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다솜의 태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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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7

새해를 맞이하는 다솜의 태도

이제 가수보다 연기자라는 수식어가 더 자연스러운 그녀의 겨울.

컬러풀한 일러스트 드레스 Stella McCartney, 페이턴트 소재 부츠 Fendi, 골드 이어링 Ille Lan, 골드 링 S__S.IL.

대중가요와의 인연은 1990년대가 전부인 나지만, 여름이면 씨스타의 노래는 들었다. 그녀들은 21세기 한국의 도나 서머였다. 여름이면 모기향이나 수박처럼 그녀들이 떠올랐다. 다솜은 그녀들 중 가장 환히 웃었다. 짧은 팬츠를 입고 밝은 표정으로 무한한 젊음과 사랑을 노래했다. ‘I Feel So Cool Cool Cool’, ‘Ma Boy Ma Boy’. 거기엔 일말의 그늘이나 걱정 따윈 없었다. 잭 존슨의 노래 이스케이프(Escape) 가사 ‘If You Like Pina Coladas’처럼. 여름이 갈 때까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다솜은 우아하게 무대 위를 거닐고 도발적이면서도 대책 없는 긍정의 에너지를 뿜었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이 끝났다. 이제 그녀는 무대 대신 카메라 앞에 섰다. 노래 말고 대사를 읊고 춤 대신 감정을 손짓했다. 거기서 처음 그녀의 그늘을 느꼈다. 솔 톤으로 귀에 감기던 노래 대신 날카롭고 다소 신경질적인 비명을 들었다. 그리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그러지는 표정을 봤다. 다소 거칠고 불안했지만, 날것 같은 생명력이 느껴지는 연기였다. 이제 겨우 몇 작품 해냈을 뿐인데, ‘연기자’라는 타이틀이 제법 어울린다. 여러 분야와 장르를 쉽게(쉬워 보이게) 넘나드는 세상이지만, 만능 엔터테이너나 끼, 재능 같은 말로 그녀의 노력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그녀는 아직 연기가 쑥스럽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건방지다며 자신을 낮춘다. 그러나 내면의 악마적 열망으로 금세 성장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다시 여름을 맞이할 것이다. 몇 시간 남짓 그녀와 대화를 나눈 뒤 든 생각이다. 여름은 끝이 났지만, 다른 계절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할 것이다. 그 계절의 초입에서 그녀를 마주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월동 준비는 끝냈나? 요샌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겨울을 좋아하는데, 올해는 차분히 지내고 있다. 운동할 때를 제외하곤 집순이로 살고 있다. 문장으로 표현하면,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고독을 즐기고 있다.

외출이 잦고 화려한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계절에는 집에 잠시도 붙어 있지 못한다. 그런데 화려한 타입은 아니다.(웃음) 등산도 가고 싱싱한 해산물 먹으러 수산시장도 다닌다. 어떤 날은 즉흥적으로 포항에 가서 낚시를 한 적도 있다. 요샌 일상이 심플하다.

SNS를 보면 여행 사진이 많다. 한번 여행할 때마다 좀 세게 떠난다.(웃음) 여러 도시에 가는 데다 오래 머문다. 중학생 때 유학을 떠난 친구들이 있다. 덕분에 편하게 다닌다. 그들과 어울리며 오랜 시간 돌아다니다 오면 한동안 마음이 편하다. 그걸로 또 몇 달을 산다. 포스팅을 자주 해서 그렇게 보이나 보다.

왜 이번 겨울은 유난히 고독할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딱히 이유는 없다. 마음이 동할 정도로 큰 일도 없었다. 그냥 요즘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밖에서 보내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더 편하다. 정적인 시간, 아주 느린 템포로 움직이는 게 좋다.

뭔가를 회피하는 건가, 아니면 그런 시간에서 얻는 것이 있나? 생각을 한다. 정말 많은 생각을. 가수 활동을 할 땐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바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빴다. 그땐 주어진 것을 처리하는 데 급급했다. 매 순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사고하고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정해준 스케줄대로 살았다. 요샌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직접 컨트롤하고 있다. 생각하고, 글도 쓰고, 영화도 많이 본다. 좋은 시간이다.




