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스트들이 꼽은 작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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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4

갤러리스트들이 꼽은 작가

작가들이 거장으로 거듭나기까지 많은 갤러리스트들의 도움이 있었다. 굵직한 이력의 갤러리스트들이 꼽은 작가는 누굴까?

Meditation No.22802, Tak Fiber on Cotton, 180×90cm, 2002

표갤러리 표미선 대표 & 정창섭 작가
홍익대학교 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박서보 선생님이라면, 서울대학교 미대의 상징적 인물은 정창섭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은 서로 친했지만 성향은 조금 다르시죠. 제가 본 정창섭 선생님은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는 예술적 이상향에 다가가기 위해 작업에 몰두하는 걸 좋아하는 철학자 스타일의 작가였습니다.
정창섭 선생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단어는 ‘선비’입니다. 품위 있고 생각이 깊으셨어요. 작업실에서도 언제나 당장 미팅에 나가도 될 정도로 단정한 차림을 하셨습니다. 한데 그 모습을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한눈에 반해 몇 번이나 작업실을 찾아갔지만 뵙지 못했거든요. 처음엔 안 계시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조용히 작업하고 계신 거였죠. 제가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고 나서야 겨우 작업실에 초대받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에 하신 말씀은 전시를 여는 것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거였어요. 실망스러운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흠모하던 작가의 작업실에 갔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어요. 당시 선생님은 ‘닥’ 연작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닥종이를 물에 담가 불리는 모습, 캔버스 위에서 닥 반죽이 마르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니 비로소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야 전시 개최를 수락하셨어요. 선생님은 작품을 잘 판매하는 갤러리스트보다 본인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하는 갤러리스트와 일하길 원하셨던 겁니다.
전시를 열기 전 선생님이 신신당부하신 게 하나 있습니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판매를 위해 작품을 설명하지 말아달라는 거였죠. 그저 사람들이 작품을 온전히 보고 느끼길 원하셨습니다. 사실 이건 작가로서 꺼내기 어려운 말입니다. 작품 판매는 곧 생계와 연결되는 문제니까요. 선생님은 오히려 갤러리 유지를 위해 작품을 팔아야 하는 건 이해하지만, 본인을 위해 작품을 팔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관람객의 감상평을 모아 전해드리면, 기쁜 마음으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이기에 고고한 정신과 작품 세계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표미선(표갤러리 대표)





Ecriture(描法) No. 41-78, Pencil and Oil on Hemp Cloth, 194.5×300cm, 1978, Collection of Leeum Samsung Museum of Art, Seoul
이미지 제공 기지재단

박여숙화랑 박여숙 대표 & 박서보 작가
흔히 박서보 선생님을 ‘단색화의 리더’라고 부릅니다. 요새 리더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박서보 선생님이야말로 이 호칭이 어울리는 작가입니다. 반평생을 홍대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한 것은 물론 ‘박서보 사단’이라 칭할 정도로 동료 작가들을 챙기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내며 한국 화단의 견인차 역할을 한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더 대단한 건 연로하신 지금도 리더의 역할을 도맡아 하신다는 겁니다. 2016년 파리 페로탕 갤러리에서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 작가님의 3인전이 열렸죠. 최명영 작가님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일찍 돌아가신 이승조 작가님의 작품 세계가 해외에서 조명받은 여러모로 뜻깊은 전시였습니다. 이 전시는 박서보 선생님이 페로탕 갤러리에 강력하게 추천해서 성사된 겁니다. 전시 큐레이팅을 직접 담당하실 정도로 각별히 신경 쓰셨고요. 3인전 당시 저도 파리에 있어서 선생님을 한 호텔로 모셨는데, 그곳에 낯선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박서보 선생님은 그 작품을 보더니 “좋은 작품이다. 분명 한국 작가다”라고 말씀하셨죠. 알고 보니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진우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원래 좋은 작가지만, 박서보 선생님이 강력하게 이끌어 한층 빛을 보게 됐습니다. 2016년 영국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본인의 개인전에서 선생님은 이진우 작가에게 작품을 한 점 가져오라고 요청했고, 미술계 주요 인사들에게 그 작품을 보여주며 한국을 대표할 작가라고 소개했습니다. 특히 그때 같이 있던 일본의 도쿄 화랑 대표님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2017년 이진우 작가의 도쿄 화랑 개인전이 열리게 됐습니다. 박서보 작가님은 갤러리에서 전시 의뢰만 받는 작가가 아니라, 훌륭한 한국 작가를 세계에 소개하는 힘과 추진력이 있으십니다.
이런 일화를 들으면 즉흥적인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박서보 선생님은 굉장히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매일의 일을 기록하고 드로잉 작업도 굉장히 꼼꼼하게 하시죠. 수년 전 잠깐 마주친 해외 큐레이터에게 정성스럽게 연하장을 쓰고, 화집이 나오면 빠짐없이 챙겨 보내시고요. 이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여 한국 근·현대미술이 알려지고, 오늘날 활짝 개화하는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업이, 그리고 한국 미술이 세계에서 통할 거라는 확신이 있으셨어요. 앞을 내다보는 비전과 탁월한 능력, 동료들을 아우를 줄 아는 진짜 리더. 박서보 선생님은 그런 분입니다.
박여숙(박여숙화랑 대표)





