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방법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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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5

정수진,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방법

정수진 작가는 독자적 이론을 정립해 마치 음악가가 악보로 소통하듯 그림의 색채와 형상을 이야기한다.

우리 주변의 사물과 공간,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려는 관람객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천천히 뜯어볼수록 더더욱 생소해지는 그림을 그리는 정수진 작가가 특유의 유쾌한 어투로 시원스럽게 풀어내는 회화와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 역시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것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예술 형식인 회화가 최첨단 매체이자 ‘보이는 의식’이라고 믿는 정수진 작가는 그림에 등장하는 색채와 형상을 분석하는 객관적 인식의 틀로써 나름의 이론을 정립하고, 그걸 통해 예술가로서 더욱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수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회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 대구 시공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아라리오갤러리, 두산갤러리, 몽인아트센터, 갤러리스케이프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국립현대미술관, 티라나 비엔날레, 상하이 비즈 아트센터, 부산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4년 출간한 〈부도이론: 다차원 의식세계를 읽어내는 신개념 시각이론〉으로 그림을 색채와 형상 단위로 읽어내는 독자적 이론을 묶어냈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동료 작가와 다양한 협업을 시도한다. 현재 이유진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The Last Scenery of Mind, Oil on Canvas, 130.3x162.2cm, 2023.





왼쪽 정수진 작가가 2014년 펴낸 〈부도이론: 다차원 의식세계를 읽어내는 신개념 시각이론〉.
오른쪽 사실, 공(空)에 대한 개념적 규정이 만든 캐릭터들로 만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염원 중 하나, Oil on Canvas, 100x100cm, 2013~2014.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Macao Museum of Art.

처음 예술과 만난 결정적 순간을 기억하나요? 그림은 그저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그려왔어요. 예술? 아마 열다섯 살 때쯤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단 ‘인간의 정신에 아직 정복되지 않은 분야가 있고,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 수단이 예술이고, 그림이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작가가 된 뒤, 지금까지 계속 회화라는 매체를 고집해왔죠. 회화 아닌 다른 매체의 작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첨단이라고 하는 모든 기술이 결국 인간을 닮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매체나 기술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요.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최첨단 영역을 탐구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인간을 탐구하는 매체로서 회화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내가 인간의 몸을 탐구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의사나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지. 인간의 정신 또는 의식을 대상으로 삼은 거죠. 그림은 ‘보이는 의식’이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정신의 작용이 가시화되어 나타나는 것. 모든 그림의 공통분모는 색채와 형태입니다. 심지어 물성이나 질감까지 색채와 형태로 표현할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색채와 형태를 정신적 인식 작용을 담은 언어로 여기고, 줄곧 회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회화가 가장 직접적인 매체이기 때문일까요? 가장 직관적인 매체이기도 하고요.
“인간을 탐구하는 매체, 회화가 최첨단이다”라는 말의 반대편에서 마르셀 뒤샹이 떠오릅니다. 그는 생전에 구상 회화와 추상표현 회화를 ‘망막적 예술’이라고 일컬으며 새로운 매체로 행하는 개념미술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았지요. 오히려 거기에 예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망막에 맺힌 시각적 현상을 개념화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보거든요. 서양에선 자연의 본질이라는 것이 완성된 채로 존재한다 여기고, 우리는 그 본질을 발견해야 한다, 또는 가 닿아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하는 거죠. 자연은 그냥 있는 거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인간이고, 예술의 역할입니다.
작품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익숙한 사물과 공간 그리고 인물이 등장하니까 그걸 보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계속 실패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나도 그게 참 신기해요.(웃음) 사람들이 아는 친숙한 상징이나 이야기, 자신의 경험을 그림에 겹쳐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떠올리지 않도록 이미지를 배열하고 배치하는 게 작업의 원칙 중 하나였거든요. 그런 의도대로 그림을 봐주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관람객의 좌절을 의도한 그림이라니요.(웃음) 예술은 일상이 아니니까요. 모두 아는 걸 재생산할 필요는 없겠죠.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우리가 아는 이야기에서 끊어내는 것이 그동안 이어온 제 작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우리가 작품을 보며 떠올리는 이야기는 주관적이고,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의도적으로 그런 걸 피하려 했습니다.
‘그림체가 다르다’는 요즘의 밈(meme)적 유행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품에 만화 캐릭터 같은 인물과 사실적 화풍의 인물이 함께 등장하고, 한없이 평면적이다가도 원근법을 엄격하게 적용한 박스 같은 공간이 나오고, 구상 회화에 물감을 쏟은 듯 추상적인 표현이 불쑥 나오기도 하고요. 그림을 분석하는 인식의 틀로 나름의 이론을 정립하기 전에 다양한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 독자적 이론을 지난 2014년 〈부도이론: 다차원 의식세계를 읽어내는 신개념 시각이론〉이라는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충분히 알지 못하면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없어요. 보이는 것만으로는 색채와 형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분석의 단위를 만들기 위해 이론을 정립한 거예요. 색채와 형상이 어떻게 작동해 인간의 의식을 가시화하는지 알기 위해서. 인류의 문명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고 가시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왔어요. 온도를 측정하고, 음식물에 함유된 에너지를 칼로리로 계산하고. 그러기 위해 장치가 필요해요. 내가 세운 이론 역시 그림에 들어간 색채와 형상, 작가의 의식을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요리사가 칼로리를 측정하는 장치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요리는 잘 모르지만, 작업하면서 음악을 많이 들어요. 미술을 공부하고 작업을 이어갈수록 정해진 틀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화성이 있고, 대위법이 있으니까. 또 재미있는 건 같은 악보를 보면서도 연주자에 따라 다른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거기서 영감을 참 많이 받아요.
음악이 그림이라면, 악보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론과 악보 모두 인식의 틀이니까요. 그걸 어떻게 해석할지는 모두의 자유고요. 굳이 이론을 만든 건 그림을 특정한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예요.
작업할 때는 어떤 음악을 듣나요? 겐리흐 네이가우스(Heinrich Neuhaus)가 연주한 쇼팽. 프로코피예프와 스크랴빈, 버르토크의 피아노, 관현악곡. 그리고 임윤찬!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하면 일부러 찾아가서 볼 정도예요. 3월 공연도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볼수록 생경한 작품도 그렇지만, 앞서 한 이야기 역시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문득 어떤 회화 작품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졌어요. 대부분 옛날 그림이에요. 일반적으로 ‘라파엘전파’로 분류하는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같은 영국 작가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해요. 유화라는 매체를 다루는 작가로서 그걸로 얼마나 다양한 화면의 질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들의 그림을 보며 늘 새롭게 배웁니다.
유화의 표면 질감이라고 하면 보통 두꺼운 마티에르를 이야기합니다. 그것과는 달라요. 사람들이 자기 경험이나 심상을 투영해 그림을 보는 이유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예전의 나도 그랬고요. 하지만 사소한 붓질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종류의 표면 질감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가 정말 많거든요. 회화가 지닌 대부분의 정보라고 해도 될 정도죠.
색채와 형상뿐 아니라 붓질 하나하나 역시 작가의 의식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인물, 정물, 구상, 추상 등 전통적 분류는 사실 그림을 분석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좀 더 작은 단위로 색채와 형상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 색채와 형상의 단위는 곧 의식의 단위고, 표면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작은 붓질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그 수도 없이 다양한 표현이 만들어내는 층위를 분석하고,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던 의식의 층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설이죠.