베이지 컬러 코트 MaxMara, 레드 스트랩 힐 Stuart Weitzman, 골드 이어링 Ille Lan.

고민이나 생각의 주제는 어떤 것인가? 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다. 지금은 연기자로 살다 보니 그런 고민이 더 많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어떤 연기자가 되어야 하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글은 어떤 걸 쓰나? 두서없는 끄적거림. 에세이나 소설같이 거창한 건 아니다. 가끔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할 때가 있다.(웃음) 연기에 대한 매력, 고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 그런 걸 파편적으로 적는다.

(그녀는 자신이 끄적거린 휴대폰의 메모를 선뜻 보여줬다. 실례라는 생각에 뚫어져라 볼 순 없었지만, 진중하고 무거운 생각이 정갈한 문장으로 드러나 있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 같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이다. 많이 읽는다고 할 순 없지만, 노력 중이다. 종류를 가리진 않는다. 그냥 서점에 가서 마음 내키는 대로 산다. 전엔 베스트셀러나 누군가 추천해주는 책을 많이 읽었다. 이제는 손이 가는 책을 읽는다. 다행히 여기저기 관심이 많아 분야가 다양하다.(웃음) 요즘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있다. 벌써 몇 번째 시도다. 전에 유시민 작가가 TV에서 추천하는 걸 보고 샀는데, 쉽지 않다. 인문학 서적도 좋아한다. 최근에 다 읽은 건 <니체의 말>이다.

대학 때 잠깐 들춰보다 엄두도 못 낸 책들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나 장르 같은 게 있나? 밀란 쿤데라를 좋아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몇 번이나 읽었다. 읽을수록 좋았다. 난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어야 이해된다. 그래도 하루에 20페이지는 읽으려고 노력한다.

최근 본 영화 중 다솜의 고민과 맞물리는 작품이 있나? 많은 연기자가 그럴 텐데, <조커>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내가 연기한 것도 아닌데, 어딘가 아리고 쓰리다. 너무 우울해졌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 바닥이라고 생각할 때도 더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힘들었다.

연기자는 물론 창작자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준 작품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도 그랬고. 그런데 여배우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다. 영화를 보고 사흘 정도는 멍한 기분이었다. 위험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때, 이런 영화가 어떤 영향력을 줄 수도 있겠다는 걱정. 그리고 그 연기를 한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수만 가지 감정을 느꼈을 텐데, 고독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아까 글을 보여줄 때 ‘난 악마적인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봤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가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특히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충동이 강하게 들 때. 그때 갖지 못하면 괴로움마저 느낀다. 그 열망, 정말 악마처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갖고 싶다.(웃음) 대상은 주로 배역이다. 좋은 작품에 욕심나는 역이 생겼을 때, 그걸 갖지 못하면 끝없이 빠져든다. 왜 난 저걸 갖지 못하지? 가끔은 스스로도 그런 감정이 두렵다.




민트 컬러 시스루 드레스 Fendi, 크림 컬러 펌프스 Rachel Cox, 진주 장식 이어링 S__S.IL,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 열망한 배역이 있나? 원했지만 갖지 못한. 문제는 그런 배역이 많다는 거다.(웃음) 뜻대로 되지 않을 땐 견디기가 힘들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그 순간만 강렬할 뿐. 안타깝고 분하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씨스타가 해체되고 연기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나? 이제는 케이스가 여럿 생겼지만, 가수에서 연기자가 된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일이다. 2년 반 됐다. 요즘 자주 기원을 더듬는다. 언제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영화광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좋은 영화를 많이 접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영화를 본 뒤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시간이었다.