Spring 17-123, Acrylic on Coated Fabric, 210×160cm, 2017
Spring 0401, Acrylic on Coated Fabric, 210×160cm, 2019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 & 남춘모 작가
남춘모 작가님을 처음 만난 건 대략 30년 전 시공갤러리에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대구는 근·현대미술사 전반에 걸쳐 좋은 작가가 끊임없이 나온 도시입니다. 1980년대 대구 미술의 요람은 황현욱 선생님이 만든 인공갤러리였죠.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등 내로라하는 작가님들이 이곳을 거쳤습니다. 또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고요. 1990년대에는 이이태 선생님이 오픈한 시공갤러리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컬렉터였던 저는 두 갤러리를 드나들며 좋은 작품을 많이 구매했습니다. 남춘모 작가님은 시공갤러리가 키우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었어요. 작품이 좋아 샀지만, 그땐 작가님과 이렇게 오래 인연을 이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2005년 이이태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시공갤러리도 문을 닫았습니다. 누군가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생각했고, 그렇게 2007년 리안갤러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첫 전속 작가가 남춘모 작가님입니다. 갤러리스트 입장에서 남춘모 작가님은 이상적인 작가입니다. 갤러리를 운영할수록 작가의 인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아무리 작품이 좋고 대중의 호응을 얻어도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그 열기는 곧 수그러들고 말죠. 갤러리는 작가들이 좋은 방향으로 작업을 이어가도록 돕지만, 결국 작업을 발전시키는 건 작가의 몫입니다. 그런 면에서 남춘모 작가님은 타의 모범이 됩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른 시간 작업실로 출근해 저녁까지 치열하게 작업하시죠. 언젠가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냐고 여쭈었다가, 붓을 놓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최근 작가님은 입체 오브제 작업의 다양한 변화를 모색 중이고, 페인팅에도 집중하고 있는데 붓 자국에서 무수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공하면 교만해지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작가님은 한결같이 겸손하고 신의 있는 분입니다.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작가님과 전속 계약을 네 번 연장한 이유이자, 앞으로도 같이 성장해가고 싶은 이유입니다.
안혜령(리안갤러리 대표)





