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된 새로움, 인터랙티브 아트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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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7

역사가 된 새로움, 인터랙티브 아트

디지털 매체를 통해 관람자와 작품을 연결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페터 바이벨의 전시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인터랙티브 아트의 궤적을 좇는 시작점에서 조우할 인물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기원전 384년에 태어난 그는 후대에 다양한 철학적 화두를 남겼다. 현 예술 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그의 기록물 중 <시학>에서 인터랙티브 아트의 ‘상호작용성’ 개념의 단편을 발견할 수 있다. 창작물의 제작술을 다루는 <시학>에서 그는 비극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법으로 ‘플롯(plot)’을 강조한다. 플롯, 즉 ‘시작-전개-결말’의 구조로 쓰인 완결된 텍스트를 높이 평가하고 반대로 개연성이 결핍된 느슨한 에피소드식 구조를 낮게 평가한다. 독자나 관람자가 개입해 의미를 만드는 에피소드 형식에서는 창작자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예술에서 관람자의 참여와 창작자와의 관계, 즉 상호작용성의 의미를 탐색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백남준도 예술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 예술가다. 그는 예술 영역 안에서 작품과 관람자, 창작자와 작품, 나아가 창작자와 관람자의 관계를 재고했는데, 이는 인터랙티브 아트의 근본을 이루는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은 단순히 디지털 매체를 선구적으로 다룬 예술가가 아니다. 백남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익히 알려져 있듯 TV 매체를 활용해 전달자와 수용자의 관계를 전복시킨 것이다. 매스미디어를 대표하는 이 기계는 과거에 오랫동안 일방향 정보를 송출하는 매체였다. TV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정보 전달자와 메시지 생산자는 방송국처럼 거대한 규모의 독점적 위계와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 시청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백남준은 이런 일방적 위계를 부수기 위해 TV를 조작하고 영상 작품을 만들며 둘 사이 새로운 관계를 제안했다. 개인이 TV를 조작하고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개인을 메시지를 생산, 공유할 수 있는 또 다른 생산자이자 공유자, 소비자로 만든 것이다. 예술의 역사에서 기술 매체를 통한 상호작용성의 중심축을 획득한 중요한 순간이다.
작가는 1963년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Galerie Parnass)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Television)>에서 이런 관점을 세상에 내보였다. 그는 전시장에 TV를 무질서하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배치했다. TV를 관람자의 지배하에 있는 오브제로 탈바꿈시킨 것인데, 백남준은 이 전시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창작자는 매개자일 뿐, 관람자의 참여는 창작 활동 이후의 부수적 경험이 아닌 작품 창작의 한 과정”이라고. “예술과 예술가의 권위와 일방성은 전복됐다”고. “예술은 참여적 경험”이라고. 그는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작품에 여백을 두어 그 여백에서 탄생할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했다.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미겔 슈발리에의 개인전 <디지털 뷰티>. 제공 아라아트센터

한편 20세기 중·후반 개인 컴퓨터(personal computer)가 등장하면서 예술계는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 개념은 인간의 인식과 ‘감각 경험’을 넓게 확장했다. 미디어 아트에 기반한 공공 예술을 선보이는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가 바로 이 감각 경험을 확장하고 자극한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관계적 건축(Relational Architecture)’ 시리즈 중 ‘보디 무비스(Body Movies)’(2001)는 400~1800m² 크기의 대규모 인터랙티브 스크린-인터페이스 환경을 구축한 작품이다. 작품의 구성 방식은 다음과 같다. 제어 컴퓨터와 프로젝터를 연결해 거리에서 촬영한 수천 장의 인물 사진을 도시의 한쪽에 자리한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한다. 스크린은 프로젝터 근처의 강력한 광원 때문에 평소에는 흰색 빛에 가려져 있지만 관람자가 그 앞을 지나가면 비로소 숨겨온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가 작품을 설치한 광장을 지나는 순간 그림자가 스크린에 투사되고, 투사된 그림자가 광원을 가리면 인물 사진이 무작위로 드러난다. 인물 사진이 완전히 드러나면 컴퓨터가 다른 관람자를 추적해 새로운 인물 사진을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참여자가 개입하도록 자극하고 스스로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성하게 된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들 사이 신체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이 더욱 가속되고 결국 작품을 설치한 거리는 유희적 장소로 재구축된다. 여기서 작가는 견고한 도시의 공간과 구조를 새로운 시청각 요소로 유동화해 인식적 위계와 고정관념을 흔든다. 결국 이 작품은 오늘날 현대인의 관계를 단절하고 움직임을 제한하는 도시 공간을 다채로운 가능성을 지닌 화합의 장으로 변화시킨다. 인터랙티브 아트 작품이 또 다른 감각 경험의 가능성을 제안한 것이다.
그동안 예술은 인간의 발자취를 딛고 시대의 상황과 변화, 관계에 반응해왔다. 인터랙티브 아트 역시 기술의 발달과 흐름에 반응하며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앞서 언급한 예시처럼 회화, 조각 같은 전통적 예술과 달리 관람자의 적극적 참여를 필요로 하는 인터랙티브 아트는 예술 행위자와 참여자 사이 위계를 흔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런 예술은 컴퓨터로 만든 다양한 이미지, 영상, 사운드를 매개체로 현실과 가상공간을 가로지르고 표현자와 감상자를 모두 감싸 안는다. 물론 작품의 주체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감상자는 단순히 일방적 수용자로 남지 않는다. 창작자 본인이 고안한 시스템과 공간을 매개체로 수용자의 총체적 경험을 이끌어내고 관람자는 현장의 증인이자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화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 관람자가 작품에 직접 뛰어들어 공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요즘 예술계의 판도는 기술을 매개로 한 현대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다.
지금까지 몇몇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인터랙티브 아트의 궤적을 좇았다. 자,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5월 14일 막을 내린 페터 바이벨(Peter Weibel)의 전시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에서 본 작품을 떠올리거나, 아라아트센터에서 내년 2월 11일까지 열리는 미겔 슈발리에(Miguel Chevalier)의 개인전 <디지털 뷰티>에서 최신 디지털 기술로 발현한 인터랙티브 아트 작품을 마주해보자. 작품에 담긴 상호작용성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이들에게는 작품이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문화 예술의 대지에 디지털 개념을 도입한 이후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가상 세계와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주변 환경의 관계에 이제는 AI라는 비인간 존재까지 가세했다. 인터랙티브 아트는 앞으로도 다양한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허대찬(<앨리스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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