무대가 그립진 않나? 그립다. 식당에 가면 가끔 날 알아보곤 씨스타 노래를 틀어준다. 그럴 때면 어깨가 들썩인다.(웃음) 참자, 참자 애써봐도 나중에는 춤을 추고 있다. 몇만 번이고 연습한 거라 몸이 절로 움직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땐 정말 바빴다. 공연을 하러 가면 보통 4곡을 했다. 그렇게 하루 다섯 번 공연을 한 적이 많다. 서울에서 시작해 대전, 대구, 부산 그리고 다시 서울. 우리가 행사를 가장 많이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운 게 많다. 가끔 예전 영상을 보는데, ‘아 내가 저때 저렇게 찬란했구나, 예뻤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룹 활동을 하다 혼자가 됐다. 거기서 오는 감정의 변화도 있을 것 같다. 가끔 굉장히 쑥스럽다.(웃음)

‘쑥스럽다’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의외다. 다솜과 어울리지 않는 말 같아서. 주위에서 화려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실 소탈한 성격인데. 여성스럽거나 화려한 건 나랑 맞지 않는다. 숫기가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한 타이밍에 쑥스러움을 느낀다. 난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연기자 다솜, 이젠 이 호칭이 어떤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연기자다’라는 것보다는 ‘더 이상 가수가 아니구나’ 하는. 무대에 오른 지 너무 오래됐다. 요즘 가수들을 보면 신기하다. 전엔 다른 가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 일을 해내는 데만 급급했다. 이젠 좀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다른 가수를 보면 전에 보지 못하던 스토리와 컨셉, 안무, 노래 같은 게 보인다. ‘아, 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을까’, ‘어떤 고생 끝에 저 자리에 섰을까’ 같은 걸 상상한다.

그래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솜이 연기자라는 것이 이젠 어색하지 않다.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탐구를 자주 한다. 치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생각하고 자문한다. 왜 지금 이런 기분이 들까?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사유해야 하지? 그리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만약 연기자로서 재능을 한 줌 쥐고 있다면 그건 아마 공감 능력일 거다. 난 타인에게, 또 그들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잘한다. 나만의 무기다.




사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면 본인은 피곤하다. 맞다. 누군가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 감정에 빠져 피로가 상당하다. 별것 아닌 일이라도 세심하게 상상한다. 감정은 물론 표정이나 손짓까지.

연기하는 건 어떤가? 몇 작품을 거쳤다. 이제 익숙해졌는지? 아직은 연기에 대해 말하는 게 뭐랄까, 쑥스럽다. 고작 몇 작품 했을 뿐이다. 기초부터 배우는 중이다. 그런 내가 연기에 대해 말하는 건 건방지고 쑥스러운 일 같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연기자라는 직업이 다솜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딱 맞다. 나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다. 그리고 엄청 많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 내 안에는 폭발적인 어떤 소용돌이가 있다. 이걸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걸 정제해 작품에 맞게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릴 때 데뷔했다. 특히 10대부터 20대까지, 그러니까 삶이 가장 요동치는 시기를 스타로 살았다. 데뷔한 지 이제 10년 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해 스물일곱 살이 됐다. 아직 내공은 없다. 여전히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진작 했어야 할 고민을 지금 하고 있다. 밀린 숙제를 하듯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이 날 행복하게 하는지, 그리고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이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간을 보내는 태도. 전에는 남이 설계해주는 대로 살았다. 의미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스케줄을 정한다. 부침도, 시행착오도 있다. 그래도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적으로 더 단단해지고 있다.

출연할 작품을 고르는 중일 텐데, 어떤 역할을 맡고 싶나? 아직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어떤 기회가 오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그래도 만약 선택할 기회가 온다면(웃음) 영화를 하고 싶다. 대단하거나 비범한 캐릭터가 아닌, 평범하고 현실적인 사람을 연기하고 싶다. 길에서 툭 하고 마주칠 것 같은 사람. 그런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사연을 연기하고 싶다.

이제 곧 본격적인 겨울이다.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싶나? 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는데, 오늘 하나 이뤘다. 멋진 화보 찍는 것. 그래서 기쁘다. 일단 고민의 시간을 잘 넘기고 싶다. 그래서 단단해진 다솜으로 내년을 맞이하고 싶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최민석   스타일링 노해나   헤어 조영재   메이크업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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