Still Life 2, Transposition(Convers Inverse Transposition), (Same Opposite Similar Distinct), Oil on Linen, 100x100cm, 2018.





Brain Ocean 5, Oil on Canvas, 175x175cm, 2020.





Brain Ocean, Oil on Canvas, 180x220cm, 2020.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만년 작품 〈꿈〉(1990)에서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옛날 도사들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하잖아요. 그림이 의식을 반영한다면, 객관적으로 그림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 우리의 의식, 즉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죠.
현대미술에서는 그런 영감을 받지 못하나요? 앞서 이야기한 뒤샹의 예술은 분명 기념비적이에요. 소변기를 눕혀 ‘샘’으로 만들고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했죠. 그런데 그 후의 미술은 어떤가요? 다 뒤샹이 만든 ‘샘’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그저 주석 정도 달았을까? 그런 동어반복이 재미있을 리 없잖아요.
끊임없이 지우고 다시 그리는 작업 방식으로 유명하죠. 이전 인터뷰에서 스스로 납득할 만한 ‘밀도’가 나올 때까지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 백 번 넘게 고쳐 그린 그림도 있어요. 사실 그림의 끝이라는 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누가 봐도 동의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이제 그만둘 수 있겠다는. 그런 느낌이 올 때까지 계속 그린 거죠.
그런 느낌을 왜 ‘밀도’로 표현한 건가요? 이미지를 계속 채워나가다 보면, 화면 안에 이미지 자체가 가진 어떤 시공간이 생기거든요. 그런 작용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더 이상 뭐가 들어가도 변화가 생기지 않는 순간이 와요. 그럴 때 멈추는 거죠. 어떻게 보면 퍼즐과도 비슷해요. 다차원 퍼즐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한 작품을 끝내는 데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작품에 따라 달라요. 사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그래서 어떤 작품 하나를 끝낼 때 얼마나 걸리는지 말하긴 어렵습니다.
예산과 기간 등 물리적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 작품이 들어갈 공간부터 만들어보고 싶어요. 외부와 내부,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모두. 마치 그림을 그리기 전, 캔버스를 짜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말이에요. 오로지 내 그림만을 위한 공간, 그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작가로서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뇌해’ 연작을 다시 작업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래전 작품을 다시 작업하는 건 어떤 경험인가요? 제게 ‘뇌해’는 여러모로 상징적인 작품이죠. 인간의 의식을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계속 다루고, 탐구하기에 그동안 계속 그려온 작품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새롭지는 않아요. 하지만 표현 자체는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최근 그린 것과 2000년대 초반 작품을 비교하면 과거 작품의 표현이 그리 다양하지 않을 거예요. 당시에는 모호한 것도 싫었고,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상징하거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그리기 싫었어요. 그런 걸 일부러 피해서 그렸기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면, 이제는 색채와 형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림에 좀 더 다양한 요소를 담을 수 있게 되었죠.
인식의 틀로써 이론을 세운 이유가 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이제 이해가 됩니다. 그렇죠. 예전에 피해 다니던 것을 이제는 그림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거죠.
흥얼거리던 노래를 악보로 표현할 수 있게 된 후에는 여럿이 합주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해석이 생길 수도 있겠죠. 그래서 그 이론을 바탕으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스타일이 전혀 다른 작가들이 함께 작업하고, 그걸 분석해보는 거죠. 아직 구체적인 작업이 나오는 단계는 아니고, 전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작가들이 본인의 작업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앞으로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렇다면 작가로서 본인이 지금 어떤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제 시작이죠. 나름의 이론을 완성했으니 이제 원하는 예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하다 보면 작업도, 이론도 더 발전하겠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생겼으니, 그렇게 날다 보면 점점 더 높이 날 수 있겠죠.





Flying Seal, Oil on Canvas, 92x104.5cm, 2006.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이유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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