Umber-Blue, Oil on Linen, 73.5×100.5cm, 1980
Courtesy of PKM Gallery ⓒ Yun Seong-ryeol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 & 윤형근 작가
윤형근 선생님을 처음 뵌 건 1990년대 중반 어느 행사장에서였습니다. 워낙 과묵하신 분이라 당시엔 제대로 말씀을 나누지 못했지만, 먼 거리에서나마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흠모해왔습니다. 작품에선 필연적으로 작가의 품성이 묻어나는 법입니다. 동서양 시각예술의 전통을 융합한 선생님의 작품은 리넨 천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아주 얇게 물감을 올려 완성합니다. 꾸밈이나 위선, 가식이 없는 선생님의 정신이 작업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윤형근 선생님이 저희 갤러리와 함께하게 된 건 돌아가신 후인 2013년부터입니다. 2015년 PKM갤러리를 지금의 삼청동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선생님의 전시를 개관 기념전으로 선택했습니다. PKM갤러리는 몸담은 시대를 진솔하고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을 예술 행위로 보여주는 작가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윤형근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셨고, 숙명여고 교사로 재직한 1970년대 당시 입학 비리에 맞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10년 넘게 활동을 못하시기도 했습니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 같은 세계적 작가가 먼저 러브콜을 보낸 것도 올곧게 살아온 선생님의 삶을 작품에서 읽어냈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 10월 저희는 다시 한번 선생님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생전에 화첩, 메모첩, 서신 등에 남긴 소박한 기록을 엮은 단행본 <윤형근의 기록> 출판을 기념하는 특별전이었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각색한 기억을 싣기보다는, 선생님의 평소 생각과 생활 속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어째서 시대에 야합하는 집단을 경멸하는지에 대한 생각부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준 친우를 먼저 떠나보낸 뒤 느낀 쓸쓸한 감정까지. 3년 가까이 출판을 준비하면서 선생님을 한층 깊이 이해하게 됐고,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는 걸 보고 그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선생님이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박경미(PKM갤러리 대표)





풍천(風天), Acrylic on Canvas, 182×455cm, 2010

학고재 우찬규 대표 & 강요배 작가
강요배 선생과 학고재의 만남은 30년 전 즈음으로 기억된다. 언제부터인가 강요배 선생을 생각하면 당시(唐詩)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해마다 해마다 꽃은 그 모습이건만 /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그렇지 않네.”
세태와 인심의 표변을 탄식한 당나라 무명씨의 시다. 내가 사람에 대한 상실감을 느낄 때 읊조리는 시이기도 하다. 그럴 적에는 강요배 선생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랜다. 시인이 천년 전이 아닌 지금 시대에 태어나 강요배 선생을 벗으로 사귀었다면 이 시는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하면서 홀로 웃음 지어보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 유배 시절 ‘세한도’를 그렸다. 그 발문에 소나무, 잣나무의 미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겨울 이전에도 그대로였고 / 겨울 이후에도 그대로였다.”
내가 아는 강요배 선생은 처음 만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같다. 수백 년 모진 북풍한설을 견디며 더욱 굳세고 강건해진 제주의 팽나무 같다고 할까. 겉모습은 팽나무인데 속마음은 초여름 호박꽃 같은 분이기도 하다.
해마다 8월 첫째 주가 되면 제주도로 가족 휴가를 떠난다. 강요배 선생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다. 오후 서너 시 무렵 선생의 작업실을 방문한다. 최근의 작업을 함께 바라보며 막걸리잔을 기울인다. 달이 떠오르면 협재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겨 최근 읽은 책, 국내외 미술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렇게 밤이 깊어간다.
그만 자리를 파하고자 하면 선생은 저 달이 저쪽 바다에 들 때까지만 마시자고 한다. 그러다 달이 지고 먼동이 틀 때까지 자리가 이어진 적도 있다. 되돌아보면, 그보다 흥겹고 유익한 시간이 어디 있을까. 선생의 변함없는 자세는 내 세상살이의 힘이 되었다. 최근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상황 탓에 이 정다운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내년 여름이 벌써 기다려진다.
강요배 선생의 작품 세계는 1998년 <4·3 50주년 기념 - 동백꽃 지다>전 이후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주의 토양과 식물 그리고 거센 바람을 다룬 ‘마파람 I’(1992), ‘호박꽃 I’(1992), ‘서천’(1992), ‘팽나무 I’(1993), ‘흰 바다’(1993), ‘풍천’(2010), ‘불인’(2017) 등 많은 작품이 사랑받고 있다.
‘4·3’ 연작을 그리던 마흔 즈음의 강요배, 상처 난 풍경을 탐색하던 쉰 즈음의 강요배, 그려온 것과 그려야 할 것 사이에서 고민했을 예순 즈음의 강요배를 떠올려본다. 요즈음, 그간의 업적을 인정받은 칠순의 강요배가 이인성미술상을 받았다. 10월 13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는 대구미술관에서 대규모 기념전 <강요배: 카네이션 - 마음이 몸이 될 때>전이 열린다.
선생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선생의 말씀으로 정리해본다. “따스하게 벗처럼 살면 어디든 중심이 되는 법이다.”
우찬규(학고재 대표)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일러스트 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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