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에서 만나는 예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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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1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에서 만나는 예술

예술 인프라를 완벽하게 제공할 전초기지, 아를의 모든 것.

예술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복합 단지 루마 아를 전경. ⓒ Herve-Hote





루마 아를 중앙에 우뚝 솟아 태양빛을 반사하는 아를 타워. ⓒ Adrian-Deweerdt





루마 아를을 건립한 마야 호프만.

로마 시대에 지은 원형경기장부터 고흐를 따라가는 예술 기행, 유서 깊은 아를국제사진축제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을 찾는다. 오는 6월 26일, 이 도시를 찾을 또 다른 이유가 생긴다. 오랜 기간 예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대규모 예술 복합 단지, 루마 아를이 드디어 오프닝 소식을 전했다.
루마 아를은 스위스의 글로벌 제약사 로슈가문의 상속자이자 파워 컬렉터 마야 호프만(Maja Hoffmann)의 역작이다. 뉴 뮤지엄, 팔레 드 도쿄, 쿤스트할레 바젤 등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동시대 아트 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녀는 2004년 자녀 루카스(Lucas)와 마리나(Marina)의 이름에서 각각 두 음절을 따 예술가의 글로벌 프로젝트와 전시를 후원하는 비영리 조직 루마 파운데이션(Luma Foundation)을 세웠다. 그녀는 조부모대부터 이어진 메세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데, 그 증거가 실험적 문화 기지를 만들겠다는 마스터플랜 아래 2013년 시작한 루마 아를 건립 프로젝트다.
마야 호프만은 군도(archipelago)의 개념으로 루마 아를을 설명한다. 무리를 이룬 크고 작은 섬을 뜻하는 군도는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에두아르 글리상의 말을 인용해 꾸준히 주창하는 아이디어다. 절대성이나 하나의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서로 다른 문화가 혼재하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론. 이를 참고하면 ‘예술과 문화, 인권, 환경 이슈, 교육과 연구 간 직접적 관계에 집중한다’는 루마 아를의 지향점을 한층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루마 아를은 구체적 장소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도시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통합된 계획에 따라 각각의 기능을 하는 건물이 모인 캠퍼스처럼, 루마 아를에는 전시 공간은 물론 워크숍이나 공연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연구실, 세미나실 등이 분포한다. 그 중심부에 우뚝 선 루마 타워는 현재 내부 공사 마무리 단계에 있다. 거장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대범한 개성을 반영한 이 9층 건물은 1만1000개의 스테인리스스틸 패널을 사용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남부 산맥과 절벽, 암석, 아를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고흐의 붓 터치가 설계의 영감이 되었다고 한다. 타워엔 전시실과 아카이브, 오디토리엄, 카페 등이 들어설 예정으로 호프만의 방대한 컬렉션도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디미트리 샹블라의 퍼포먼스 ‘Slow Show’의 한 장면. ⓒ Anne-Sylvie Bonnet





ⓒ Joana Luz





루마 아를에서 2019년 개최한 [50 Years, 50 Books: Masterworks from the Library of Martin Parr]전 전경. ⓒ Joana Luz

타워의 주변부를 감싸는 파르크 데 아틀리에(Parc des Ateliers)의 부속 건물들은 막바지 단장에 돌입했다. 옛 철도 공장을 개조해 전시와 공연을 여는 한편, 시민의 녹색 쉼터가 될 공공 정원을 무료로 개방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명칭 그대로 ‘아틀리에가 모인 공원’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출판사와 국립사진학교, 음악 페스티벌 등도 자연스레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긴다고. 과거 아를의 경제적 중심지였다가 쇠락한 도심 일대를 예술로 부흥시킴으로써 지역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뉴욕 기반의 건축사사무소 젤도르프 아키텍츠(Selldorf Architects)가 2014년부터 차례로 기존 공장 건물을 레노베이션했고, 공원의 재단장은 벨기에 출신 조경 건축가 바스 스메츠(Bas Smets)가 진두지휘했다.
루마 아를은 완벽함을 목표로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생명체처럼 점진적으로 그 모습을 갖춰왔다. 루마 아를을 ‘살아 있는 유기체’에 비유한 마야 호프만의 표현처럼 말이다. 전형성을 탈피해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다차원 협력 구조를 응원하는 헤드쿼터 역할을 할 루마 아를. 수년간 개조와 신축을 진행하면서도 현재진행형의 일을 꾸미며 앞으로 행보를 추측할 수 있는 힌트를 던져왔다. 일례로 안무가 디미트리 샹블라(Dimitri Chamblas)와 아마추어 댄서 50명이 협업한 2019년의 퍼포먼스 ‘Slow Show’가 있다. 공간의 개별 특징을 반영해 파르크 데 아틀리에 곳곳을 이동하며 자유롭지만 움직임의 속도는 고도로 계산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기획으로 ‘생태계, 불평등, 연대, 반인종주의, 사회적 정의 등 현재 우리가 당면한 질문에 대한 예술가 100여 명의 대답’을 포스터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을 한데 모은 2020년의 전시 <It’s Urgent>도 빼놓을 수 없다.
올여름 모든 공간을 공개하는 루마 아를은 “예술가의 작품 제작을 돕는 것은 물론 다른 분야 예술가와 긴밀한 협력을 유도하고, 큐레이터 및 대중과 함께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전념할 것”을 약속했다. 이 정도면 오랜 불확실성에 지친 이 세상에 그들이 어떤 새바람을 몰고 올지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에디터 황재웅(jewoong@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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