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겨진 박원민의 예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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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7

돌에 새겨진 박원민의 예술

지난 10월 런던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치고 파리에 돌아온 박원민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Plain Cuts_ Stone & Steel #4 SS2104’와 함께한 박원민. Courtesy of Carpenters Workshop Gallery

박원민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2011년 로테르담에 스튜디오를 열었고, 2015년 파리로 거점을 옮긴 후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밀라노 로산나 오를란디 스튜디오에서 여러 차례 디자인 오브제와 아트 퍼니처를 선보였고,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소속 작가로 파리, 뉴욕, 런던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서울공예박물관 리셉션 가구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예술과 맞닿은 더 큰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를 목표로 현재 런던 왕립예술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Plain Cuts_ Stone & Steel #4 SS2104, Stone and Dyed Steel, 163×130×35cm, 2018~2021. Courtesy of Carpenters Workshop Gallery





Plain Cuts_ Stone & Steel #8 SS2108, Stone and Dyed Steel, 60×50×105cm, 2018~2021

거대한 암석을 절단해 나타난 형태, 그리고 그 형태를 본뜬 강철판을 올린 테이블 작품. 일본에서 채굴한 화산암의 표면은 거칠지만 테이블의 중앙 단면에선 광택이 난다. 안과 밖, 돌과 스틸, 곡선과 직선의 대조를 보여준다. 박원민 작가는 수천 년 전 지질학적 사고의 산물인 돌 각각이 독특하다는 것에 강렬히 끌렸다고 한다. 그는 돌이 품은 내적 역사를 자신만의 배열로 재창조하며 예술의 위대한 형태와 과정의 증거로 가져왔고, 이를 ‘일종의 포스트-모노하에 대한 화답’이라고 칭했다.

화산암과 산업용 강철판을 사용한 신작 ‘Stone & Steel’의 물성과 힘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직선이 매우 두드러진 알루미늄 소재의 전작 ‘Plain Cuts’와 비교하면 단연코 돌이라는 소재와 비정형의 곡선이 돋보입니다. 연작 같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른 작품인 것도 같기도 합니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매우 간결하고도 강한 이미지가 있죠. 반대로 곡선은 자연의 것입니다. 인간이 곡선을 그려낼 수는 있지만 결코 자연의 곡선이 지닌 느낌을 만들어낼 수는 없죠. 언제나 곡선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인위적인 곡선은 싫었습니다. 이를 고민해오다 결국 돌이 품고 있는 곡선을 찾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돌을 자르는 것은 이번 조각 작품의 완성도를 가름하는 필수 과정입니다. 납작하게 깎은 면은 돌 외벽의 질감과 불규칙함을, 자연미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죠. 강철은 돌의 절단선에 다시 한번 부피를 더하고 공간까지 확장해 균형을 만듭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작업은 저에게 중요한 변환점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제 작업을 ‘디자인’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품명에도 테이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넘버만 매겼습니다.
신작에 사용한 암석은 일본에서 채굴했어요. 조각가이자 디자이너 노구치 이사무(Isamu Noguchi)도 사용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 돌은 어떻게 찾아낸 건가요?
그 채석장을 소유한 분을 처음 만난 건 6년 전입니다. 당시는 레진으로 만든 ‘Haze’ 시리즈를 이탈리아에서 전시하던 때였지요. 제 작품에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일본 미야기현에 소유한 채석장의 돌을 보여주었습니다. 노구치 이사무도 그곳의 돌을 사용했다며 자신의 돌을 잘 다룰 작가를 찾고 있다고 했지요. 그렇게 계속 인연을 이어오다 2년 뒤 곡선과 자연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며 채석장을 방문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돌과 철이라는 전통적 소재로 이 시대에 어떻게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번 작품을 보고 어떤 평론가는 “시적이다”라고 표현했고, “전시장에서 섬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쓴 기사도 봤습니다. 레진으로 만든 전작 ‘Haze’ 시리즈도 은유적 감성이 풍부하다는 평을 들었고요. 어떤 맥락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작품에 담긴 철학은 무엇일까요?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고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언제나 아시아, 한국의 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인지 계속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번 작품을 만들어놓고 1970년대 모노하 운동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모노하는 산업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했고, 자연 재료와 공업 재료를 사용해 변하지 않는 상태로 배열했습니다. 깊이 파고들면 복잡한 맥락과 실험성 속에서 매우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간결하게 말하면 동양에서 출발한 미니멀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노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포스트-모노하에 대한 저만의 화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Plain Cuts_ Stone & Steel’ 시리즈의 재료가 되는 암석은 일본 미야기현에서 공수했다.





