 뒀다. 작가의 ‘심오한’ 작품 세계를 감상하길 원하는 이들에겐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시장 중간에 새긴 로즈 와일리의 말을 상기해보면 적절한 구성이라 생각한다. “그림은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기간 2020년 12월 4일~2021년 3월 28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나메 Name>전 전시 전경.

나의 이름은…
서울 서촌의 신생 문화 공간 뮤지엄헤드의 개관전. ‘이름’을 주제로 삼아 ‘미술’이란 매체로 분명해지는 구체적인 개인을 파악한다.
우리는 대부분 태어난 순간부터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나일까?’, ‘무엇이 나를 정의하고, 또 다른 이를 정의하게 하는가?’ 등의 무한한 질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시는 이를 탐구하기 위해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근간이 되는 ‘이름’을 하나의 ‘어긋난 기표’로 상정하고 그것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참여 작가는 곽이브, 류성실, 이유성, 이환희, 정수정, 최이다, 최하늘 총 7명으로 구성했다.
모두 자신의 이름과 존재 자체에서 출발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중에서 특히 에디터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가는 곽이브. 평소 우리의 삶, 그 환경의 중심이 되는 공간인 건축물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이름을 음소 단위로 분절해 A2 용지에 나눠 그린 후 이를 벽면에 가득 붙였다. 작가의 이름 ‘곽이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의미는 조각조각 흩어져 더는 ‘의미 없음’으로 귀결된다. 다만 이 A2 용지가 벽면에 한데 모여 작품으로서 새로운 형태를 구축함으로써 비록 작가 이름의 의미는 지워졌지만, ‘작품’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있음에서 없음으로, 없음에서 다시 있음으로 유영하는 작가의 사유가 총체적으로 담긴 작품이다.
한편 최이다 작가는 ‘유제’와 ‘부름’ 총 2점의 영상 작품을 통해 이름 없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고(‘유제’), 그에게 답장(‘부름’)을 받는 연결된 작업을 선보였는데, 특히 ‘부름’에서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는 구절로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입신양명이 과연 스스로 원하는 일인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뇌당한 결과인지에 대한 고민의 여지를 남겼다. 최하늘 작가는 ‘형식을 창조하는 자’와 ‘형식을 파괴하는 자’, 즉 양면적이고 이분법적인 2점의 조각 작품을 통해 형식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파괴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 옆에 자리한 류성실 작가의 ‘죽지 않는 가문’은 부계 혈통 사회에서 이름은 가부장적 위계질서의 상징물이라는 점을 살핀 영상 작품. 화면에 비친 QR 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이 영상 작품은 작가 특유의 키치함과 유머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놓인 3점의 작품, ‘감속 컨테이너’와 ‘잠자리 스피드’, ‘유성’을 출품한 이유성 작가는 이동성, 시간 감각 혹은 발화하고 소유 불가한 소재를 통해 작가의 현재 위치와 그곳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열망 등을 투영했다. 또 회화 작가 이환희는 형식과 맥락을 소거한 작품을 통해 모두 의미가 없어졌을 때 과연 이들은 어떤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했다. 마지막으로 정수정 작가는 피륙, 꽃 같은 상반된 물체를 매개로 내·외면에서 일어나는 ‘동요’에 집중한 작품을 통해 여성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이름을 조명했다.
이렇듯 전시장은 작가 자신의 이름과 자아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가득 찼지만, 이들이 활용한 건 진짜 자신이라기보다는 연출된 자아이자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 영상, 설치 등 장르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이름 그 자체를 비롯해 자아의 의미와 맥락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작가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반추할 수 있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것을 가져간 것 아닐까?

<나메 Name>
기간 2020년 12월 3일~2021년 2월 6일
장소 뮤지엄헤드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황제웅(jewoong@noblesse.com),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공간, 뮤지엄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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