Haze Armchair (Red, Yellow, Green), Resin, 66×49.5×85cm, 2013. Courtesy of Carpenters Workshop Gallery ⓒ Carpenters Workshop Gallery





‘Curved’ reception desk, Marble, 350×70×128cm, 2015~2016

그렇다면 박원민 작가에게 모노하는 무엇인가요?
물성에 대한 탐구입니다. 스톤은 자연의 시간입니다. 부서지고 구르고 퇴화하면서 탄생한 자연의 산물이죠. 그리고 스틸 플레이트는 사람의 시간인 동시에 자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죠. 이번 작품의 돌을 보면 바깥쪽은 갈색이고 안쪽은 검은색이 보입니다. 돌에 철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녹슨 것이 갈색으로 나온 거예요. 이렇게 서로 연관이 있으면서도 다른 두 가지를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 그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심플한 아이디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단순하냐, 복잡하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은 철학입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모노하입니다.
듣다 보니 작가님을 세계에 알린 ‘Haze’ 시리즈로 시작한 작업에 이번 작품이 어떤 완결의 의미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발표한 ‘Haze’ 시리즈는 작가로서 제게 어떤 모멘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두세 차례 연작을 발표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이 시리즈를 발표할 때는 어떤 시대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때는 아트 퍼니처에 사용한 파스텔 색조도 거의 쓰지 않았고, 간결한 형태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당시에는 멤피스 그룹이라는 것도 잘 몰랐어요. 많은 사람이 제 작품을 보고 멤피스가 떠오른다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Haze’ 시리즈가 유명해지니까 유사한 작품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는 머무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Haze’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 미니멀리즘을 다른 시각으로 모색해보고 싶었고, ‘Plain Cuts’에서는 레진에서 벗어나 평범한 재료인 금속만 사용해 직선을 표현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런던 왕립예술원에서 건축 석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유럽의 디자인 학교에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건축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공부하는 이유는요?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는 어떤 회사에 취직해서 조직에 맞춰 작업하는 디자이너를 길러내지 않아요. 보다 예술적인 접근을 강조합니다. 아트와 크래프트, 디자인이라는 꼭짓점 사이에서 새로운 비전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학교를 졸업할 땐 어떤 지겨움을 느꼈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일었죠. 자문했습니다. 무엇이 새로운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 아름다움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그래서 반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디자인의 스토리텔링보다는 그저 작품의 순수성과 그 존재성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은 저를 디자이너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예술가라 칭합니다. 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해 가구를 만들고 있긴 하지만,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으니 둘 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 대중적이거나 양적인 제작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분야의 뚜렷한 경계를 나누기보다 더 새롭고 넓은 분야, 즉 공간으로 시야를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스케일에 대한 고민은 한 4년 전부터 계속해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건축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크게 깨닫고 배우고 있습니까?
건축과 조각, 디자인 세 분야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는데, 결국 스케일과 공간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건축에서도 보면 디자인적 건축이 있고 조각적 건축이 있는데, 디자인적 건축은 정밀한 기계를 만드는 것과 비슷해요. 조각적 건축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표현이긴 해요. 왜냐하면 결국 조각이 아닌 조각스러운 건축이라는 말이니까요. 미니멀리즘부터 순수예술과 건축이 서로 독자적으로 발전했고 미니멀,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순수예술과 건축에서 뜻 자체가 달라요.
건축은 지리학적 맥락과 촉각적 경험을 우선시하며 발전했고요. 아무튼 저는 건축 스케일과 공간에 관심이 있습니다. 공간과 사물의 상호 관계, 순수예술과 건축의 중간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작업을 아우를 수 있을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제 작업의 연장선 상이 될 수 있는. 이번에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수영장 디자인을 의뢰받아 진행 중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박원민 작가가 보여줄 스케일이 큰 작업을 기대해도 좋겠네요. 작가로서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 가능한 한 모든 재료를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세라믹 작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작가로서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건, 어떻게 보면 단어와 문장을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어라는 재료로 문장을 만들어내듯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요. 또 아직은 젊은 작가군에 속하니 힘이 조금 많이 들어가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재료로 실험하는 여정 끝에서 무언가에 다다를 수 있겠죠. 일단 재료에 집중한 작업을 하고, 나중에 스케일을 부각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강보라(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박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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